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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유니콘의 뿔
작가 : 앙졸라이트
작품등록일 : 2018.1.20

남방 최고의 국가 카프래이스....그들의 성곽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도로 강대한 공격에 맞서 무너지는 순간, 한 자루의 창날이 그들을 구원하고자 나섰다. 유니콘의 뿔을 찾아야만, 이들의 도시는 구원될 수 있을 것이다.

 
007-여정
작성일 : 18-01-23 17:35     조회 : 214     추천 : 0     분량 : 9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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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우리가 북방의 제국에 가서 남부에 대한 지원 요청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건가?"

 

 왕의 임무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인 건 프릭스턴이었다. 베어르와 리드라는 최소한 이 임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프릭스턴은 이 임무를 완강히 거절했다.

 

 "차라리 남부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마법사들을 찾아보겠어. 자네들 셋이서 가라고. 어차피 이 방을 지킬 사람도 필요할 테니까."

 

 "정 그러시다면, 프릭스턴 장군님은 여기 남아계시는 걸로 합시다."

 

 베어르가 깔끔하게 결론지으며 말했다. 리드라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거부하시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왜인지 괜한 이유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프릭스턴은 더 이상 설명하기를 거부했다. 그러한 이유로, 북쪽으로 가는 여정의 짐을 싸게 된 것은 우리 셋뿐이었다.

 

 ---------------------------------------------------------------------------------------

 

 "아차, 내 말의 소지품 중에 이게 있더군."

 

 내가 여관에서 상대한 적의 무쇠팔을 베어르 앞에 들어 보이며 말했다. 베어르는 흥미롭다는 듯 무쇠팔을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때도 무척 흥미로웠지만, 지금 보니 더 흥미롭네요. 카프래이스를 둘러싼 녀석들은.... 모두 바위였잖아요? 그렇죠?"

 

 "에... 제가 없는 사이 그렇게 변해갔던 건가요..."

 

 리드라도 살짝 끼어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여관에서의 전투에서는 리드라도 직접 개입해있었던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런 셈이지. 다만 다른 녀석들이 왜 이런 금속 형태로 변화하지 않았는지가 조금 궁금하군. 만일 모두 이 형태로 카프래이스를 공격했다면 우리는 지금 살아있지 못할 것이 분명한데 말야."

 

 내가 무쇠팔을 들어보이며 딴소리를 하는 사이, 베어르는 이미 간결하게 짐을 다 싸놓은 상태였다.

 

 "북쪽의 제국, 말하자면 코블까지 가는데 그렇게 많은 짐이 필요하진 않을 거에요, 아마."

 

 베어르가 짐을 살짝 묵직하게 들어올리며 말했다. 나는 어께를 살짝 으쓱했다.

 

 "일단 난 이 무쇠팔을 들고 가는 게 좋겠어. 코블의 황제가... 글쎄,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 무쇠팔은 다시 원래 자리였던 내 말의 옆구리로 돌아갔다. 리드라는 말타는 법을 조금 배워보려 했지만, 영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걸어서 여정을 떠나기로 선택했다.

 

 -----------------------------------------------------------------

 

 "여기서부터 국경입니다. 즉슨... 여기서부터는 폐하의 보호를 받는 영역을 벗어나신다는 의미입니다."

 

  국경에 다다르자 경비대원이 형식적으로 일러주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뒤 말을 몰아 국경을 넘었다. 나름대로 여정의 첫걸음이었지만, 엉성하게도 반대 방향으로 말을 몰아버리는 바람에 베어르가 내 팔을 잡아끌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인도해주어야 했다.

 

 "장군님, 우리는 셰름의 갑옷을 입고 있고, 셰름의 공식적인 사절단이므로 최대한 중립지대를 거치는 방향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 쪽으로 가버리면 곧장 포클을 가로질러 버리지요. 이쪽으로 갑시다. 최대한 북동쪽 방향으로 말을 몰아야 합니다."

