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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언틸던
작가 : Indignation
작품등록일 : 2018.11.4

동이 트기 전까지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미스터리 sf)

 
3. 위협
작성일 : 18-12-19 05:16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8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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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위협

 

  “케인, 옥상엔 왜 올라간 거야? 지금 안에서 원장이 찾고 있어!”

 

  페리는 긴 검은 머리를 뒤로 묶은 채 잔뜩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선 건물 뒤편에서 나왔다. 케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옥상 위에 선 상태로 그녀를 불렀다.

 

  “뭔데 그래?”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며 페리가 물었다. 뭘 하고 왔는지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케인은 언제나처럼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고 바라보고 있는 쪽을 가리킬 뿐이었다. 페리는 썩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손가락 끝을 따랐다. 그 끝에는 평소처럼 장벽이 펼쳐져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밖에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사막이 있다는 것은 지긋지긋하게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케인은 자꾸만 그걸 그녀에게 인지시키려 했다.

 

  페리가 다시 짜증을 내려 한다는 걸 눈치 챈 케인이 다른 한 손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신호했다. 그녀는 가만히 있는 대신 짜증을 가득 담은 눈길을 장벽에 던졌다.

 

  “도대체 뭐...”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한 페리가 결국 입을 열려고 할 때, 장벽 위로 하늘에 거대한 무지개가 나타났다.

 

  입을 벌린 채로 페리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깃대 없는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깃발보다 커튼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끝없이 이어진 초록, 노랑... 그리고 보라색 빛깔들이 공중에서 물결쳤다.

 

  원장실에 있는 슬슬 쌓이기 시작한 꽃잎들이 하늘에서 서로 엉겨 붙은 것 같았다. 모르는 새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애지중지 하는 꽃잎들을 하늘에 박혀있는 걸 본다면 그녀는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런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페리는 케인이 이 장관을 발견했다는 게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 자체로는 말도 안 나올 만큼 놀라웠다.

 

  “그래서 저건 뭐야?”

  “오로라야. 나도 책으로만 봤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오로라?”

 

  페리는 멍하니 그 이름을 읊조렸다. 케인이 옆에서 기쁜 듯이 설명해주었다.

 

  “응. 라틴어로 새벽이라는 뜻이야.”

 

  정말 그런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에는 정말 새벽의 하늘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떻게 저게 여기...”

  “있을 수 있냐고? 그건 말이지. 태양의 흑점 폭발과 관련이 있는데...”

 

  별생각 없이 중얼거린 의문에 케인이 신나서 대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저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왜 저게 이 시설 위에 떠오른 건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케인도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되는대로 주워섬기고 있었다.

 

  잠시 후, 하늘은 출렁임을 점차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사라지고 말았다. 아쉬운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페리는 목이 뻐근한 것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려고 목을 너무 길게 뺀 탓이었다. 옆을 보니 케인도 비슷한 현상으로 고통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마주보고 낄낄댔다.

 

  “이제 슬슬 내려가자.”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나자 페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녀는 먼저 사다리 앞에 다가가 섰다. 대충 몸을 살펴봤지만 옷이 조금 지저분해진 것을 빼고는 괜찮아보였다. 다행히도 원장은 아직 둘이 어디로 갔는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빨리 가자! 안쪽에서 원장이 이것저것 시키는 걸 너 찾는다고 나온 거란 말이야. 이미 많이 늦었는데 이러고 있는 거까지 들키면 진짜 죽을 거야.”

  “알았어. 잠깐만.”

 

  케인은 그렇게 대답했으나 좀처럼 돌아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장벽 너머에 머물러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에서는 케인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빨리 오라니까?”

  “페리.”

  “왜?”

  “우린 왜 이곳에 있는 걸까.”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항상 대답을 원하면서 정작 이런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말 몰라서 물었을 리도 없다. 수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던 자신조차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사실이었다. 페리는 미간이 좁혀지는 것을 느끼며 역시 짐작이 맞았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는 또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럴 리가. 전쟁 때문이랬지. 안 그래? 알고 있어. 그게 몇 년 전이었지? 아무튼 그것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던 모든 곳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것도, 땅의 대부분이 이렇게 사막화가 되었다는 것도 말이야. 하지만 그건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아.”

 

  케인은 장벽을 보고 있었다. 그 위로 불어온 바람이 가져온 모래먼지가 그의 군청색 머리를 더럽혔다. 페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건 그러네.”

