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여기가 A공장 아닌가요?”
“아닌데. 이 주위에 공장이 워낙 많아서 저도 어딘지 모르는데… 길을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아이! 어쩌지…. 자기야 여기가 아니래. 죄송합니다”
난처한 얼굴로 울산을 지은 체 인사를 하고는 어린 아이처럼 총총걸음으로 차에 오르자마자 차는 바로 출발을 했다.
“그 년 되게 귀엽겠네. 남산만한 놈만 아니라면 선글라스부터 벗기고 싶구먼….. 허허허”
음흉한 미소를 짓는 임운영을 쳐다보던 사장인듯한 사람도 같이 맞장구를 치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아깝네. 보기만 해도 뻘떡 서는 구만. 허허허”
아직도 공장을 벗어나 보이지도 않은 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희희낙락거리고 히죽대다가 임운영이 욕정을 참지 못하고 얼버무리며 묻는다.
“사장님! 오늘 이 물건 거의 공짜인데 우리 나가서 한잔 하죠. 모처럼 어린 거 보니 오늘 그냥은 집에 못 가겠는데요. 한잔 하러 가시죠? 예?”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임기사에게 미끼로는 최고인 좋은 제안을 한다.
“좋아! 내일 두 대만 더 가져와. 그럼 내일 바로 가지. 어때? 당신이 한번도 보지 못한 최고로 예쁜 아가씨들 제공해주지. 오케이?”
방금 전까지 시시껄렁한 소리로 흥을 돋우던 임운영이 갑자기 반색하고는 손사래 질을 하고는 난처하게 말을 한다.
“하루에 두 대는 어렵습니다. 요즘 이영재 그 놈이 건물 짓는다고 회사에 휴가를 자주 내는 바람에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서…. “
“그럼! 더 잘됐네. 건물 올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 내가 지원해주지. 이 참에 자네도 차 한 대 사고. 화끈하게 한번 해봐”
임운영이 빙긋이 웃으며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친구야!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했네. 지금 물이 오를 때 바짝 해. 언제까지 남의 차로 먹고 살 건가? 내가 확실하게 밀어줄 테니 두 대만 가져와. 인생 뭐 별 것 있냐? 방금 저런 참하고 젊은 여자라도 만나려면 주머니에 돈이 두둑해야지. 안 그래?”
“예! 좋습니다. 이영재한테 미리 돈을 줘놔야 내일 연장 근무를 하려고 할건데…
임운영이 사장 눈치를 힐끔 살핀다.
“허허! 알겠네. 잠시 기다려봐”
잠시 뒤 임운영은 현금을 받아 넣고 황홀한 기분에 젖어 시동을 걸었다.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을 하는 동안 피부색이 다른 직원이 하역을 마치고 임운영은 부풀어진 두툼한 지갑에 아주 흡족했다.
땀 흘린 노동의 대가에 뿌듯한 기분이 들어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다시 어두침침한 고개 길을 내려 가다가 또 작은 차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걸 보고 이를 바드득 갈고는 차에서 훌쩍 뛰어 내렸다.
그리고 ‘아차’ 싶어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다시 차에 올라탔다.
자기 마누라보다 덩치가 서너 배 더 큰 그 놈이 뒤 범퍼가 깨진 걸 뒤 늦게 알고 온 게 분명했다.
얼른 방금 받은 봉투에서 돈을 꺼내 주는 게 최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봉투를 집으려고 했지만 벌써 손이 부들부들 떨려 허둥대기만 하고 봉투를 얼른 잡을 수가 없었다.
똥 마른 개 마냥 어쩔 줄을 모르고 개울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놈처럼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있는 데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많이 벌었어요? 얼마나 세게 걷어찼으면 범퍼는 둘째치고 엔진까지 박살 났네요. 거기서 허둥대지 말고 내려서 얘기 좀 합니다”
온 몸에 오한이 왔는지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떠올라 휴대폰을 들었다가 바로 내려 놓았다.
