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안주임은 ‘아니 땐 굴뚝에서 나는 연기’을 고스란히 마셔 정신이 몽롱할 상태일거라는 걱정도 하고 있었다. 만약에 당신이 뭔데 그런 걱정을 하냐며 되물으면 오늘 기획한 짓들도 이실직고 실토할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석유화학단지로 들어가다가 급하게 차를 되돌려 번개보다 더 빠르게 약국으로 들어가 또 번개처럼 나왔다.
또 광속으로 달리다가 석유화학 단지로 들어가 어두침침한 곳에 차를 세웠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에 빠져든다. 안주임을 데려다 주면서 했던 생각을 다시 끄집어 고해성사 하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멈췄던 차를 다시 출발시킨다. 눈앞에 보이는 석유화학단지는 새벽에 배에서 본 그런 화려한 불꽃의 석유화학단지가 아니었다. 주변은 어둡고 적막할 뿐이었다. 온통 유해물질에 찌들은 칠흑의 담장용 나무들만 지나치고 있었다. 그들은 푸르름을 잃었다. 물론 멀리서 보면 푸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푸르른 세상처럼, 아침에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 같은 그런 사람인 안주임이 이런 곳에서 근무를 한다는 자체가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도 하고 있는 수리. 마음이 급해졌다.
여기저기 설치된 과속 방지용 턱받이에 부딪힌 엉덩이가 찌릿찌릿하지만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란 일념 하나로 내달리고 있다. 멀리 전조등 불빛에 작달막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눈이 부신지 경례 자세를 하고 있다. 점점 가까워질 때 그냥 지나칠뻔한다. 사무실에서는 늘씬하고 키도 컸는데 보이는 사람은 낮에 같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작은 사시나무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순희 옆에 차를 세운 수리가 총알처럼 차에서 내려 문을 연다. 순희가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불편하게 해서.”
“아닙니다. 집이 바로 저기입니다. 제가 더 죄송하죠.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순희 입술이 비틀어져 있었다. 수리는 이마저도 토라진 귀여운 모습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때 순희가 수리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말을 했다.
“앞으로 그러지 마세요. 뭐 하려고 그런 짓을 하세요. 좋아하지 않는 짓은 하지 마세요.”
귀를 의심하게 하는 잔소리를 한번 하고 수리가 가리킨 바로 저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차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던 사람이 아닌 집까지 태워다 줄 기사로 간주하려고 마음을 다잡았는지, 수리가 구구절절 변명할 기회를 무언이란 강력한 무기에 원천 차단해버렸다. 차 안은 어색과 적막뿐이었다.
힐끔힐끔 곁눈으로 보는 게 수리가 할 일의 전부였고 순희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산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달랐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김소장 앞에서는 그렇게 잘도 쳐 죽게 더니 주둥아리에 본드를 붙였나? 나도 김소장처럼 강력하게 밀고 나가볼까? 그럼 이 놈의 입에 엔도르핀이 살아날까?’
무슨 말이던 나오길 기다렸지만 초보 운전자처럼 핸들만 양손으로 꽉 붙잡고, 순희는 손가락으로 요리조리 하면서도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안되겠다 싶었던 수리가 대충 위치를 물어보자 순희 손가락이 빠르게 지그재그로 돌아 다니며 집 위치를 설명했다. 그 후로 다시 정적만이 감도는 차 안이 돼 버렸다. 15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주행거리였지만 순희는 지구 반대편에서 비행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채, 이제나저제나 착륙하려나, 순희가 기다린 착륙은 수리 입에서는 나오는 무엇이던 말이었기 때문에, 착륙이 아닌 이륙이 맞는 말이었다. 순희는 그렇게 기다렸지만 수리는 끝내 순희의 바램을 묵살시켜버렸다. 무심한 놈! 먼 비행에 온 피로에 순희 눈은 지긋이 감겼고 이는 바드득 갈리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 바드득 소리는 드르렁 소리로 바뀌어 버렸다. 수리가 코를 골고 있는 순희를 힐끔힐끔 보면서 빙긋이 웃기만 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순희가 바깥에서 밀려오는 찬바람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안주임님!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아주 잠시였지만 하루 동안 처음 경험한 세상과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소꿉장난 같은 기 싸움에 피곤할 수 밖에 없는 하루였다는 생각도 하면서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때 뜨고 있는 눈에 찬바람이 세차게 강타했다. 혼절할 뻔한 눈으로 갑자기 문을 연 놈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조수석을 보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 이 놈 어디 갔지?”
