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알겠습니다. 지난 번처럼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자식이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냐? 요즘 애들은 오냐! 오냐! 자라서 안돼! 맞아 해! 잘 다녀와! 임마! 너무 잘 보이려고 손바닥 비비지마. 말할 때 손 바닥도 맞잡기 말고. 회장님이 그런 모습을 제일 싫어해. 알았어?”
“예! 명심하겠습니다”
다음 날 새벽 일찍 KTX을 타고 서울에 도착한 동원은 수리가 알려 준 회사로 바로 들어갔다.
“응! 자네가 김동원이군. 자! 인사하게. 여긴 오늘 같이 감찰 갈 윤연어부장이야. 참! 혼자서 되겠어? 그 쪽 사람들이 거칠 텐 데”
혼자라는 말과 거칠다는 말에 윤부장이 움찔하고 놀란다. 이게 무슨 말이지?
“저! 회장님! 무슨 말씀인지?”
“아직도 미련을 가진 회사들이 아마 거칠게 항의를 할 거야. 자칫 몸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어. 물론 윤부장이 보낸 공문대로 인수 합병에 백기를 들고 서명은 했지만 그래도 자기들은 할 말을 다 할거란 말이지. 그때 이 젊은 친구가 나서라는 거야. 자네는 교육 잘 받고 왔지?”
걱정스러웠는지 회장이 동원을 쳐다보며 물었고 동원은 염려 말라고 한다. 그런데 윤부장이 고개를 돌려 동원을 미심쩍게 쳐다보고 있다.
“걱정 마! 정군도 처음엔 저랬어. 오히려 더 나은 것 같은데”
그때 동원이 고개를 구십도 숙이고는 자신 있게 우렁찬 목소리를 낸다.
“염려 마십시오. 형님보다 잘 할 수 있습니다”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냐! 아냐! 그러면 안돼! 여긴 기업이야. 그렇게 인사하면 안돼. 그리고 형님이란 호칭도 쓰면 안돼. 사장님이라고 해. 정사장. 자네들도 알게 되겠지만 이번 합병이 끝나면 바로 대대적으로 조직 개편을 할 거야. 그러니 상호간에 호칭을 조심하도록 해. 자네도 얘기는 대충 들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또 구십 도로 고개를 숙이려다가 움찔하고서야 허리만 아주 조금 숙인다. 회장이 어이가 없는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연어는 회장님 말씀에 솔직히 섭섭했다. ‘어디다가 비교를 해?’라고 따지고 싶었다.
“그럼! 바로 다녀와! 윤부장도 고생 좀 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예! 다녀오겠습니다”
첫 번째로 방문할 회사는 그 쪽 업계에서는 가장 거물은 강성호 회사였다.
그 동안 사찰을 하면서 윤부장은 양아영이 강성호의 아내란 사실을 알았고 양아영도 연어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공문과 문서만으로 인수해버리고 싶었지만 회장님 지시라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다.
과연 양아영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반응도 궁금했다. 과연 서로 떳떳하게 마주 볼 수 있을 까?
한편으로는 흥미로웠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하나는 수리가 보낸 매일 중에는 양아영의 회사는 살려두라는 뉘앙스가 풍겼다.
회사의 녹을 먹고 있는 한은 실리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라는 말을 뇌리에 각인시켰다.
어쩌면 회장님과 반대의 생각을 수리가 하고 있다는 의문도 가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지켜 본 회장과 수리가 흡사한 면은 있었다.
그러나 그 내면 깊숙이 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강단이 확실한 냉혈동물은 확실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수리는 간혹 나약한 부분을 보이기도 했다.
오래 전 학창 시절과 최근에 겪어본 수리는 회장님과 백팔십도 다른 류의 인간이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여리다.
톨게이트를 지나 차는 열심히 달리고 있었고 이 젊은 친구는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윤부장도 회장과 수리 생각에 빠져 지금 옆에 누가 있는지를 깜빡 잊었다.
그런데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어디에 가자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그리고 백미러에 승용차 두 대가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차도 뒤에 따라오는 차와 마찬가지로 렌터카 번호였다.
가끔 출장을 가면 윤부장도 이런 번호판을 이용해서 잘 알고 있었다.
“뭐 타고 왔어요?”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예! KTX타고 왔습니다”
“그럼 이 차는?”
괜히 물었다 싶었다.
이들은 깡패이기 전부터 회장님의 심복들이니 어련히 누군가가 알아서 준비했는데 쓸데없는 질문을 한 것 같았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확실했다.
그런데 살짝 기분이 나빴다.
멋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게 그 놈! 수리와 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실체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럼 양아영도 그대로 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 얼굴이 화끈거렸다. 본인의 실체도 뭐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
세 시간 정도 달릴 동안 차는 멈추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가자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들이 깡패란 사실이 무섭고 두려워 은연중에 윤부장의 심장을 멎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스릴은 있었다.
옆으로 힐끔 쳐다 봤다.
인물이 참 좋았다.
깡패도 이런 인물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상상했던 깡패의 모습이 전혀 아니고 깔끔한 미남이었다.
수리처럼 무뚝뚝하지만 않다면 참 멋진 사내인데 이 놈이나 그 놈이나 똑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차는 벌써 작은 공장들이 따개따개 붙은 시골마을로 진입을 해버렸고 앞차가 벌써 한 공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초행길에서는 절대로 저렇게 공장을 찾아 아주 자연스럽게 찾아 들어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국내 열 손가락 내에 들어가는 회사인지 열 손가락 내에 들어가는 조직폭력배 회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럼 나도 조직 원이가?
그럼 말할 권리는 있다.
이 차는 공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멀찌감치 공장이 보이는 이제 벼가 갓 올라오는 논 한 복판 경운기 길에 차를 세웠다.
눈치 없는 놈!
권리를 행사하고 싶었다. 참을 수 없었다. 깡패 집단에는 위계질서가 단단하다고 들었다.
그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오합지졸이었다. 분명히
무슨 작전에 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 어디 으쓱한 숲 근처 어디에 차를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교육도 참 개똥같이 시켰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개도 오줌을 살 땐 조금 으쓱한 곳에서 싸는데 여기는 벼가 자라고 있는 논 한가운데 경운기 한 대 정도 다니는 논두렁을 개간해 아스팔트로 된 길이지만 관중이 가득한 운동장 정 중앙처럼 보였다.
아주 옛날에 그 놈이 논에서 그랬던 것처럼 옷으로 가려 준다면 몰라도 여기는 아니다 싶었다.
여기서 오줌을 싸란 말인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던 윤부장이 동원을 노려보며 버럭 화를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