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에 매달려 트레이를 핥던 좀비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손민우와 눈이 마주쳤다. 좀비는 거칠게 으르렁 거리며 트레이를 잡으려고 한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을 기다리던 손민우는 발을 들어 좀비의 머리를 힘껏 내려찼다.
한 손으로 케이블을 잡고 있던 좀비는 아래로 밀려 내려갔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손민우가 다시 한 번 발로 차려 했지만 좀비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양손으로 케이블을 잡은 채 손민우를 노려보던 좀비는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손민우는 발로 좀비의 얼굴을 찼다. 하지만 좀비는 꿋꿋하게 버티며 조금씩 올라 왔다. 손민우의 발길질이 멈추지 않았지만 좀비의 줄타기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 좀비가 한 팔만 더 뻗으면 케이블 트레이를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손민우는 안전벨트를 걸고 좀비의 어깨위로 뛰어 내렸다. 양발로 좀비의 양어깨를 내려찍는 순간 손민우와 좀비는 비명과 함께 아래로 추락했다. 좀비는 바닥에 떨어져 꼼짝을 하지 않았고, 손민우도 안전벨트에 걸린 채 공중에 매달려 움직이지 않았다.
추락하던 손민우는 안전벨트의 줄이 멈출 때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부딪쳐 기절했다. 케이블 옆에 떨어진 좀비가 꿈틀거리며 일어날 때, 방에 있던 좀비들이 하나 둘 걸어 나왔다. 떨어진 좀비가 다시 케이블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좀비도 케이블을 잡았다. 윤상근은 무전기로 손민우를 불렀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윤상근은 블로우건으로 마취제를 쏘았지만 맞지 않았다. CCTV로 화면을 보던 교정단장도 무전기로 손민우를 불렀다. 윤상근의 두 번째 마취총은 좀비의 어깨에 꽂혔다.
다시 케이블을 잡고 오르는 좀비 아래에 다른 좀비들도 매달렸다. 손민우는 여전히 꼼짝하지 못했다. 좀비 셋이 케이블을 타고 오르고 네 번째 좀비도 케이블을 잡았다. 가장 위에 있는 좀비가 손민우에게 거의 접근했다.
윤상근은 블로우건을 쏘려고 했지만 자신의 철창 앞에 몰려든 좀비들에게 가려졌다. 가장 위의 좀비가 한 팔을 뻗어 손민우를 잡으려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매듭이 풀어졌고 매달렸던 좀비 넷은 바닥의 좀비들 위로 떨어졌다.
교정단장과 교도관들은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교정단장이 무전기로 계속 불렀지만 손민우는 꼼짝하지 않았다. 좀비들은 허공을 보고 몇 차례 손을 뻗으며 으르렁 거리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손민우는 축 늘어진 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TF팀 상황실.
윤팀장과 경찰특공대장은 컴퓨터 화면을 보며 연구원의 관찰결과 보고를 듣고 있었다. 손민우와 윤상근의 현장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실험실에서 추가 연구한 내용이었다.
『 관찰 보고서1(감각 및 지능검사)
1. 야간시력 : 감염자는 암흑상태의 어둠에서도 물체를 식별하는 능력이 뛰어남.
2. 마취효과 : 감염자는 목 윗부분에 마취제 1개를 맞을 경우 3~5분 정도 마취가 가능.
3. 조건반사 : 연속적인 9회의 실험에도 효과가 없음. 지능은 없는 것으로 보임.
위 사항은 현장테스트로 확인한 사항이며, 이를 토대로 질병관리본부에서는 감염된 쥐에 대한 CT 및 MRI 촬영을 하였음. 감염된 쥐의 대뇌 전부와 소뇌의 대부분은 죽고, 뇌간과 척수만 살아 있는 것으로 보임. 따라서 지능이 있다고 볼 수 없음.
즉, 감염자의 유일한 약점은 머리의 뒤쪽이며, 총격이나 타격으로 머리 전체가 파손될 경우에는 머리 뒤쪽을 타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냄. 끝으로, 주의 할 점은 목이 잘리더라도 그 윗부분은 살아 있으니 재차 확인 요망. 』
윤팀장과 경찰특공대장은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팀장은 보고서를 각 부처에 즉시 공유하라고 지시했다. 이때 정대리가 다가와서 말했다.
“팀장님, 할렐루야 선교단 말인데요. 도미니카 교회에서 급하게 공항으로 가느라 도시락을 먹지 못하고 수화물에 넣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도착한 후 교도소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나눠줬다는데, 희생자의 페이스 북에도 버스에서 도시락 먹는 사진도 있고요.”
