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부장과 박대리의 지시로 그 공장으로 빼돌리면서 한 대는 최동호와 그 공장 사장과 셋만이 작당해 빼돌렸다. 지금부터 임기사가 할 일은 부장이 그 공장에 전화해서 돌려받아오라고 하면 받아 올 일밖에 없었다. 그러나 화물은 이미 그 공장 저장 탱크에 저장되었고 다시 빼내서 임기사에게 전달되고 공장에 가져가려면 어림잡아도 다섯 시간 정도 이상은 걸려야 했다.

　그때는 이미 생산이 중단된 후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꼭 무슨 해일이 몰려와 사람들이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듯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가슴을 졸이며 난리가 난 사람은 이런 사태를 일으키도록 인수 인계 받은 부장뿐이었다.

　그런데 아무 관련이 없는 순희도 허둥대고 있었다.

　겨우 찾아온 버스터미널이 아닌 보세장치장인 탱크터미널 앞에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궁리를 하고 있었다. 오긴 왔는데 내 역할이 여기서 끝인가를 잠시 생각하고 헛웃음을 친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치며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무슨 일로 왔는지 묻지도 않는다.

　일단을 들어가자며 마음을 다잡고 경비실로 걸음을 옮길 때 박대리가 나타났다. 천군마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어! 여긴 왜 왔어요? 할게 뭐 있다고? 부장이 보냈어요?”

　튀어나온 말만 이랬으면 순희를 기분이 덜 상했을 것이다. 가끔씩 길을 가다가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탐색하는 눈 빛들. 그땐 불쾌하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져 아랫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감히 나를 넘봐! 순희 눈에 들어온 박한철의 깊은 속내이었다. 그러나 박한철은 ‘내가 이 좋은 보험을 네 년에게 넘겨 줄 것 같아?’ 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깊은 내막을 모르는 순희 눈에 들어온 박대리의 눈은 오로지 경멸로 가득 찬 삐딱하게 돌아간 눈뿐이었다. 이 놈의 마음을 훤한 오판으로 꿰뚫어보는 순희는 상대할 가치조차 않은 놈이라 여기며 속으로만 읊조린다.

　‘그래! 부장이 가라고 해서 왔다. 너 같은 새끼는 물에 빠져도 119는 물론이고 바다에 날아 다니는 갈매기도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놈아! 더러운 새끼! 너도 여자라고 나를 무시하냐? 알면서 왜 물어 새끼야!’만 목젖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회사에서 난리가 나 있는데.”

　간혹 밝게 웃으며 업무를 가지고 말을 걸 때도 모든 게 가식이고 아첨으로 느끼게 했던 이 놈의 역겨운 표정이 지금은 이 분위기에 딱 맞게 어울리는, 무시하는 눈과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

　“무슨 난리? 뭐! 불이라도 났어?”

　순희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이만 바드득 갈고 노려보고 있었다. 간사한 새끼!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 표정도 몸짓도 순희 눈에 들어왔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의 발악으로 여겼던 모양이었다. 움찔하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병신 같은 놈이란 생각을 되뇌며 부장이 떠드는 소리를 대충 정리해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사태를 빠르게 알아차린 것 같았다. 듣자마자 바로 휴대폰에 대고 욕지거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이 씹할!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 공장 불 끄게 됐는데 개새끼들은 다 어디 갔어? 어떻게 한 놈도 안 보여?”

　박대리는 어폐가 있는 말로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한 마리는 분명히 같이 있다. 그 개새끼 한 마리는 박대리 본인이다. 거짓말을 사실로 만들어 자기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걸 박대리 자신만 안다. 발뺌에 확실한 이정표를 찍으려는 듯이 이 말 뒤로도 오로지 욕만으로 자신을 철저히 포장해 지키고 있었다.

　빨리 오라는 한마디면 끝날 말을 너무 많은 욕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희끗희끗한 검정회사 소장인 김성태가 박대리가 했던 욕과 관련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오히려 너 같은 햇병아리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묻는다.

　“무슨 일인데 난리야?”

　“자세하건 나중에 얘기하고 빨리 관세사에 보고서 보내주세요. 급합니다. 재고가 거의 바닥나서 공정을 중지시켜야 한다며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뭐 별일도 아니구먼. 그런 걸 가지고 난리를 쳐!”

　그때 순희는 박대리나 이부장이 자신에게 대했던 태도에 대해 가졌던 불쾌한 마음보다 더한 불쾌한 감정이 솟구쳤지만, 아무 말없이 무책임한 인간이란 판결만 내리고 쳐다보고 있었다.

　김소장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연장자답게 처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대리가 이상할 만큼 방금 전에 했던 거만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분고분 설명을 하고 대답도 하는 동방예의지국의 청년다운 인간이 돼 있었다.

　깍듯하게 설명하는 말에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탱크 터미널로 들어가고, 박대리도 개울 가 수풀 속에서 유유자적 노닐다가 갑작스런 물난리에 도망치는 쥐새끼처럼 소장꼬리를 물고 따라서 들어간다. 순희는 바로 앞에 있는 쥐새끼 꼬리를 행여나 놓칠세라 꼬리를 물을 마지막 쥐새끼가 돼 터미널 고객 지원 실로 따라간다.

　대단히 큰 일이 난 줄 알았지만 막상 소장이 오니 말 그대로 별일이 아닌 듯이 서류가 작성되고 그 서류는 관세사에 팩스로 들어갔다. 이렇게 쉽게 처리될 일을 가지고 요란을 뜬 것도 이상했지만 순희는 처리과정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 톤에 60톤을 퍼센트로 하면 0.6%였다. 0.5%이상 수량이 모자라면 보험처리를 하면 되지만 모자란 수량만큼 보험으로 처리되는 게 아니고 0.5%는 빼고 0.1% 즉 10톤만 보험 처리한다는 말이 오갔다.

