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사히 밝은 내일을 보는 세상이 될 수도 있잖아. 그렇게 만들 거지만, 그러니까 우리 이름도 미리 지어두자.”
세이나의 정수리를 시작해서 이마 입술까지 콕콕 입술 도장을 찍은 후에 얼굴을 떨어트리고 입술을 살짝 말아 올리면서 평화롭고 행복한 한때에 자신들을 닮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상상을 하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딸이면 리나. 아들이면 세바스찬.”
리나라는 이름에 두 손을 번뜩 들고 ‘황혼보다 어두운자, 피의 흐름보다 붉은자’로 길게 영창해서 나라하나를 불살라 버릴 것 같지만 혼자 무인도에 떨어져도 잘 살 것 같고, 예쁜 이름이라 만족했다가, 세바스찬이라고 하자마자 굳었다.
차갑게 웃으면서 나이프를 파박 집어 던질 것 같은 죽여도 죽지 않는 모 미남이 떠올랐다가 너무 유치한 이름이기에 바로 반박했다.
“아들은 그 이름 아니 되네. 다른 이름을 대시게.”
세이나는 바이안의 전생이 자신의 전생과 같은 곳에 있다 온 오타쿠가 아닐까 속으로 아주 잠시만 심각하게 고민했다.
세이나가 나 지금 진지함을 과장스럽게 표현하자, 멋진 이름 아닌가? 의문이 떠올랐지만, 세이나의 의견을 고려해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봤다.
“레토르트?”
“이 쏴람이!”
인스턴트식품이 떠오르는 이름의 작명센스에 손바닥으로 둥글넓적한 이마를 투다다 두들겼다.
“끄응...”
바이안은 방금 것도 멋진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또 혼나니 자신감이 떨어져버렸다.
“에이든”
십여분 이상 침묵하다 눈치 보면서 힘이 빠진 목소리로 꺼내들자, 빵긋 웃는 얼굴에 안도의 한숨이 세이나의 앞머리를 흩트렸다.
“우리, 부적도 만들까?”
작명에 합격점을 받아 다시 자신감이 붙은 바이안이 뜬금없이 부적을 꺼내들자, 세이나의 큰 눈이 깜빡인다.
“부적?”
“의미성이라도 품에 두면 좋을까 해서, 우리 것은 서로 있으니까, 아들과 딸 거로.”
“아하하. 이러다가 옷도 짓고, 신발도 만들고 방도 꾸밀 기세네.”
바이안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라 키득이면서 그의 크고 단단한 가슴으로 꼬물꼬물 파고들어 안겼다.
“그러자. 우리가 아니더라도 무사한 미래에 태어날 많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만들자.”
두꺼운 팔이 세이나의 머리를 감싸고, 살짝 몸을 말아서 작은 그녀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그녀의 전체를 품에 끌어안아 가두었다.
“...오빠야?”
“미안. 나도 남자라서.”
애잔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해있었건만, 단둘만 있는 공간에서 본능을 무시 하냐? 어? 하는 주니어가 힘을 빡 주고 세이나의 무릎을 건들기에, 스윽 고개를 들어 올리는 세이나의 눈이 가늘어지다 못해 무섭게 바이안의 면상에 박혔다.
바이안은 무서운 눈길을 피하려 얼굴을 위로 올리면서 슬픈 노래를 머릿속으로 불렀지만, 예민한 몸은 품에서 꼼질이는 움직임과 살살살 들려오는 숨소리, 코를 간질이는 체향에 더욱 기세를 끌어 올려 댔다.
사악한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세이나는 바이안의 어깨를 밀어 그대로 그의 위에 올라탔다.
“이거이거 안되겠네. 내가 팍 혼내줘야겠어.”
별 생각 없이 놀리기 위한 세이나의 행동은 도발이 되어 곤란함을 담고 있던 바이안의 눈빛을 순식간에 바꿔버리고 형형히 빛나게 했다.
“으갸악~”
‘어라? 이게 아닌데.’
순식간에 자리가 뒤바뀌고, 침대위에서 두 팔로 지탱하고 내려다보고 있는 바이안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번뜩이며 자신을 훑는 눈동자에 고개가 저절로 왼편으로 도망간다.
“세나가 먼저 시작한 거야.”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박아놓은 바이안은 상의를 거칠게 벗고 세이나의 입술을 씹어 삼키려는 듯이 탐해갔고, 왼 팔에 마력을 집중해서 한번 휘둘러, 방을 밝게 밝히던 등을 절단해 기능을 상실시켜 등은 쓸쓸히 운명을 달리했다.
어두운 방안에 두 사람이 얽혀 뜨거운 열기로 서로를 데워가며 반복적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확인했다.
