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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굿나잇 파트너
작가 : 나비야
작품등록일 : 2018.6.11

“누워.”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시운이 젖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털었다. “둘이서 누워도 충분할 만큼, 침대도 가장 큰 거로 바꿨으니까.” 그 남자, 자꾸만 나를 침대로 끌어들이려 한다! [navi_yaa@naver.com]

 
<6> 세컨드 주제에.
작성일 : 18-06-19 14:56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4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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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세컨드 주제에.

 

 ‘난, 당신을 끝까지 책임질 각오까지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뚝, 뚝.

 

  얼굴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졌다.

 

 ‘진심으로, 결혼까지 생각할 만큼.’

 

  그 남자가 했던 말이 귓가에 메아리쳤다.

 

  아니, 그 목소리보다는 진중한 눈빛이 더 깊이 다가왔다.

 

  시운의 말 하나하나를 들을수록, 그의 눈동자를 바라볼수록, 그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들었다.

 

  분명 저주니 온기가 느껴지지 않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만 뱉는 남자인데 말이다.

 

 ‘그렇게 이상한 남자랑 거래하겠다는 나도…, 정상은 아닌가?’

 

  찰싹.

 

  로연은 물기 젖은 자신의 두 뺨을 가볍게 때렸다. 정신을 차리자고 다짐하며.

 

 ‘어쨌든 이제 되돌릴 수 없으니까, 정신 차려.’

 

  그 남자를 아직 다 믿는 건 아니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벽에 있는 냅킨을 뽑아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낸 로연이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젖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털어내며 나오는데, 문득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

 

  로연이 먼저 사과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로연의 심장은 아래로 확 떨어졌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마냥 피하고만 싶은 상대였지만, 이렇게 마주쳤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언제까지고 피해다닐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로연에게는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었고, 또 같은 소속사 식구였으니.

 

  로연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가다듬었다.

 

 “안녕.”

 “…로연아.”

 “해외 촬영은 잘 끝내고 왔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왜 내 연락 안 받았어?”

 “핸드폰이 나한테 없었거든.”

 

  그건 사실이었다. 로연의 핸드폰은 시운과 교환했었으니 말이다.

 

 “…아직 화 많이 났어?”

 

  처연한 목소리였다. 로연은 기가 찼다. 어째서 재헌이 더 상처받은 얼굴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인데…….

 

 “아니, 난 이미 정리 끝났어.”

 

  최대한 산뜻하게, 로연은 대꾸했다.

 

 “우리 그날 다 끝내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더는 할 말 없을 것 같은데?”

 

  그래, 재헌과의 관계는 그날 모두 끝내기로 했다.

 

  소윤과 재헌의 입맞춤을 목격했던 그 날.

 

 “깔끔하게 끝내자. 구질구질하지 않게.”

 “내 말 좀 들어줘. 그렇게 일방적으로 끝내자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럼 뭘 어떻게 할까. 그런 모습까지 봤는데, 내가 다시 너랑 만나야 하는 거니?”

 “그건…… 실수였어.”

 

  하, 로연은 또 다시 터지는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실수? 그게 실수였다고?’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다른 여자와의 입맞춤이 고작 실수였다고 설명할 수 있는 일이던가. 그것도 그 장면을 제대로 목격한 사람에게.

 

 “그래? 그럼 그 실수에 대한 책임도 져야지.”

 “…로연아.”

 “그럴 거면 들키지를 말든지.”

 

  그래, 들키지만 않았더라면.

 

  재헌과 소윤이 키스하던 모습을 안 봤더라면, 지금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 터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해외 촬영에서 돌아온 재헌과 달콤한 재회를 맞이했겠지.

 

  차라리 그러는 편이 더 좋았을까.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른 채 상처받지 않는 편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인 건지.

 

  어찌 되었건, 자신은 그 장면을 목격했고 재헌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신뢰가 없는 관계는 깨지는 게 옳았다. 더는 이어갈 수 없다.

 

 “그럼 갈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건 여기까지가 최선이었다. 더 오래 머물렀다간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았다.

 

  로연은 재헌의 옆을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고 했다. 재헌의 손이 그녀의 팔을 붙잡지만 않았더라면.

 

 “…그 남자는 누구야?”

 “…….”

 “너랑 열애설 났던 남자.”

 

  벌써 그 사실도 알고 있는 건가? 이제 막 해외 촬영에서 돌아왔으면서. 하지만 내일이면 열애 인정기사가 터질 테니, 굳이 숨겨봤자 의미 없는 일이었다.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이 받은 상처만큼, 재헌도 아프길 바랐다. 자신이 받았던 상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2분의 1이라도 그가 아파하기를.

 

 “나랑 사귀는 남자.”

 “…뭐?”

 “왜? 뭐가 잘못 됐어?”

 

  순진무구한 얼굴로, 로연은 재헌을 올려다봤다.

 

 “내일이면 열애 인정기사도 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너한텐 내가 있잖아. …그런데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그건 며칠 전 이야기고, 지금은 우리 아무런 사이도 아니잖아.”

 

  그런데 문제 될 게 뭐 있냐는 듯, 로연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로연아, 네가 지금 나한테 너무 화나서 그러는 모양인데……”

 “그 손, 놓아줬으면 하는데요.”

 

  타이밍 좋게, 혹은 나쁘게 불쑥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재헌과 로연의 시선이 동시에 같은 곳으로 향했다.

 

  두 쌍의 시선이 향한 끝엔, 시운이 서 있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로연이 하도 안 오길래 직접 그녀를 찾으러 온 것이다.

 

  저벅저벅 걸어오던 시운이 로연의 바로 곁에 섰다.

 

 “놓아주시죠, 그 손.”

