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모르고 하필 그때, 능글맞게 눈을 돌리던 수리 눈에 모난 돌 직구보다 더 날카로운 눈매 하나가 꽂혀져 있었다. 그러나 화를 내려면 조금 그럴싸하게 내야 했는데 순희는 어떤 생각으로 노려봤는지 모르지만, 수리 눈에 들어온 순희 동공은 한번도 보지 못한 달빛에도 구름에도 가려지지 않은, 밤하늘에 유별나게 반짝이는 까만 별 두 개였다. 바로 눈 앞에 와 있는 별. 꼼짝도 하지 않고, 곁눈질이 어느새 넋 빠진 눈이 돼 순희 눈만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빨리 안 치우고.”

　환상을 깨뜨리게 하는 섬찟한 목소리. 복근에 힘 꽤나 줬다는 생각을 한 수리는 겉으로 드러나 지 않게 피씩 웃었다. 이런 식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지시에 따른 적은 군복무 때가 유일했던 수리가 본인도 의식 못한 채 즉각적으로 대답을 했다

　“아! 예!”

　“어이 씨! 더러워서. 말만 아! 예! 만 하지 말고 당장 치워요.”

　“내리라는 말인가요? 안경도 안 꼈는데 이 눈을 어떻게 치우죠? 파 낼 수도 없고.”

　“아이! 정말! 짓궂게 왜 그래요? 눈은 앞으로 정면 주시. 여기 박스를 깨끗이 치우란 말이에요.”

　성격이 깔끔한 성격은 좋아하지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싫어하는 게 수리였다. 특히 친하지도 않고, 자주 만나지도 않고, 회사에 방문은 둘째치고 일감도 주지 않는 놈이 회사에 방문해 사무실이 지저분하다며 입을 대는 사람을 볼 때마다 ‘너나 잘해라. 18 새끼야’라고 뇌까리는 게 수리 성깔이었다. 순희는 둘 중에 하나의 성격을 가진 게 분명했다. 치우라고 시켜놓고 직접 청소할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잠시였지만 수리 가슴이 덜컹했다. 혹시라도 때문이었다. 언제 어디서던 갑자기 벌어질 수 있는 사태를 대비해, 깊숙이 준비해 둔 콘돔. 최근 몇 년간 사용할 일이 없어, 남아 있는지 다 소모했는지, 확인을 하지 않아서 긴장하고 있었다.

　글로버 박스를 사정없어 열어젖혀 주유소에서 받은 휴지로 엉덩이를 반쯤 들어 자기가 앉은 자리부터 닦기 시작했다. 빙긋이 웃으며 계속하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주문한대로, 청소에 황홀지경에 빠진 사람처럼 깨끗이 치우고 있었다. 군소리만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기만 하면 당분간은 내부 세차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이 닦고, 치우고 있었다. 내부 청소를 마치고 이번에는 엉덩이를 앞으로 들썩거린다. 그렇잖아도 가시에 눈이 찔린 듯이 운전할 때마다 시야를 막아버렸던 앞 유리에 다가가 엉덩이를 하늘 높이 치켜 세운다. 얼굴 탐색, 몸매 탐색을 마쳤으니 이번에는 엉덩이 탐색, 절호의 찬스, 등신인 척, 알면서도 예의상 묻고 있다.

　“뭐 하세요?”

　하필이면 그때, 등신처럼 ‘제 마음 속까지 깨끗하게 닦아 주시면 안될까요?’ 생각을 하자마자 ‘콜록’하는 기침소리가 수리 입에서 웃음과 함께 나오고 말았다. 순희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부라린 눈으로 면박을 줘버렸다.

　“그 봐요. 먼지가 워낙 많으니까 기침이 나오죠. 이건 차도 아냐. 완전 쓰레기 수거 장 이야. 아니다! 오수 처리장이야. 어 휴! 이 먼지 구덩이 좀 봐! 폐도 한번 닦아 드려요?”

　‘보기하고 다르게 잔소리 꽤나 심하네. 아이고 머리 아파.’

　그렇다고 수리는 그대로 마음을 드러내 놓을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화주는 갑이다. 이걸 떠나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마음만 이럴 뿐이지 전혀 정화되지 말이 불쑥 나오고 말았다.

　“아이고! 정신 사납구먼. 가만히 좀 앉아 있어요. 하루 종일 험한 꼴보고 피곤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다행인 건 약간의 위로하는 말이 양념으로 추가돼 나왔다. 양념이 효력을 발생시켰다.