대부분의 병력들을 전선에 두고, 일부만 하루 늦게 궁에 도착해 도열해 있었다.
그중에 함께 싸웠던 모험가들 중에서 중요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가장 앞에 할아범이 적당히 서서 치하하기 위해 직접 나온 황제와 마주했다.
“상황은 보고로 들었습니다. 어째, 제가 할일을 어르신께 전부 맡긴 것 같습니다.”
“끌끌끌. 젊은 것들이 알아서 허긴 하겠지만, 나 좋다고 한 것입니다.”
뒷짐을 지고 서로 허허롭게 웃고 있자, 멀리서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찬찬히 걸어오는 세이나를 발견한 둘의 표정이 환해졌다.
“할아범.”
오랜만에 보는 할아범의 천하태평 무사함을 확인하고 인사하려던 세이나의 눈에 반가운 이들이 비쳤고, 그들도 세이나를 발견하자마자 적당하게 엉덩이를 뭉그러트린 몸을 일으켜 세이나에게 달려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넷은 두 팔을 활짝 벌려 앞뒤좌우로 세이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끼끼끼 한동안 못 본 사이에 살이 쪽 빠졌네.”
“손주사위 놈이 못 멕인겨? 혼내뿔라.”
“어이고~ 비싼 옷을 입으니 때깔이 더 곱구나.”
“이게 뭐냐? 늙은이는 우리들인데 우리아가가 흰머리가 더 많네? 사위 놈 어딨어?”
모험가로 애초에 자유로운 사람들이었고, 격식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이곳에 있는 귀족들은 대현자에게 편히 하는 그들을 책잡지 않았다.
이미 그들이 어떠한 위치에 있었고,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전장에서 어떠한 활약을 펼쳤는가는 모두가 알고 있었기도 했으며, 대현자의 가족이라는 것도 포함하여 그들을 모두가 장로급으로 존중하고 있었다.
네명의 노인들은 눈에 쌍심지를 키우고, 세이나가 여위어 보이는 것은 못 먹인 손주사위 탓이라면서 바이안을 찾아 두리번거리자, 오랜만에 받는 우리 손녀딸 우쭈쭈에 세이나는 해사하게 웃음 지었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진심으로 혼내주려 작정해 보이자, 뒤통수에 굵은 땀방울이 스륵 흘러 떨어져 사라졌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못살게 군 바이안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몇 번 떼찌떼찌 해서인지, 심술로 오늘 하루 접근금지를 외친 여파로 현재 바이안은 침대구석에 몸을 말고 머리위에 검은 비구름을 띄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를 낮에 따로 달래주기로 하고, 세이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다들 진즉에 은퇴하셨는데, 계속 전쟁에 참여하실거에요?”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물어보자, 넷은 각자의 성격대로 정정함을 어필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선봉에 서겠니?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들이 지금까지 정정하게 있었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야.”
점잔은 자바라가 대표로 대답해주면서 세이나의 마음을 덜어주었다.
“끌끌끌 그러고 보니께, 내 손녀딸이 나를 할아범이라고 호칭허게 된 원인이 네놈이었었지? 네 놈 따로 보자 이놈.”
“뭐셔?”
오랜만이라 깜빡했다면서 손가락으로 까닥이며 바그다드를 부르며 도발하자 버럭인다.
“할아버지라고 꼬박꼬박 불러주었는디, 네 늠이 가고 난 뒤로 할아범이라자녀. 고 귀여웠던 애교가 네 탓에 읎어진겨.”
“왜 나 탓인디? 아 쓰블느미.”
자연스럽게 불이 붙은 둘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연병장으로 떠나는 여전한 모습에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사이에 세이나의 옆에서 호위하던 로이에와 렌렌의 시선이 살며시 맞물리더니 파짓 스파크가 튀면서 서로가 동류라는 것을 간파했다.
“아가 저 아이도 네 기사니?”
“응.”
“나한테 좀 빌려줘야겠다. 끼끼끼”
세이나도 필시 로이에에게 도움이 될 것을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로이에는 세이나에게 예를 보인 뒤에 렌렌과 함께 멀어졌다.
남아있는 주요 인물들은 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케리프가 짚은 전장의 중심지로 황제도 출정할 준비를 마무리했다.
“무사히 다녀 오거라.”
갑옷을 걸치고 검을 허리에 찬 황제는 자신과는 다른 목적으로 준비를 마친 세이나의 무사함을 빌어주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황제는 세이나의 옆에 함께 서있는 바이안에게 시선을 옮기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하리라 믿는다.”
굳게 다물린 입과 굳건하게 서있는 바이안이 고개를 까닥이면서 그의 인사를 받으며 세이나가 먼저 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