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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언틸던
작가 : Indignation
작품등록일 : 2018.11.4

동이 트기 전까지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미스터리 sf)

 
1. 사막 위에 고아원
작성일 : 18-11-04 00:49     조회 : 477     추천 : 0     분량 : 7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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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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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를 둘러봐도 노란 배경밖에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하게 회색빛 장벽이 서있었다.

 

  거대한 장벽이 들어선 사막은 역시 거대하여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넓은 곳에 살아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작은 생물조차 보이지 않는 메마른 사막에는 잊을만하면 불어오는 바람과 주변과 전혀 동화되지 못하고 있는 장벽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장벽은 타원의 형태를 한 채 안에 든 조그만 상자를 보호하고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같이 생겼지만 절대 작지도 않고 그렇다고 장벽을 넘을 만큼 크지도 않은 건물이었다. 겉만 봐서는 그 용도를 알기 어려웠다. 창문도 없었고 문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산다면 문은 있을 테지만 하얀 페인트로 절묘하게 칠해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때 건물의 측면이 갈라지더니 하얀 셔츠를 입은 소년이 툭 튀어나왔다. 밖으로 나온 소년은 조심스레 문을 닫고 가지고 나온 줄사다리를 건물의 외벽에 댔다. 그리고 순조로이 사다리를 올라 옥상에 도착했다. 타오르는 태양 전지판이 소년을 맞이했지만 올라선 곳은 아무것도 없는 가장자리였다.

 

  소년은 그 자리에 곧게 서서 아무것도 없는 주변을 둘러봤다.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소년의 표정에는 어떤 기대도 없었다. 사방을 훑던 시선이 회색빛 장벽에서 멈췄다. 벽은 아무렇지 않게 그 시선을 막아내었다. 무심하게 시선을 거두던 소년의 머리 위로 벽이 완벽히 막지 못한 부서진 빛줄기들이 벽을 넘어 쏟아져 내렸다. 뿌려진 빛들은 군청색 머리에 푸른빛을 띠게 했다.

 

  소년은 번쩍이는 태양과 푸를 뿐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것들이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바깥 풍경이었다. 태양빛에 반사된 건지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입꼬리가 근질근질한지 자꾸 씰룩댔다. 한동안 서서 사방의 경치를 구경하던 소년은 다리가 저렸는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소년이 알기로 지금 이 지역은 계절상으로 봄이었다. 열네 번째로 맞는 봄이었지만 여전히 사막에서 계절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언제나 날씨가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곳에서 기대하기는 어려운 사항이기도 했다. 아침에는 태평하던 하늘이 점심에는 매서운 폭우를 쏟아내기도 하고 잠잠하던 사막에서 사방으로 폭풍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니 계절이 뭐든 간에 그걸 직접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장벽은 그 어떤 궂은 날씨에도 무너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갈라진 곳은 좀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사다리를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소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소년은 그 소리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곧 바로 옆에서 들어야 했다.

 

  “...인! 케인! 멍청아! 샤크라가 없어진 거 눈치 챘어. 빨리 와야 돼.”

 

  높은 음성이 귀를 때리자 케인이라 불린 소년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붉은빛이 도는 긴 검은 머리의 소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도 케인과 똑같이 위아래로 하얀 옷을 입은 채였다.

 

  케인은 잠시 그녀를 응시하다가 인상을 풀었다.

 

  “기다려봐.”

  “빨리 들어가야 한다니까?”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소녀는 궁시렁대면서도 옆에 쪼그려 앉아 기다려주었다.

 

  “지금. 저기 봐.”

 

  케인의 손가락 끝을 따라 소녀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 끝에는 벽 너머에서 꾸역거리며 소용돌이 치고 있는 사막의 모래폭풍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밖에 있었고 안에서는 볼 수 없었다. 다만 소리는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왔다.

 

  “이게 뭐야?”

  “모래폭풍이야. 본 적 없지? 나도 없지만. 매년 이쯤에 생기더라고.”

 

  모래폭풍은 주변에 모든 것을 빨아 당기며 하늘과 땅을 잇는 기다란 빨대를 형성했다. 올려다보면 그 흔적이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프로펠러가 도는 것처럼 대기가 약하게 떨려오며 모래들이 비처럼 떨어졌다. 폭풍은 한동안 주변을 계속 휘젓다가 천천히 장벽에서 멀어져갔다.

