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생명을 직접적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능력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아주 드물게 그 영향에서 벗어난 것 같은 능력이 몇 개 있지.”
모두를 자신에게 집중 시키고 손가락을 세워 올렸다.
“하나, 정신을 건드리는 능력. 이것은 생명 그 자체를 농락하는 것이 아니니까. 예를 들면, 공기 중의 떨림을 만들어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를 초음파 같이 특유의 울림으로 귀를 통해서 뇌를 건들어. 그 쪽, 최면이 사람의 정신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연구하고 있다며.”
지목된 이는 그녀의 말의 뜻을 듣고 쉽게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나가 예를 든 능력은 세일리아의 능력이며, 지금은 세이나가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우루루 역시 세이나와는 다른 방식의 정신계통의 능력이기에, 그녀의 능력이 설명이 된다.
“하오나, 죽은 이를 조종한다는 것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있을 수도 없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거 편견이라고. 일일이 설명해주는 이 몸의 입이 무척 아픈데, 더 늘려야 겠나?”
자신의 말을 자른 이를 차가운 말투로 누른 뒤에 세이나는 고생하는 자신의 입을 나중에 따로 칭찬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연 그 자체 또한 한낱 인간이 다룰 수 없는 힘이다. 허나, 본인자신에게 반영되는 능력들은 그런 것들과는 상관이 없다. 그리고 다르기는 하지만 살아있지 않은 무생물을 다루는 능력들은 많이들 가지고 있지 않은가?”
묵직하게 들어오는 바이안 덕분에 좌중은 쉽게 침묵을 찾았다.
“생명의 존귀함 때문에 생각자체를 하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르오나,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고깃덩어리일 뿐입니다. 모든 생명의 기능이 멈춘 무생물이 될 뿐이지요.”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케리프는 오히려 더욱 냉담하게 꺼냈고, 그가 낸 답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현자님. 그러할 시에 북부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의 대피가 주요한 부분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물건들을 조종하는 것에는 엄연히 한계가 존재하온데, 그렇게나 많은 수를 조종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맞습니다. 이미 죽어 본능도 남지 않은 육신을 움직인다면, 일일이 하나하나에 마력을 연결해야 합니다.”
차례로 돌아가며 올리는 의문에 강한 어조로 묵살해버렸다.
“지금은 이렇다 저렇다 따질 것이 아니야. 당장에 어떻게 대처하고 움직일 것이 먼저지. 공방만 펼치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얌전히 죽어줄 텐가?”
그리고는 맨 처음의 질문만 받아들였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을 설득하고 대피시키기에는 시간이 없을뿐더러, 그런다고 그 전부를 죽이고 인형으로 삼을 것이라는 것도 없지. 단, 진군하고 있는 방향에 있는 사람들은 그대가 걱정하는 대로 그리 될 수도 있어.”
“그것만을 놓고 보아도, 병력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바뀌지 않겠군.”
이미 오천이라는 숫자를 움직이고 있는데, 그 이상의 숫자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는 부정할 수 없다는 바이안의 판단에 모두의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빠져나갔다.
적이 치고 들어오는 방향에 있는 이들의 대피와 함께,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진격을 해야 하지만, 통행구를 사용하기에는 그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짠하고 이동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순수하게 발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말 등을 타고 이동해야했다.
오천이라는 시체의 군대를 조금은 예방은 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늘어날 터이고, 완벽하게 희생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었다.
희생당할 이들에 대해 절망할 시간도 그들을 애도할 시간도 가지지 않고, 바이안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인다는 명령을 내렸다.
만일을 대비해 북측에 대기하고 있는 병력들에게 먼저 방비하라 명령을 내렸고, 바이안도 군을 이끌고, 참전할 준비를 서둘렀다.
“이런 상황인데, 옛날이 생각나네.”
황자 궁에 있는 바이안의 방에 따라 들어온 세이나의 과거회상에 바이안도 떠올랐는지 피식 미소 지었다.
“처음에 날 주웠을 때, 나보고 좀비라고 했던가? 그게 움직이는 시체라고 했었지? 큭큭 확실히 저 부대들은 세나가 말 한대로 딱 그 짝이긴 하네.”
“전생의 영향이야. 좀비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영화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얼추 납득한 후에 갑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바마마께서도 참전하시겠다고 하시는 것 좀 말려줘.”
상황을 전해들은 황제가 검을 들고 날뛰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뒤라, 걱정이 된 바이안이 세이나에게 부탁하자 세이나는 키득키득 웃어댔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에 침대에서 앓아누워계시니까 괜찮아.”
같이 보고를 받았는데, 그건 또 언제 알았는지, 세이나의 말에 긴장감이 풀린다.
“오빠. 아마도 저들이 노리는 것은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을 알리려는 것은 아닐 거야.”
“그러겠지. 주의할게.”
