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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상속녀의 남자
작가 : 은하연
작품등록일 : 2017.6.4

한날 한시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대일그룹 상속녀 인 유세희와 아버지를 잃은 천재 소년 도현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녀 딸을 지키기 위해 유 회장은 도움이 필요한 현준을 받아들이고 세희를 대신해 그룹의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되었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세희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현준은 세희를 노리는 탐욕스러운 그룹의 세력들의 노림수로 인해 강제로 그녀와 헤어지게 되는데......
10년후, 그녀가 돌아왔다.

 
69. 함정 (6)
작성일 : 18-02-13 01:32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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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씨!”

 

 세희를 부르는 켈리의 목소리에 분노에 빠져 있던 그의 이성이 돌아왔다. 제 몸 아래 축 늘어진 규호를 지나 침대 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세희에게 시선을 옮긴 현준은 바로 일어나 떨고 있는 그녀를 품 안에 가뒀다.

 

 “이제 괜찮아 세희야. 다 끝났어.”

 “혀, 현준 오빠.”

 

 세희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현준의 품에 고개를 묻고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사람들이 그를 찾는 소리에 세희가 자신의 위치를 알리려 하자 규호가 축축한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 그녀를 깔고 앉았던 순간에 느꼈던 두려움이 그의 품에 안기자 분노가 되었다. 또다시 그를 놓칠 뻔했다는 생각이 주는 공포와 혐오감에 세희는 손을 뻗어 그를 꼭 끌어안았다. 따스한 그의 품 안에서 그들을 위해서는 그 어떤 타협도, 관용도 없을 것이라며 이를 갈 때였다. 규호가 번쩍 눈을 뜨더니 손에 무언가를 움켜 주며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안 돼!”

 

 세희는 자연스럽게 팔을 풀고 현준을 옆으로 밀치며 달려오는 규호를 향해 몸의 반동을 이용해 옆차기를 날렸다. 세희의 가늘고 긴 다리가 회전력을 이용해 규호에게 날아가며 그의 복부 아래 위치한 약점을 정확히 가격했다. 힘이 약한 그녀가

 

 “어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이 단전 아래에서 타고 올라와 규호의 몸을 집어삼켰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통증을 이기지 못한 규호가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정신을 잃었다.

 

 ‘진짜……. 많이 달라졌구나!’

 

 남자의 상징을 공격받고 쓰러진 규호를 보며 현준은 이동 중에 켈리가 전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려서부터 그녀와 함께 각종 호신술을 익혔다고 했다. 비로 힘이 약하긴 하나 대신 몸이 가볍고 움직임이 빨라 사부님께 칭찬받을 정도였다고. 그런 세희의 완벽한 몸놀림을 보게 된 현준은 놀람과 감탄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왔다. 그에겐 항상 어리고, 여린, 지켜줘야 하는 존재라고 믿었던 세희의 강인한 면모에 현준은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켈리 당장 치워버려.”

 “네, 아가씨. 당장 끌고 내려가세요.”

 

 지시를 내린 세희는 켈리만 믿고 바로 현준의 몸을 살폈다. 그녀의 빠른 대처 덕분에 규호가 그의 몸에 손대지 못한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빠, 괜찮아? 어디 아픈 덴 없어?”

 “난 괜찮아. 넌, 어때? 혹시…….”

 “아무 일도 없었어. 오빠가 늦지 않게 와줬어. 고마워.”

 

 현준이 차마 묻지 못하는 말이 뭔지 짐작한 세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가 걱정할만한 일을 아무것도 없었으니 그가 자책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고맙긴. 내가 제대로 널 지켰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그건 오빠 잘못이….”

 “네가 위험에 뛰어드는 걸 못 막았으니 내 잘못이 없다고 할 순 없지.”

 

 세희는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와 상의 하지 않고 혼자 일을 벌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 미안해.”

 “그 일은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주변에 있는 경호원들을 의식하며 세희의 말을 막은 현준은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된 건지 세희에게 물었다. 세희는 처음 그녀를 납치한 장소에서 규호 엄마인 은정을 만난 것과 그녀가 했던 말, 그리고 어떻게 그곳을 벗어났고, 이곳으로 오게 된 건지에 대해 설명했다.

 

 “근데 규호는 왜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 납치 장소에 있는 거야? 분명 그 여자가 규호가 올 거라고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는데?”

 “여긴 은아가 알던 사람이 소유한 별장이야. 그리고 널 납치한 사람은 그녀의 부탁으로 널 이리 데려온 것 같아. 그래도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닌지 네가 여기 있다고 문자를 보냈더라고. 여기 주소와 함께.”

 “그나마 정상 참작이 가능한 경우인가?”

 “아마 그걸 노렸겠지. 돈만 주면 고용할 수 있는 떨거지는 아닌 것 같아. 나름 유명한 사교 클럽을 운영하는 사업자야. 수입도 꽤 높은.”

 “적어도 자기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아닌 놈이란 말이네. 하긴 나름 곱게 데려오긴 했어. 첫 번째 애들처럼 이상한 약도 안 쓰고.”

 “약?”

 “응 수면 성분이 들어 있는지 흡입하자마자 의식을 잃었던 것 같아. 두 번째는 약 성분 때문인지 차에 타니까 졸리더라고.”

 “잠은 충분히 잤다는 말이네.”

 “응. 이동하면서 계속……?”

 

 현준은 세희가 충분한 숙면을 했다는 말에 현준이 눈빛이 빛냈다. 그제야 그 말의 숨은 뜻을 알아차린 세희는 말끝을 흐리며 얼굴을 붉혔다.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는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현준은 그녀의 복숭앗빛 뺨 위로 손을 올려 살포시 감싸 안았다.

