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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이별을 준비하는 다섯 가지 방법
작가 : 멀이
작품등록일 : 2018.12.10

[일상물/잔잔물/결혼 이후로 시작하는 이야기/시한부남주/와 지켜보는 가족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이상형은 아가사 당신이니까요.”
“나 나쁜 사람 만드는 데에는 일가견 있어요, 당신.”
“별말씀을.”

시원스레 응수하고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튼 레슬리는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며 노래하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해야 어디 도망을 안 가죠.

“누가 들으면 도망갈 준비만 하는 사람인 줄 알겠어. 도망갈 사람은 당신 아니에요?”
“저런. 아가사 말은 바로 해야죠. 나는 남겨질 사람이고, 앞으로 가는 사람은 당신이에요.”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죠. 앞으로 나아가기. 순간 부는 바람은 모든 소리를 잡아먹고 공기마저 멈춘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정적을 가져다주었다. 설풋 고운 눈매가 일그러지기가 무섭게 레슬리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싫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감사하죠.”

뒷말을 짐작이라도 한 모양으로 가라앉은 표정에 가벼이 입을 맞춘 레슬리는 누가 들을 새라, 조그맣게 속닥였다.

“세상 누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겠어요? 몇 없는 특권을 누리는 중이랍니다, 나는.”
“말은 참 잘해요, 레슬리.”
“그럼. 사업가인데.”

그래서, 레슬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아가사는 짙은 녹음 속에 잠긴 자신의 남편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멋진 준비를 하는 중인가요?”
“그럼요.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15화
작성일 : 18-12-25 14:57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4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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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동안 적어도 겉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몸은 버틴 것이 용하다는 듯, 한 번 망가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겨울철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말라가는 이는 마치 모든 생명력을 빼앗긴 것처럼 보였다.

 

 여느 때와 같이 레슬리를 앞에 두고 잠시 다른 생각에 잠겨있던 아가사는 톡톡 천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반쯤 감긴 녹음이 모처럼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반가워, 아가사는 가늘고 긴 레슬리의 손등을 톡톡 마주 두드렸다.

 

 “피곤하면 더 자도 괜찮아요.”

 “…….”

 

 무어라 입술을 벙긋거리며 레슬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속삭였고, 다시 눈을 감았다. 고른 숨소리는 아직 당장은 떠나지 않을 것이라 일러주는 지표 같았다. 수염을 깎고 가끔씩 몸을 닦아주는 것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터라 덥수룩하게 긴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으며 아가사는 마찬가지로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느린 오후의 한때가 또 다시 저물어 가고 있었다. 아가사는 결혼반지가 헐거워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 바스라질 것 같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빨리 일어나줘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아.

 

 ❦

 

 예기치 못한 순간은 가끔 시시 때때로 찾아오곤 하였다. 더없이 멀쩡하게 일어나 앉아있다가도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고통에 몸부림치다가도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거짓인 듯 눈을 끔뻑거리기도 하였다. 그 일련의 시간들 속에서 아가사는 그제야 예전에 들었던 말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가, 엄마는?”

 “잠깐 쉬러 가셨어요. 계속 같이 있었는데…. 엄마 데려올게요.”

 “아니, 아니. 괜찮아. 아빠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좀 쉬게 두렴.”

 

 나이에 맞지 않는 깊은 눈동자를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여느 때보다 힘이 조금 더 나는 것 같아, 레슬리는 팔로 침대를 짚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 좀 괜찮네.

 

 “엄마 말은 잘 듣고 있니?”

 “엄마가 내 말을 안 듣죠.”

 “저런, 우리 아가 말을 왜 안 들을까.”

 

 쪼르르 다가와 자신의 곁에 딱 붙어있는 아이를 익숙하게 둘러 안고 토닥이며 레슬리는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 물었다.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니? 식사는 거르지 않았고? 숙제는 꼬박꼬박 다 해야 한다.

 

 “아빠도 잔소리해. 아빠, 난 겨우 여덟 살이라고. 놀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는 아이 치고 못 노는 아이는 아직 못 봤단다.”

 

 여덟. 팔 년. 제 엄마가 목숨까지 걸고 세상에 빛을 보게 한 지 벌써 팔 년이란다. 새삼 지나간 시간을 헤아리며 슬며시 웃던 레슬리는 뚱하게 입을 내민 아들의 뺨을 어루만지며 작게 키득거렸다.

