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션은 좀비의 부상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백신이 개발되어 전염병이 치료가 된다고 하더라도 숙주였던 사람이 소생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윤상근이 좀비를 불러 모았고, 철창에서 우글거리고 있는 좀비들의 부상 정도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체크리스트에 적고 있었다.
손민우는 천장 위 구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 미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구경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손민우는 케이블 트레이 위에서 팔굽혀 펴기를 했다. 좀비의 혈액을 채취하던 날, 자신의 체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윤상근은 체크리스트를 들고 철창 앞에 서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부상 중 가장 많은 경우가 목의 일부가 뜯겨 나간 것, 두 번째가 내장이 없거나 빠진 경우, 세 번째가 팔이나 다리에 상처가 난 경우였다.
손민우가 팔굽혀 펴기를 하다가 지쳐 케이블 트레이 위에 엎드렸을 때 천장 구멍으로 섬뜩한 광경을 목격했다. 수용동 출구 바로 앞에 청바지에 흰색 티를 입은 여자가 윤상근의 방 앞에 몰려든 좀비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굴에 묻은 피만 없다면 살아있는 사람과 구별을 못할 정도였고 옷이 찢어지거나 상처가 난 곳도 없었다.
“남자교도소 안에 일반인 여자라니? 직원일까? 아니, 직원은 모두 근무복을 입는데... 도대체 누구지?”
다시 구멍으로 쳐다봤지만 그 여자는 이미 수용동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걸음걸이도 거의 정상에 가까웠다. 윤상근이 할 일을 다 끝내고 몸을 숨겼는지 좀비들이 하나둘씩 양 옆방으로 들어갔다.
윤상근에게 쪽지를 썼다. 이제 막 좀비들이 흩어져서 지금 무전기를 사용하면 말소리 때문에 좀비들이 다시 나올 수도 있다.
『 혹시, 교도소 직원들 중에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자도 있습니까? 』
잠시 후, 체크리스트가 담긴 주머니가 올라왔다. 주머니 안에 쪽지가 있었다.
『 아~ 아마 선교단일 겁니다. 사고 나던 날, 위문공연 온 선교단들이 청바지에 흰색 상의를 입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제일 처음 좀비로 변해서 수감자들을 공격했어요. 』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손민우는 그때서야 이해가 되었다. 주머니를 와이어에 달아 배관으로 밀어 올렸다. 그리고 마스크와 보안경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곧, 도시락이 내려왔다. 식사를 하고 주변을 정리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쌓인 배변주머니와 소변통을 올려 보냈다.
이제 익숙할 때도 됐건만, 배변 주머니와 소변통을 올려 보내는 것은 여전히 민망한 일이었다. 그런 부분에서는 방에 갇힌 윤상근이 부러웠다. 최소한, 윤상근은 물을 마시고 씻을 수 있으며 평평한 바닥에서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매번 좀비들을 대면하고 말소리도 조심해야 하니 그건 또 참기 힘들 것 같았다. 손민우 자신에게 1층 방과 이곳 천장을 고르라면 천장을 고를 것이라 생각했다. 편한 것보다는 안전한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질병관리본부의 실험실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살아있는 교도소 바이러스를 배양하여 특성을 분석하고 백신을 연구하는 등 각 실험실마다 맡은 연구가 한창이었다. 여러 종류의 동물실험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 실험실에서 성과가 있었다.
다행이 교도소 좀비의 피에서 나온 P2 바이러스는 공기전염은 물론, 모기나 파리, 바퀴벌레 같은 해충에 의해 전염되지는 않았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연구원들은 성과가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축이나 야생동물들에 대한 실험까지 해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실험용 쥐에 P1 바이러스를 주입하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데, P2를 주입하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원형 바이러스와 변형된 바이러스의 차이점이었다. 감염된 쥐의 특성을 분석하는 중이다.
그 아래, 회의실에서는 TF팀의 부서장 회의가 있었다.
윤팀장이 인사를 생략한 채 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지난 회의 이후에 일어난 각 부서의 소식과 요청사항을 말씀해주세요.”
