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던 바이안은 사막의 중간쯤에 도착해서야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와 세이나를 내려주었다.
“우와~~ 대박이네. 진짜 아무것도 없어.”
신기하다는 기색으로 호기심 가득 주변을 둘러보는 세이나와는 다르게 바이안은 세이나의 안색을 살피느라 바빴다.
이 곳이 세이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곳이면서도 기억을 잃어버릴 정도로 큰 쇼크를 준 장소이기도 하기에 그의 행동은 뭇 조심스럽다.
“집에 가자.”
하지만 세이나는 어느 때보다도 밝게 바이안의 손을 마주 잡고 작은 언덕이 있었던 자신의 집이 있었을 방향으로 달렸다.
조금 달려 도착한 곳을 빨빨빨 돌아본다.
“여기? 이쯤인가? 다 똑같아서 완전히 모르겠다.”
모래만 있으니 당연히 자세한 장소까지는 모르는 것이 맞지만 세이나도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꺼냈고, 바이안은 그런 그녀를 받아주었다.
“음. 뭐 어때?”
대충 장소를 정한 듯 도시락을 내려놓고, 두 팔을 하늘위로 번쩍 들었다.
“다녀왔습니다아!”
밝게 인사한 것과는 다르게, 두 손을 천천히 내리며 작게 웃었다.
“엄마 나 왔어요.”
이 후에 서로 나란히 앉아 옛날 일을 떠올리면서 두런두런 시간을 보낸다.
“알 오빠랑 누가 많이 먹나 시합한 거 기억나?”
“그녀석이랑은 많이도 부딪혔지.”
“그때는 마냥 재밌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웃기네. 애초에 반 오빠는 황족이라서 먹는 것에 매달릴 이유도 없었는데, 몇일 굶은 사람처럼 먹었잖아.”
“그건 세나가 잘 먹는 사람이 제일 멋있다고 부추겨서야.”
웃으며 대답하던 바이안은 순간 멈칫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 자식.”
“어라?”
갑자기 이를 부득부득 가는 바이안이 왜 저러나 영문을 모르겠는 세이나와는 다르게 바이안은 왜 이제 떠올랐는지 싶게 분노했다.
오래 되어서 잊어버렸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알과는 친하게 지내다가도 자주 부딪히는 것은 성격의 차이가 아니고 세이나가 연관이 될 때 마다였다.
피터지게 싸웠을 때도, 라이벌 마냥 서로 치열하게 대결한 것도 전부 둘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세이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세이나가 그냥 툭하고 뱉는 말들 중에서 ~하면 멋있더라나, 멋있겠다등 그런 말만 들으면 바로 대결을 해댔으니 말 다한 것이었다.
약혼이 정해지고 이겼다고 의기양양 했을 때, 분개했던 알은 어른들이 정한 것이지, 아직은 모른다고 빼액 소리치더니, 세이나가 좋아하는 걸로 꼬드겨 안아들고 튄 뒤에 쫒아 온 바이안이 보는 앞에서 세이나가 대롱거리며 알에게 매달려 오빠 최고야 라는 말을 듣고 반대로 의기양양 해 한 적도 있었다.
즉, 그 둘은 사랑의 라이벌이었다.
“이보세요~ 반? 여보셔? 오빠야?”
과거로 돌아가 다시금 알과 치열하게 싸우던 바이안은 반복해서 부르는 세이나 덕분에 현실로 허겁지겁 돌아왔다.
“아이고, 오른쪽 섬이랑 왼쪽 섬에 강이 세 개나 생겼네.”
인상을 써서 눈썹과 눈썹 사이에 생긴 주름을 세이나는 검지로 꾹꾹 눌러 펴주자, 바이안은 세이나의 손길에 저도 모르게 실실 웃음을 흘렸다.
“어쭈? 이번에는 입 주변에 파도가 치네.”
입가에 생긴 주름을 만지작대면서 다시 펴줬다.
“아! 그러고 보니까. 냇가에서 물에 빠져서 죽는다고 허우적대던 적 있었지?”
한창 행복함을 만끽하던 바이안에게 찬물이 들이밀어졌다.
“그때는 얕은 줄 몰랐어.”
“헤~~ 수영 못 하는 게 아니고?”
찬물이 엎어지며 바이안에게 쏟아졌다.
“아니, 지금은 잘해.”
너무 창피했던 흑역사라 세이나 몰래 수영 연습을 했던 바이안이었다.
새빨개진 바이안이 너무 귀여워서 세이나는 큰 소리로 웃어댔고, 하지만 그 웃음이 역효과를 일으켜 더 빨개지고 창피해졌다.
너무 웃어서 숨이 찬 세이나는 바이안을 놀리는 것을 이제 그만 하지 않으면 울겠다 싶어서 멈췄다.
“오빠. 나 어깨 빌려줘.”
그리 부탁하더니 자연스럽게 바이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후에 사륵 눈을 감았다.
바이안은 손으로 세이나의 어깨를 감싸고 세이나가 편한 자세가 될 수 있게 도왔다.
자신의 어깨에 기댄 세이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이제는 어른이 된 그녀의 변한 모습을 조심히 눈에 담는다.
