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도착해 공장장에게만 도착했다는 보고를 하고 공장으로 바로 가지 않고 김성태소장 회사로 갔다.

　만약에 자재과에 전화를 하면 이부장과 입을 맞출게 불을 보듯 뻔해서였다. 다행히 소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갑작스런 방문에 비리를 저지른 사또가 암행어사를 만난 것처럼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고 있다. 한참 동안 인사도 하지 않고 허연 눈알만 보여준다. 태생적으로 동공이 없이 태어났는지 의문을 가지게 할 정도 까만 동공이사라져 있었다. 말도 더듬거린다.

　“어떻게 말도 없이….”

　존칭어를 써야 할지 하대를 해야 할 지 헷갈린 모양이었다. 이해는 갔다.

　김소장 잘못만은 아니다.

　상사를 따라간 첫 술자리에서 반발을 할 때 인상을 찡그리며 불쾌한 표정으로 말조심하라며 단호하게 말하지 못한 송차장 잘못이 더 크다. 그렇게 시작한 하대하는 말이 많아지면서, 말하자면 너 까짓 놈이란 인식이 소장 뇌리에 늘 존재하고 있었다. 가끔 술자리나 회사에서 마주친 눈에서 차장은 눈치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차장으로 그의 뇌엔 여전히 저장되어 있다. 무슨 이유로 왔는지 충분히 알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번에는 이부장에게 몇 푼 받았냐고 물어볼 까 추궁을 하려고 하다가 참는다.

　송 차장은 소장의 대인관계와 대화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상냥하고, 약한 자에게는 젖 먹는 힘까지 모야 짓밟아 버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싶으면 힘없는 우두머리가 있는 부류에 은근슬쩍 끼어들어 대장 노릇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대화 방식도 비열했다. 유리한 상황에서는 미리 정리해온 의견을 직설적으로 내뱉어 버렸다. 상대가 생각할 겨를은 절대 주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저돌적으로 항상 대화를 끌어가며 자기를 합리화 시켰다.

　불리할 때는 케케묵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말도 꺼냈다. 만약에 통일이 되어 있다면 김일성이 삼촌이라고 할 정도로 허세가 가득 차 있는 인간이었고 그 허세를 장황한 설명으로 사람을 현혹 시키는 버릇도 있는 인간이었다. 오늘은 누구를 데려와서 대화에 올려 놓을지 궁금하단 생각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회사로 오라고하지 않고 연락도 없이.”

　뜸을 들이는가?

　송차장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아직도 호칭을 어떻게 할지 확정을 짓지 못하고 얼버무리며 말이 거슬려서였다.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처음 만났을 때 그때 그 호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인간이란 생각도 한다.

　가련한 눈으로 소장을 보면서 잠시 시중에 떠돌던, 들었던 얘기를 떠올리며 다른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 때 코를 질 흘리며 글자를 모르던 친구가 뒤 늦게 머리가 튀어 박사가 되더라도, 그 사람은 친구들 머리 속에 어릴 때 그 이미지만 박혀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다른 면에서는 이런 경우도 있다. 이건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대학을 가고 싶어도 성적이 못 따라가 대학을 못간 사람들 대부분이 운 좋게도 그 시기에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란히 하듯이 입사해 지금 떵떵거리면서,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못하거나 구멍가게 같은 회사에 취업해 자기들보다 금전적으로 낮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면에 대고 직설적으로 무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식들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학원에 돈을 떠받치듯이 갖다 바치고,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에 보내고는 어학연수까지 동남아로 보내는 실정이라고 했다.

　당연히 예전에 공부 꽤나 하고도 작은 회사에 다니면서 자기들보다 궁핍한 삶을 사는 친구들을 보면 안면에 대놓고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고 했다.

　그건 자기들이 하지 못한 유년 시절의 우수한 성적에 대한 질투고 시기지만 그렇다고 그들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돈이 많다고 자기들 앞에서 잘난 척은 아니더라도 동등한 입장으로 봐 달라는 말도 못한다고 했다.

