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 인근의 바다. 한 척의 어선이 떠있다. 어부들은 그물에 걸린 시신에 놀란다. 보트 위로 시신을 끌어올려 천으로 덮어두고 육지로 뱃머리를 돌린다. 보트가 부두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경찰이 시신을 확인하고 어부들은 들것으로 시신을 옮겼다.
흰 천에 덮여 병원의 영안실에 눕혀진 시신을 살피던 의사가 서류에 메모를 하는 사이, 시신이 일어났다. 좀비는 의사를 공격하고 나서 영안실 밖으로 뛰어 나간다. 짧은 시간에 병원사람들이 하나 둘 희생당했다.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군인들까지 출동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도시들은 차례차례 폐허로 변한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배를 타고 바다로 탈출하라고 발표하고 이웃나라에 난민을 수용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했다.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바다에 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어선이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등의 이웃나라로 접근하자 해당국의 군대는 함포를 발사하여 어선을 격침시킨다. 육지의 생존자들이 옆 나라인 아이티로 몰려가지만 국경을 넘지 못하고 고립된다.
아이티 접경지역에서 고립된 생존자들이 좀비들에게 공격을 당했다. 희생자가 늘어나자 더 많은 수의 좀비들은 아이티의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아이티는 군인과 경찰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해 방어하지만, 결국은 좀비들에게 뚫리고 만다. 아이티도 아비규환에 빠진다.
이에 미국이 중심이 된 UN군은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가 있는 이스파뇰라섬에 대한 봉쇄령을 내리고 바다에 떠 있는 난민들을 도미니카의 한 섬으로 격리한다. 이후 UN군은 두 지역에서 나오려는 모든 선박과 항공기에 포격을 가했다.
교도소 수용동.
손민우는 윤상근과 오늘의 미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미션은 참... 난이도도 높지만... 마음이 좀 그러네요. 아무리 좀비들이지만요.”
“네, 민우씨. 저도 좀 그래요. 다른 건 몰라도 진짜로 죽이는 건...”
“그러게요. 한 놈도 아니고...”
“그리고, 전기로 감전을 시키면 차단기가 내려가서 불이 다 꺼집니다. 전기기사를 불러서 이 케이블만이라도 차단기를 통하지 않게 우회시켜 놔야 하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던 교정단장이 끼어들었다.
“편하게 생각하세요. 어차피 치료를 해도 소생이 불가능한 건 두 분이 더 잘 알잖아요. 그리고 연구소에서 하는 얘기가, 이 감염자들은 고통도 느끼지 못한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전기 문제는 우리가 해결 할 테니 전기충격을 제일 나중에 하시고요.”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썩 편해지진 않았다. 오늘의 미션은, 세 가지 방법으로 좀비를 죽이는 것이다. 첫 번째는 마취제를 대신한 독극물 블로우건을 사용하는 것. 두 번째는 전기충격을 주는 것. 세 번째는 뒤통수를 제외한 머리를 둔기로 때리는 것이다.
이미 쥐를 이용해서 동물실험을 했지만 실제 좀비들에게도 적용되는지 경찰특공대에서 확인하고 싶어 했다. 손민우가 죽일 좀비 셋을 고르고, 전기충격을 주는 역할을 맡았다. 자연스럽게 윤상근은 머리 타격과 독극물 주사를 맡게 되었다.
손민우는 공구박스를 열어 여러 가지 공구들을 손에 들고 고민을 했다. 그리고 망치를 골랐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구 중에서 머리 타격에 가장 적절한 것이 망치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망치와 독극물 주사를 윤상근에게 내려 보냈다.
손민우는 효과적인 작업을 위해서 조금 굵은 케이블 두 개를 잘랐다. 이어 전선을 꼬아 하나로 만들고 양 끝부분을 적당한 간격으로 벌렸다. 마지막으로 끝을 날카롭게 매만져 두고 다시 전기테이프로 감았다.
윤상근은 망치를 들고 철창에 서서 좁은 틈으로 내리치는 연습을 했다. 그런 다음, 담요커튼에 종이를 붙여 놓고 블로우건을 쏘아 보았다. 어느 정도 연습이 끝나자, 보안경을 쓰고 방검장갑을 꼈다.
손민우가 혈액주머니를 잘라 윤상근의 방 앞에 뿌렸다. 윤상근은 상황에 따라 사용하기 위해서 한 손엔 블로우건을 다른 한 손엔 독극물과 마취제를 동시에 들고 있었다. 이윽고, 좀비들이 달려 나왔다. 윤상근의 방 앞은 예전보다 더 많은 좀비들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손민우가 죽일 좀비 둘을 골랐다. 구분하기 쉽게 덩치 큰 좀비와 덩치가 작은 좀비였다. 손민우의 선택에 따라 윤상근은 독극물을 발사해서 덩치가 작은 좀비의 머리를 맞췄다. 좀비는 곧 쓰러졌다. 그런 다음 마취제로 덩치가 큰 좀비를 맞췄다.
