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서부터 나던 타르트의 향과 그 타르트를 들어 보이며 손을 흔들어 반겨주는 세이나를 보면서 마주 웃었다.
세이나가 자신의 왼쪽편의 소파를 톡톡 두드림에 사양하지 않고 그녀의 옆에 바짝 앉았다.
“멋쟁이 기사님~ 아~ 하세요~ 사과 들어갑니다아~”
개구진 미소와 함께 들려오는 애교 섞인 말투를 귀에 담으며 바이안은 입을 동그랗게 벌려 넙죽 받아먹었다.
“맛있지?”
“그러네. 맛있다.”
바이안은 마주보며 생긋 웃음 짓는 세이나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지금 타이밍도 좋으니, 론에게 말했었던 일들을 전하기로 정했다.
그러다가 아주 조금 미룰까 싶은 마음이 들게, 세이나는 이미 타르트에 푹 빠져 맛있게 먹으면서도 자신의 입을 타르트로 틀어막아가면서 씹어 삼키는데, 그런 바쁜 모습이 너무 귀여워 절로 망설여지게 한다.
좋아하는 간식과 그 간식을 행복하게 먹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은 참 행복한데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아쉬워도 말을 걸었다.
“세나야.”
입에 들어간 타르트를 몇 번 씹고 바로 꿀떡 삼킨 뒤에 세이나의 왼쪽 귀에 얼굴을 숙여 작은 목소리로 가만히 이름을 불렀지만 세이나는 묵묵부답이다.
먹는 것에 너무 집중한 것 아니냐며 귀여워 쿡쿡 웃다가 다시 귀에 입을 바짝 들이 밀었다.
“세나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작게 이름을 부른 다는 것이 목소리가 너무 개미만 했나? 살짝 모로 기울려던 고개가 멈칫하고 굳었다.
설마 하면서도 갑자기 드리워지는 불안함에 등을 살짝 젖히고 두 손을 세이나의 양쪽 귀 근처에 둔 뒤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동시에 탁하고 소리를 내보았다.
그러자 놀라면서 오른쪽 귀에 손을 얹은 세이나의 고개가 그쪽 방향으로 돌아갔다.
“워메!”
“......”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진 표정을 재빨리 수습해 세이나의 뒤통수가 돌아가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눈동자에서 숨겼다.
세이나는 바이안이 장난을 걸었다 생각했는지 가늘어진 눈으로 심문하는 사람처럼 지긋이 올려다보니, 바이안은 들켰다며 과장스럽게 웃었다.
“오빠~”
“나 안 보니까 그렇지.”
“뭐여. 이젠 간식에게 질투하는 거야?”
세이나가 고개를 반대로 돌렸었던 덕분에 다행히도 눈치 채지 못해서 내심 안도했다.
세이나는 바이안의 유치한 장난이 너무 깜찍해서 키득키득 웃고는 놀아 주겠다며 두 팔을 걷어 붙였고, 한동안 투닥투닥 웃고 떠들었다.
“주군. 하일입니다.”
바이안의 딱딱하다 못해 튼실한 가슴팍을 팍팍 두드리던 중간에 마침 하일이 들어와서 세이나는 곧 바로 업무 모드로 돌아갔다.
“그럼 나는 먼저 일어나 볼게.”
쉬는 날이든 상관없이 옆에 붙어 다니는 바이안이 쉽게 나가 본다고 하자, 세이나가 무슨 일인가 올려다봤다.
그 모습에 바이안은 엷게 입가를 말아 올리면서 대답해주었다.
“오늘 따로 할 일이 남아 있어.”
“응.”
해맑게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세이나를 눈에 세긴 바이안은 자신도 작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집무실을 나섰다.
밖으로 나와 동료들에게 대충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바이안은 방문을 걸어 잠그자마자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지더니 볼품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손으로 제 얼굴을 덮어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진 자신의 표정을 가려보지만 덜덜 잘게 떨리기 시작한 그의 손은 차마 전부를 가리지 못했다.
단순히 세이나가 반응하는 방향이 그냥 오른쪽이었을 뿐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양쪽을 동시에 겨냥했을 때, 귀를 막은 손은 오른쪽뿐이다.
분명 자신은 왼편에 있었는데, 어째서 오른 쪽으로 반응을 하는 것인가.
기분 탓이라며 억지로 납득을 시켜보아도 다시 붉어져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과 함께 자신을 혼란스럽게 할 의도로 한 말일 뿐이라 부정했었던 단어들이 한자 한자 심장을 난도질했다.
“거짓말이 아니란 거냐? 다 헛소리가 아니, 정말로 돌이 세나를 갉아 먹는다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고민할 세도 없었다.
