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가 세이나의 안전이기에, 신속하게 돌아왔고, 방으로 돌아온 바이안은 행여나 그녀가 다칠까 조심스럽게 침대에 앉혔다.
“세나야 몸은 어때? 머리는 안 아파?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세이나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아직도 감고 있는 눈 주변을 손으로 조심히 쓸었다.
“어이구~ 이놈의 걱정쟁이를 어쩐다니.”
두 팔을 쫙 펴서 바이안의 얼굴을 찾더니, 바이안의 두 볼을 꾸악 틀어잡고 그대로 입술을 돌진해 그의 코에 쪽하고 붙었다 떨어졌다.
“아, 코네? 입술 노렸던 건데.”
코가를 찡그리며 웃던 바이안이 자리에 일어나서 상체를 숙여 세이나의 머리를 받쳐주고 세이나가 원하는 대로 서로의 입술을 부드럽게 접촉했다.
“내가 하면 되지.”
살짝 떨어져 웃음이 섞인 바이안의 말소리와 함께 얼굴에 닿는 숨 바람에 온몸이 빨갛게 물들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자니, 다시 따뜻한 감촉이 입술을 한 번 더 훑었다.
잠시 등 뒤쪽으로 검은 현자의 돌을 치워두었다가, 침대의 오른편에 앉은 움직임이 느껴지자마자 행여나 그가 실수로 닿을 까봐 조금 더 떨어트려 치웠다.
“안 답답해?”
세이나가 돌을 멀찍이 떨어트리는 것을 슬쩍 보다가 감은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아 걱정이 올라와 물어보았다.
“오빠랑만 있으면 떠도 될 것 같긴 한데, 주변이 어떻게 될지 나도 예상이 안 되다보니까 어째야 되려나.”
하나였을 때에야 힘이 작용할 때, 눈자위가 그 돌의 색을 띄었었다.
게다가 그 하나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보여 왔기 때문에 지금은 두 개가 되었고, 영향력은 두 배가 아니라 제곱이나 알파의 가능성에 답답하긴 했어도, 쉬이 뜨기가 어렵다.
오랜 시간동안 멀리 떨어져 균형을 맞추던 돌이 한 곳으로 모여, 지금 바로 흡수할 생각이 없기에 손에서 떨어트려 놓았어도 그 힘이 지속적으로 세이나에게 유입되고 있는 중이기에 더했다.
“본래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대단하네.”
개방된 힘은 간접적으로라도 주변에 영향을 끼치다 보니, 황족의 특성과 더불어 세이나와 오래 함께 있기에 바이안은 적응되어 있기는 했지만, 방안 가득 채워진 공기가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강물의 흐름처럼 세이나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현상이 눈에 보일 정도여서 세이나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도 떠봐.”
“으음..”
침대에 내려놓은 손을 마주 잡아오는 손길에 바이안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천천히 눈을 떴다.
“이상해? 징그럽지?”
눈을 너무 감고 있어서인지, 살짝 흐리긴 했지만, 시야가 금방 선명해졌다.
눈가에 닿는 바이안의 엄지가 눈 주변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사랑스럽게 보는 얼굴에 쑥스러워 고개를 아래로 내리려 했지만, 얼굴을 받치고 있는 손의 체온에 그러려다 말고 마주 웃었다.
“안 이상해. 예뻐.”
바라보는 눈은 투명한 물에 검은 잉크가 번지는 것처럼 천천히 물들고 있었지만, 그에겐 상관없었다.
세이나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바이안의 눈에는 다 예뻤다.
“언제부터 할 거야?”
말 머리를 자르고 들어온 질문에 무엇을 물어보는지 아는 세이나는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당장이라도 해야지.”
“언제쯤이면 끝나?”
상냥하게 응시하는 시선에 좌우로 젓다가 바이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몰라.”
“더 나빠진다든가, 그런 건 없는 거지?”
바이안은 혹여나,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처럼 더 나빠질까 두려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없을 걸? 아마도..”
처음에는 육체가 상하기 전에 흡수라는 방식으로 귀 하나로 끝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세이나도 막상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는 장담할 수 없어 저절로 말끝이 흐려졌다.
“남은 일들은 걱정하지 말고. 푹 자.”
그 어떠한 일들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서로 믿고, 뒤돌지 않기로 약속을 했기에, 바이안은 세이나의 머리에 짧은 입맞춤을 하고 침대에 뉘여 잠시간의 헤어짐을 인사했다.
“응.”
두 손으로 돌을 감싸 가슴가에 놓고, 눈을 감고 잠이 든 세이나를 한참을 내려다 보면서 함께 했던 약속과 맹세를 다시 한 번 세이나에게 바쳤다.