　이유는 학창시절에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소장이 무슨 이유로 대놓고 갑인 자신을 아직도 하대하는 태도로, 말도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방금 위에 나열한 말 중에 어느 하나 김소장보다 못한 부분이 차장에게 없는 데도 말이다. 차장 입에서 헛웃음이 피씩 나왔다. 아직도 처음 만난 그때의 때를 벗기지 못한 게 틀림없다. 공장으로 바로 가지 않고 여기로 올 때 고민을 엄청 많이 했다. 그래도 그 동안 쌓아온 정이 있는데 어떻게 말을 할지, 머리가 깨 질 정도로 궁리했던 자신이 바보란 생각도 한다. 한마디로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말도 편하게 나왔다.

　“소장님! 죄송하지만 본사에서 다른 검정회사를 찾아 보라고 합니다. 이걸로 우리 인연이 끝인 가 봅니다.”

　문득 내가 왜 죄송하지? 고개를 잠시 갸우뚱할 뻔 했다.

　소장이 대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무 말로 하지 않고 쳐다보고만 있다. 어색하고 불편한 순간이 꽤 길어졌다. 이 순간만큼은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은, 누군가가 목을 조이는 듯한,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나가고 싶은 순간이었다. 보이지도 않은 실오라기 같은 한숨이 차장 눈 앞으로 날리다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가, 무더기로 목을 조이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다가 질식 해 죽는 게 아닌 가 하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그때 김성태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처럼 고개를 몇 번 절레절레 흔들면서 귀를 의심하게 하는 이기심의 극치를 드러낸다. 입 꼬리 한쪽 위로 치켜 올려지며 쳐다보는 모습에서 송차장은 자기보고 비웃는 걸로 받아들였다.

　“어느 회사에서 하는데?”

　낯짝이 참 두꺼운 반응이었다. 정수리를 한대 얹어 맞은 사람처럼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무 말없이 김소장을 쳐다 본다. 송차장은 이 말을 기다렸다.

　통관에 늦어 미안하다. 혹시 공장을 불을 끄지 않았느냐? 피해는 없었냐?

　이렇게 먼저 물어봐야 당연한 도리 아닌가? 뉘우치는 말 전부 제외하고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말! 무슨 이유로 회사를 바꾸는지를 먼저 묻는 게 정상이 아닌가?

　이런 경우가 처음인 송차장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소장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변명하기에 바빴다.

　“직원이 나이가 어려서 그랬는데 뭘 그런 자질구레한 일을 가지고 자를 필요까지는 없잖아. 우리 회사가 무슨 일용직 인력 센터도 아니고 같이 일 한지 20년이 다 돼 가는데 그렇게 무 자르듯이 자르면 안 되지. 얘기 들어보니까 박대리도 잘 한 건 하나도 없던데. 거기서 우리직원한테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바람에 화가 나서 그런걸 가지고 자르기는 뭘 잘라. 한번 눈 감아 줘. 애들끼리 그럴 수도 있지.”

　실제로 박대리가 그랬다면 차장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거의 20년 가까이 같이 일을 했으면, 중간에 비리들은 묻어두고, 한 식구나 다름없는, 한 회사 사람인데 공장에서 원료가 없어 생산라인 가동을 중지하면 어떤 피해가 오는지 정도는 알아야 되는 것 아닌가?

　소장 정도 되면. 사죄까지는 바라는 않았다.

　사과가 먼저가 아닌가?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아닌가?

　그렇다고 박대리의 망언으로 벌어진 일을 가지고 영세한 회사에 책임을 물릴 회사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차장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 갈 때 들리는 이 소리에 ‘이 인간 정말 못 쓰겠구나’ 확신을 가진다.