 

  처음 국경을 벗어난 뒤에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들 간에 연맹이 구성되어 있기는 해도 실제로는 그리 큰 연계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동하고, 이동하고, 또 이동했다. 하지만, 우리가 걷는 길은 사실상 황무지에 가까웠다.

 

 "조금.... 쉬었다 갈 수 있나요."

 

  네 시간쯤 지났을 때 리드라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베어르 또한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리드라가 유일하게 걸어서 이동하고 있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위험될 게 없어보이는 곳이군. 베어르, 지금이 어디쯤일지 짐작가나?"

 

 "정확히는 모르지만, '남부연맹 영역'은 벗어났을 겁니다. 셰름은 남부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니까요. 하지만 아직 북부의 영역도 아니에요. 네 시간 만에 북부에 도달할 수는 없죠. 이제 다른 도시 눈치를 볼 필요는 없고, 곧장 코블 국경으로 향해야 하는데... 글쎄요, 가장 빠른 길을 타도 한 달이 걸려요."

 

 "얼마 안 걸리는군."

 

 내가 대꾸했다. 실제로 한달은 여정에 걸리는 시간으로 그리 긴 편이 아니었다.

 

 "네, 그 길에 도적이 출몰한다고 듣긴 한 거 같은데..."

 

 "장군님의 창이 있는데, 도적이 문제가 될까요?"

 

 다리를 쭉 펴고 기운을 추스른 리드라가 말했다. 내 실력을 과신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 말에는 나도 동감이었다.

 

 "도적이란 자들은 원래 군인에게는 상대가 못 되지. 그 길을 통과해보자고. 어쩌면 도적에게 약탈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우리는 약간 동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황량한 황무지에서도 베어르는 나침반을 보고 곧잘 방향을 짐작했고, 지금까지 온 거리도 어떻게든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어 시간쯤 더 이동했을 때 즈음, 해가 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인 건가요."

 

 리드라가 조금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은 황무지잖나. 위치가 좋지 않아. 조금 더 나은 장소가 있었음 하는데."

 

 ".... 그럼 숲으로 들어가야 할거에요. 그런데 시간이 될지 모르겠군요."

 

 나는 주변을 쓰윽 둘러보았다. 슬슬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숲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육안으로 관찰되지 않는다는건, 어두워지기 전에 도달하는 것은 무리라는 소리겠지. 어쩔 수 없지. 오늘밤은 여기서 묵자고. 도시 하나 거리정돈 통과해 온 것 같나?"

 

 "네, 대략 그 정도는요. 그런데 딱 그정도지요. 대륙에서 보기에는 너무나도 미미한 거리. 코블의 황제가 모종의 이유에서 수도를 남쪽으로 옮겼다는 게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대륙 하나를 횡단해 아틀라 산까지 가야했을테니까요."

 

 우리 둘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 리드라가 침낭을 깔아놓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불침번은 제가 서겠습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에, 적당히 제가 불침번을 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대략 두시간이 지나면..."

 

 베어르가 시계를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리드라를 깨우도록 하지요. 리드라, 자네도 두시간이 지나면 장군님을 깨우는 걸로 하고."

 

 "네."

 

 리드라가 언제나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날밤은 쉽게 잠을 이루었다. 네 시간 정도였지만, 나름대로 피곤은 풀릴 대로 풀린 상태였다. 약속대로 리드라가 조심스럽게 날 깨웠고, 난 군말 없이 창을 지팡이로 해서 몸을 일으켰다. 네 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연달아 잔 상태라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군."

 

  다시 한 번 이 여정의 목적을 되새기며 중얼거려보았다. 이 여정의 목적? 분명 북방의 황제에게 가서 셰름의 사절단으로서 카프래이스 수복에 대해 지원을 요청하려는 것이었지.

 

 맞다. 카프래이스 수복이 궁국적인 우리의 목표였다.

 

  그런데 그걸 뻔히 아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를 자신의 왕국에 품을 수 없다는 걸 아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심지어는 우리의 목표를 이루도록 도와주려는 것 같기까지 한 셰름의 왕의 목적은 무엇인가.

