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깔끔쟁이가 얼마나 애한테 봉변을 주고 있을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네."
그렇게 투덜거리며 시아가 화장실 근처로 갔다. 그렇게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의외의 하완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가 아이의 작은 두 손을 비누로 조몰락거리며 닦아주고 있는 것이었다.
"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천 마리의 벌레들이 있어. 이렇게 볼 일을 본 후에는 비누로 손톱, 손가락 사이, 손목까지 열 번씩 닦아서 벌레들을 없애야 해."
"아, 차가워. 물 차가워요."
"여긴 찬 물 밖에 안 나오나보다. 자, 손 줘봐. 하..."
그러더니 그가 아이의 손을 꼭 모아 쥐고는 자신의 입김을 불어줬다. 마치 아이 아빠처럼 보였다. 그때 시아는 자신의 아빠를 떠올렸다. 지금도 하루종일 앉아서 김밥을 말고 있을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
그제야 하완이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시아를 보았다.
"아까 오랄 땐 안 오고 다 해결하니까 오냐? 무슨 심보래?"
"아, 시간 다 됐어요. 빨리 데리고 가요."
"겨우 그거 말해주려고 여기 따라온 거냐? 완전 고맙네."
그러면서 그가 아이를 데리고 그녀를 비껴 지나서 대기실로 가버렸다.
"쳇, 뭐야? 완전 친절하네. 나한테만 저렇게 싹퉁바가지였던 거야? 야, 완전 한국의 슈바이처시네? 쳇."
그렇게 아이는 무사히 공연을 시작했다. 일이 끝났으니 학원생들이 하나 둘 짐을 쌌다. 하완의 이중성을 만방에 폭로하고 싶은 시아는 그의 옆으로 갔다.
"살면서 다중이란 소리 못 들었어요?"
하완이 귀찮다는 듯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아니, 뭐 이렇게 반전이에요? 나보고 가보라고 할 때는 언제고...자기가 충분히 할 수 있으면서 엄살이람?"
"너야말로 뭐냐? 도와달랄 때는 쌩 하더니 왜 갑자기 나타난 건데?"
"내가 뭐 그쪽 도와주려고 간 거겠어요? 애가 불쌍해서 간 거지?"
"애가 불쌍해?"
"요즘 위험한 시대 아니에요. 특히 여자 어린애들한테는..."
"뭐어?"
"워낙 시대가 흉흉해서야 말이죠."
"야!"
하완이 빽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봤다.
"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너, 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냐? 야, 내가 소아성추행이나 하는 쓰레기로 보여? 이게 장난도 수위가 있는 거지. 하다하다 못해 사람을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네?"
"에?"
"너, 소아성범죄는 선진국에서 종신형에 사형도 때려. 그런데 지금 날 그런 류로 모는 거냐?"
그가 버럭 화를 내자 처음엔 당황하던 그녀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쌈닭 본능이 일어난 것이다.
"그럼 미성년자는요? 미성년자 성추행은 몇년형인데요?"
"뭐?"
그들의 대화가 싸움이로 이어지자 거기 있던 학원생들은 슬금슬금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늦게 들어온 린과 그 뒤로 이어 들어온 파랑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에 린이 끼어들려 했지만 파랑이 그녀를 말렸다.
"야, 린아, 가자. 또 붙었네. 싸움 중이신가보다. 쟤들은 싸워야 사는 애들이잖아."
"헐...뭐지?"
"야, 가자, 가."
"안 말려요?"
"설마 육탄전을 벌이겠냐? 하긴 뭐 육탄전을 벌여도 시아가 이길 텐데 뭐 걱정이야. 내가 요 앞에 역까지 태워줄게. 타라. 박스도 무거울 텐데."
"아니 그래도..."
하지만 그녀도 파랑의 오토바이가 한 번쯤 타보고 싶긴 했다. 어차피 하완은 자기 차에 여자 머리카락 떨어지는 거 끔찍히 싫다고 했으니 태워줄리 만무했다. 나중에 하완과 결혼하면 평생 탈테니 한번은 다른 남자 오토바이 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지만.
"그럼 오늘만 실례..."
그렇게 린은 그들을 뒤로 하고 파랑의 바이크에 올랐다. 그들이 가거나 말거나 시아의 반박은 계속 이어졌다.
"아, 폭행도 있었지? 뇌진탕."
"야, 너 뒷끝 작렬이다. 내가 너 이럴까봐 검사 다 해보자는 거였어. 그래, 이렇게 오리발 내밀 줄 내가 알았지. 그래서 내가 너랑 있을 때는 씨씨티비에 녹음기를 다 챙기려고 하는 거야. 너 혹시 내가 아까 그 애 어떻게 했을까봐 그거 보러온 거였냐? 진짜 어이없다. 왜, 경찰이라도 동행하지 그랬냐? 현행범으로 잡으려면?"
"경찰까지 올 필요 있나요? 내가 해결하면 되지."
"니가 뭘 해결할 건데?"
그러더니 그가 그녀의 코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자, 해결해봐. 해결해보라구!"
그러면서 그가 그녀를 코너로 몰았다. 들이내는 그의 가슴에 자신의 코가 닿을락 말락하자 시아는 살짝 당황했다. 그런데 그 순간 청명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저 선생님이에요."
"어머!"
아이의 손에 이끌려 온 엄마가 하완이 시아를 코너에 가둔 걸 보고야 말았다.
"선생님이 화장실 같이 가줘서 고맙다고 엄마가 보재서 왔어요."
"어, 어머...얘 눈 가려라. 뭐, 뭐야..."
그제야 뒤돌아서 아이 엄마와 눈이 마주친 하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꽃다발로 아이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꽃 틈으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오해 마, 마세요."
"아니, 애들 공연하는 데에서 버젓히 애정행각을..."
아이 엄마는 하완이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애정행각으로 오인한 것이었다.
"에? 아, 아니에요.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하지만 이미 그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아우, 정말 이래서 학원생 말고 아티스트를 보내줘야지. 이렇게 프로의식이 없어서야...아무리 애들 발레공연이라지만 너무 젊은 학생들을 보내놓으니 밀폐된 곳에서 이런 일이...뭐, 어쨌거나 우리 애 화장실 데려다 준 건 고마웠어요. 끝까지 고마운 마음만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좀 유감이네요. 얘, 가자!"
하며 그녀가 아이의 손을 끌고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이는 이 상황도 모른 채 웃으며 그에게 열 손가락 펼쳐 손인사를 했다.
"헐, 이건 또 뭔 일이야?"
하완은 어이가 없었다.
"이거 뭐 되로 주고 말로 받았네? 아니, 결혼도 안 했고 애도 안 낳아본 내가 자기 애 응가 뒷처리까지 해줬건만 유감이라고? 헐...진짜 기가 막히는 날이구만. 프로의식이 웬 말이래? 메이크업만 잘 해줬으면 됐지. 내가 이래서 선한 사마리아가 싫다고. 도대체 사람들은 해주면 고마운 줄 모르고 보따리를 내놓으라지 않나, 지적질을 하지 않나. 나 참, 남자가 죄냐? 어, 남자가 이 일하는 게 죄야? 내가 이 일하는 게 죄냐구? 내가 착하게 살 수가 없어. 내가 어느 날 부터 자꾸 착해져서 고민이었는데 정말 허튼 짓이야. 원래 생긴 대로 살아야지. 야, 안 그러냐?"
그렇게 그가 문을 향해 울분의 독백을 외치고는 시아가 있는 코너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