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안 먹었지?”
‘저녁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아영은 정말 기력이 소진해서 저녁을 먹여야 할 때까지 아직 눈물을 더 흘려야 했다. 아직은 흘려야 할 눈물이 호수에 갇힌 강물처럼 많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 손해 보더라도 아무도 원망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
그는 귀에다 대고 나지막이 이 말만 하고 등을 보듬어 두드렸다.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고 있어 헛웃음도 나왔다. 이런 모습에 깜빡 속았다는 사실이 또 깨닫게 했다.
“아니! 오빠! 내가 이해가 안돼! 이런 산적같이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 어디가 좋아서… 어이없다”
“음! 이제 살 만 하는구나. 이래야지. 이래야 아영이지”
“내가 어때서? 왜 나는 이런 모습만 보여야 해?”
“씩씩하잖아. 저돌적이고. 나는 이런 네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어”
“아이구! 정말!”
아영은 수리 가슴을 왈칵 밀어버리고 수리는 비틀하다가 아영이 손을 잡아 중심을 잡고는 손을 놓지 않고 뚜벅뚜벅 강변을 걷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신랑이 이쪽 세계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사실이야. 요즘처럼 밝은 세상에 도둑질이라니.허허”
아영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 일에 시발점은 고동우인데 내가 그 놈을 그 회사에 입사시켜줬어. 그 친구가 인물도 좋고 사교성도 많아서 회장님에게 소개를 해줬어. 그런데 그 놈이 그렇게 된 건 자네 신랑 책임도 커. 젊은 친구를 돈으로 매수해버린 거지”
그 말에 아영이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반대야! 그 놈이 우리 신랑을 꼬셨어”
수리가 어이없듯이 크게 웃으며 아영이 볼을 세게 꼬집는다.
“이놈아! 신랑이 어린 애냐? 차라리 돈이 꼬셨다고 해라”
“뭐! 그 말이나 이 말이나 같은 거 아냐? 그런데 아직도 흔히 생긴다는 게 신기해!”
수리가 넌지시 안쓰럽게 아영을 쳐다 본다.
“왜 그렇게 봐?”
“네 신랑도 도둑질을 많이 하긴 했구나. 어떻게 흔하다는 말이 나와?”
전혀 틀리거나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닌 걸 잘 아는 아영이가 움찔하며 민망한지 고개를 숙여 버린다. 그때 수리가 타이르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한다.
“이젠 하지 마라. 나도 힘들어”
타이르는 말이 다독이는 말로 들렸는지 아영이가 긴장을 완전히 풀어버리고 옛날처럼 밤하늘의 별처럼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쳐다보고 묻는다.
“오빠가 왜? 그런데 오빠는 뭐 하는 사람이야?”
“네 신랑 같은 도둑놈들 때문에 먹고 사는 일”
“그러면 우리 신랑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나와 뭐! 당연히 고맙지. 그런데 너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탈이지”
수리가 아영이 손 가락에 자기 손가락을 넣어 깍지를 끼고는 한번 세게 흔들어준다.
아영은 팔을 흔들지만 그렇게 흔들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말 하나 하나가 위해주는 것처럼 들리지만 모조리 신랑을 몰염치한 인간으로 매도만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변명은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본인도 가끔씩 신랑의 그런 불법에 공조를 해 온 건 사실이었다. 단지 물량의 범위만 달랐을 뿐이지 이런 일은 암암리에 벌어지는 하나의 관습에 불과했다.
지금 신랑이 기반을 잡는데 이 관습이 한몫을 했다는 데는 전혀 부정을 할 수가 없다.
아영은 그러나 이 사실을 이 사람에게는 숨겨야 할 부끄러운 과거고 현재진행형이었다.
수리도 말은 않지만 아영이 신랑이 수리 같은 직종의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저 그런 사람과 같이 살고 공조하는 아영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떻게 만나도 똑 같은 놈을 만났는지도 안타까웠다.
“가자! 내려온다고 피곤할 텐데 저녁 먹고 쉬어야지”
수리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차에 오르려던 아영이가 수리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감싼다.
“오빠! 도와 줄 거지”
“손해 볼 생각을 해야지 도와 줄 거야. 본전은 절대 못 찾아줘. 그건 각오하고 있지”
“아까 얘기했잖아. 저도 뭐가 잘못된 지는 잘 알고 있어요. 예전에 오빠에게도…”
수리는 갑자기 숨이 ‘벅’하고 멎었다. 연어도 갑자기 떠올랐다. 그런데 이 녀석이 너무 안쓰러웠다. 아영을 가슴 깊이 꼭 묻었다.
“지난 간 일인데 뭘. 잊어”
“그래도 미안해”
“아니! 내가 더 미안해. 네 마음을 알면서도 내가 너무 매몰차게 했었어. 그땐 미안했어”
가슴이 따뜻하게 젖어지고 있었다. 뗄 수가 없었다. 힘껏 당길 수도 없었다. 너무 이기적이라는 죄책감이 몰려 왔다. 그러나 이기적이 되고 말았다.
아영이 입술은 촉촉했고 따뜻했고 달콤했다.
가슴도 잠시 요동을 치다가 평온해져 있었다.
목을 세게 잡아 당겼는지 아영이 숨이 거칠어졌다.
더 세게 발끝을 올리고 있었다. 낮춰야만 했다.
점점 더 달콤하고 끈적한 진액이 혀끝으로 나와 두 입술을 하나로 붙여버렸다.
처음은 항상 뜨겁다는 말을 무색하게 하지 않았다.
얕은 신음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져 강변을 요란하게 덮어버린 풀벌레 소리만큼이나 감미로웠다.
좁은 공간보다 확 터인 공간에서, 차 안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스릴이 이런 거란 느낌을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로 아영의 신음소리는 갇힌 공간에서 탈출이나 한 듯이 점점 더 거세졌다.
아영이 숨소리에 맞춰 격렬한 하부 몸부림을 뒤로 따끈한 감촉에 잠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다시 달콤한 혀끝에서 거센 숨소리가 들렸다.
아래로 내려간 수리 손에서도 혀끝과 같은 진액이 벌써 많이 흘려내려 있었다.
아주 잠시 불편한 몸짓을 거친 후의 뽀얀 허벅지위로 검은 솜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영이 부끄러운지 손으로 살짝 가리려고 했다.
그 손은 수리의 거시기에 밀려 다른 곳으로 가고 숨소리는 절정을 이뤄 거세진 한참 후에야 다시 고요해졌다.
수리는 후회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내팽개치고 닭 쫓던 개를 자청한 것 같기도 했다.
분명히 연어는 닭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다. 이 일로 인해 확인을 했다.
그래도 아영이도 자신도 측은하다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수리는 오늘은 그때와 반대로 하기로 했다. 덮치기로 했다. 마주 서서, 앉아서, 누워서 발가벗고 껴안는 건 처음이었다.
거친 숨소리와 신음소리가 옆방까지 들리게 하고는 수리는 아영의 머리를 겨드랑까지 잡아 당겨 올려 감싸고는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허”
“그러게 말이야. 그때 이랬으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말을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아영이 얼굴을 전혀 밝지가 않았다. 성 행위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여자로 오해 받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도 같이 머리 속에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