 

  그녀는 동의했다. 그러나 금방 반론을 생각해냈다.,

 

  “그래도 대충 추측해볼 수는 있잖아? 황폐화된 지구. 불행하게도 살아남은 고아들. 어떻게 해야겠어? 굶어죽거나 타죽을 때까지 내버려둘까? 기관이 우리를 거둬준 거라고.”

 

  페리가 말을 마치자마자 위에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케인이 우울한 얼굴로 손뼉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곧 사다리를 타고 땅으로 내려왔다. 그가 점프하여 땅을 밟자 꺼지는 소리와 함께 모래가 위로 치솟았다가 다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는 지난번에 케인이 몇 시간 동안 강의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 맞겠지. 그거 말고는 생각하기 어렵네, 지금으로서는.”

  “저런, 저런. 그래도 지금부터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있겠는데? 바로 저기 내려오는 누구누구씨가 그렇게 해줄 거야.”

  “아, 정말. 죽고 싶네.”

  “죽는다는 말 함부로 쓰지 말랬지?”

 

  페리는 한 손을 이마에 대며 엄살을 피우는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 뒷문에서 나오는 통통한 남자아이를 쳐다보았다. 코비였다.

 

  “원장님이 너네들을 찾고 계셔! 빨리 들어와!”

  “굳이 소리칠 필요 없어. 우리 귀에는 지방이 끼지 않았거든.”

 

  케인은 뒷말을 아주 작게 했다. 그들은 그를 원장의 애완견이라고 불렀다. 코비가 원장에게 알랑거리는 꼴을 보면 그 단어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원장이 찾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이미 고자질하고 온 것이 확실했다. 페리는 아까까지 들었던 환상적인 기분이 와장창 깨진 것 같았다.

 

  불쾌한 얼굴로 둘을 노려보던 코비는 뒤돌아 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아까 누가 따라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미안. 저렇게 조용히 따라올 줄은 몰랐어.”

  “상관없어. 그보다 지금 생각난 건데. 난 애완견보단 털 다 빠진 퉁퉁한 비버 같다고 생각해.”

 

  케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페리가 빙긋 웃었다.

 

  “정말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놀이방을 나오자마자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에게 드리워졌다. 원장은 무시무시한 얼굴로 둘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페리도 이번만큼은 케인을 따라간 걸 후회하지 않았다.

 

  둘은 큰 불평 없이 원장을 따라갔다.

 

  코팅된 초록색 종이 위에 원장실이라고 휘갈겨 쓰인 글자들은 언제 봐도 우스꽝스러웠다. 게다가 방안은 어울리지도 않게 분홍색으로 벽지를 발라놓았다.

 

  하지만 원장의 취미에 딴죽을 걸어봤자 좋을 게 없었다. 케인은 잠자코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페리도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일 것이다.

 

  그제야 열쇠를 찾은 원장이 투박한 손놀림으로 문을 열고 거칠게 그들을 떠밀었다. 기분 나쁜 처사였지만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원장을 자극해봤자 다른 쪽 뺨까지 붉게 부어오를 뿐이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굼벵이 같으니.”

  “자기는 생각도 않는군.”

 

  케인이 구시렁댔다. 순간 샤크라가 무섭게 노려봤지만 제대로 듣지는 못했는지 그대로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 서있어라. 그래. 거기. 자, 이제부터 너희들의 변명을 좀 들어볼까? 이런 긴급한 사태에 둘만 빠져나가서 농땡이를 친 이유를 듣고 싶은데.”

 

  원장이 자리에 앉자 의자가 신음을 하며 푹 꺼졌다.

  케인은 원장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농땡이를 친 게 아니었어요.”

  “아니라고?”

 

  페리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자신이 나서기에 이미 늦어버렸다. 원장이 앉은 의자가 더 깊은 소음을 냈다.

  케인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원장님의 말씀대로 이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고 온 거에요. 정전이 일어나자마자 소리치셨잖아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이러는 거지?’ 라고요. 그래서 제가 곧장 원인규명을 위해 밖으로 나간 것뿐입니다. 페리는 아시다시피 절 찾으러 온 거고요. 절대 농땡이를 치거나 게으름 핀 게 아니에요.”

 

  말을 듣고 있는 원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떤 것이든 벌은 피할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면 어디가 됐든 피멍은 감수해야할 것이었다. 케인은 침착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하든 똑같을 거야. 그렇다면...’

