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팔을 베고 모로 누워 세이나의 머리를 가만히 쓸고, 손에 잡아 만지작거린다.
“남편아. 일하러 안가도 되는 거야?”
바이안과 같은 자세로 그의 손길에 몸을 맡긴 세이나는 점심이 다 되도록 침대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는 바이안에게 당연한 질문을 던진다.
처음 일주일이야 축제기간이라 일이 거의 없었다 하더라도 축제가 끝났으니 다시 바쁘게 정무를 봐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바이안은 세이나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여유작작이다.
“휴가.”
“대신관료들이 잘도 허락했네.”
황제라는 자리가 자기 마음대로 휴가를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 무언가의 거래가 있다 짐작했다.
“네가 겨우 돌아왔는데, 바로 일 할 수는 없잖아. 아이들이랑도 함께 지낼 시간도 많이 부족한데 그동안 보지 못하고 하지 못한 만큼 뽕을 뽑아야지.”
매일매일 보내도 부족하지만, 겨우 얻은 휴가인 만큼 최대한 시간을 누리리라 다짐한 상태이기에 바이안은 침대와 몰아일체가 되어 세이나를 실컷 감상했다.
“그럼 남편이를 대신해서 케리프씨가 중요업무를 다 보는 거야?”
“나 대신 업무를 떠안으면, 한 달 휴가 주겠다고 거래를 제안하니까 쉽게 하겠다던데?”
무슨 휴가가 한 달이나 되는 것인지 얼굴로 궁금함을 표하고 있자, 바이안이 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에바랑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가서 자연의 기운을 받아 기필코 2세를 보겠다고 결의를 다지더라고.”
“아~ 2세.”
그러고 보니 에바네에는 아기 소식이 좀체 없다는 소리를 듣긴 들어 절로 납득했다.
“둘이 어의에게 진료 상담까지 받았었다는데, 에바가 아가가 들어오기 힘든 체질이라는 말을 듣고, 귀한 약재와 보약들에 묻혀 산다더라고.”
케리프는 케리프대로 정력에 좋다는 약으로 오랜 시간동안 달여진 상태라 성벽도 부술 정도로 넘쳐 나고 있으니, 에바만 준비가 되면 금방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듯싶다.
시간이 얼만큼 흘렀는지 신경 쓰지 않고 있자니, 미세한 진동이 침대를 타고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던 거야? 왜 바로 오지 않았어.”
아이들이 시녀 시종들을 대동한 채로 거대한 성이라는 모험을 떠난 덕분에 겨우 얻은 둘만의 시간이었고, 이제야 물어 볼 수 있었다.
“으음.. 나도 바로 올 수 있었으면 그랬지. 어떻게 안 되는 사정이 있었달까.”
세이나는 그때의 일을 바이안에게 찬찬히 풀었다.
“일단, 첫째로 내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나 혼자 했으면 더 힘들었겠지만, 우리 아가들까지 합세한 격이랄지, 영혼이 세 개라 편했지.”
빙그르르 한바퀴 굴러 바이안의 가슴팍으로 골인에 성공하고 키득였다.
“거기에 우리 아가들이 착해서? 그렇지 않아도 둘이라 좁을 텐데, 아주 잠시 아가방을 함께 쓰게 해주더라. 덕분에 전원 무사. 만사형통.”
즉, 쉽게 이야기해서 세이나의 뱃속을 빌려 죽고 다시 살아났다란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지금 이 세상 자체의 존재는 세이나의 아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 여신을 지칭할 때 썼었던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진짜가 된 격이다.
뭘 상상하고 있는지 얼굴이 고대로 드러나는 바이안의 얼굴을 바짝 붙여 확인한 세이나는 오랜만의 코땡을 엄지와 검지를 살려 날렸다.
“그리고 바로 오지 못한 이유는 뭐, 별거 없어. 끝나고 보니 반작용인지 뭔지 몰라도 퓽하고 튕겨 날아가버렸달지, 엉뚱한 곳에 가 있더라고.”
손가락으로 날아가는 모션을 귀엽게 취해 나름의 애교를 부렸다.