　“그 정말 말 많네. 누구 때문인데. 청소 좀 하고 다니세요. 샤워는 하고 다니세요?”

　“피부 상하게 뭐 하려고 씻어요? 차도 닦지 마세요. 피부 수명 단축돼요.”

　순희 입 꼬리가 한쪽 옆으로만 치켜졌지 별다른 반응은 하지 않았다.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게 분명했다. 집안 청소하듯이 구시렁거리며 하얀 휴지가 먹물에 적셔진 걸레처럼 새까맣게 떡 칠이 돼 가고 있었다. 그냥 청소만 할 것이지 또 구시렁거린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더럽게 하고 다녀요. 이게 다 폐로 들어가는 데. 아이고 더러워. 이건 뭐야? 눌러 붙었네. 눌러 붙었어. 아이고 더러워. 몸에 두드러기는 없는지 몰라. 발이나 씻고 다니는지. 아이고 더러워.”

　잔소리하는 데 깍듯이 할 사람이 어디에 있나? 그것도 처음 보는 남정네에게. 그럼 나도.

　“그 참! 시끄러워 운전을 못하겠네. 좀 조용히 하세요.”

　싱겁게 웃으며 검지 손가락을 귀 구멍으로 넣을 때 순희가 기겁을 하고 외쳤다.

　“스톱!”

　즉각적으로 지시를 따르는 수리. 달리던 차가 갑작스럽게 급정지.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순희 몸이 농구공처럼 튕겨 앞 유리 바로 앞까지 갔다가, 어디서 생겨난 소리인지 모르지만 ‘퍽!’ 소리가 비스듬히 수리 허벅지에 꽂혔다. 하마터면 수리 생식기 세 개가 어스러질 뻔 했다. 그건 훗날 순희에게도 대형참사가 될 사고지만 다행히 나지 않았다. 놀란 토끼 눈이 수리 눈에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코만 없었으면 순희 눈이 수리 눈에 붙었을 것이다. 타버린 타이어 고무 냄새가 차 안뿐만 아니라 폐 속으로 가득 채워 버렸다.

　그러나 수리는 냄새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코끝이 부딪힐 똥 말똥,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불씨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가까이 있었다. 신체 일부에 소화기를 항상 지니고 다닌 게 불행이기도 했다. 한숨과 콧바람으로 순희는 자기 눈에 타오르던 불씨를 잡았고 수리는 꼴깍 뒤에 숨은 안도의 한숨으로 불씨가 더 이상 번지지 않게 잡았다.

　그런데 소화기 약제를 어떤 걸 썼는지 확인하기 위해 순희 눈과 아주 조금 떨어져 유심히 관찰에 돌입하고 있었다. 석유화학물질을 냄새로도 골라내는 능력을 가져 개 코라는 별명을 가진 수리가 순희 콧바람에서 나오는 향기를 곧바로 파악하지 못해, 코를 바짝 붙인 체 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 괴상한 짓을, 만약에 순희가 남자였다면 과연 이 자세를 그대로 유지될까?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수리가 침을 꼴깍 삼킨다. 순희도 덩달아 삼켰다.

　“왜요? 무슨 일입니까? 왜 멈추라고 했습니까?”

　삼킨 침도 아직 기도에 머문 상태고, 험상궂은 남정네 눈도 눈 위에 있고, 그보다 지금 이 포즈! 거의 안기다시피 하고 있다. 저놈의 입술이 기습 공격을 하면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 조차도 없다. 자지러지게 놀라면서 외친 ‘스톱’을 따라 깨문 이빨에 놀란 입술이 눈 앞에 눈에 놀라 아주 조금 벌어져 있다. 센스라고는 개똥만큼도 없는 놈. 겁탈 당했다는 핑계거리도 주지 않는 놈. 자칫 디스크에 걸릴 정도로 우악스럽게 순희를 원위치 시켜버린다. 순희 입도 원위치로 돌아왔다.

　“아! 내가 정말 미치겠다. 귀 파지 마라고 스톱했지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스톱했어요?”

　이 상황을 즐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들어주는 척도 하지 않고 귀만 후비고 있었다. 가슴에 손을 얹어놓고 수리를 보다가 눈이 또 마주친다. 수리는 귀 구멍에 들어가있던 검지 손가락을 재빠르게 뺀다. 순희가 잽싸게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버린다. 그러는 자기도 우스운지 헛웃음을 치면서 가느다란 눈으로 째려보며 조목조목 꼬집어 말한다.

