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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제 책은 로맨스 소설인데요?
작가 : 잡히면술래
작품등록일 : 2018.11.19

판타지 세계에 부자집 귀족가 영애로 환생했다.

돈 많은 백수 같은 삶에 만족하며 전생인 지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을 뿐인데....

내가 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표지 : 픽사베이.

 
003.
작성일 : 18-11-27 03:39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7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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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3.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아에리아는 탄을 끌고 의무실로 향했다. 탄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밝은 빛 아래 드러난 탄의 상처는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탄이 의무실 밖으로 나갔다가 아에리아에게 붙잡혀 들어오며 투덜거렸다.

 

 "며칠지나면 다 낫는다니까."

 "무슨 소리야.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끝까지 지켜볼거니까. 딴소리마. 아니다. 마법사에 의뢰를 넣어야겠어."

 

  탄을 뒤에서 밀고 가던 아에리아가 굳게 손을 쥐었다. 탄은 별 수 없이 치료사 앞에 섰다가 고갤 돌렸다. 무척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탄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백금화?"

 

  백금화는 의술을 업으로 삼은 마법사의 멸칭이었다. 기초적인 치유마법은 대다수의 귀족이 할 줄 알았기에 의술을 업으로 삼은 이의 치유마법은 수준 높았다. 마법의 수준이 높다. 그건 그들의 작위가 높다는 말과 동일했다. 고위귀족인 그들은 부모, 자식을 친지를 살려달라 울며불며 매달리는 평민들에게 눈길도 주지않았다. 마법이 아니고선 나을 수 없는 병이므로 사실상 죽을것이 뻔한데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귀족만 상대했다. 간혹 고유문양으로 치유마법은 뛰어나지만 작위가 낮은 이들이 평민을 상대하기도 했지만 출장료가 백금화였다. 치료에는 따로 값이 매겨졌다. 그런데 노예를 위해 마법사에게 의뢰를 넣겠다니.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리려나?"

 "완전."

 

  탄의 즉답에 아에리아가 고개를 떨궜다. 아에리아의 좌절로 생긴 고요를 틈타 침묵을 지키던 중년의 치료사가 앞으로 나섰다.

 

  "이제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아에리아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탄을 의자에 앉히곤 한바퀴돌며 살펴보았다. 그는 넝마에 가까운 탄의 옷을 들쳐보다가 탁자에 있는 가위를 들어올렸다.

 

 "치료하려면 일단 옷부터 제거해야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탄의 윗도리가 잘려나갔다. 잘린 옷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오래된 흉터로 점철 된 몸이 거칠것 없이 드러났다. 베인 것, 터진 것, 화상 등 인간의 악의로 그려진 그림이었다. 아에리아가 아연해져 입을 벌렸다. 탄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마주 서 있던 탓에 아에리아와 탄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

 

 아에리아가 말을 잇기 전에 탄이 오른편에 접혀있는 가림막을 끌어당겼다. 초록색 가림막이 아에리아의 시야를 막아냈다. 아에리아에겐 검은 그림자 두개만 보였다.

 

 "가림막이 장식은 아닌데."

 

 하나하나 짖씹듯 말을 내밷은 탄이 불만스럽게 치료사를 바라보았다. 아에리아가 그의 과거를 짐작 할 수 있다고 해도 전체를 보이는 건 다른 일이었다.

 

 "아가씨가 보시겠다는데 막으면 쓰나."

 

  가볍게 인상 쓴 치료사가 가림막을 걷었다. 탄의 맨살을 다시 마주하게 된 아에리아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 되었다. 나가서 기다릴테니. 치료 잘 받고."

 

  아에리아가 고개를 문에 고정하며 어색하게 걸어나갔다. 우당탕 거리며 옆의 의자며 옷걸이에 부딪히는 소란 끝에 의무실 문이 자그마한 인영을 내보냈다. 치료사는 희안한 구경을 한다는 듯 문가를 바라보다가 다시 탄을 향해 집중했다.

 

 "불만이냐? 그러게 어쩌다 아가씨 눈에 들어선."

 

  치료사가 혀를 차며 탄의 상처를 닦아내었다. 그가 탄을 향해 보내는 눈길은 곧 도축될 어린양에게 보내는 것과 다를바 없었다.

 

 "그렇게 보지 마시죠."

 

  탄이 치료사를 피해 몸을 삐딱하게 돌려 앉았다. 불쌍하다 가엽다는 눈길은 심심찮게 받았어도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치료사가 향하는 동정은 그의 과거가 아니었다. 그의 지난 삶 중 유일한 행운이었다.

 

 "왜, 기분 나쁘냐? 그럼 아가씰 되도록 멀리해라."