 

  “이제 들어가자. 여긴 너무 더워.”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소녀가 재촉했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아쉽겠네, 페리. 해지는 모습은 더 끝내주는데. 그건 직접 볼 수도 있고 말야. 다음에는 보여줄게.”

  “걱정도 팔자야. 원장한테 무슨 변명할지나 생각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페리는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 그건... 지난번에 봤어.”

 

  곧 둘은 옥상에서 내려왔다. 그들은 발을 털기 위해 둔 매트가 이미 모래 속에 잊힌 지 오래된 건물의 뒤편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는 건 좋지 않을 것이라는 페리의 의견 때문이었다.

 

  뒷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둘을 덮쳤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캑캑대던 케인이 불만을 내뱉었다.

 

  “이럴 필요까진 없잖아. 자유시간에 나간 거라고.”

  “그렇지만 무단외출은 금지잖아. 모르지 않잖아? 그리고 옥상은 더더욱 안 돼.”

 

  앞장서서 걷던 페리는 뒤를 돌아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혹시 원장이 뭐라고 하면 책방에 있었다고 하면 괜찮을 거야. 너무 집중해서 못 들었다고 해.”

 

  친구의 값진 충고에도 케인은 머리에 붙은 거미줄을 떼어내며 머리를 대충 끄덕일 뿐이었다. 페리는 만족하지 않고 확답을 구했다.

 

  “알겠지?”

  “알았어. 진짜, 엄마 같이 굴지 마.”

  “진짜 엄마라면 이런 일에 거짓말을 시키진 않았을 거야.”

 

  페리가 낮게 말했다. 딱히 반박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괜히 말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케인은 틱틱대며 복도를 걸었다. 뒷문이 있는 골방을 지나자 그래도 깨끗한 방에 들어섰다. 예전에 자주 썼던 놀이방이었다. 안 쓰게 된지 오래된 장난감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옛날엔 이 뒤에 골방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발밑에 있는 레고를 치우며 케인이 중얼거렸다.

 

  “애초에 선생님들이 알려주지 않았잖아. 우리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었고.”

 

  페리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 뒤로는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 저녁 이야기를 했다.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페리가 웃어주고 있었을 때,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언뜻 봐도 보통보다 훨씬 거대한 몸집의 여자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덩치뿐만 아니라 키도 케인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컸다. 그보다 문제는 기분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딜 갔다 온 거냐? 당장 말해보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페리, 케인을 찾겠다고 나가더니 한참을 코빼기도 안 뵈더구나.”

 

  페리는 샐쭉하며 걸음을 멈추고 차려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케인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케인은 그대로 걸어가 원장과 머리 하나 정도 남기고서야 멈췄다. 그런 케인을 원장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원장의 손이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케인의 목이 부러지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로 크게 돌아갔다. 뒤에서 약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케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원상태로 고개를 돌려놓았다. 그리고 아직도 올라가있는 손을 보다가 한쪽 입 끝을 비틀었다.

 

  “그 표정은 뭐냐?”

  “한 쪽 얼굴에 안면마비가 와서요.”

 

  이번엔 뒤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샤크라 원장이 노려보자 페리는 재빨리 다시 허리를 세웠다.

 

  “그렇구나. 그럼 나머지 얼굴까지 마비가 일어나길 바라진 않겠지?”

  “아무렴요.”

 

  그 말투는 비꼬는 것에 가까웠다.

 

  원장이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케인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이윽고 동굴 같은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거친 콧김이 그의 얼굴에 부딪쳤다. 위액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케인. 최근에는 얌전하게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넌 내가 화를 내지 않길 바라겠지?”

  “그렇죠.”

  “그런데 그따위 태도가 나를 화나게 한다는 걸 정말 모르겠니?”

 

  케인이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혀에서 쓴맛이 느껴졌다. 굴러다니던 단어들은 다시 속으로 들어갔다.

 

  원장은 그 모습에 만족을 느낀 것 같았다.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야지. 얌전히 있어야 좋은 아이란다. 자, 이제 말해봐라. 어딜 갔다 온 거냐? 자유시간이라곤 해도 방에 있어야 한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어...”