바이안이 만나서 알게 된 적의 숫자가 전부는 아닐 것이고, 정확하게 파악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제로드와 세이나의 힘의 부분은 서로 비등하고, 애초에 제로드 본인이 움직인다면 전쟁이라는 것도 필요 없이 한 번에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세이나가 움직인다면 그와 비슷한 효과를 볼 테지만, 세이나는 제로드와는 달랐고, 세이나가 하고자 하는 것 때문에라도 움직일 수 없었다.
모름지기 쌓아올리는 것은 노력과 시간이 들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손가락 하나로도 가능한 법이다.
유지하고 지키는 것은 많은 신경을 써야하지만, 그 반대는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세이나가 말만 잘하지 하는 것은 없는 것 같은 심정에 조금 우울해 하고 있자니, 바이안이 조용히 다가와 그런 그녀의 머리에 키스를 했다.
“..오빠를 믿지만 다치지 마.”
바이안은 말로 하는 대답보다 더 확실한 대답은 서로의 온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키스와 미소라고 행동으로 보인 뒤에 당당히 걸어 나갔다.
“잘 지킬 거라고 믿는다.”
“걱정마라. 아무 일도 없게 할 테니까. 너나 잘하고 와라.”
론과 바이안은 서로 어깨를 툭 건들이고 떨어졌고, 지금은 옛 동료들이 된 기사들이 바이안이 들어 올린 손바닥을 한명씩 마주쳐가면서 그의 출정을 응원했다.
기사단을 데리고 출정을 하자, 에바가 우두두 달려와 세이나의 품에 다이빙했고, 세이나는 왕왕 목청 높여 울어대는 에바의 등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왜 케리프님까지 데리고 가는데?”
이기적이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에바는 속이 상해 세이나에게 화를 내듯 울면서 따졌다.
“케리프님은 아무 힘도 없잖아. 금방 죽을 수도 있단 말이야. 오라버니 미워. 싫어. 흐어어엉~~~”
“에구구~ 반 오빠 옆에 딱 붙어 있으면 아무 일 없을 거야. 오빠 먼치킨으로 각성했잖아.”
달래는 말이 살짝 미끄러졌지만, 여전히 울고 있어도 조금은 누그러져보이자 작게 안도했다.
“전쟁이 이런 거야? 전쟁 싫어. 훌쩍 너무 싫어. 훌쩍”
“능력자들은 언제나 바쁜 법이니, 나도 뭐라 할 수가 없구나. 쩝”
입맛을 다시면서 능력자를 둔 여인들이 마음고생을 대신 해야 하는 것을 나름 포장했다.
“그렇다고 케리프님을 데리고 가야하는 이유가 있어?”
전쟁이라는 것이 없던 세상에 살고 있어서인지, 에바는 조금 이해를 하지 못한 듯이 물어봤다.
“힘만 있다고 전쟁을 이기는 것이 아니거든. 으음.. 장수의 옆에는 책사가 늘 붙어 있는 법이랄까? 유비 옆에 제갈공명 같은 건데..”
에바가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득을 하려는 도중에 벌컥 하고 들어오는 황후와 귀가 잡혀 끌려온 황제의 등장에 세이나의 한숨이 길어졌다.
“큰 딸. 아빠 좀 말려주렴. 이것 봐, 내가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갑옷으로 중무장하잖니. 팔도 성치 않은 인간이 정말!”
평소에도 서로를 존중하고 꼬박꼬박 존대를 하던 황후의 입에서 존대를 쏙 빼고 바가지를 득득 긁자, 황제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출정하는 동안에 다 낫는다 하지 않았소? 게다가 황제로서 행하는 의무를 하지 말라 하면 나의 존재가 어디로 가오? 나의 존재의의이자, 균형을 지키는 역할이란 말이오.”
“이이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황후의 등짝 스매싱이 었지만, 철썩이 아닌, 갑옷 탓에 딱딱한 물체와 퍽하고 마찰을 일으킨 황후는 얼얼함에 찔끔 눈물이 맺혀 손바닥을 후후 불었다.
“하아~”
분명히 앞에 있는 이들은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들인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골치가 아프고 귀찮다.
‘나도 오빠를 걱정할 시간 좀 줬으면 좋겠다.’
울다 지쳐 퉁퉁 불은 눈으로 세이나의 무릎을 베고 잠이든 에바의 앞에, 갑옷이 가리고 있지 않은 부분들을 골라서 찰딱찰딱 찰지게 때리는 황후와 맞아도 의지를 접지 않고 붕대로 감겨진 팔을 붕붕 휘저으며, 금방 멀쩡해진다는 어필을 하면서 아비 된 자로서 아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 열변을 토하는 황제에 세이나는 아래로 추락하는 머리를 손으로 턱 짚고 이름은 떠오르지 않지만, 속으로 전생의 모 위인이 했던 대사를 읊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아아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