　“다른 이유가 있죠? 어느 회사에서 달라 던가요? 나쁜 놈의 새끼들이 벌써 약점 잡았다고 파고 들어와. 허!”

　송차장은 열손가락을 꼭 낀 손을 배꼽 위에 올리고 눈을 감는다. 그건 당신의 전매특허였잖아 라고 말할 뻔 했다. 입을 다문다.

　방금 생각했던 마음들을 가슴과 머리 속에서 비우고 싶어한다. 소장 말은 오히려 불 난 집에 부채질 한 꼴이다. 그러나 마음은 비워지지 않고 오히려 역겹기만 하다. 소장 나이와 연륜이면 조금만 더 진지하게 심사숙고 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가장 기본적인, 잘못이 없더라도 이런 소란을 벌여 미안하다는 말 정도였지, 송차장은 크게 바라지 않았다. 그 정도만 했었어도 화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책임을 회피하고도 모자라 벌써 다른 회사도 자기 같은 줄만 알고 있다.

　오래 전에 술잔을 부딪히며 영웅담으로 자화자찬하던, 자기 회사 일을 건드려 가져가려는 회사에 칼을 들고 갔다는, 그 말도 떠오른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가 검정회사의 대부인 격이라 웬만한 일은 자기에게 의논하러 온다는 말도 떠오르며 담합도 떠오른다. 더 이상 앉아 있다가는 말려 들것만 느낌도 든다.

　자기가 원하는 회사를 지정해달라는 말이 나오면 그러자고 할 것만 같기도 하다. 이 사람 주변의 사람들은 사도유화를 손바닥 보듯이 훤히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 부장의 구린 구석도 분명히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 나물의 그 밥에 사도유화도 같이 밥상에 올라간다는 자체가 소름이 끼친다. 어쩌다가 회사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한숨도 내쉬지 못한다.

　나서지는 않았지만 묵인을 했기 때문이다.

　파헤치기 시작하면 벌레로도 취급하지 않았던 이부장과 같은 놈이 된다. 송차장은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칼을 휘두르지 않겠지만 김소장이 구석에 몰리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 지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울산에 내려온 목적은 통관이 늦었던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한 것과 이 검정회사와 인연을 끊고 새 회사를 찾으라는 지시를 상관인 이부장에게 전하기 위해서 왔지 새로운 회사를 지정할 임무는 부여 받지 않고 왔다.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는 후회 바로 뒤로 오기가 생긴다. 새로운 회사를 지정하는 데에 대해서는 부장에게 맡겨서는 안 되겠다는 확신을 가진다. 분명히 이 늙은 능구렁이와 이부장은 손을 잡고 그들 구미에 맞는 회사를 지정해 그 회사를 좌지우지 할 것이다.

　사람은 그대로고 옷만 바뀐 꼴인데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 것인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송차장이 주먹을 불끈 쥔다. 그때였다.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러지 말고 계속하게 해주세요. 이 검정료 받고 할 회사도 없습니다. 아시잖아요. 쥐꼬리만한 돈 받고 할 회사 하나도 없습니다.”

　자존심이 상한다. 울컥한다. 그의 얄팍한 천성을 궁지에 몰리니 고스란히 드러내도 있었다. 만약에 졸개들이 있었다면 주먹이 날아 왔을 것이다. 그 쥐꼬리를 붙잡으려고 온 동네 아이들을 강재로 끌어 올 것이다.

　 ‘뭐 이런 놈의 새끼가 있어.’. 뜨거운 열기가 뒷덜미를 거쳐 정수리까지 치솟았지만 일침만 찌르고 일어선다.

　“원료가 없어 가동을 중단한 건 알고 계시죠? 재 가동하려면 원상복구도 해야 하고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복구하려면 한달 정도 걸리는 데 그때 배상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계시죠?”

　물론 즉석에서 만들어낸 협박이었다. 소장이 제대로 걸려 들었다. 벌떡 일어서 악에 바친 목소리로 비꼬며 고함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