 

  어깨를 으쓱이며 치료사가 가볍게 충고했다. 탄이 반항적인 눈빛으로 치료사를 올려다 보았다. 치료사가 탄을 내려보았다. 검초록색 충혈된 눈이 탄의 모습을 담았다.

 

 "곁에 있으면 넌 더 가여워질거다."

 

  치료사가 일견 미래를 본 예언자처럼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의 내리깐 목소리는 불길했고 성성한 눈빛이 탄을 옭아맸다. 아에리아가 밀치고 간 탁자에서 약병이 뒤늦게 떨어졌다. 붉은색 알약이 피처럼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 말이 끝이었다. 치료사는 탄을 연고만 발라 쫓아냈다. 오래 된 흉터엔 마법이 아니고선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잘린 옷대신 환자복을 입은 탄이 의무실을 나섰다. 문 옆에는 아에리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치료는 잘 받았어?"

 "어."

 

  탄의 단답을 끝으로 침묵이 맴돌았다. 탄은 치료사의 말 때문에 아에리아는 방금 본 탄의 몸때문에 각기 머리가 복잡했다. 복도의 끝에서 아에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음엔 내가 치료해줄게."

 

  먼저 건물을 나서 어둠에 잠긴 탄이 아에리아를 바라보았다. 마법등은 마법답게 환했고 현관에 걸쳐 선 아에리아까지만 빛을 밝혔다. 탄이 오래도록 빛을 응시했다.

 

 "꼭 배운다. 치유마법!"

 

 대꾸하지 않는 탄에 어색해진 아에리아가 과장되게 기합을 넣어 소리쳤다.

 

  "난 다치도록 노력하면 돼?"

 

  슬그머니 미소지은 탄이 익살맞게 대꾸했다. 아에리아가 그를 노려보며 투닥대다가 별채로 걸음을 옮겼다.

 

  둘이 멈춰선 곳은 별채의 이층 복도 두번째 방이었다.

 

 "일단 이 방을 쓰면 되."

 

  아에리아가 아쉬워하며 방문을 열었다. 손님에게 내어줬던 방으로 모자름은 없었지만 지나가는 곳이기에 살풍경했다. 탄은 상관없어 했지만 아에리아는 조만간 그를 위한 방을 꾸며줄 것이라 굳게 약조하곤 떠나갔다.

  아에리아의 마음과 다르게 탄은 손님방이 마음에 들었다. 손님방은 그가 일평생 본 적조차 없을 정도로 훌륭한 곳이었다. 뛰어다녀도 될 만큼 넓었고 가구와 물품은 전부 고급이었다. 갈아입으라는 듯 침대 위에 개켜놓은 잠옷은 아기의 맨살보다 더 부드러웠다.

  탄이 어색하게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쓰던 방보다 이 침대가 더 크다. 이불은 오리털로 채워놓아 폭신하다. 마음껏 굴러도 떨어질 걱정이 없겠다. 조금 움직였다고 지푸라기가 흩날리지도 않는다. 찍찍대는 쥐나 사각이는 벌레가 안에 기어다니지도 않는다. 탁자 위에 타들어 가는 초에선 좋은 향까지 났다. 그러나 쉬이 잠들지 못했다.

 

  현실감이 들지않았다. 홀로 있는 이방은 모두 거짓말 같았다. 자고나면 사라질 꿈일까 두려웠다. 조잘대는 아에리아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러면 다 괜찮아 질 것 같았다.

 

 

 "탄!"

 

  어느새 까무룩 잠든 탄이 정신을 차렸다. 아에리아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마법등이

 다닥 박힌 천장이 보였다. 꿈이 아니었다. 침대에서 번쩍 몸을 일으켜 앉은 그가 소리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에리아가 문 사이로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침 먹자."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꾸루륵 거리는 뱃고동이 울렸다. 탄이 배를 감싸 안았다. 탄은 어미 새를 따르는 새끼 새처럼 아에리아를 졸졸 쫓아갔다. 식당에는 벌써 음식이 한가득이었다. 보통은 차례차례 나오지 않던가? 몇 번쯤 본 전 주인의 식사장면을 떠올리다가 아에리아의 말에 생각을 멈췄다.

 

 "잘먹겠습니다. 맛있게 먹어."

 

  말하며 아에리아가 밀어 준 접시에는 어른 손바닥만 한 스테이크가 육즙으로 반질거렸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배부를 법 법한데 통째로 양념을 발라 구운 갈빗대, 조류의 다리로 보이는 것 둘, 가시가 발라진 채 향신료로 잡내를 잡은 흰 살생선, 벌어진 껍질 안에 소스가 배어든 조갯살, 붉은 껍질을 벗겨 낸 가재살까지 식탁 위 고기와 고기 비슷한 것은 전부 탄의 앞에 모였다.

 

 "너무 많은데."