　소장과 박대리는 보험 처리하게 되면 수량이 적은 원인을 보험회사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된다며 굉장히 귀찮은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보험처리 하지 말고 0.49%을 만들자는 말을 한다. 돈으로 모두 환산하면 순희 월급의 두 배가 넘는 약 4백 만원이었다.

　그렇게 난리를 부렸던 일들이 소장 한 사람이 왔다고 너무 쉽게들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순희가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볼 수도, 왜 조절을 하는지 물어볼 수도 없는 처지였다. 뭐 하나라도 아는 게 있으면 무슨 이유로 조절을 하는 지 물어 볼 수도 있고, 조절하지 마라며 나설 수도 있지만,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니, 그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청하게 투명인간처럼 엉거주춤, 가시덩굴 속에 갇힌 기분으로 서 있기만 했다.

　급한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갈 때조차도 어느 누구 하나 순희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두는 사람은한 놈도 없었다. 종종 회사에 와서 마주쳤던 소장조차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실성한 사람들처럼 헤죽대며 밖으로 나갔다. 박대리가 소장과 할 말이 있다며 먼저 들어가라고 한다.

　소장과 눈을 마주쳐 인사를 하고 차에 오르려고 했지만 소장은 순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차 문을 열면서 다시 돌아보며 나이 많은 사람에게 공경하는 예절 정도는 지키려고 했지만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은지 순희는 아예 안중에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터미널에 갈 때와 복귀하려고 차에 올라 시동을 켜는 지금 기분은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걸 순희는 느끼고 있었다. 그때는 부장의 난데없는 지시와 무시하는 말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물론 울화통도 터졌다. 그래도 상사의 지시라 참을 만은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전혀 달랐다. 상사도 아닌 사람의 사늘한 시선에 울화통뿐만 아니라 염장도 파헤쳐지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을의 처지인 김소장까지 나를 무시하나?

　의문과 함께 구역질이 날 정도로 주변 인간들이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사표가 아닌 사망도 떠올린다. 운전대를 세게 한번 치면서, 어디서 감염이나 된 듯이 “어이~~ 18”이 쏟아진다. 후진을 해서 저 놈들을 박아버릴 까 충동도 일어난다.

　백미러에 박대리가 언성을 높여 김소장을 훈계하는 모습이 보인다. 끼어들어 김소장 멱살을 잡고 무슨 이유로 나를 무시하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두 놈 모두 똑 같은 놈이라 단정을 지은 상태였기 때문에 피하는 게 최상책이란 마음으로 출발을 한다.

　그러나 순희는 뿔뚝한 성질을 못 이겨 지금부터 벌어지는 장면을 보지 못해, 혹시라도 바람에 실려온 소문으로 듣는다면 엄청 아쉬워할 것이다. 한편의 코믹이 벌어지고 있다.

　“직원들 교육 제대로 시키세요. 그리고 방금 전에 왔던 그 개새끼는 우리 회사 일 맡기지 마세요. 어떻게 그런 새끼를 데리고 있어요. 내 같으면 바로 잘라 버립니다. 시건방진 새끼가 협정하다가 가버리는 놈이 어디 있어요. 회사 말아먹을 놈입니다. 바로 자르세요.”

　그러나 김소장은 개새끼의 아비가 아닌 소 새끼 아비인 소였다. 박대리는 절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가끔 식당에 불쑥 들어오는 땡 중이었다. 김소장이 들은 척 만척한다.

　숱하게 봐온 전형적인 갑 질의 표본을 복사한 짓 밖에 되지 않는다는 행태임을 김소장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많은 핑계를 대면서 바짝 엎드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소장이 박대리를 대하는 모습은 박대리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여 주는 척이라도 해 주질 바랬다. 그러나 한마디로 까불지 마라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동작으로도 보여준다. 김소장 손이 박대리 뺨으로 간다. 뺨을 한번 쓱 쓰다듬고 어깨를 툭 치며 피씩 웃어준다. 이 모습은 집에 기르는 강아지에게나 하는 짓이었다.

　“알았어. 내가 잘 타이르지. 너무 기분 상해하지마. 혈기왕성할 때잖아.”

　위협성 발언이지만 박대리는 거기까진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기를 살려주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위엄 있게 투정을 한다.

　“그 새끼한테 얘기 들었어요? 앞으로 그 새끼 내 눈에 띄지 마라고 하십시오. 만약에 눈에 띠면 소장님도 우리하고 끝인 줄 아세요.”

　박대리는 자기의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소장 가슴에 남는지, 세상은 돌고 돈다는 걸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소장은 하고 있다. 하긴 권세를 누릴 때 누려야지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잠잠해지는 줄 알았지만 이부장과 박대리에게 긴장할 일만 남겨져 있었다.

　사도유화 본사 화학영업 팀 송영석차장이 울산 공장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구미를 지나칠 때쯤 송차장 가슴에서 톨게이트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구쳐 올랐다.

　5년 전까지 근무했던 울산 공장으로 가는 길이 저승길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점점 더 울산이 가까워지면서 가슴이 갑갑하고 어지러움까지 일기도 한다. 악몽 같았던 그때를 떠올린다. 입사해 실험실에서 오랜 세월 근무하다가 잠시 자재과에서 근무할 때, 지금은 퇴직한 상사를 통해 김성태를 알게 되었다. 술자리도 자주 가지면서 그가 어떤 인간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완호부장을 떠올린다. 공무 과에서 행한 작태를 보면서 역겹다는 생각을 했다. 김성태와 이완호의 만남은 둘에게 행운이란 생각을 한다. 굳이 이런 감사를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 기름값과 시간만 소비한다는 생각도 한다. 이미 예견된 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