“거기에 조금 쇼크를 받았는지는 몰라도 잠시 정신줄을 놓고 있었어. 근처에 살던 노부부가 도와 주셔서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고, 금방 정신이 돌아오긴 했지만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해서 거기에서 아이 낳고, 요양하면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버텼고.”
바이안은 사람을 통해서 알렸으면 직접 데리러 갔을 텐데라는 조금 불만 섞인 생각을 하고 있지만, 세이나가 떨어진 곳이 노부부외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오지중의 오지였고, 몸 상태는 거의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었다.
혼자 열심히 물리치료를 병행하며 조금 건강이 돌아왔지만 아이들을 낳고 다시 누워야했고, 눈도 좋지 못한 상태인지라 아이들이 걷고 뛰고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 건강을 찾으면서 기다렸다.
세이나가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거의 다 풀었을 즈음에 둘이 누워있는 침대가 조금 전보다 커진 진동을 받고 흔들렸다.
“오빠야. 현자의 돌의 직접적인 영향과 간접적인 영향의 차이점 잘 알지?”
이제는 소실된 현자의 돌에 대해 새삼스럽게 질문을 꺼내 의아해 하고 있자니 세이나의 눈 꼬리가 조금씩 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능력을 깨우치는 표준적인 나이가 십대 중반쯤이잖아.”
“응. 그렇지.”
의도를 알 수 없을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답인 것을 잘 아는 바이안은 긍정하면서 경청했다.
“우리 아이들 아직 세 살인데 능력이 개화했다. 즉, 우리 아이들은 천재다.”
“흐~”
자신들의 아이들이 잘났다는 소리는 그를 빙구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아니지요~ 천재는 아니지요~”
“응?”
엄마가 아이들을 부정하는 겁니까? 이래도 되는 겁니까? 라는 눈빛을 쏘아 보내도 세이나는 당당하게 세운 검지를 좌우로 까딱일 뿐이다.
“아주 잠시간이라도 대놓고 뱃속에서 셋이 동고동락을 했으니, 태어나기도 전에 저절로 눈을 뜬 상태일 뿐이지요.”
아, 그래서 그런식으로 말을 한 것이로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별안간 세이나의 입이 점점 짓궂게 변해갔다.
“아이들이 능력을 쓰는 것은 훈련하고 노력해서 의식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방법을 서술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거야. 므흐흐”
설명은 참 이해가 되는데 왜 저렇게 웃는지 그 이유를 빨리 알고 싶다.
“남푠~ 이 성 보수하고 증축한지 얼마 안 되서 튼튼하지?”
“튼튼하지.”
뜬금없이 말을 돌리는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하려다 다시 입을 달싹이는 세이나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은 숨을 쉬는 것과 같게 능력을 쓴다고. 거기에 더해서 아직 아기입니다. 무엇이 나쁘고 좋은지 한참 배울 때이고, 능력의 컨트롤도 하지 못하지요.”
때마침 진동이 조금 더 커져 지진처럼 흔들리자, 세이나의 허리에 둘렀던 팔을 풀고 상체를 일으켰다.
“즉, 우리 아이들이 정신 팔려 뛰어놀기 시작하면 집한 채는 순식간에 아작 낼 정도임돠. 시종이나 시녀들이 감당 못함돠. 아이들 놀아주려면 적어도 기사급은 되야함돠. 근데 한명은 오빠야랑 같은 능력임돠. 기사도 힘들 수 있슴돠.”
말이 중간부터 장난스럽게 변한 세이나가 문밖을 손으로 가리켰다.
“막을 수 있는 솨람은 아빠 뿐! 남편이 너로 정했다! 가랏! 허공답보!”
말에 힘을 빡빡 준 세이나의 명령과 함께 침대에서 튀어나가 문을 활짝 열고 복도를 보자, 세이나의 말의 뜻이 눈에 선하게 나타났다.
“황자님!!!”
“황녀님! 위험하셔요!”
시종시녀들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허공에 팔을 휘적여 대면서 전속력으로 달렸다.
“우햐햐햐”
“캬하하”
에이든이 리나를 끌어안고 허공을 밟으며 복도를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아이들 기준에서는 술래잡기놀이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방향을 꺾지 못해 그 속도 그대로 벽에 몸통박치기를 하면서 방향을 틀었고, 벽은 움푹 파여 균열이 아주 조그맣고 예쁘게 흔적이 나 있다.