“그 놈 여기 있습니다.”
“야! 이~~ 씨!”
인적 없는 컴컴한 밤에 누군가 뒤에서 ‘야!’하며 등을 세게 친 게 아니고 발가벗고 옷 갈아있는 도중에, 그것도 팬티를 한쪽 발에 끼울 때 문을 덜컥 여는 그 순간과 똑같이 순희가 기겁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욕이 나와야 했다.
능구렁이 같은 놈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하늘로 치솟은 손바닥을 순희 배꼽 한참 아래로 내려지면서 집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 자세는 단 하루 만에 순희가 적응한 자세였다. 자세에 맞게 품위를 지켜야 했다. 나른한 몸을 뒤척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집 앞. 여긴 내 영역. 수리는 안중에 없었다. 어깨가 빠질 정도로, 턱이 빠질 정도로, 기지개와 하품. 정나미가 뚝 떨어질 만도 한데 수리가 히죽대 웃으면서 순희를 부른다.
“안주임님!”
몸은 천근만근, 나른해 죽을 지경에 들리는 소리가 일요일 늦은 아침, 밥 먹으라고 깨우는 엄마 목소리인 줄 안주임이 착각한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심통을 부릴 것 같이 찡그린 인상에, 찔끔 흘린 입가에 침을 훔치며 배시시 눈을 마주친다.
“아이! 왜요? 헉! 어이 씨!”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꽤 놀란 것 같았다. 비틀하다 수리 몸을 빌리고서야 중심을 잡고 돌아선다.
“잠깐만요.”
아직 배웅 인사를 하지 않아 집으로 바로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던 순희이었지만 직관적으로 집 앞이란 생각에 수리 몸에서 탈출도 하지 않고 시선부터 마당으로 돌렸다. 그러나 그건 마음뿐이었다.
이런 우악스러운 놈! 순희가 수리 가슴은 치지도 못하고 밀어내고만 있었다.
“아! 엄마 본 단 말이에요. 아이 참! 제가 할게요.”
“자기도 엄마라 하면서. 가만히 있어봐요. 정말 운이 나빴나 봅니다. 어떻게 하루 사이에 이마를 두 번이나 박혔는지”.
“아이 씨! 눈 따가워요. 사오려면 밴드도 있는데 하필이면 물 파스를…”
이 말 뒤로는 순희도 얌전한 새 색시처럼 눈으로 들어가느니, 따갑다느니, 수리 가슴도 두드려가며 민망한 미소로 눈도 마주치다가, 수리를 차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중과부족. 수리가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등을 돌려 구 십 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난 뒤에 차를 탔다. 순희는 제발 여기까지만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예상을 했기에 예상했던 손 동작이 나온다. 차창 밖으로 내민 손이 흔들리고 있었다.
시야에서 수리가 사라진 뒤에서야 순희 입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이마에 칠한 물 파스를 한번 쓱 닦으며 아랫배가 아플 정도로 웃음보따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웃음이 아직 남아 비실비실 웃는, 가로등 불빛에 비친 수리와 순희를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전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순희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계속 배를 잡고 웃다가 인상이 심각하게 굳어가면서 자연스레 팔짱도 끼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뭐야? 이거! 아무런 절차도 없는 이런 기분이 뭐지? 이런 거였나? 이게 뭐라고 삼십 년 동안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지? 어이 씨! 정말 밋밋하네.’