덩치 큰 좀비도 곧 쓰러졌다. 하지만 윤상근은 작전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손민우가 고른 좀비가 철창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윤상근은 철창에 붙어 있는 좀비의 얼굴에 마취제를 쏘았다. 그리고는 담요 뒤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좀비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복도에는 독극물에 쓰러진 좀비 하나와 마취제에 쓰러진 좀비 둘이 남았다. 윤상근은 마취된 좀비의 발을 철창 안으로 잡아 당겼다. 나머지 한 발을 잡아당겨 다음 칸 철창으로 넣고 양다리를 묶었다.
윤상근이 한 숨 돌리고 있는 사이, 마취제를 맞은 좀비 둘이 깨어나서 윤상근을 보고 철창으로 덤벼 들었다. 망치를 들고 가까이 다가가자 좀비들은 더 크게 으르렁 거렸고, 이내 다른 좀비들도 깨어나 다가왔다.
윤상근은 망치를 들고 다리가 묶인 좀비의 머리를 노렸지만 다른 좀비들의 팔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망치로 좀비들의 팔을 때리기 시작했다. 찍히고 부셔져서 팔이 꺾여도 좀비들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를 향해 망치를 내려쳤지만 번번이 가로 철창에 부딪혔다.
손민우가 보기에도 윤상근이 좀비의 머리를 타격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손민우는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상근씨, 안되겠어요. 이러다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만 합시다. 다른 방법을 찾죠.”
윤상근은 다리가 묶인 좀비의 얼굴에 독극물을 쏘고 담요 뒤로 몸을 숨겼다. 좀비들이 제자리로 돌아 간 후. 손민우는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상근씨, 내가 와이어를 내려 줄 테니까 그걸 잡고 있어요. 그 와이어 반대편으로 올가미를 만들어서 좀비의 목을 건 다음, 둘이서 당깁시다. 적당히 올라 왔을 때, 내가 때려 볼 테니까.”
윤상근이 손민우에게 망치를 올려 주고, 와이어를 내려 받았다. 손민우는 와이어의 다른 끝에 올가미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바닥에 피를 뿌렸다. 좀비들이 튀어 나왔다. 손민우는 바닥을 기며 피를 핥아 먹는 좀비 하나의 목에 올가미를 걸었다.
좀비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난 후. 손민우와 윤상근은 올가미에 걸린 좀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좀비는 목이 졸리는데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지만 소리도 내지 못했다. 대롱거리며 천장 위로 서서히 끌려 올라갔다.
윤상근이 와이어를 잡고 버티는 동안, 손민우는 망치를 꺼내 들고 몇 번 휘두르며 연습을 했다. 땀이 나는 듯 자꾸 바지에 손을 닦았다. 망치를 공중으로 높게 들었다. 잠시 멈칫 거리더니 다시 팔을 내리고 바지에 땀을 닦았다.
손민우를 본 좀비는 더 세게 버둥거렸다. 좀비가 요동을 치자 윤상근이 이를 악물고 와이어를 잡았다. 하지만 손민우는 아직도 좀비의 머리를 내려치지 못하고 있었다. 좀비는 손민우에게 손을 뻗으며 발악을 했다. 손민우가 다시 망치를 높이 들었다.
손민우가 이제 막 내려치려는 순간, 윤상근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와이어를 놓쳐 버렸다. 바닥으로 떨어진 좀비는 땅바닥에 이마가 부딪혀 머리가 깨졌다. 아픈 손을 비비며 그 광경을 자세히 살펴보던 윤상근은 무전기를 꺼내 말했다.
“미션 완료!”
손민우는 점심을 먹으면서 윤상근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니,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을 왜 그렇게 어렵게 했는지 몰라요. 크크.”
“흐흐, 그러게요. 막상 그렇게 되고 나니까 애초에 발목을 걸어야 했구나 싶더라고요.”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상근씨는 폭력전과 3범이라면서 그걸 못해요? 큭큭.”
“하하하, 저는 무늬만 폭력이라서요.”
“그런데 상근씨는 항상 마스크를 끼고 계시네요. 아직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네, 항상 조심해야죠.”
“그건 그렇죠. 이 위에서는 그럴 일이 별로 없지만, 밑에서는 피 한 방울만 잘못 튀어도 큰 일 날 테니까요. 항상 몸조심하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민우씨도요.”
“아니, 우리도 이제 한 팀인데, 민우씨, 상근씨 하지 말고 말 틉시다. 저번에 들으니 내가 몇 살 많은 것 같던데... 형,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건 어때요?”
“아~ 네, 좋죠. 어차피 가족도 없는데 형이 있으면 좋죠.”
“가족이 없어요? 아무도?”
“네, 어릴 때 할머니 돌아가신 이후로는 없어요.”
“우와, 어릴 때부터 고생 많이 했겠네. 나도 그래. 나도. 와이프랑 이혼한 이후로 아무도 없어.”
그때 교정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민우씨, 윤상근씨! 오전에 고생 많이 하셨다면서요? 방금 전기기사가 와서 차단기 작업 마치고 갔습니다. 이제 감전이 되도 차단기가 작동 안하니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가네요.”“아이고, 교정단장님. 제가 전기만 20년 넘게 만지고 있습니다. 걱정도 팔자시네. 곧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소주 두 병 부탁드립니다. 상근씨랑 형, 동생 하기로 해서...”
“네, 좋은 인연이네요. 대신 노래는 안 됩니다.”
“아이고, 부끄럽게...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