경찰이 오고 난 뒤가 더 큰 문제였다.
현재까지 아무 문제도 없는데 경찰을 부르는 것도 문제지만 경찰이 올라오고 차를 돌리려면 방금 들린 공장에서 분명히 차를 돌릴 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이 무난히 너머 가면 그만이지만 왠지 찜찜해 용기를 내 부딪혀 보기로 했다.
겨우 손에 집은 봉투를 들고 용기를 내 훌쩍 뛰어 내렸다. 일단은 사내답게 어깨에 힘을 꽉 주고 같이 굵직한 소리로 물었다.
“뭐요? 내가 언제 찼다고”
“어! 이 아저씨 봐라. 바로 거짓말부터 하네”
딱히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배를 툭 내밀어 성큼성큼 점점 더 가까워 한 발짝 뒤로 물러서가다가 뭔가 툭 부딪히는 것 같아 고개를 뒤로 돌리는 데 뒤에서 굵직한 소리가 들렸다.
“어허! 후진을 조심해야지”
누구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뭔가가 머리 꼭대기부터 바스스 소리를 내며 내려와 턱 밑을 지나 목까지 내려 왔다.
벗기려고 얼른 손을 얼른 대려고 했지만 손목은 이미 꺾인 상태로 뒤 춤에 가 있었다.
놀랄 틈도 없는 순식간이었다.
어두침침한 산비탈 내리막길보다 더 어두침침한 세상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가시 넝쿨이 바지 가랑이 속을 뚫고 들어왔는지 다리 여기저기를 살을 베듯이 찌르고 있었다.
한가지 확실한 건 이건 하나의 협박일 뿐이란 건 알아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이 놈들의 얼굴을 전혀 볼 수가 없어 여기를 벗어난 후에 어디로 도망쳐 갈 수도 없다는 처지가 더 두려움으로 몰려왔다.
정체를 알 수 없으니 하다못해 어디 썩은 동아줄 같은 양아치라도 찾아가서 부탁도 하지 못한다.
무조건 읍소하거나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뭐해? 우리도 집에 가야지. 마누라 기다린다”
시시껄렁한 농담까지 섞으며 히죽대는 소리가 오히려 죽도록 얻어터지는 것 보다 못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퍽’소리와 함께 임운영이 어딘지도 모르는 수풀 속으로 구르고 있었다.
“야! 살살해! 그러다 죽겠다. 다른 미끼 구하려면 시간만 더 들어가. 살살 다뤄”
다른 미끼라니? 이 놈들이 도대체 누구지? 어디까지 안다는 말이지?
임운영의 머리가 복잡해지는 불편을 덜어주기나 하듯이 발길질이 소나기처럼 또 쏟아졌다.
퍽! 퍽! 퍽! 억! 억! 억! 이 소리가 계속 들리다가 갑자기 숨이 턱 멈췄는지 임운영이 늘어져 누워만 있다. 퍽 소리도 잠시 멈췄다.
“야! 임마! 갈비 탕 먹고 싶어? 갈비를 차면 안되지. 한두 번 해봤어? 자식들이 맞아봐야 정신차리겠어. 다시 해봐. 비닐 봉지 하나 채우고. 그 다 뜯어져 얼굴 상하겠다. 허허허”
그 말에 임운영이 숲에 쳐 박힌 머리를 번쩍 들어 올려 어느 쪽인지도 모르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손을 비비려고 했지만 일어설 수가 없어 하늘인 듯한 방향으로 손을 비비고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면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내일 택배 기사 보낼 테니까 지금까지 도둑질 해 먹은 장부하고 거래 회사 내역 전부 보내. 알았어?”
말도 또박또박 하지 않고 다 닳은 고무줄처럼 어물어물하게 해서 귀를 쫑긋 세워야 들을 수 있게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나 임우영이 알면서도 모른 척한 그들의 대답이 여러 종류의 협박 중에서 가장 무서운 방법을 사용하게 할 빌미만 제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