 

 “지금은 아빠랑 놀까? 데이트 할 기회를 주시겠어요, 도련님?”

 “무지하게 바쁜 사람이지만, 특별히 시간을 내줄게요.”

 “누굴 닮아서 이렇게 포장을 잘 할까?”

 “엄마 말로는 아빠 닮았대.”

 “아빠는 엄마 닮았다고 하려고 했는데.”

 “그럼 그렇다고 하지 뭐.”

 

 이 나이 대에, 그리고 한동안은 자신이 부모를 닮았다고 하면 일단 인상부터 찡그리고 보지 않나? 꽤 순순히 인정하는 모양새는 체념보다는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가까웠다. 의아해 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윌리엄은 발을 까딱거리곤 지난겨울 엄마가 거하게 던진 폭탄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요즘 손님들이 엄청 많아졌어. 데브가 그러는데, 점점 수가 늘어날 거래.”

 “그래. 엄마가 그랬어?”

 

 여자 아이들을 가르치고, 후원하고,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레슬리는 함께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긴 여정의 단단한 초석을 이렇게나마 보았으니 적잖이 안심이 되는 것도 같고. 아가사의 이야기에서 에디스를 거쳐, 벤자민에 대해 조잘거리던 윌리엄은 문득 생각난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보았다.

 

 “아빠, 있잖아.”

 “응?”

 “나중에 나 결혼해야 된다고 막 그러는데,”

 “하기 싫으면 굳이 안 해도 괜찮아.”

 “…데브랑 해도 되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오, 이런. 우리 아드님이 벌써 그럴 나이였나? 다 컸네, 도련님?”

 “아, 아빠! 놀리지 말고! 난 진지해! 귀족이 아니라고 뭐라 할 수 있다고 벤자민 삼촌이 그랬단 말이야.”

 “걘 또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 뭐 어쩌자는 거야…. 아가,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할 사람은 없단다. 다 해도 괜찮아. 네 인생인걸.”

 “진짜지? 약속했다?”

 “그래. 약속. 아빠는 윌리엄의 모든 것을 응원해. 그러니까 아가. 아빠랑 약속 하나만 해도 될까?”

 

 당연한 듯 옆자리를 내어주고 온기를 나눠주는 행동이 이리 사랑스러운 것을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걸. 수많은 후회와 번뇌, 슬픔은 자신도 모르는 새 이곳저곳에 배어있었다. 꽤 심각한 이야기라 지레짐작한 얼굴이 귀여워, 레슬리는 부러 뜸을 들이다 비밀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엄마랑,”

 “데브를 지키라고?”

 “아니-. 엄마는 지킴을 받는 사람이 아닌걸. 엄마는 아주 강한 사람이니까 윌리엄이 다 클 때까지는 엄마가 보호해줄 거야. 그거 말고, 엄마랑 최대한 오래 함께 있어줄래? 엄마랑 싸워도 괜찮지만 금방 화해해줄 수 있니?”

 “엄마가 잔소리하는 건 싫은데.”

 “그럼 아빠가 하지 말랬다고 하렴. 너무 자주 말하지는 말고. 자, 약속해줄 수 있을까, 아가?”

 “음, 그럴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우리 아가, 착하기도 하지. 자신의 옆에서 머리를 비비는 통에 붕 뜬 머리칼을 눌러주듯 찬찬히 쓸어주자, 자신을 닮은 눈동자가 곱게 휘었다. 아빠가 조금 더 오래 깨어있었으면 좋겠어. 아빠도 그래. 윌리엄 얼굴 더 보고 싶은데.

 

 아직은 작은 팔로 허리춤을 반 정도 꼭 끌어안은 윌리엄은 그대로 고개를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다정한 시선과 눈을 맞췄다.

 

 “다음번에는 그러면 되지. 난 지금도 재밌어.”

 “후회하지 않을 만큼?”

 “어…, 역사 수업 빼먹은 만큼만. 요만큼만.”

 “웬일로 여기 있나 했다. 자, 도련님. 이제 그럼 수업 들어가실까요? 아빠가 뭐라 했지?”

 “아는 게 힘이다?”

 “옳지. 수업 빨리 끝내고 오면 또 얼굴 볼 수 있을 거야.”