 

 왕가의 핏줄도 아니고, 심지어는 자신이 점령한 나라의 패장이었던 나에게 왕권의 상징을 넘겨준 카프래이스의 왕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의 유언...이었을까.

 

 "시에라."

 

  나는 그 단어를 머릿속에 다시 되새겼다. 마치 사람이름 같았지만, 어떤 암호일지, 아니면 주문일지 짐작가는 곳이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쳐, 나는 이윽고 품 안의 검을 한번 뽑아보기로 했다. 갑옷 끈을 풀고 그 안에서 카프래이스의 검을 꺼낸 다음,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태양빛을 받아 검날이 영롱하게 번뜩였다.

 

 ....태양빛을 받아?

 

 어찌나 깊이 고민에 빠졌었는지, 나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태양이 뜨고 있었다는 사실도 지각하지 못했다.

 

 "모두들 일어나도록. 해가 뜨고 있어."

 

  서둘러 검을 품 안에 다시 숨기고 내가 말했다. 베어르와 리드라는 불만 없다는 듯 재깍 일어났다. 여정을 떠날 때 동료들을 군인으로 뽑으면 이런 점이 마음에 든다.

 

 "밤 중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모양이군요. 좋아요. 오늘은 숲까지 가는 걸 목표로 합시다."

 

 재깍 일어나긴 했지만, 베어르가 아직 졸린 눈을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빛섬광 위에 올랐다.

 

 "그런데, 숲에는 무엇이 있지?"

 

 "괴물들이겠지요, 뭐."

 

 ---------------------------------------------------------------------------------------

 

  정말이지, 나도 내가 한 모험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에는 거대한 맥락에서 봤을 때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일들도 있다. 다섯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황무지를 열심히 통과했던 일도 그런 일들에 포함된다.

 

 "이게 우리가 통과할 숲이에요."

 

 베어르가 딱 칼로 자른 듯이 황무지와 경계를 이루는 나무들의 군집체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숲이 황무지랑 접해있을 수 있지요? 그런 게 가능한가요?"

 

 리드라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동시에, 그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듯 활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어께를 으쓱했다.

 

 "레셈블에서 살아가다보면 모든 일을 마법과 관련해서 설명하려고 하지. 하지만 확실해. 숲이 황무지랑 붙어있다는 건 누군가 마법의 조화를 벌인거야."

 

 잠자코 듣고 있던 베어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아요. 누가 뭐래도 마법사들이 조성한 숲이니까요. 남부 지방, 주로 레셈블 근방에 머무르던 마법사들이 남부에서 모든 마법적 존재들을 추방하면서 만든 숲이 바로 여기에요. 괴물들은 여기 갇혀서 남부인들에게는 얼씬도 하지 말라. 뭐 그런 거지요."

 

 "그런데... 그런데...."

 

  리드라가 너무 당연한 소리라서 차마 입을 열고 말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살짝 허세를 부려보기로 마음먹고 씽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법적 존재가 우글거릴 숲을 왜 굳이 직선으로 통과해야 하나, 그건가? 뭐 상관없지. 설마 저 숲에 아틀라 산의 들소만큼 고약한 녀석들이 우글거릴까?"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 들소를 죽인 창을 치켜세워보였다. 단순한 허세였지만, 리드라는 조금 마음에 안정을 얻은 것 같았다. 리더가 언제가 강력할 필요는 없지만, 강력한 리더는 조직의 안정감에 큰 기여를 한다.

 

 "일단 나무 사이로 들어가면 마법의 영토에 들어가는 셈이에요. 메고델들에게 존재를 들키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메고델들과 부딪히는 것만은 피해야 해요... 도깨비들은 더 북쪽에 거주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걱정할 이유가 없고.... 요정들도 아마 없을 거 에요. 이런 숲과 요정은 어울리지 않지요."

 

 "왜 숲과 요정이 어울리지 않는 거지?"

 

 내가 진심으로 의아해서 물었다.