방에 나와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옛 동료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보면서 정면에 서 있는 론의 어깨에 손을 얹다가 스쳐지나가며 한 마디 던졌다.
“부탁한다.”
“아~”
긴 복도를 걸어가는 바이안의 옆으로 하일이 나란히 서서 함께 걸었다.
“황자전하. 전 사단의 배치가 끝이 났고, 지금 이후로 저희 기사단은 임시로 전하께 복속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바이안이 잠시 걸음을 멈추자, 함께 따라오고 있던 하일이 의아해했다.
“둘 뿐인데, 평소대로는 어렵나? 듣기 힘들다.”
살짝 미간이 좁아져 불편함을 드러내니, 하일은 별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피식 웃었다.
“자리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서있는 자리가 있으니, 밑의 수하들의 본이 되어야지요.”
존댓말과 말투는 정중하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한쪽으로 틀어 웃는 행동에 장난기가 가득 차있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니기에 머리를 한번 쓸어 올리면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먼저들 돌아가 있어라.”
심기가 좋지 못한 제로드의 눈치만을 살피면서 대기하고 있던 둘은 커다란 바위에 앉아 적당하게 명령하는 소리에 맞춰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고, 우루루만이 제로드의 옆을 가만히 지켰다.
“희생이란 단어의 정의가 무엇인가..”
타인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이 희생이라 생각했고, 불공평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마주한 세이나는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 당당하게 말하면서 그녀가 소멸을 선택하게끔 강요한 것은 자신이라 혼을 냈다.
“불확실한 미래라지만, 특히나 부정적인 미래의 확률이 가장 큰데도 불구하고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서로를 믿는다는 것이 자신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바이안에게서 불안함도 부정적인 것도 보이지 않았고, 세이나도 거침없었고 당당했다.
“결혼 한 것 같더구나.”
자신은 바라면서도 이루지 못하고 무너졌던, 그 시절에 가장 소망했었고 그렇기에 소멸하던 그녀의 앞에서 모든 것을 잃고 다른 모든 것들을 버렸다.
자신과는 다른 행보와 결과들이 거슬리면서도 부럽다는 감정에 불편했다.
“그녀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사방으로 뛰어 다녔던 내가 틀렸던 것으로 보이느냐?”
제대로 알려하지 않으면서 멋대로 생각해 만든 결과라 그리 혼이 난 듯싶었다.
대현자는 억지로 맡는 자리가 아니라 권유받을 때, 스스로 선택한다.
그러하다면 알면서 선택해 그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지만, 어째서 자신과의 미래보다 그 선택을 했는지, 이제와 물어본다 한들, 대답해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 입가가 썼다.
“황족이 현자의 돌과 상당하게 깊이 관여 되어있는 이유는 어느 정도는 알 것 같구나.”
라이트리아는 이미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을 위해서라 크게 봐도 되겠지만, 아마도 제자를 위해 움직였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제자들 중 한명이 아마 초대황제일 것이다.
원인이나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렇기 때문에 대현자 외에도 드물게 황족들 중에서 현자의 돌에 면역이 있는 이들이 있는 것이 얼추 맞아 들어갔다.
우루루는 제로드가 자신에게 질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혼잣말처럼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있음을 알고, 그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의 옆에 가만히 서서 경청했다.
“우루루.”
“네 주인님.”
상체를 살짝 틀어 자신을 올려다보는 탁한 눈동자에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런다 하더라도 내가 틀렸다 생각지 않는다. 그때에는 내 선택밖에 답이 없었다, 지금도 그리 생각한다. 이제와 후회할 일들이 무에 있을까.”
“주인님은 틀리지 않으셨어요.”
듣고 싶은 대답이 무엇인지 알기에 흔들리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고, 제로드는 그런 우루루의 얼굴을 다른 때보다도 집요하리만큼 하나하나 관찰했다.
“이리 가까이 오거라.”
가까이 다가가 커다란 그의 손이 자신의 얼굴을 쓸고 감싸기에 눈을 감고 온기를 느끼면서 자신은 그의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다.
지금 주인님은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옛 연인이었던, 그녀의 얼굴과 빼닮은 자신을 통해 그녀를 투영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우루루는 그런 그가 서운하지도 않고, 질투가 나지도 않았다.
‘오직 당신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저는 모든 것이 다 좋답니다.’
“찾았다.”
흙구덩이에 떨어지고, 계속해서 파 들어가 마주한 검은 돌을 마른 침을 삼켜 덥썩 틀어쥐었다가 비명을 지르며 땅을 굴렀다.
“내가 어떻게 찾았는데, 포기 못해.”
피를 토하고, 땅을 굴러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는 꺼내어 손에 쥔 돌에 얼굴이 환해진다.