“세나의 귀가.. 안 들려...”
눈앞에서 부정했던 불안함의 증거를 목도했기 때문에, 그자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진짜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아무 손도 쓰지 못한 채로 세이나를 잃을 수도 있다는 의심에 분노가 차오르고 이성을 앗아간다.
“여신이시여. 도대체 당신은 당신의 아이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어째서, 왜 하필이면 세나란 말입니까? 진정, 제가 욕심을 부렸던 것이 세나를 불행하게라도 한다는 것입니까?”
머리를 그러쥐고 쥐어뜯듯 움켜진 그의 양손은 힘이 들어가지 못한 채로 예전 어렸을 때 학대로 품었었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이 돌아와 자신 탓을 했다.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욕심이, 단 한번 소원했던 저의 바람이, 원하던 것이 세나 단 하나뿐인데, 또 이렇게 눈만 뜬 채로 잃어야만 하냔 말입니다.”
들어줄 일이 없을,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여신에게 화살을 돌려, 분노하고 토로해도 돌아올 답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마음은 절망적으로 물들어갔다.
문가의 벽에 등을 기대어 한껏 웅크려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잘못되었다. 잘못 된 거야. 이 세상은 잘못 되도 한참 잘못 됐어. 무엇 때문에 세나가 희생을 한다고, 무엇을 위해서 세나가 그리 하는 것인데, 방법.. 방법을 찾아야 돼. 있을 것이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중얼중얼 어둠으로 가라앉은 바이안의 말소리는 갈수록 심해지면서 그의 맑았던 눈에서 초점을 앗아갔다.
“이런.. 내가 또 흔들려버렸네.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지켜주기로 했는데, 이러면 안 되잖아.”
흐느적 자리에 일어나 멀겋게 미소 짓더니, 중심을 굳건히 하지 못해 흔들리는 몸을 이끌고 걸어 잠갔던 문을 열어 밖으로 걸음을 뗐다.
“하일경.”
“예. 주군.”
“론.”
“예.”
날카롭게 벼려진 검 날처럼 차갑고 예리한 세이나의 부름에 고개를 숙이는 기사들은 살얼음판 위에 섰다.
항상 여유롭던가, 진지했던 세이나가 살기등등하게 있는 것에 놀라기도 했고, 처음 보여주는 찌푸려지고 일그러진 표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모습에 단체로 긴장했다.
“어떻게 됐어?”
“죄송합니다. 현궁과 황궁, 그 외의 곳에서도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무엇에 대한 물음인지 알기에 하일은 곧 바로 보고를 했지만, 주인의 화만 더 돋우는 결과를 초래한 듯 보였다.
“개자식...”
론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 짓거리를 뱉어냈고, 세이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죄송합니다. 저 역시 결과는 단장과 같습니다.”
“론. 아니, 로트론경. 이 상황이 된 이유 알고 있지?”
“...예상하는 바는 있습니다.”
아랫입술을 짓씹었다가 한번 숨을 돌리고서 연병장에서 들었던 일들을 세이나에게 가감 없이 보고했다.
“...그래?”
“네. 제가 들었던 내용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사륵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떠지는 세이나의 큰 눈 전체가 붉은 안광이 자리 잡더니 방안 전체를 에워쌌다.
세이나의 앞에 서있던 모두는 그녀의 노을빛을 머금어 따뜻해 보이던 눈동자가 가려지면서 새빨갛게 물든 모습에 뒤로 한발 물러나버렸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신묘한 기운의 압박에 등 뒤가 축축이 젖어갔고, 그런 그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지, 세이나는 빙글 등을 돌려 테라스로 통하는 문을 열어 나갔다.
“내가 안일했어. 너무 간과해버렸어. 누구보다도 내가 오빠의 성향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이제 눈치를 챈 거야. 빌어먹을 귀때기.”
왼쪽 귀를 후비다가 손바닥으로 두드려보기도 하면서 테라스로 걸어갔다.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서 왼쪽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3일전 밤이었다.
바이안이 자취를 감춘 것도 딱 그 날이었고, 론이 전달한 말까지 합하자, 바이안을 부추긴 정체를 얼추 알 수 있었다.
세이나는 흑막의 대가리가 개인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일전에 바이안이 출장을 다녀왔을 때, 상자에 뭍은 핏자국으로 무언가 있었다는 것은 알아챘지만, 대가리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바이안이라면 어련히 알아서 말해줄 것이라고 믿기도 한 폐해였다.
“설마 반 오빠한테 관심을 따로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네.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더라니.. 쓰레기 자식.”
건물에서 불쑥 튀어 나와 있는 테라스 덕분에 서있는 방향을 북쪽으로 쉽게 잡을 수 있었고, 세이나는 눈에 힘을 주고 대륙의 북부를 열심히 훑었다.