 

 아빤 내가 어린애인줄 아나봐. 폴짝 침대에서 뛰어내린 작은 인영은 손을 흔들고 우다다다 밖을 향해 뛰어갔다. 윌리엄-! 너 또 땡땡이 쳤지! 아스라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참을 수 없이 유쾌해져 레슬리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소리를 내어 웃었다.

 

 후회하지 않느냐고? 매순간 레슬리는 후회와 후회하지 않음을 번갈아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알걸. 조금만 더 빨리 신경을 쓸걸. 더 빨리 사랑한다 말해줄걸. 새로이 쌓여가는 후회와, 후회가 아닌 것들은 다시 아득한 시간 너머로 여행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자신이 늘 가지고 다니던 수첩을 끌어와 뒤적거린 레슬리는 그 옆에 있는 펜을 들고 손가락을 까딱여보았다. 그래, 오늘은 좀 힘이 난다.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 위에 지금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적어내린 레슬리는 문득 침대 옆에 있는 화병들에 눈이 닿았다. 이봐. 몰랐던 후회도 생겨나잖아. 절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것들을 해버렸잖아. 조용히, 침대 헤드에 기대고 다시 맨 아래에 그려내듯 글자를 새겼다.

 

 사용인을 부르기 위한 종을 툭 건들고, 눈이 동그래진 채 달려온 이에게 자신의 가족을 불러달라 낮게 읊조린 레슬리는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삶의 투쟁이 가득히 배긴 손보다 더 희고, 가는, 한 번도 일을 해보지 않은 자의 손.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일까. 생각보다 마지막은 고요했다.

 

 “아가사.”

 

 힘이 나던 것은 죽기 직전의 발악과 같은 것이었을까. 한걸음에 달려와 내민 손을 잡은 이는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매순간, 정신이 살아있는 순간마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는데. 막상 생각나는 말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전에 옷 안 어울린다고 했던 것, 아주 잘 어울렸어요. 어울릴 장신구를 사줄까 했었는데.”

 

 “아끼는 만년필 촉 부러뜨린 건 사실 내가 맞아요. 알버트한테 미안했다고 좀 말해줄래요?”

 

 “당신이 잠에서 깨는 순간을 참 좋아해요. 당신은 얼굴이 부었다고 별로 안 좋아했지만.”

 

 “당신의 모든 가능성을 재고하고 내 곁에 있어줘서 참 고마웠어요. 미안했고.”

 “그게 다가 아닐 텐데?”

 “사랑했어요. 사랑했고, 사랑하고, 또 사랑할게요.”

 

 부부가 늘 뱉던 말이 평소와 같이 나왔으나 그 뒤에 괜히 말을 덧 이은 레슬리는 빙그레 웃으며 잡은 손을 살며시 쥐었다.

 

 “나는 당신의 추억이 되었나요?”

 “너무나.”

 “그걸로 충분해요.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대 아니면 결혼할 수 없을 것 같아.”

 “나 아니면 결혼해줄 사람은 있고요?”

 “그것도 그러네.”

 

 우리는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꽤 로맨틱하지 못한 것 같아요. 천천히 내쉬는 숨의 간격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죽음은, 늘 극적인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저 평소처럼 잠이 오는 것과 같이, 그냥 그렇게 눈이 감기고 있었다.

 

 “아가사,”

 “당신은 늘 내게 최고의 선택을 안겨준 사람이에요. 너무나도. 늘 그렇듯, 사랑해요. 앞으로도 계속.”

 

 영광이네. 속삭이며 잇새로 흘러나온 말을 끝으로 조용히 오르내리던 가슴팍이, 숨결이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속설에, 숨이 꺼져가는 이라도 마지막까지 들을 수 있다더라. 아가사는 제 입을 깨물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가는 길에 슬픔을 얹어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엄마, 아빠가 불렀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그 순간을 몇 번을 지나고서도, 아가사는 입을 틀어막은 채,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만을 겨우겨우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제 어머니가 그렇게 작아 보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고 훗날의 윌리엄은 그리 회상했다.

 

 생명이 피어나도록 돕는 햇살이 창을 타고 길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열어둔 창문 틈으로 상쾌한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커튼과 왈츠를 추고, 조금씩 활기차지는 새의 울음소리가 음률을 더했다. 완연한 봄날이었다.

 

 지독하게도.

 

 이별은, 사실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후회 없이 사랑할 시간만 남겨줄 뿐. 다시 하루가 흘러간다. 그리고 또 다른 하루가 찾아온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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