“도시락을 먹은 후에 교도소에서 감염증상을 보일 때까지의 공백이 너무 긴 것 같은데? 여기 실험쥐들은 감염증상 보이는데 얼마나 걸리지?”
윤팀장의 질문에 연구원 한 명이 대답했다.
“네, 주사제 투여한 후 대략 10~20초 내외입니다.”
경찰특공대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팀장님, 경찰에서 사고당일의 교도소 CCTV를 분석한 결과에도, 사람이 공격당한 후 보통 1~2분 정도면 감염증상을 보였습니다. 선교단의 경우는 뭔가 특이합니다.”
윤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연구원에게 물었다.
“주사제 말고, 먹이 투여는?”
“그건 아직...”
윤팀장이 연구원에게 지시했다.
“먹이 투여를 해봐. 작게 시작해서 많게, 단계적으로”
“네, 팀장님.”
“경찰특공대는 생존자 구조훈련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여론이 잠잠해지고 감염자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 생존자를 구조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교도소 천장.
손민우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눈을 떴다. 그러고도 한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깊은 신음 소리만 뱉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본 후에야 자신이 안전벨트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코피를 닦은 손민우는 가까스로 몸을 돌려 안전벨트의 로프를 손으로 잡았다. 균형을 잡고 주변을 둘러 봤다. 수용동 안은 아주 조용했다. 로프를 잡고 위를 보면서 심호흡을 하다가 안전벨트를 허리에서 엉덩이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허벅지로 걸터앉았다.
다시 균형을 잡은 후 한쪽 발을 빼서 안전벨트를 밟고, 나머지 한쪽 발을 빼면서 안전벨트를 밟고 일어섰다. 손을 뻗어 트레이를 잡은 후 턱걸이를 하여 위로 올라갔다. 천장에 올라간 손민우는 안전벨트를 끌어 올려 허리에 차고 트레이에 반듯이 누웠다.
무전기를 든 손민우가 말했다.
“저녁밥 안줍니까?”
그날 저녁밥을 먹고 난 후,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 올가미용 와이어 등 새로운 물품들을 지급받았다.
손민우와 윤상근은 자신들의 공간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손민우는 모든 도구와 물품을 깨끗하게 다시 정리했고 새로 받은 와이어로 올가미를 여러 개 만들었다. 그리고 케이블 껍질을 벗겨서 보호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윤상근은 담요로 커튼을 만들어 철창 앞을 가렸다. 필요한 물품들도 더 받았다. 손민우와의 공동 작업으로 쪽지 전달용 낚시줄을 설치해서 혼자서도 쪽지를 보낼 수 있게 만들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손민우는 술을 주문했다. 교정단장이 걱정을 하자, 죽다 살아 왔는데 진하게 한잔해야 되지 않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술에 취한 손민우는 노래를 한 곡 불렀다. 그리고 또 불렀다.
급기야 일어서더니 안전벨트의 고리를 걸었다. 이어 발로 차서 천장 마감재를 몇 개 박살내고 새어 나오는 불빛 사이에 서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어~”
“으쌰, 으쌰, 으쌰, 으쌰.”
혼자 장단까지 맞춰가며 노래를 부르는 손민우 때문에 좀비들이 하나 둘 걸어 나왔다. 손민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더 흥이 난 듯 목소리도 커지고 춤동작도 커졌다.
“봄이면 씨앗 뿌려~ 뿌려,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피네,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 하네~ 다같이~”
손민우는 추임새와 함께 혈액주머니를 잘라 공중에 뿌렸고, 아래에서는 좀비들이 열광했다. 담요커튼 사이로 철창 밖을 보며 피식 웃던 윤상근이 뭔가를 발견했다. 좀비가 된 교도관의 목에서 카드키를 발견하자 윤상근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손민우의 행동을 지켜보던 교도관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교정단장에게 물었다.
“교정단장님, 저 사람 그냥 둬도 되겠습니까? 만취 상태로 감염자들을 자극하는데 말입니다.”
함께 CCTV를 교정단장은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둬. 일 잘하고 있잖아. 노래 불렀다고 밥을 안줄 수도 없고. 그냥 두고 보자고. 저러다 말겠지.”
손민우는 이후로도 노래하며 춤을 추다가, 한동안 울다가 그리고 다시 노래를 하였다. 급기야는 무전기를 켜고 노래를 불러 교도관들은 무전기를 볼륨을 줄이거나 끄기도 했다. 그렇게 손민우의 술자리는 3차까지 간 끝에, 구토와 함께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