  페리는 정말로 잘못한 것이 없었다. 지난번에는 요행으로 그의 볼이 붉어지는 것으로 그쳤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샤크라 원장은 말없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과 배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요동쳤다. 마치 서로 총을 겨누고 누가 한 발이라도 쏘는 순간 전쟁을 시작하자고 약속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였다.

 

  원장이 갑자기 앞에 있던 옥으로 만든 재떨이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을 바로 던지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연히 남아서 원장님을 도왔어야 했는데... 저희가 경솔했어요.”

 

  그때 페리가 끼어들어 사태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원장이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면 안 되는데. 케인은 조급해졌다.

 

  게다가 약간 화가 가라앉아버렸다. 이대로 가면 페리가 바라는 대로 가벼운 벌이 떨어질지는 몰라도 둘 다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페리는 분명 그와는 다른 벌을 받을 것이다.

 

  어서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했다.

 

  “정전은 오로라 때문이었어요. 이 건물에 정전을 일으킨 원인 말이에요. 나가서 직접 확인했죠. 그건 정말 아름다웠어요. 이런 추잡한 공간과는 완전히 달랐죠.”

 

  케인은 순식간에 날아온 재떨이에 맞고 뒤로 쓰러졌다. 그리고 바닥에서 한 번 꿈틀대더니 기절해버렸다. 한 손을 여전히 내뻗은 채로 원장이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당장 나가!”

 

  페리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다급하게 케인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고 끌고 나왔다. 다행히 재떨이는 다시 날아오지 않았다.

 

  그를 옮기는 것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쓸 새도 없었다. 도대체 케인은 왜 그런 소리를 한 걸까.

 

  오랜만에 들어가는 남자숙소에서 감회를 느낄 새도 없이 얼른 근처의 침대에 그를 눕혔다. 숙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있어봐야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페리는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오른쪽 이마를 손수건으로 지혈하면서는 제발 이런 식으로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예전에 누구한텐가 들은 적이 있었다. 샤크라 원장이 원래 수녀였다고 하는 걸 말이다. 그녀가 매일 아침마다 누더기를 걸친 고통스러워 보이는 사람상을 앞에 두고 뭔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생각해낸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케인은 그게 진짜라면 뭔가 안타까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추측일 뿐이지만. 사실 케인이 하는 말은 대부분 알아먹기 어려웠고 가끔은 짜증나기도 했다. 그의 태도를 지켜보면 왜 친구가 없는지 이해도 갔다.

  ‘물론 나는, 이 녀석의 친구지.’

  그건 확실했다. 맹세할 수도 있었다.

 

  페리는 다정한 손길로 식은땀과 흘러내린 피를 닦았다. 부드러운 군청색 머리칼이 손을 간지럽혔다. 고양이라는 동물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 털이 이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란 속눈썹을 지나 앙증맞게 솟은 코, 원장이 밤마다 마셔대는 와인이라는 것의 색과 비슷한 입술이 차례로 보였다.

 

  그 빈정거리는 말투만 아니라면, 좀 더 귀여워 보일 텐데 말이지.

 

  “으음...”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의식은 차린 것 같았지만 눈은 뜨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자고 있었던 거야..?”

  “얼마 되진 않았어.”

 

  페리는 최대한 유쾌하게 답해주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원장이 마지막 순간에 이성을 차리고 약하게 던졌던 걸 수도 있었지만 별 기대는 안 했다.

  케인은 계속해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게 왜 거기서 그런 소리를 했어?”

  “그냥.”

 

  케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에 페리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목숨이 요단강을 건너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이었는데 잘도 저렇게 태연할 수 있네.’

  얼마 뒤 케인은 주먹을 감았다 폈다 반복하고 목을 스트레칭 하듯이 연달아 꺾고 나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마 위에 올려두었던 손수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페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의 이마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어야 할 상처자국이 이미 아물어있었다. 자국까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건...

 

  “왜 그래?”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자 케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너 이마에 상처가... 아니야. 아무것도. 그보다, 이제 괜찮아?”

  “적어도 네 머리를 가지고 노는 정도까지는 문제없는 것 같아.”

 

  케인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개를 잡더니 빙글빙글 돌렸다.

 

  “아파!”

 

  페리는 머리카락 한 올이 뽑히는 것을 느끼며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케인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거두었다. 눈물이 고인 눈으로 페리가 그를 노려봤다.

