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이후로 우리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회의를 반복했고 그 결과 인간들과 화합을 맺자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이 결론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이 있어서 그들을 설득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긴 했지만 말이다. 냄새를 통해 그 때 만났던 인간 둘이 많이 사용하는 것 같은 건물을 알아냈고(조금 부서져 있었다.) 그들을 불러 그 기계를 목에 걸고 우리의 조건을 제시했다. 우리의 조건은 인간들의 그 정책으로 인해 죽은 별의 가족과 우리가 죽인 인간들의 합동 장례식, 이 나라의 전 구역을 다닐 수 있을 것, 물론 이 나라 밖으로도 나갈 수 있을 것, 우리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게 보장할 것. 이상 네 가지였다. 이 말을 들은 그 때 무릎을 꿇었었던 인간은 고민을 하다가 우리의 조건에 자신들의 조건을 덧붙였다. 전 구역을 다닐 수 있지만 인간들이나 인간들의 시설은 건드리지 말 것, 살아온 방식. 즉, 약육강식의 방식대로 살되 그 잔해들은 잔해를 만든 동물이 치울 것, 인간들의 집 안에서 길들여져 살고 있는 동물들은 건드리지 말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다시 법을 만들었다. 인간들에게만 해당하지도 않고 동물들에게만 해당하지도 않는 법을 말이다. 그 법의 대표적인 항목은 이러했다.
1. 동물들은 거리를 누빌 자유가 있음. 허나, 인간의 시설이나 인간에겐 위해를 가하지 말 것.
2.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데에 발생하는 피해는 동물에게 책임이 없음. 부서진 건물 같은 것은 나라에서 고칠 것. 단, 사냥 후 남은 잔해들은 사냥한 동물이 알아서 치울 것.
3. 동물원은 법적으로 금지. 동물원에서 일하던 자들의 일자리는 국가에서 찾아줄 것.
4. 인간의 육식은 사냥을 통해서만 허용.
5. 이 법을 어기는 인간, 동물들은 엄중히 처벌할 것.
그 후에 합동 장례식이 거행이 되었다.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인간들의 사진과 별의 배우자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었을 일을 끝내고 나자 군데군데에서 인간들이 반대의 말을 내뱉었다. 어떻게 인간과 동물을 같게 보고 같이 장례식을 치를 수 있느냐는 말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인간도 결국 동물 아닌가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 자리를 나왔다.
그 후에 새 법을 제정하는 기념으로 새로 지은 건물 앞에서 무슨 기념식을 한다기에 그 자리에도 나갔다. 룩을 비롯한 그 때 있었던 동물들의 대부분과 그 때의 사람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보이는 인간들이 나란히 서서 새 법의 제정을 발표했다. 그러고 나서 그 인간이 손을 내밀었다. 무슨 뜻인가 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니 그가 내게 살며시 말해줬다.
“이건 악수라는 것일세. 대부분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뜻을 담고 있지.”
그 말을 듣고 이해한 다음 난 그의 손에 코를 댔다. 그러자 그는 웃음지어 보였다. 비웃음도, 냉소도 아닌 정말 즐거움에서 나오는 듯한 그 웃음에 나도 모르게 같이 웃었다. 생각만큼 앞으로의 일들이 늘 잘 풀려나가진 않을 것이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동물이건 인간이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뇌가 존재하는 이상 어쩔 수 없다. 그 많은 생각들을 전부 한 데 모아 화합을 이루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인지 이 인간과 함께라면 어려워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를 풀기 전에 문득 생각이 나 그에게 물었다.
“하나 깜빡했군요.”
“무엇을 말인가?”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는 그제야 자신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것을 깨달았는지 ‘아’ 모양으로 입을 벌리더니 얼마 안 가 다시 입을 다물고 내게 대답했다.
“내 이름은 김장준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