 "아니. 넌 살 좀 쪄야 해. 전부 먹어."

 

  그리말하며 아에리아가 채소까지 탄의 앞으로 끌어다 놓았다. 결과적으로 아에리아가 본인 몫으로 빼놓은 한 접시를 제외하곤 식탁의 모든 음식이 탄에게로 돌아갔다.

  아에리아는 제 몫 마저도 손 대지 않고 바글바글한 음식 중 하나를 끄집어 탄 앞에 데려다 놓았다. 머리와 꼬리를 장식으로 해 더 싱싱해 보이는 바닷가재였다.

 

 "특히 바닷가재가 맛있어. 황성에서도 멜버른산만 고집한다니까."

 

  아에리아가 자신있게 권유한 바닷가재로 부터 짭쪼름한 바다내음이 풍겨나왔다. 탄은 한번도 먹어보지 못해 알리 없는 맛이건만 침이 가득고였다. 기념할만한 날에 전 주인이 먹어대던 것이 떠올랐다. 험악한 인상의 그도 그때만큼은 인자한 얼굴이 되었었다. 탄이 가재살을 조심스럽게 도려내었다. 희고 탱글탱글한 살결이 포크 위에서 춤을 췄다. 안에 넣고 씹기만 하면 되는 것을 조잘대던 아에리아가 돌연 막았다.

 

 "아니야, 갑자기 기름진 걸 먹으면 안 좋아."

 "어?"

 "탈이 날지도 몰라."

 

  윤기가 자르르한 가재살이 목전에서 멈춰섰다. 아에리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가재살이야 모르겠지만은 탄은 전에 어찌 얻어먹은 고기 몇 조각에 뱃병이 났던 적이 있다. 탄은 아에리아의 말에 끄덕이면서도 가재살이 얹어진 포크를 내려놓지 못했다. 가재의 자태는 지나치게 매혹적이었다.

 

 "...한 조각은 괜찮을 걸?"

 "응. 안 돼. 아직 치유마법을 못 배웠거든. 오늘은 수프야."

 

  아에리아는 단호한 말과 함께 그 많은 음식을 한켠에 치우고 수프를 앞에 가져다 놓았다. 안타까워하는 탄을보며 아에리아가 웃었다.

 

 "아쉬워 마. 앞으로 질리도록 먹여줄게."

 "앞으로?"

 "응. 몇 번이고. 약속할게."

 

  고민조차 없이 내놓은 아에리아의 말에 탄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앞으로? 미래를 향한 말을 아에리아가 당연하게 여기는 듯해서 탄은 그것이 처음이라 어떤 말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못했다. 탄의 내심을 모르는 아에리아는 고심하다가 한입은 괜찮을 거라며 다시금 바닷가재를 권했다. 탄이 고개를 저으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나쁘지 않았다. 수프 하나만으로도 아니 수프가 없었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았다.

 

 

 ***

 

 "하고 싶은 건 없어?"

 "하고 싶은 거?"

 

  식사 후 별채의 소개 겸 소화겸 하는 산책에서 한 아에리아의 질문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주제였다. 탄이 당혹에 차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게 있었던가. 하루하루 살아가면 그만인 날 뿐이었는데. 탄이 끙끙대며 머리를 쥐어짜내자 꺄르륵 웃은 아에리아가 입을 열었다.

 

 "바닷가재 백 번 먹어보기 같은 것도 좋아. 아님 수도에 구경가고 싶어도 좋고. 아무거나 말해도 돼."

 

  아에리아가 말한 것은 별것 아니었지만 탄은 선뜻 말하지 못 했다. 원하는 건 포기하는 게 그의 삶이 었다. 한번도 바란적 없는 무언가를 원하는 것은 그걸 포기하는 만큼 힘들었다. 탄은 한동안 입만달싹이다가 백기를 들었다.

 

 "모르겠어."

 "좋아. 그러면 하고싶은 걸 찾는 걸로 하자."

 

  빠르게 결론 낸 아에리아가 탄의 팔목을 덥썩 잡았다. 아에리아가 초조하게 장식처럼 서있는 거대한 시계를 봤다가 별채를 보았다.

 

 "일단 뛰어."

 "왜?"

 "늦었어. 역사학! 마침 오늘이 첫 수업이라. 시기도 딱 좋아."

 

  둘은 정원을 지나쳐 별채 서재까지 단박에 뛰어올라갔다. 서재에는 안경을 쓴 역사학 선생이 책을 읽고 있었다. 둘이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선생은 아에리아를보곤 수업을 시작할까요. 한마디 했을 뿐 흔한 꾸지럼하나 없었다. 그녀가 평민이었고 돈을 주는 사람마저 아에리아였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의 학교수업을 떠올렸던 아에리아가 머쩍게 책을 펼쳤다.

