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자~ 여러분, 식사 잘 하셨습니까? 교정단장입니다. 보내 드린 장갑은 우리 교도관들이 폭동을 진압할 때 사용하는 방검장갑으로, 칼과 같은 흉기로부터 손을 보호해줍니다. 그리고 주사기는 뭐, 아실 테고. 오늘의 미션은...”
“좀비의 혈액 또는 체액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바닥에 있는 피가 아니고 좀비의 몸에서 직접 채취해야 합니다. 제한 시간은 저녁식사 전까지입니다. 수단과 방법은 두 분이서 알아서 의논하시고, 부디 다치지 않게 미션을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이상 전달 끝.”
손민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머리를 굴렸다. 눈에 띄기만 해도 미쳐 날뛰는 좀비들에게서 어떻게 피를 뽑을 것인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기다가 밥을 먹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더해졌다.
“1층, 대화 가능합니까?”
“네, 말씀하세요.”
“혹시 좋은 생각 없습니까?”
“네... 피는 제가 뽑아야 할 것 같은데, 덤벼드는 좀비에게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죠. 한두 놈도 아닐 텐데...”
“어떻게 하든 좀비를 묶어 놓을 수만 있다면 해 볼만 할 것 같습니다.”
“좀비를 묶는다. 일단 생각을 좀 해봅시다.”
손민우는 케이블 트레이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윤상근이 피를 뽑아야 하니 좀비를 잡는 것은 손민우 자신의 몫이다. 그렇다고 1층으로 내려 갈 수는 없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내린 손민우의 결론은 올가미였다.
천장 위에서 올가미를 내려 좀비의 목에 건다. 그러고 나서 좀비를 약간 들어 올려 공중에 띄운다. 윤상근이 갈고리로 발목을 걸어 철창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러면 철창에 붙어 팔을 휘두르는 좀비들의 손에 닿지 않고 올가미에 걸린 좀비의 발에서 혈액을 채취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린 손민우는 자신이 구상한 계획을 설명했다. 윤상근도 동의했다.
텐트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교정단장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래, 진즉에 이렇게 협조를 할 것이지. 사람한테 밥이 이렇게 무서운 거야.”
옆에 있던 교도관이 대단하다고 추켜 세워주자 교정단장은 한껏 의기양양해졌다.
“내가 교정단장까지 그냥 올라 왔겠어? 사람 다루는 데는 재주가 있다니까. 살인이든, 절도든, 경제사범이든, 정치범이든... 교도소에 들어오면 다 똑같아. 하하하.”
손민우와 윤상근의 계획은 곧바로 실행되었다. 손민우는 갈고리를 만들 때 잘랐던 케이블을 찾아 천장에서 바닥까지 내려 갈만큼의 길이로 잘랐다. 새끼손가락 정도의 두께라 한 사람 정도는 들어 올려도 끊어지지 않을 만큼 튼튼했다.
그 끝에 올가미를 만들었다. 다른 끝은 케이블 트레이에 묶었다. 자신의 작업용 안전벨트도 트레이에 걸었다. 준비를 끝낸 손민우는 윤상근에게 물었다. 그도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작전을 시작했다.
먼저 손민우가 올가미를 내려 윤상근의 철창 앞에 드리웠다. 윤상근이 내려온 올가미를 보고 철창 구석으로 다가가서 조그맣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 방 입구에 있던 좀비가 반응을 보였다.
조금씩 움직이며 소리를 따라가더니 윤상근의 방 앞으로 갔다. 윤상근을 보자마자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손민우는 올가미를 그 좀비의 목에 걸려고 했다. 그런데 위에서 아래를 보면서 하려니 거리 감각이 없었다.
올가미가 목에 걸리지 않고 좀비의 머리 언저리에서 맴 돌자, 답답했던 윤상근이 무전기로 방향을 지시했다.
“조금 아래, 오른쪽, 오른쪽”
그 좀비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다른 좀비들도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손민우는 그때까지도 올가미를 걸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다시, 왼쪽, 왼쪽, 더 위로”
몇 번의 실패가 거듭되는 동안 윤상근의 철창에는 좀비들이 빈자리 없이 들어찼다. 손민우의 얼굴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눈에 들어간 땀을 닦고 다시 올가미를 움직였다.
“거기, 거기, 정지! 정지! 그대로 뒤로, 그대로 뒤로. 지금! 지금!”
윤상근의 지시에 따라 손민우는 케이블을 힘껏 당겼다. 케이블의 끝은 묵직했다. 두 손으로 케이블을 끌어당긴 손민우는 트레이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발이 턱에 걸렸어요. 조금 더 들어 올리세요. 한 뼘 더, 한 뼘 더.”
손민우는 케이블을 끌어 올릴 힘이 없었다. 애를 쓰던 손민우는 반대편으로 넘겨진 케이블을 발로 밟아 조금 더 들어 올렸다.
“그대로! 그대로!”