 

  “페리.”

 

  케인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왜?”

  “여기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아니야.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페리가 입을 뻐금댔다.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잠깐 생각해보니 당장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이해가 되었다. 그는 지금 무척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진심이야?”

 

  하지만 항상 함께였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저 말은 진심이었다. 주황빛이 도는 눈이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응. 너도 같이 갔으면 해. 하지만 강요하진 않을게. 막지만은 말아줘.”

 

  케인이 자신에게 권유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 놀람을 이렇게 느끼고 싶지는 않았는데. 페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 나갈 건데?”

  “최대한 빨리. 아주 필요한 것들만 빼곤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을 생각이야.”

 

  궁금하지도 않았다. 페리는 머리가 싸늘하게 식는 걸 느꼈다. 지금은 그래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진정해. 네가 어떤 기분인진 알겠어.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네가 똑똑한 건 알지만 이건... 역시 말도 안 돼.”

  “아, 그래? 그럼 이보다 방법을 나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거야?”

 

  케인이 말했다.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말이었지만 빈정거림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페리는 눈물이 나오려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말싸움을 하려는 게 아니야.”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숨을 한 번 내뱉고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먼저 저 벽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네 키의 수배나 되는 저 벽을 어떻게 하려고? 옥상에서 점프라도 하려고? 다리가 부러지진 않을지 걱정이다. 그리고 먹을 것은 어떻게든 구한다고 치자. 그리고 벽도... 어떻게든 넘었다고 치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어떻게 할래?

  어디로 갈 거야? 갈 곳은 생각이나 해봤어? 넌 똑똑한 척 하지만 이런 일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잖아. 게다가 이 사막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냥 무작정 나가면 뭔가 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네가 특별하니까? 웃기지마!”

 

  케인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잠자코 듣고 있었다. 꾹 다물어진 입술과 하얗게 질린 볼로는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페리는 그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숨을 크게 들이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네가 어딜 가든 상관없이 따라갈 거야. 그러니까, 내 말도 좀 생각해줘.”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뒤로 돌아 방을 나가버렸다. 케인이 뭔가를 우물거리고 있었으나 듣지 못한 채 떠나버렸다.

  여자숙소로 돌아온 페리에게 창가의 빛이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친구들은 벌써부터 누워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페리! 괜찮아? 원장이 엄청 벼르던데. 너도 참 이해를 못하겠다. 왜 자꾸 걔랑 같이 있는 거야?”

 

  사라가 다가오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페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품에 안겼다. 부드러운 크림색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다녀왔어.”

  “얘가 갑자기 왜 이렇게 어리광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뿌리치지 않았다. 그 뒤로 밝은 밤색머리 소녀가 침대에 걸터앉은 채 자신을 걱정스럽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이목구비가 귀여운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 일과시간 아니야?”

  “오늘 당번은 남자들이라 우린 쉬고 있었어. 원장이 때리진 않았어?”

 

  타이니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페리는 사라의 품에서 벗어나 그녀의 비단 같은 머릿결을 쓰다듬어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괜찮았어. 오히려 케인이 또 한 대 얻어맞았지.”

  “걘 맞아도 싸. 또 너까지 휘말리게 했잖아.”

 

  옆에 있던 사라가 쏘아붙였다. 동시에 그녀의 짧은 크림색 머리칼이 흔들거렸다.

 

  “그럴지도.”

 

  페리는 우울하게 대답했다. 타이니가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오늘 저녁은 뭘 만들까?”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샐러드에 야채수프정도지. 아, 지난번에 그 딱딱한 빵 아직도 남았던가?”

 

  셋은 한동안 그 이야기로 떠들었다. 결론이 정해져있는 것을 알면서도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페리는 가만히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돌고 돌아 어느새 정전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들도 무슨 일로 정전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 것 같았다. 페리의 머릿속에 그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예뻤지. 다시 보고 싶네, 그... 음... 다음번에 물어봐야겠어.’

 

  케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걸 후회하는 날이 올 줄이야.

  하늘에 곱게 내려졌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차갑게 식은 베개를 무릎 위에 놓고 고개를 젖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타이니가 ‘거기 뭐 있어?’하며 따라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오색빛깔의 커튼이 천천히 물결치는 모습이. 그 물결의 소요는 점점 잦아들더니 마지막의 완연한 빛깔을 발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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