 

  첫 수업인 만큼 내용은 간략하기 그지없었으나 탄은 정신을 놓아 버렸다. 분명 같은 말인데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에겐 사전지식이 하나도 없었다. 귀족가에선 갓난아기에게 동화책으로 읽어준다는 초대황제가 신을 죽였다는 건국설화조차 이번에 알았으니 말다했다. 결국 수업은 중지되었다. 역사학 선생이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내민 시험지에서 글조차 모른다는게 밝혀졌다. 탄은 아에리아의 수업시간에 글을 배우기로 하였다. 나머지 시간은 비슷했다. 대화를 나누거나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바닷가재살이 잘게 다져 들어간 수프로 식사를 했다.

 

 "질리도록 먹여주겠단 거 맞지?"

 

 아에리아가 개구지게 웃었다. 탄이 저택에서 맞이한 첫날은 충실하고 몽글몽글했다.

 

 

  평온한 날이 며칠, 탄의 상처가 다 나았을 쯤 아에리아가 평소와 다르게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뿐만아니라 그녀와는 전혀 연이 없을 것같은 투박한 배낭하나도 둘러매고 어두운 감색모자까지 눌러썼다. 목에는 작은 마법등이 달랑거렸다. 전체적으로 도굴꾼의 모습과 비슷했다.

 

 "탄, 우린 특훈을 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

 "특훈?"

 "응. 그 불한당놈들한테 쫓겼었잖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 마침 오늘 수업도 없고. "

 

  아에리아가 신나게 떠들었다. 그녀가 귀족가의 고명딸이고, 위험을 자초하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건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탄도 위험하지만 않다면 말릴 생각이 없었다.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상록수가 빽빽히 뻗은 숲이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그 숲엔 아에리아와 탄이 나무 사이를 비집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덤불이 무성하게 자라 둘의 경로를 방해했다. 잎사귀를 대강 뜯어낸 탄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옆엔 뻔히 닦아놓은 길이 있었다.

 

 "어째서 이딴데로 다니는거야?"

 "그래야 재미, 아니 훈련이 되지."

 

  아에리아의 여상한 대꾸에 탄은 아까 말리지 않은 본인을 원망했다. 둘은 걸어온 만큼 더 걸어 길고 흰 담에 도착했다. 돌을 깎아 쌓은 담은 높다 못해 아에리아가 탄을 들어 올려도 닿지 않을 것 같았고 구석구석 살펴봐도 개구멍은커녕 무른 바닥조차 없었다. 막다른 길이었다. 여태껏 밀어 올려지고 끌려가 흙까지 파내야 했던 탓에 지친 탄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이상은 아에리아가 아무리 용써도 넘어가지 못하리라 여겼다.

 

 가로막은 벽 앞에 깊게 한숨을 내쉰 아에리아가 돌을 콩콩 두들겼다.

 

 "뭐 하는 거야?"

 "빈 공간이 없는지 찾는 중이야."

 "빈 공간?"

 "응. 영화에서는 이러면 비밀공간이 짠하고 나타나."

 "영화?"

 "환영마법이랑 비슷한 건데. 되게 재밌어."

 

  영화는 또 뭐고 비밀공간은 웬 건가, 탄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아에리아는 별로 설명해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벽을 두드리는 데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탄이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되었을 때에야 아에리아가 항복을 선언했다. 본채 숲의 외벽에는 탈출구가 없었다.

 

 "여기까진가. "

 

  한탄섞인 감탄사를 내뱉은 아에리아가 품에서 열쇠를 꺼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열쇠는 복잡한 문양이 오목새김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져있었다. 촘촘하고 세밀한 것이 세공품으로 가치가 있긴 하겠지만 장소에 맞는 물건은 아니었다. 여기엔 문 비슷한 것조차 없었다.

 

  그를 비웃 듯 아에리아는 열쇠를 담에 박았다. 아무런 저항 없이 담에 열쇠가 먹혀들어갔다. 놀라운 일이지만 진짜 놀라운 건 그녀가 열쇠를 돌린 다음이었다. 한순간 빛과 함께 문 문양이 나타났다. 아에리아는 그 문 문양으로 아주 손쉽게 벽을 뚫고 들어갔다가 다시 탄에게로 돌아왔다.

 

 "그런 게 있으면서 왜 진작 안 쓴 거야?"

 

  처음보는 마법에 놀란 것도 잠시 없는 길을 기어 오느라고 온몸에 흙먼지를 묻힌 탄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마찬가지로 만만찮게 더러워진 꼴을 한 아에리아가 활짝 웃었다.

 

 "치트키만 쓰면 무슨 재미가 있니."

 

  탄은 또 아에리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저 아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탄이 아에리아에게 갖고있던 환상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별채로 돌아가는 길은 열쇠 덕에 편안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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