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태이야!“
바로 곁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119소리에 놀라 뒤척이며 시후는 눈을 떴다.
“도련님, 앰뷸런스 소리에 놀라 깨셨습니까?”
자동차 백미러를 통해 시후를 바라보던 영감이 말을 건넸다.
영감은 어릴 때 시후 할아버지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컸다. 삼대에 걸쳐 김 씨 가문에서 일해 왔고 지금은 시후를 도련님으로 모시며 모든 집안일을 책임지고 있는 집사이다.
“앞에 무슨 일 있어?”
“글쎄요. 차가 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사고가 난 듯합니다.”
‘깜빡 잠든 사이에 태이 꿈을 꾸다니.’
꿈이 어찌나 생생한지 잠시 과거에 다녀온 듯 했다.
‘벌서 11년이 되었어. 태이가 내 곁을 떠난 지....'
그의 가슴에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물 밀 듯 밀려왔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동차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지만 눈빛은 그리움으로 몹시 흔들리고 있다.
금요일 저녁이라서 그런지 술 취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벤치에 누워 잠든 사람들도 있었다.
“영감 빨리 차 세워봐”
“네? 도련님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영감의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시후는 세차게 문을 열고는 벤치에 취한 듯 기대어 있는 한 여자를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갔다.
“음,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 왜 이리 취하지, 그래도 기분은 좋은걸.. 아,, 아빠 보고 싶다.”
그녀는 벤치에서 뒤척이며 혼잣말 했다.
약간 드리우진 머리카락 사이로 비춰진 그녀를 보고 시후는 흠칫 놀라 성큼성큼 가던 걸음을 멈췄다.
잠시 머뭇머뭇 거리던 그는 벤치에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천천히 가까이 다가갔다.
확인이라도 하듯이 얼굴위로 늘어진 긴 머리카락을 떨리는 손으로 조심히 쓸어 올렸다.
“..음.." 그녀는 뒤척이며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냈다.
“도련님 왜 그러세요? 아는 아가씨인가요?”
“영감, 너무 닮지 않았어?”
“누구 말씀인지요?”
“태이, 태이 말이야."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영감도 그녀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랬다.
“도련님이 태이 아씨가 많이 그리운 가 봅니다. 이렇게 비슷하게 생긴 아가씨를 만나는걸 보면 말입니다. 근데 이 아가씨가 태이 아씨 일리는.....?"
“이 여자를 집으로 데려가야겠어!”
“네?” 영감은 화들짝 놀랐다.
“도련님 안 됩니다. 큰일 날 말씀입니다. 그건 납치입니다. 큰 구설수에 오르실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이 여자를 그냥 두고 갈수는 없잖아?
이런 날씨에 술 마시고 밖에서 자면 입 돌아갈 수 있어.
입 돌아가면 영감이 책임질 거야? 위험할까봐 집으로 데리고 왔다고 영감이 잘 해명하면 되잖아!“
“도련님,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이 여자가 깰 때까지만... 영감, 그때까지만 이해해줘! 확인만 할게.”
큼직한 두 팔로 그녀를 들어 올렸다.
‘태이야. 정말 네가 다시 살아 돌아 온 거니?’
“누구...? 아빠?” 그녀가 가늘게 눈을 뜨고 그를 봤다.
그의 품은 아빠처럼 포근했다.
“아빠 나 피곤해요. 자고 싶어요.”
그녀가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이 여자에게서 태이 향기가 난다.’
“출발해 영감!” 단호한 목소리였다.
영감은 무거운 마음으로 자동차 시동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