비만 오면 흙탕길이었던 길에 아스팔트가 깔린 건 20년 전이었지만 아직도 시골에 속하는 동네였고 집은 길보다 약간 아래에 있었다. 시골 흙 길에 아스팔트를 깔면서 길도 같이 올렸다. 그 바람에 순희 집은 길 아래로 푹 내려갔고 마루에 앉아서도 계절을 알 수 있었던 논도 볼 수 없는 집이 돼 버렸다.
그 후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안방까지 노출되는 불편을 겪자 오빠가 집 앞에다가 살구나무부터 시작해 계절별로 열매 맛을 볼 수 있는 나무들로 방패 막을 쳤다. 담밖에 비탈진 곳에는 온갖 나무들을 심어 비스듬한 산비탈처럼 조성하고 대문안과 마당에는, 담벼락에 줄 장미부터 시작해 대문 입구에는 라일락, 좌우로는 모란, 백합과 도라지까지 키우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전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초들을 키워 오히려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만 더 집중시키게 만들어버렸다. 마당에서 밖으로 새어 나오는 화초들의 향기도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한 몫을 했다.
순희가 길가에 서서 웃음이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을 동안 어머니는 마루 앉아 이런 순희의 웃음이 멈추기를 기다리며 일거수일투족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시선에 딱 걸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높은 자리에 있으면 ‘여자들도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참! 나는 높은 자리가 아니지. 갑이라서 그랬나?’ 등등으로 희열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웃음이 나온 이유는 차문을 직접 열지 않고 내려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어서 그랬다. 그것도 밖에서 열어주는 문으로 내리자마자 허리를 구십도 꺾어 굽히고는 손바닥이 보일 정도로 자기집도 아닌 내 집으로 안내까지 했다. 그래서 여자들이 사모님을 꿈꾸는 구나. 동시에 갑과 부장과 박대리가 떠올라 씁쓸한 웃음도 나왔다. 비실비실한 웃음과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 집으로 출발을 할 때 누군가가 순희 등을 따끔하게 했다.
“아가씨! 무슨 좋은 일인데? 같이 웃자.”
노처녀도 시집을 가지 않았으니 아가씨는 맞는 말이다. 올해 마흔인 오빠보다 세 살 적은 새 언니다. 순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한 식구가 되었으니 같이 산지가 벌써 십오 년이 넘었다. 새 언니는 건설업을 하는 오빠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지만 출퇴근을 같이 하는 날이 드물었지만 오늘은 같이 퇴근을 했다.
“아니! 그냥 웃음이 나와서. 웬일이야? 이렇게 일찍 퇴근하고.”
“당신 오빠가 피곤하다고 하네요.”
“어! 순희도 일찍 왔어! 잘 됐다. 날도 더운데 삼계탕 한 마리 해 먹자.”
두 여자의 인상이 벌써 일그러져 있었는데 순희 어머니가 한술 더 떠 버렸다.
“한 마리도 되겠나? 세 마리는 해야지.”
순희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오늘 방문한 회사에서 피 비린내만 나지 않았을 뿐이었지 사실상 거기에 버금가는 혈투 장이었다. 기어이 피를 보는 구나. 순희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뇌까리고 있었다. 다른 집에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어찌된 판이지 순희 집은 여자들이 닭을 잡아 해부하고 삼계탕을 끓이는 집이었다.
무슨 유명한 맛 집 같은 삼계탕 집도 아니면서 증조할머니부터 새 언니까지 대를 이어 계승하고 있었고 시집가면 출가외인인 순희까지 거들어야만 했다. 허긴 닭을 잡고 칼을 휘두르는 솜씨는 어릴 때부터 눈으로 보고 익힌 순희가 새 언니보다 훨씬 날렵했다. 벌써 닭장에는 닭들이 해마다 이맘때면 간택을 받아 운명을 달리하는 서글픈 동료들을 보아온 터라 닭 벼슬을 반대쪽을 곧추세워 좌우로 기웃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