 

  케인은 뭔가를 또 말하려했지만 이번에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아미를 찌푸리며 오물거리다가 결국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뒤로 꼭 쥔 주먹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책방에 있었습니다. 책에 너무 집중한 부르는 소리도 나머지 못 들었어요. 페리가 나중에 찾으러 왔을 때야 알았습니다. 자유시간에 숙소를 무단이탈하여 죄송합니다.”

  “좋아.”

 

  원장이 허리를 들어올렸다.

 

  케인은 어떻게 목이 저 거대한 머리를 견뎌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언젠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머리를 떨궈버리지 않을까 하는 얼마간의 기대를 담아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당장은 버티는 모양이었다.

 

  “좋아. 다음부터 이런 일은 없도록 해라. 아니면 다른 벌을 받게 될 테니.”

 

  원장은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미친개를 다루는데 성공한 쾌감을 그녀는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케인은 말도 안 되는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제야 볼이 후끈거리며 아픔이 느껴졌다. 아까 느꼈던 쓴맛은 터진 입술에서 나온 것이었다. 원장은 그 꼴을 만족스럽게 쳐다본 것이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케인은 반쯤 뒤로 고개를 돌렸다. 페리가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가자.”

 

  그 말에 그녀가 쪼르르 곁으로 다가왔다. 둘은 다시 함께 복도를 걸었다. 원장은 아직 걸음을 떼지 않고 걸어가는 둘을 지켜보았다. 그 곁을 지나던 페리가 얼굴을 푹 숙였다. 케인은 원장의 손을 노려보며 부글거리는 속을 참아야 했다.

 

  그 손을 당장이라도 부러뜨려 버리고 싶었다. 정말 제대로 된 기회만 주어진다면 분명 할 수 있을 것 이었다. 하지만 그건 소꿉친구가 언제나 말하듯이 ‘제대로 된’ 생각이 아니다. 오만한 생각일 뿐이다. 그는 할 수 없었다.

 

  남자숙소 문 앞에서 둘은 멈춰 섰다. 케인은 눈을 마주칠까 얼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에서 페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색한 작별인사가 쓸모없게 느껴졌다.

 

  “야, 야. 이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케인은 들어오자마자 네 개의 2층 침대 중 가장 안쪽에 있는 침대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레고리가 잠깐 쳐다봤지만 금방 관심을 거두었다. 아래층을 쓰는 데이비드도 토트의 침대에서 그레고리와 함께 셋이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뇌를 자극하는 냄새에 케인은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렸다.

 

  원장의 말대로 최근에 나름 얌전히 있으려고 했던 건 사실이다. 이번에 들키지만 않았다면 아마 그 기간은 연장됐을 터였다. 그래서 일부러 일과시간이 아닌 자유시간에 갔지만 결국 들켜버렸다.

 

  ‘다 부질 없는 일이 되었지만.’

 

  케인은 침대에 누웠다. 페리가 약을 가져오겠다고 했던 것 같지만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의약품은 전부 원장이 관리하고 있었다. 볼이 점점 더 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마 내일 아침에는 페리의 안타까워하는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이 몇 살 때부터 이 시설에 맡겨졌는지는 이미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이미 이곳에 있었고 그 후로 쭉 이곳에 있었다. 14년간 이 안에서 살며 이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왔다. 장벽 바깥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오로지 책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그마저도 도서관에 책이 추가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케인은 이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2년 뒤에는 어차피 떠나야할 곳이었다. 가뿐히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도 사람이 많을 적에 시설에서 해주는 수업은 나름 괜찮았다. 이 정도로 샤크라가 폭정을 펴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죄다 변해버렸다. 원장만 남고 다른 선생들은 전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 남은 사람은 원장과 14살짜리 아이들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원장에게 수업은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골칫덩이들을 잘 다룰 수 있을지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밤새 얼얼한 볼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시간은 어느새 어둠을 쫓아내고 여명을 부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방문에 달려있는 대형 스피커에서 울려댔다. 그러자 하나 둘씩 아이들이 침대에서 제각각인 모양으로 뒤척거렸다. 비몽사몽간에 가장 먼저 이불을 개기 시작한 건 작달막한 그레고리였다. 갈색의 곱슬머리가 여기저기 퍼져 웃긴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피커 소리가 끝나갈 때쯤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 이불을 개려고 일어났다. 케인은 그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금방이라도 머리를 떨굴 것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 저녁 먹을 시간도 무시하고 밤을 지새운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려고 시도를 할 때마다 후끈한 볼이 찌릿한 고통을 선사했다. 덕분에 잠이란 녀석은 수마의 늪으로 그를 데려가주지 못했다.