 

 "어릴 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요정들은 숲속에 산다던데. 나뭇잎보다도 작지만-"

 

 "솔잎보단 크지 않을까요, 그래도."

 

 리드라가 실언을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내 말을 계속했다.

 

 "에, 그러니까 나뭇잎보다도 작지만 원한다면 나뭇잎이 될 수도 있는 존재들. 이슬보다는 크지만 원한다면 이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들. 마법에는 약하지만 언제나 마법을 즐기는 존재들. 바보같지만 가장 필요한 순간에는 옳은 판단을 하는 존재들. 그게 요정들에 대해 내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였어."

 

 "누구한테요?"

 

 "한 마법사한테."

 

 베어르가 어께를 으쓱했다.

 

 "나뭇잎과 이슬이란 말 때문에 숲을 연상했는지 모르지만, 요정들은 눈에 띄는걸 좋아하는 녀석들이라고 알려져있어요. 때문에 오히려 숲에 거주하는 경우가 적지요. 남부의 마법사들이 요정들을 퇴치할 필요성을 느낀 것도 그 때문이에요. 녀석들은 눈에 띄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지요. 말씀하신대로 설산에서 푸른색 나뭇잎이 되어 눈에 잘 띄도록 눈 위에 사뿐히 누워있거나, 비가 오는 날 빗방울 속에 섞여들어가 춤을 추거나.... 그래도 필요한 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면."

 

 "악행을 저지르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잊고 있었다. 그들은 개구쟁이였고, 어린아이 같은 장난을 쳤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들 중 하나였다. 그들은 주목받지 못하면 악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 악행조차도 주목받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는 걸 언제나 최우선으로 여기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숲의 속성을 지닌 요정들이, 주변에 섞여 들어가 주목도 받지 못할 숲에 섞여 들어가진 않았겠죠. 그래서 요정들은 더 북쪽에 있을 것 같아요. 뭐, 그래도 밍기적 거리며 숲에 남아있던 요정들이 있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얘기를 들을 수록 점점 무서워지는데요."

 

 리드라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나는 그가 끼어든 시점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이야기가 길어질 필요는 없었다.

 

 "들어가지. 내가 앞장서도록 할 테니."

 

  나는 나무들 중 가장 넓은 틈을 찾아내 그 사이로 말을 몰았다. 은빛섬광이 오랜만에 불안한 기색을 냈지만, 고개를 몇번 흔들고는 떨쳐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숲에 들어섰다.

 

  그 숲은 묘사할 가치가 있는 숲이다. 숲의 근본을 이루는 건 식물이기 때문에, 식물에 대해 먼저 묘사하도록 하겠다. 인간이 지나도록 계획된 숲에는, 인간이 지날 만한 길이 뚫려있는 게 보통이다. 아니, 인간이라기보다는 말을 탄 인간이 지날만한 직선 도로가 뚫려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숲은 그렇지 않았다. 거대한 나무들, 말하자면 성인 남성 둘을 묶어놔야 겨우 그 몸통 두께가 될만한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뻗쳐서 하늘을 향해 솟고 있었고, 대부분의 경우 그 나무들은 구름에 걸쳐 아른거렸다.

  문제는 그 나무들이 정말로 올곧게만 뻗쳐있었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숲에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숲은 정말 '자연스럽다'. 나무들은 한 없이 다양하고, 꽃도, 덤불도 한 없이 다양하다. 하지만 이 숲은 그 스스로가 마법적으로 이루어진 숲이라는 걸 증명하듯, 똑같은 종류, 똑같은 문양, 똑같은 가지모양, 그리고 결정적으로 똑같은 몸통 줄기를 지닌 나무들이 마치 장벽을 이루듯 하늘을 향해 뻗쳐있었다. 이 점은 숲이 하나의 마법적 존재를 가두기 위한 감옥이라는 베어르의 설명을 뒷받침해주었다.