“바이러스 연구부입니다. 감염자에게서 추출해 온 혈액에서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찾았고 배양에 성공했습니다. 약식 명칭은 P2 바이러스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모기, 파리, 바퀴벌레에 의해서는 전염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경찰특공대입니다. 오늘 교도소 측에 의뢰하여 감염자 20명의 부상 정도를 파악한 결과... 바이러스 치료가 된다하더라도... 소생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극히 일부일 것 같습니다. 목과 복부에 중상을 입은 감염자들이 대다수입니다.”
윤팀장이 질문을 던졌다.
“특공대장님, 여기서 경찰에서 말하는 중상은 어느 정도의 부상을 말하는 거죠?”
“네, 저희가 말하는 중상은, 즉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소생이 불가능한 정도를 말합니다. 그 상태로 3주가 되었으니...”
“그렇군요. 모든 부처에서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다른 의견이나 요청사항 없나요?”
“경찰에서 교정본부로 요청사항이 있습니다. 탈출이나 진압 등 감염자를 반드시 제거해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제거방법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지금 저희 경찰이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어렵겠지만 꼭 필요한 정보입니다.”
윤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렇겠군요. 혹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제압하지 못한다면 큰일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일까지 생존자 두 분이서 하실지 모르겠네요.”
교정단장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TF팀장님, 경찰특공대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두 생존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각 부처에서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저에게 보내주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교정단장은 회의를 마친 후 남부교도소로 돌아왔다.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아 각 부처의 관찰 요청서는 전자시스템을 통해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 교정단장은 요청내용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숫자를 붙였다. 그 순서대로 손민우와 윤상근에게 미션이 전달될 것이다.
다음날 아침. 교도관이 도시락과 주머니들을 주렁주렁 달아내려 보낸 후, 교정단장은 무전기를 잡고 미션을 설명하고 있었다. 손민우와 윤상근은 각자의 주머니에서 미션이 적힌 종이를 꺼내 보고 있었다.
“자~ 보시는 바와 같이, 오늘의 미션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감염자들은 야간에 앞을 잘 볼 수 있는가? 두 분이 준비가 되면 무전기로 신호를 보내세요. 그럼, 우리 교도관들이 일시적으로 불을 끄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보내드린 블로우건(blow gun)과 마취제를 이용해서 감염자가 마취가 되는지 확인을 하는 것입니다. 이건 감염자 1명에게 시차를 두고 마취제 3개까지 사용해보라고 합니다.”
“끝으로, 세 번째는 조건반사 테스트입니다. 자극을 주고 반응을 보는 테스트를 10회 이상 반복해야 합니다. 편의상 번호를 매겼지만, 순서는 상관없습니다. 알아서 완수하시면 됩니다. 내일 아침식사 전까지입니다. 이상 전달 끝.”
교정단장의 무전이 끝나자마자 손민우가 무전기를 잡고 말했다.
“저기요. 저기... 이런 미션을 하려면 좀비들을 유인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의 혈액이 많이 필요합니다. 매번 윤상근씨가 하는 건 너무 위험해서...”
“아~ 손민우씨! 그런 거라면 구해다 드리지. 걱정하지 마세요. 구하는 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참, 그리고 두 분. CCTV 모니터와 녹화기를 옥상에 설치했습니다. 교도소 안에 있는 CCTV로 녹화를 해서 연구소로 보내주려고요. 그러니 대충대충 하지마시고, 잘 좀 해주세요.”
아침 도시락을 먹은 후 양치질을 하면서 손민우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한 놈 잡아서 매달아 놓고 마취총 세 방. 야간 시야 확인은 뭐 별거 아닌 것 같고, 조건반사는 뭐야? 이건 상의를 좀 해봐야겠군.”
강민우는 무전기를 들었다.
“상근씨, 식사 다 하셨습니까? 다른 건 뭐 별 문제가 없겠는데... 조건반사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습니까?”
“민우씨도, 이제 이 생활에 완전히 적응 하신 것 같네요?”
“적응은요. 큭큭.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이런 거라도 하면서 시간 보내는 거죠.”
“그래도 다행이네요. 많이 나아지셔서... 뭐부터 해볼까요?”
“마취총 이거 어떻습니까? 제 생각에는 저번처럼 한 놈 매달면 간단할 것 같은데...”
“네, 이번에는 발을 거는 건 어떻습니까? 올가미를 철창 바닥에 두고 당기는 거죠.”
“아~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바로 시작하시죠. 소화도 시킬 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