 

 “저, 죄송합니다만…….” “무슨 일이죠?”

 

 눈을 마주하며 둘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려던 순간 낯선 목소리가 둘의 주의를 끌었다.

 

 “아래층에 있는 두 사람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어떻게 하고 싶어?”

 

 현준이 둘의 처리를 세희에게 넘겼다. 일을 당한 건 그녀였으니 뭐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일단은 다 경찰서로 데려가세요. 이 사건을 증명하려면 그자의 증언이 필요할 테니까. 그리고 첫 번째 장소는 정리가 끝난 건가요?”

 “네, 최은정과 그녀가 사주한 폭력단체 인원들 모두 유치장에 감금된 상태입니다.”

 “그럼, 일단 경찰과 검찰이 처리하도록 그냥 주세요. 황 이사 쪽에서 손쓰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고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익숙한 듯 지시를 내리는 세희를 바라보던 현준은 그녀가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깨닫고 있었다. 그의 작고 여린 꼬마 아가씨가 성숙한 여인인 된 것으로도 모자라 단단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내비치자 그의 마음속에 작은 불안이 자리 잡았다. 왠지 더는 그녀에게 필요 없어진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아주 작은 불안함이 그의 안에 깊게 자리 잡았다.

 

 

 켈리의 지시에 따라 경호원들은 태욱과 은아를 커다란 차에 태웠다. 그들이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적한 저택이었다. 어둠을 밝히는 은은한 조명 아래 화려하게 꾸며진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간 차량은 정문이 아닌 저택 후문 앞에 차를 세웠다. 음침한 소리와 함께 철문이 움직이자 경호원들은 차 문을 열고 은아를 끌고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놔, 이것 놓으란 말이야. 나, 난 아무 잘못도 없어! 아가씨를 그 자식이 데리고 갔다고 해서 찾으러 간 것뿐이라고!”

 

 은아는 거친 손길로 그녀를 끌고 가는 경호원들을 향해 악에 받친 듯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애초에 그놈이 세희를 데려간 이유가 너 때문이 아니더냐! 그게 아니라면 생판 모르는 남과 같은 그 아이를 납치할 이유가 대체 뫼야!”

 

 날카로운 호통에 발악하던 은아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꼿꼿한 허리와 날카로운 눈빛, 그녀를 압도할 만한 기운을 풍기며 나타난 이를 바라보는 은아의 입술이 파르르 덜렸다.

 

 “회……. 회장님.”

 

 의식불명이라고 난리가 났던 그가 버젓이 그 존재감을 뿜어내며 그녀 앞에 나타나자 그녀를 잡아끌던 남자들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와 함께 버둥거리던 그녀의 몸이 바닥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가 의식불명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이런 일을 벌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그녀였다.

 

 “회장님, 정말 아닙니다. 전 정말 아니에요.”

 “닥쳐라. 아니라고 발뺌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더냐? 네가 그놈과 어떤 사이인지도 모를 줄 알았더냐!”

 “아니에요. 회장님. 아, 아니에요.”

 “넌 끝까지 날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구나.”

 “네?”

 

 유 회장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아니라는 말만 하던 그녀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가 가진 패도 없이 저렇게 나올 리가 없다는 생각에 그녀 안의 두려움이 커졌다.

 

 “내가 설마 아무 증거도 없이 이런 자리를 마련했을까. 가져와라.”

 

 싸늘한 눈빛에 어울리는 차가운 표정으로 지시한 유 회장은 곁에 서 있던 비서실장에게서 작은 USB를 건네받았다.

 

 “네가 그놈에게 몰래 그 아이를 납치해 외딴곳으로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는 영상이다. 네 곁에 불어 있기에 영 몹쓸 놈인 줄 알았더니 그래도 그놈 밑에 있는 놈 중에 머리를 제법 굴리는 놈이 있더구나. 그놈이 제 형님 좀 구해달라며 보내온 자료다.”

 “그런…….”

 “내가 이것들을 가지고 널 어떻게 할지 기대되지 않느냐?”

 

 은아는 그의 말을 듣고 제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실감했다. 제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너그럽지만, 적에게는 용서와 자비가 없는 인물로 유명한 유 회장이었다. 이번 일로 공식적인 그의 적이 되었으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야 은아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이게 다 함정이었던 거야? 일부로 의식 불명이라 속이고 이빨을 드러내는 자들을 다 쳐내기 위한?’

 

 함정인지도 모르고 기회라며 달려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해보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후였다.

 

 “비서실장.”

 “네. 회장님.”

 “그 자료는 세희에게 주거라. 당장은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힘을 실어주고.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지원해 주어라. 그리고 저 욕심 많은 것은 그만 치워버리고.”

 “회, 회장님 잠깐 만요! 안돼요. 절 버리지 마세요. 한때는 예뻐해 주셨잖아요. 그땔 생각해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가는 은아가 애타게 부르짖었지만 유 회장은 그녀의 애원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후회할 것을 왜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노력 없이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거늘 왜 그 당연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는지.

 

 “그러게 욕심내지 말고 그 아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았을 것을……. 쯧쯔.”

 

 유 회장은 현준이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여인은 그에게 소개했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왜 그가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세희를 바라보던 시선과 은아를 바라보던 시선은 달랐다. 그제야 유 회장은 현준을 배려한다고 생각했던 제 마음이 그의 욕심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저 둘의 나이 차이를 고려해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매사에 참고 인내하기만 하는 그의 삶이 너무 무거워 보여 쉴 틈을 만들어 주고 싶을 뿐이었다. 더불어 현준이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되면 그를 향한 황 이사의 견제가 약해질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의 모자람에도 잘 자라 준 두 아이를 떠올리는 유 회장의 표정이 미안한과 대견함으로 물들었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 세희야. 현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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