그녀는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이 많이 안 좋을 텐데도 늘 밝은 모습이 왜 이렇게 자신을 시큰거리게 하는 건지, 그녀 대신 울어줄 수만 있으면 울어주고 싶다.
바이안의 시선의 끝에 세이나의 이마에 둥지를 틀고 자리 잡고 있는 붉은 현자의 돌이 자꾸만 눈에 걸린다.
약혼 한 사이라 해도, 세이나가 대현자가 되고 난 후에 이제는 그 약혼이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기억이 돌아 왔다고 해도, 그 부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자신과 그녀의 연결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약혼에 미련은 없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고, 그녀의 기사라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충분했지만 한편으로 대현자의 그릇이라는 이유로 어렸던 그녀의 행복을 잃어야 했다는 것에 그녀의 이마에 있는 저 돌이 싫고 밉다.
“반 오빠.”
“응?”
“오빠한테 부탁이 있는데,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는 무너지지 마.”
“안 무너져.”
기댄 세이나의 머리에 가볍게 키스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맹세를 새긴다.
‘못 무너져.’
세이나라는 세상을 잃어 무너져 내린 자신은 11살 때, 그때 단 한번이면 족하다.
“으쌰!”
가볍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 세이나는 언제 침울했냐고 빙글 돌아서 바이안에게 씨익 고른 치열을 자랑했다.
“오랜만에 시작해 볼까요? 엄마를 대신해서 저 세이아나가 부릅니다~”
우아한 손짓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한 손을 하늘로 곱게 뻗는 세이나의 쇼맨쉽에 바이안은 유일한 관객으로서 박수로 화답했다.
“흠흠.”
목을 가다듬고 엄마인 세일리아가 늘 그랬듯, 마력을 목에 집중했다.
그녀의 능력은 목소리, 다른 의미로는 소리의 공명이 대를 이어 흘러나왔다.
“하늘 위 저 푸르른 세상. 누군가 저리 슬프게 우는지 구름 한 점 없이 비는 내리고, 그 눈물을 닦아줄 이도 없이 고요한 세상에 빗소리만 가득히...”
죽은 이를 달래기 위해 부르던 세일리아의 장송곡의 노랫말이 그녀의 딸인 세이나의 소리를 타고 멀리 뻗어갔다.
세이나의 청아하고 맑은 노래 소리를 시작으로 모두를 위한 장례식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늦은 밤, 잠이 든 세이나를 안아 들고, 마을이 있는 곳까지 쉬지 않고 내달린 바이안은 작은 여관에 들어와 침대에 세이나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세이나의 손을 잡고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댔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볼 일이 끝나면 바로 돌아가려 했던 계획을 바꿔서 마을 여관에 하루 묵는 것은 세이나가 잠이 들면서였다.
형태도 잡히지 않고 가끔 꾸었던 악몽이 기억이 돌아 온 뒤로 선명하게 자리를 잡고 자주 세이나를 괴롭혀 댔다.
늘 태연하고 느긋하게 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지만 태연한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식은땀이 흐르는 그녀의 얼굴을 천으로 닦아 주면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빠...”
“응. 나 여깄어. 어디도 안가니까. 괜찮아 세나야. 다 괜찮아.”
잠이 들어서 바이안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찡그렸던 얼굴이 조금 펴진다.
그리고 세이나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자 그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울지마.. 다른 건 다 괜찮으니까. 울지만 말아줘. 괴롭지만 말아줘....”
손을 꼬옥 잡고 아침이 밝을 때까지 바이안은 그 자세 그대로 그렇게 날을 지새웠다.
정오 즈음에 돌아온 세이나는 자신이 앉아서 일을 보는 집무실의 의자에 태연히 앉아 먹방을 찍고 있는 론을 목도했다.
“......”
“오. 왔네.”
입가에 크림이 묻은 상태에서 손을 흔드는 행태에 나올 말이 없다.
거기에 히데아가 그의 옆에서 묻은 크림을 닦아주기까지 하고 있었다.
“뭐하냐?”
“뭐하긴? 세이나님이 있는 척 하고 있는 거죠.”
“...있는 척이랑. 먹어 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세이나의 공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엉뚱한 감상만을 꺼낸다.
“이야~ 간식 많이 먹나봐? 세이나님의 평소 일정대로 하는데 맛있는 게 많이 나오더라고. 있는 척 하려면 먹어야죠.”
“......”
확실히 간식이 나오기는 하지만, 저렇게 접시를 쌓을 정도의 양을 섭취하지는 않는 세이나는 론이 많이 먹는 모습을 본 히데아가 알아서 챙겨 준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히데아. 어리광 너무 받아 주는 거 아냐?”
“전 즐거운 걸요.”
히데아가 시녀장이 된 뒤로 깜빡하고 잊고 있었던 그녀의 성향이 세삼 이제야 떠올랐다.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남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성격이 론을 만나면서 커진 것이었다.
특히나 론은 그녀의 배려와 세심함에 즉각즉각 반응을 보이니 뿌듯하고 보람을 느낄 터였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막지 않고 론을 자세히 보니 하루 만에 살이 오르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얼마나 먹인 거야.. 저거.”
세이나가 질렸다고 중얼거리는 말소리에 옆에 있는 바이안은 쿡쿡 작게 소리를 내서 웃으며 평소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