공중에 들어 올려진 좀비는 자신의 목에 걸린 올가미는 아랑곳 하지 않고 팔을 휘두르고 있다. 윤상근은 갈고리로 좀비의 발목을 걸었다. 철창 안으로 좀비의 발을 끌어당겨 한 손으로 발목을 잡았다. 다른 한 손으로 윗주머니에 넣어 둔 주사기를 꺼내 시커먼 혈관을 찾아 찔러 넣었다.
끈끈한 검은 액체가 주사기 안으로 들어왔지만 양이 많지 않았다. 주사기를 어느 정도 채운 후 발목을 놓고 손민우에게 말했다.
“이제 놓아도 됩니다. 성공했어요.”
옥상 텐트. 무전기에서 나오는 손민우와 윤상근의 대화를 듣던 교정단장과 교도관들은 성공했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와~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교정단장은 환한 얼굴로 웃으며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를 말이야. 자기들도 잘 먹어서 좋고, 국가를 위해서도 좋은 일 하고. 멍청하게 버티다가 며칠을 굶더니... 이제 밥 값했네. 밥 값했어.”
“손민우씨, 제일 필요한게 뭐에요?”
“목욕요.”
손민우가 자신의 몸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일어날 힘이 없어 트레이에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갇혀 있는 동안 이렇게 많은 힘을 쓰긴 처음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좀비들이 하나둘씩 생존자의 옆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손민우가 큭큭 웃었다.
“저것들, 한결 같네. 땅바닥에 떨어진 피는 핥아 먹어도 잠은 제자리 가서 자네. 큭큭.”
손민우는 케이블을 걷어 올려 걸리적거리지 않을만한 자리에 말아 놓았다. 그리고 낚시줄을 내렸다. 윤상근도 힘들었는지 낚시줄을 가져가는데 한참이 걸렸다. 기다리던 손민우가 주머니를 끌어 올렸다.
와이어를 밀어 올리고 끝에 주사기 주머니를 달았다. 주머니가 천천히 배관 속으로 사라지더니 잠시 후 빈 와이어가 나왔다. 그 끝에 도시락이 달려 있었다. 윤상근에게 도시락을 보내면서 궁금한 점을 적은 쪽지를 같이 넣었다.
무전기는 교도관들도 다 듣고 있기 때문에 꺼려졌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앉아서 쉬고 있는데, 배관으로 호스가 내려왔다. 따뜻한 물이었다. 손민우는 20일 만에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자려고 누웠을 때, 레이저 불빛이 어른거렸다. 낚시줄을 보내자 쪽지가 왔다.
『 윤상근, 34세, 폭력 3범, 징역 2년, 1년 후에 출소합니다. 저번에 당해 보셔서 알겠지만, 저 같은 사람은 교도관들에게 잘못 보이면 생활이 정말 힘들어집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요. 더군다나 교정단장은 교도소장보다 높은 사람이라 전국 어느 교도소를 가도 피할 수가 없어요. 저번 일은 정말 미안합니다. 』
손민우는 쪽지를 읽고, 생각에 잠겼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방장한테만 잘못 보여도 엄청난 고생을 한다는 교도소에서 저런 높은 사람이 시켰으니, 어쩔 수 없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교정단장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윤상근씨에게 지시를 할 수 있었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윤팀장은 좀비의 혈액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던 헬기에 올랐다. 질병관리본부의 BL4(생물안전 4등급 연구시설)에서 모든 연구진들이 혈액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에 헬기가 도착하자마자 실험실로 옮겨진 박스는 몇 단계의 소독 절차를 거쳐 BL4로 들어갔다.
박스에서 주사기가 꺼내지고 또다시 몇 차례의 소독을 했다. 그리고 주사기 안의 혈액은 여러 개의 튜브로 나눠 담겨졌고 각자의 역할을 맡은 연구원들에게 배분되었다. P2 바이러스는 배양을 통해 분리 할 예정이다.
바이러스를 배양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숙주가 필요한데, 이미 실험실에서는 동물접종, 발육란, 세포배양 등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세 가지 방법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동물접종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동물이나 조직에 바이러스를 접종하는 방법이다. 세포배양이 불가능한 바이러스도 있기 때문에 동물접종을 통해 바이러스를 증식시키고 분리를 하는 방법이다. P2 바이러스의 경우 공격성과 전염력이 강해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발육란 접종은 살아 있는 계란에 바이러스를 접종하는 방법이다.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 바이러스를 얻거나, 계란 전부를 바이러스 원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도 숙주가 계란이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세포배양은 바이러스를 분리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방법이다. 배양액에 글루코오스, 글루타민, 아미노산, 비타민 등을 넣어 배지를 만든 후, 시험관이나 샬레에 부착시켜 증식한 세포를 사용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이 배지에 살 수 없는 바이러스도 있어서 다른 방법도 동시에 시도하는 것이다.
실험실 안에서는 연구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바이러스를 분리해야 다음 단계인 백신연구를 시작 할 수 있다. 창 밖에서 그런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윤팀장의 표정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