“푸핫~”
스케일의 피해는 컸지만, 사고치는 수준이 완전 세이나와 똑 같다.
미래에 낳을 아이들이 세이나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씨가 되어 더블로 돌아와 재밌고 웃기기는 하지만, 여기서 큭큭 웃기만 했다가는 세이나의 말대로 성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 막긴 막아야지 싶다.
세금으로 겨우 완공했는데, 또 백성들의 세금을 여기에 때려 부을 수는 없으니 그대로 아이들에게 날아가 뒷덜미를 덥썩 잡아들었다.
“이놈들~~”
“햐?”
“헤?”
목소리는 엄히 꾸짖지만 아이들이 돌아본 아빠의 표정은 자신들과 다르지 않게 개구져서, 대롱거리는 상태로 박수를 치면서 활짝 핀 표정으로 아빠의 합류를 반겼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뛰어 노는 것은 위험 할 수 있으니까 하면 안 돼.”
처음에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알리자, 아이들은 놀아주는 줄 알고 좋아했다 실망해 시무룩 고개를 툭 떨궜다.
“아빠가 뛰어 놀아도 좋은 곳에 데리고 가줄까?”
“징짜?”
리나의 눈동자에 별들이 촘촘히 박혀 반짝이기 시작했고, 바이안은 보란 듯이 가슴을 쫙 폈다.
아이들을 각각 한 팔에 안아 든 바이안은 아이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그대로 날아 복도를 튀어나갔고, 시종시녀들과 기사들은 머리를 쥐어뜯고 소리 질렀다.
“황제폐하!!!”
“폐하께서 날아가시면 어쩌십니까!”
아이들보고 하지 말라 엄히 꾸짖었을 때는 안도하면서 멋진 아버지를 보는 눈으로 봤었는데,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더니 본인이 하고 있으면 본이 되겠는가, 그들은 이미 멀리 사라진 황제와 황자, 황녀님을 쫒아 다시금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했다.
바이안이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 방에 만삭의 몸을 이끌고 온 히데아와 오랜만에 함께했다.
공작부인이 된 히데아는 무척 많이 변해 앞머리도 정리해 예뻐져 있었다.
“얼굴이 폈네.”
“많이 변했죠?”
늘 세이나의 곁에 서서 이일 저일을 했었지만, 지금은 함께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는 자신이 새로운지 조금 어색해했다.
히데아의 옆에는 기저귀 탓에 퉁퉁한 궁둥이를 자랑하는 아이가 까까를 열심히 우물거렸다.
“얌전하네.”
“그이가 저를 닮아 다행이라고 할 정도예요.”
론의 안도하는 심정이 와 닿았지만, 자신들 쪽은 닮지 말아야할 성격을 닮은 아이들인지라 조금 부럽긴 했다.
서로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자니 성이 또 작게 흔들린다.
“......”
세이나는 대화를 잠시 멈추고 진지하게 히데아에게 상황을 물었다.
“히데아. 남편이랑 아이들이 뭐하고 노는데 땅이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지 알아?”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론의 조심조심을 받아 성으로 들어왔을 때를 떠올리며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가장 작은 베벨궁에서 노시고 계신대요. 그이가 배아파 죽겠다고 웃으면서 설명한 바로는, 쓰지 못할 정도가 된 성인지라 곧 철거 준비를 하던 곳이라면서 철거비가 굳었다고 좋아하시기도 했어요.”
“아하!”
손바닥에 주먹을 마주치며 깨우친 사람처럼 행동했다가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러워 자연스럽게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아빠에게 아이들을 맡기면 안 된다는 말이 있기도 했었는데, 그 부분을 간과한 자신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다.
능력을 갈무리하는 방법과, 아이들의 힘을 컨트롤 해주면서 놀아주는 줄 알았더니, 아주 그냥 능력을 팡팡 쓰면서 더 난리를 치고 앉았으니, 안 봐도 뻔해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왜 하필 닮아도 내 성격을 닮고, 왜 하필 남편의 먼치킨 능력을 닮았으며, 왜 하필 두배도 아니고 알파로 사고를 치는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