몸을 추스를 생각도 하지 않고 서둘러 통행석을 통해 돌아가 현궁의 기사들의 제지를 무시하고 방문을 크게 열어 안으로 들어 들어갔다가 모든 사고를 정지시켰다.
침대에 흥건하게 젖은 피의 웅덩이에 온몸을 떨면서 창백해진 얼굴을 한 그녀가 자신을 처연하게 올려다보면서 맑고 투명한 두 눈에 가득 물을 채워 울었다.
“왜 그러셨어요.”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달려가 그녀를 부축하면서 어의를 불러라 외쳤다가 자신의 가슴을 밀어내는 작은 힘에 떨어졌다.
“내가 대신 그 역할도 할 수 있게 됐어. 이제 다시 자유로울 수 있어. 그러니까...”
열심히 본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표현하면서 마음 놓아도 된다 말을 하는데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막더니, 부정하는 소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에서 나왔다.
“아니요. 그 반대에요.”
억제하고 컨트롤에 용이하도록 장식되어 있는 현자의 돌을 목에서 풀어 손에 쥔 그녀는 손에 힘을 주고 그 장식과 돌을 뜯어 분리했다.
분리되어 바닥에 흩뿌려진 장식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은 그녀는 오직 돌만을 손에 쥐어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과는 정반대로 입은 웃어 올렸다.
겨우 한 달 만에 그녀는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고,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세어 본래의 아름다웠던 색을 잃었고, 목소리를 잃었다.
자신은 잿빛으로 머리색이 조금 바뀐 정도였는데, 어째서 이리도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인지 의문도 들었지만, 이 이상 그녀가 잘 못 될까봐 그녀를 설득하고 말리기 위해 다시 찾아 그녀와 마주했다.
“도대체 왜 나를 거부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까지 하는 거야? 이제 그만해. 내가 대신 한다고 했잖아.”
소리를 잃어 쌔액 하고 공기가 새는 소리뿐이지만 입을 뻐끔이던 그녀가 가만히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다.
‘당신은 잊었지만, 나는 잊지 않았어요. 약속을 지킬 거예요. 그러니 나는 당신을 막을 겁니다.’
쿠웅하며 짓누르는 힘이 전신을 옭아매어 모든 것을 앗아가는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눈만 크게 뜬 채로 그녀를 보자, 빛 무리에 둘러싸여 공중에 붕 뜬 그녀는 양팔을 벌리고 힘을 폭발시키더니 그대로 빛 가루가 흩어지는 것처럼 서서히 사라져갔다.
‘제 능력으로는 조금 늦추는 것 밖에 할 수 없어요. 선대님들이시여 그분을 꼭 찾기를 소망합니다.’
무어라 말을 한 것 같았지만, 환하게 웃는 표정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존재가 흔적도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몸이 다시 움직이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돌은 조용하게 침묵할 뿐,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원망, 저주, 절망, 절규,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에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자신이 관계 되어 있는 모든 자료들을 소거하고 그대로 모든 것에서 흔적을 지우고 사라졌다.
얼마나 떠돌았는지, 몇 날이 지났는지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러다 수많은 시체들이 썩어 문드러지면서 심각한 악취를 풍기는 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머리가 새하얗게 샌 작은 소녀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별로 관심이 들지 않아, 그냥 지나쳐 가려 했다가 우연하게 그 소녀와 눈이 맞았다.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무감각한 표정과 눈동자가 지금의 자신과 닮았지만,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소녀의 외형이 자신의 발을 묶어버렸다.
“..루미나?”
소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았지만, 손을 뻗어 말을 건냈다.
“따라 오겠느냐?”
세이나는 타인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긴 꿈에서 깨어났다.
정확하게 어째서 저리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돌을 취하면서 기억된 것들만이 세이나가 취하고 흡수하면서 저절로 꾸게 된 것들이기에 앞이 없고, 단편적이고 가장 강하게 새겨진 부분만을 보아 그냥 기분이 텁텁했다.
“후우~~”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뿜어 털어낸 세이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잔겨?”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확인하니, 어쩔 수 없었던지 머리는 완벽하게 새하얀 눈이 덮은 듯 본래의 색인 검은색이 단 한 올도 남지 않았다.
“공짜 탈색. 완벽하군. 후훗~”
턱에 손을 가져다 댄 팔을 다른 손으로 지탱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우르르릉 지진이 방을 흔들었다.
“오래 자긴 했나보네.”
주변의 변화가 저절로 느껴졌다.
문을 열고 나가자 지금껏 지키던 자신의 기사들이 무릎을 꿇고 손을 심장에 가져가 기사의 예를 바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