　“정말 철 없는 개구쟁이인지 아니면 이게 사장님 본 모습인지 헷갈리네요. 아니! 운전 중에 그것도 도로 한 복판에서 급 브레이크를 밟아버리면 어떡해요. 정말 대책 없는 인간이네. 만약에 사고라도 나면 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차는 생각 안 해요? 허! 정말 무책임해.”

　수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능글맞게 응수한다.

　“우리라니? 안주임님만의 단독 범행입니다. 저는 끼워 넣지 마세요. 시키는 대로 했을 뿐.”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를 대할 땐 깔끔한 모습으로 대하라. 나는 고귀한 여인이니라. 허허허.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귀부터 깨끗이 팠죠.”

　“정말 어이없는 말만 하네. 적당히 둘러 대세요.”

　“그럼 솔직히 말 할까요?”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하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순간에는 순희가 긴장하는 모습이 바로 수리 눈에 들어갔다. 순희가 추정했던 팔색조의 모습을 또 드러낸다.

　“스톱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바람에 귀청이 찢어졌나 확인하고 있었어요. 그럼 됐어요?”

　지금 순희의 자세. 급작스런 겁탈을 당하는 위기의 순간. 주위는 어두컴컴하게 둘러 쌓인 좁은 담장뿐. 담장에 등을 기대 자기 입을 막고 있는 자세. 고함소리가 엄청 셌던 모양이었다. 조수석 차문이 순희 어깨에 밀려, 활짝 열릴 정도였다. 공포에 휩싸인 놀란 여우 눈으로 입을 막은 채, 어떤 식으로 기습 공격을 할지, 그땐 어디로 튀었다가 반격을 할 지가 아닌, 걸음아! 날 살려라 할 태세로 수리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손가락이 입을 누르고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에 갈고리가 되었다면 수리 얼굴에는 고구마 줄기로 가득했을 것이다.

　장난으로 내지른 그까짓 고함에 안순희란 사람 한 명이 차 밖으로 튕겨 날아갈 정도로 조수석 문에 몸을 잔뜩 웅크려 기댄 채 입을 막고 벌벌 떠는 이 영상.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빌면서 살려 달라며 애걸복걸하는,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오는 가녀린 여인의 강간을 당하는 영상. 그때 수리 머리를 스쳐갔다. 가슴이 찡 해지지 않으면 인간도 아닌 장면에 수리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다정스런 음성을 흉내 내 순희를 보고 있었다.

　“정말 입니다. 스톱하라고 해서 스톱했습니다.”

　며칠 뒤에 해명해도 될 것을 너무 빠른 시일에 기를 살려줘 버렸다. 수리 눈에 최대한 가까이까지 눈을 붙여 수리가 했던 것과 똑 같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러버린다.

　“그럼! 제가 죽으라면 죽을 거예요?”

　그러나 수리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간결하게 말한다.

　“예!”

　가관이란 표정 뒤로 헛웃음이 나오면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기나 하듯이, 반드시 확인하려고 하는 의지를 드러내기나 하듯이, 또박또박 소리 내 확인을 한다.

　“아무데서나 이렇게 저돌적으로 작업을 걸어요?”

　수리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을 흘겨 보았지만 순희는 전혀 놀라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대답만 재촉하고 있었다. 운전 중에, 자칫 비명횡사 할 수 있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눈을 마주칠 수 없었지만, 짧은 시간에 수리는 순희 눈이 지금껏 만났던 여자들과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아무런 찌꺼기도 없는 해맑은 눈이고 나쁘게 말하면 흐리멍덩하게 흐려진 뿌연 물 같은 눈인 느낌을 받고 있었다.

　맑은 눈은 밤하늘 별이고 흐리멍덩한 눈은 우수에 젖은 눈이었다.

　너무 맑아서 흐려지게 하기도 싫은 마음에다가, 언제부터 여성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놈이었다고, 우수에 젖은 여인에게 장대비 같은 눈물만큼은 내리게 할 수 없다는 의협심까지, 떡 줄 순희는 관심도 없는데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정신머리가 거친 바다도 아닌 온갖 고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순희 마음은 수리와 전혀 다른 데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런 씨~~8. 사람 말이 말 같지도 않나. 뭐야 이거! 을인 주제에 너도 나를 그 놈들처럼 같은 이유로 무시해. 좋다. 일 분만 기다려준다.’

　이렇게 곱씹으면서 순도 분석기에 투입한 시료의 결과 값이 일 분 뒤에 나오기나 하듯이 조바심에 감금된 채로 콧바람을 시계 추 삼아 하나 둘 셋으로 진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