“오빠. 어디 있는 거야. 진짜 부탁이니까, 그 쓰레기한테 말려들지 마. 이상한 말에 현혹되면 안 돼.”
아무리 현자의 돌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대륙 전체를 세심하게는 볼 수 없었다.
어딘가에 들어가 있으면 그 안까지 볼 수 없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로 한 참을 노려보던 세이나는 갑자기 눈을 질끈 감고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주군!”
하일이 서둘러 세이나의 뒤를 받쳐주었고, 세이나는 하일의 품을 밀며 자세를 잡았다.
“고마워.”
“괜찮으십니까?”
“응. 아무렇지 않아. 모두들 방에서 나가줄래? 혼자 있고 싶어.”
충이나 예라는 대답 없이 모두가 조용히 방에서 물러나고 나서야 계속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뻑뻑하고 살짝 흐린 눈을 살살 비비면서 시야를 돌린 세이나는 길쭉한 소파에 대충 드러누웠다.
“쓰블~ 뭐 이런 병...”
차가운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서 찜질을 하는 세이나는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눈의 피로에 비틀거렸거나, 힘의 부작용으로 비틀거렸던 것이 아니라 다른 힘의 작용에 튕겨져 나가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것이어서 자신을 밀어낸 이에게 화가 났다.
그 힘의 주인을 보지 못했어도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있어서, 절로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과거에 뭐하던 새끼였기에, 갑자기 오빠한테 관심을 가지는 거야? 황족이었다 이거야? 무슨 분탕질을 치려고? 어차피 이미 지가 원하는 대로 되고 있으니까 분탕질 할 이유도 의미도 없잖아. 가만히만 있어도 될 것을 전쟁까지 준비할 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는데.”
자책하는 것도 탓하는 것도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도 멈추지 않고 세이나를 뒤집었다.
“오빠... 무너지지 않는다며. 날 믿는다며. 그렇게 말했잖아. 바보야.”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곳인지,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폐허의 공터에 놓여있는 큰 바위에 걸터 앉아있던 제로드가 손을 크게 한번 휘젓자 모두의 고개가 그에게 쏠렸다.
“주인님? 날벌레라도 있었습니까?”
“있었지. 아주 크고 빨간 벌레가.”
모두 제로드를 보고는 있지만 엘로이만이 제로드에게 물었고, 나머지 세 명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관심도 없는 녀석이 훔쳐보는 것만큼 기분이 더러운 것도 없잖느냐.”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만의 독백에 깊게 관여하지 않고, 다시 제 각각 시간을 때웠다.
“마침 타이밍 좋게 도착했구나.”
미리 광범위하게 세이나의 시야를 차단한 제로드는 멀리서 작은 점으로 보이는 인영이 자신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하고 오랜만에 보는 가족을 만나는 사람처럼 반가워했다.
제로드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낫을 휘휘 돌리면서 늘어져 있는 베인트, 자신의 몸보다 큰 로브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꾸물꾸물 놀고 있는 하밀, 쓰러져가는 건물 벽에 대충 늘어져있는 제임스, 묵묵하게 서있는 엘로이가 제로드를 뒤로 두고 서로의 자리에 섰다.
“워~ 씨브랄. 야. 제임스 황족이란 새끼들은 원래 다 저렇게 생겼냐?”
사람의 윤곽과 생김새가 분간이 될 정도로 가까워지자, 베인트는 절로 불평했다.
“그렇진 않던데? 이번 황제랑 황후가 잘났으니, 저리 태어났겠지.”
우루루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제임스는 그동안 봐왔던 황족들의 면면을 상기하며 적당히 대꾸했다.
“헤~~ 재밌을까? 나랑 뭐하고 놀아주려나? 재미없으면 죽여도 돼?”
하밀은 긴 챙 모자를 휘날리며, 이리저리 쪼로록 뛰어 다니면서 세 명에게 돌아가며 물어댔다.
“아서라. 죽이기 전에 네가 죽는다.”
“뭐야? 뭐야? 쎄? 강해? 정말? 그럼 죽일래.”
정신 산만한 하밀의 머리를 지그시 누르며 말리는 제임스의 말에 오히려 더 흥분해 작은 키만큼 짧은 두 팔을 파닥파닥 휘저었다.
재미있어 보이기만 하면 애처럼 구는 하밀에 절로 머리가 지끈거려 제임스는 귀찮음을 가득 담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눌러 참았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던 덕분에 상당히 가까워졌고, 제로드는 바위에 한쪽다리를 세워 적당히 팔을 걸치고 다시 한 번 상대를 맞이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