 “그쪽은 뭡니까.”

 “난로연 씨 열애 상대.”

 “…예?”

 “내일이면 공식적인 애인이 될 사이고.”

 

  지헌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열애설 기사에서 봤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진 속의 남자와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동일인물이었다.

 

  시운의 시선은 아직 재헌에게 붙잡힌 로연의 손에 닿았다.

 

 “손, 놓아달라고 세 번 말했습니다.”

 “…….”

 

  짙은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시운은 짧게 혀를 찼다.

 

 “말로 하면 못 알아듣는 스타일입니까?”

 

  벌써 세 번째 말했건만, 재헌은 고집스럽게도 로연의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시운이 직접 로연의 손을 붙잡아 자신에게로 끌어왔다.

 

  손안에 잡힌 온기가 따스했다. 시운에게는 유일한 온기였다. 그가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따뜻함.

 

 “당신, 정말 로연이랑 사귀는 거 맞아요?”

 “아닌 것 같습니까?”

 

  로연의 손에 깍지를 낀 시운이 재헌의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재헌은 두 사람의 깍지낀 손을 흘끗 내려다봤다.

 

 ‘정말 로연이가 이 남자랑 사귄다고? 게다가 공개 연애까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지금 이건 로연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그래서 연극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재헌은 용납할 수 없었다.

 

  로연은 언제나 자신만 바라보는 아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살 수 없다고 말하던 로연이었다.

 

  그녀와 관련된 모든 일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헌은 지금 이 상황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로연이가 부탁한 겁니까? 사귀는 척해달라고?”

 

  그게 확실하다는 듯, 재헌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 반응에, 로연의 눈썹이 비죽 솟아올랐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런 게 아니면 이해가 안 되거든요. 내가 로연이랑 만났던 게 일주일도 안 됐는데…….”

 

  시운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로연이 말문을 열었다.

 

 “너 만날 때부터 만났던 사람이야.”

 

  재헌은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난로연이 바라보는 사람은 오로지 정재헌뿐이라고. 난로연은 정재헌을 절대 떠날 수 없다고 말이다.

 

  그건 사실이었다. 로연은 재헌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은 배신이었다.

 

  재헌을 아낌없이 사랑했기에, 로연은 그의 배신을 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뭐라고 했어, 지금?”

 “슬슬 지겨워서, 너랑 만나는 게.”

 “…….”

 “그래서 우리 시운 씨도 만나고 있었지.”

 

  로연은 재헌의 오만한 콧대를 콱 눌러주고 싶었다. 자신은 오로지 정재헌밖에 모르던 난로연이 아니라고. 그 사실을 알려주고자 했다.

 

 “시운 씨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고.”

 “…….”

 “사실 세컨드로 시운 씨를 만났는데, 어느 순간에는 네가 세컨드였어. 너보단 우리 시운 씨가 훨씬 매력적이라서. 소윤이 일 때문에 너랑 헤어지겠다는 거 아니야. 그 전부터 기회만 노리고 있었어. 마침 그럴만한 핑계가 생긴 것뿐이야. 알겠어?”

 

  아주 당당하게, 로연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보다 재헌에게 충격적인 사실은 없을 테니까.

 

  재헌이 로연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만큼, 로연 역시 재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거의 없었다.

 

  그는 자존심 강한 남자였다. 자신이 그를 기만하고,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용납하기 힘들 터였다.

 

  로연의 예상대로, 재헌의 얼굴은 어느새 확 굳어진 채였다.

 

 “……날 만날 때부터, 사귀고 있었다고?”

 “응.”

 

  로연은 일부러 시운의 곁에 찰싹 붙었다.

 

 “……하, 말도 안 돼.”

 “세상이 말이 안 되는 일은 없죠. …믿지 않을 뿐.”

 

  시운의 대답이었다. 로연은 흘끗, 시운의 옆얼굴을 곁눈질했다.

 

 ‘……왠지 나한테 하는 말 같은데.’

 

  세상이 말도 안 되는 일은 없다. 믿지 않을 뿐. 로연은 그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봤다.

 

 “그럼, 이 남자도 그거 알아?”

 “뭘?”

 

  시운을 응시하던 로연의 시선이 다시금 재헌에게로 옮겨갔다.

 

 “네가 혼자서 못 자는 거.”

 “……!”

 “이 남자도 알아?”

 

  로연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일순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매서워졌다. 그건 재헌과 소윤, 그리고 서 대표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로연이 혼자서는 잠들지 못한다는 사실 말이다.

 

  시운에게 팔짱을 끼고 있는 로연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그걸 느낀 시운은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로연의 얼굴은 한껏 굳어 있었다.

 

  마치 커다란 약점을 들킨 사람처럼.

 

 “말해봐.”

 “…….”

 “이 남자도 그걸 알고 있냐고 묻잖아.”

 “너…….”

 

  로연의 음성이 얕게 떨렸다.

 

 “정말 최악이구나.”

 

  자신이 그 당시의 일을, 그 때의 트라우마를 아직 이겨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거 아닌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로연에게는 여전히 두렵기만 한 기억이었다.

 

  감정이 격해진 로연이 버럭 소리치려던 찰나.

 

 “그건 이제 그쪽이 상관할 바 아닌 것 같은데.”

 

  시운이 나섰다.

 

 “난로연 씨가 잠을 설치든,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하든, 그건 이제 내가 감당할 몫입니다.”

 “…….”

 

  보란 듯이, 서운은 두 사람이 깍지 끼고 있는 손을 재헌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그러니 주제넘은 짓 그만하시죠.”

 

  비웃음 가득한 얼굴이 재헌을 날카롭게 응시하며 덧붙였다.

 

 “세컨드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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