 

  맞은편 침대 위층에서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데이비드. 오늘 일정표 봤냐?”

 

  토트였다. 그 큰 덩치는 아직도 이불에 싸매어있었다.

 

  “아니... 아직...”

 

  아래에서 데이비드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일정표가 적혀있을 문간으로 다가갔다. 긴 팔다리가 공중에서 허우적대면서도 제 역할을 해주었다. 그는 뭔가가 적혀있는 종이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눈을 뗐다.

 

  “아침 먹고. 흐아아암. 1시간 수업 들은 다음에 그림 그리기 하고 다시 점심.”

  “그림? 웬 그림?”

 

  그레고리가 눈을 휘둥그레 하게 뜨고 물었다. 그의 이불은 이미 거의 개켜있었다. 데이비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어. 별이나 행성을 그리라고 하지 않을까. 아니면 외계인이라도.”

  “뭐, 그렇겠지...”

 

  그제야 수긍이 간 듯 그레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을 마저 정리했다.

 

  “수업명은 우주의 신비라네.”

  “그건 관심 없고, 그 다음은?”

  “점심 먹고... 또 듣네. 아까 그 수업. 샤크라가 아주 우리 머릿속에 신비한 우주에 대한 걸로 가득 채울 생각인가 봐.”

  “지난번에도 똑같지 않았나? 뭐, 그 여자 생각을 어떻게 알겠냐. 그게 다야?”

 

  토트가 묻자 데이비드는 좀 더 살피다가 답했다.

 

  “응. 그 뒤엔 저녁 먹고 자유시간.”

  “오늘 컴퓨터는 안 쓰나 보군.”

 

  그레고리가 아쉽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그거 가지고 하는 것도 없잖나.”

  “뭐, 그건 그렇지.”

 

  케인은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모두 이 말도 안 되는 구조에 그다지 의아해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럼 슬슬 나가자.”

 

  데이비드가 이불 정리를 마치자 그레고리가 말했다. 하지만 토트의 이불은 전혀 정리되지 않은 채였다.

 

  “엉. 코비, 내 이불 좀 정리하고 와라.”

  “아, 어...”

 

  토트의 아래층에 있던 코비가 턱살을 파르르 떨면서도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 명이 모두 나가버리자 방에는 둘만 남게 되었다.

 

  케인은 딱히 코비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잠자코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래도 예전만큼 괴롭히지는 않는 편이었다. 직접적인 폭력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저런 잔심부름을 시키는 정도였다.

 

  저 모습이 어쩌면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단 걸 자각하면서도 그다지 그가 가엾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옛날과는 달리 토트에게는 패거리가 없었다.

 

  잠은 어느 정도 깼지만 케인은 아침도 역시 굶기로 했다. 가봐야 밀빵에 샐러드 밖에 없기 때문은 아니다. 아, 스튜도 있네. 그저 가끔 이런 일이 있다. 언젠간 한 사흘을 연속으로 굶은 적이 있었다. 한두 번 쓰러지기까지 했는데 쓰러진 그를 챙긴 것은 페리였다. 결국 그녀에 의해 억지로 다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이 멍청아!”

 

  눈물을 글썽거리며 직접 스튜를 떠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언제나 그를 누구보다 먼저 챙겨주었다. 그 이유는 케인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식당에 없으면 걱정은 하겠지만 하루 정도로 닦달해 오진 않을 것이다. 페리 외에는 아침을 굶어도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업시간만 맞게 들어가면 원장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아이들이 굶어 죽든 말든 신경 쓰는 것보다 다른 데 더 관심을 쏟는 것 같았다. 지금은 사라져버렸지만 케인은 그나마 자신에게 상냥했었던 한 여자를 떠올렸다. 그때의 일이 어렴풋이 떠오르자 그의 눈썹 끝이 불안하게 떨렸다.

 

  케인은 눈을 감았다. 수업까지 잠이나 다시 잘 생각이었다. 코비는 이미 나가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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