  대부분의 덩굴은 나무에 얽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해주었는데, 이 점은 마치 덩굴이 나무들 간의 마법적 연결고리를 해준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무와 풀은 많았지만 꽃은 많지 않았다. 마법으로서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체들에게 번식기관인 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바닥은 풀로 뒤덮여있었지만, 그 풀들은 우리 밟을 때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우리가 지나가면 다시 꼿꼿하게 허리를 세울 뿐 외부의 충격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부드러운 잔디들은 늘상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풀은 뭐가 됐든 '부드러운 잔디'가 아니라는 점이 의아한 점이었다. 이 풀들은 분명 딱딱하고 꼿꼿하다는 느낌을 주었지만, 마치 스스로 복구 능력이 있는 듯 받은 타격을 곧장 회복해냈다.

  어쨌든 숲에 대해 할 말은 많았다. 처음 들어와서 대략 30분 동안은 살아있는 동물을 만나지 못했지만, 30분 뒤에 우리가 처음 마주친 것은....

 

 표범이었다.

 

 "그러니까. 왜 하필 가장 처음 마주치는 게 맹수냐고요."

 

  리드라가 화살 통에서 화살을 꺼내들며 말했다. 하지만 평소의 자신감 없던 목소리와는 달리, 활을 활시위에 겨눌 준비를 할 때의 그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철철 묻어나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장군. 저 맹수가 여기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마법 때문이에요. 은빛섬광은 명마니까 이런 지형에서도 싸울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뭔가 꺼림직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마법이 걸린 녀석일지, 확인해보고 싶군."

 

  베어르는 자신이 나서서 싸우고 싶어 했지만, 자신의 말이 현재 지형에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앞으로 튀어나가는 것 마저 힘들어하고 있었다. 별 수 없었다. 명마를 타고 있던 내가 상대하는 수밖에. 은빛섬광은 우리 앞에 놓인 바위들을 가볍게 뛰어넘었고, 우리를 보며 으르렁거리는 표범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앙!"

 

  표범이 나를 보며 울부짖는 그 순간, 나는 내가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범의 포효를 듣는 순간, 싸우겠다는 의지가 확 달아나 버린 것이었다.

 

 "눈빛은 경계할 수라도 있지..."

 

  내가 달려드는 표범을 보며 졸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이었다. 투구를 쓰고 있었더라면 그나마 방음효과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은 들었지만, 창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들지 않았다. 만일 여기서 죽는다면, 정말 어이없는 최후가 되겠다는 생각은 들면서도 창을 들어 적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들지 않았다. 이런 숲에 이런 능력을 지닌 포식자가 있다면 어떻게 다른 생명체가 살아있을 수 있겠냐는 생각은 들면서도, 내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침내 생산자도 포식자로부터 도주하기 위해 어떠한 마법적 능력을 지녔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르는 순간, 표범이 입을 크게 벌리고 나를 향해 뛰어올랐다.

 

 "깨갱"

 

 녀석이 내 목을 물어야 하는 순간에 그렇게 울부짖었다.

 

 "꺼...꺼어억..."

 

 목구멍 깊숙히 화살이 박힌채로, 그 표범은 그대로 내 말 앞에 철푸덕 쓰러져버렸다.

 

 "입을 벌릴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요. 조금 늦어서 죄송하네요."

 

  리드라가 천연덕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베어르는 놀라서 죽을 뻔했다는 얼굴을 짓고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의 얼굴은 표범에 대한 분노로 일그러졌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하지만 곧 그는 결말이 잘 됐으니 잘된 거라는 결론을 내린 듯 미소를 지었다.

 

 "표범의 포효를 듣고 우리도 겁을 먹긴 했지만, 장군님만큼은 아니었어요."

 

 "겁이라기보단 무기력함이었는데..."

 

 내가 변명했지만 베어르는 그게 그거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다음번에 적을 맞딱뜨리게 되면 제가 먼저 앞에 서도록 할게요. 그래야 위급 상황에서 장군님이 지원을 오실 수 있지요. 저도 뛰어들려고 했는데... 말이..."

 

  베어르의 말이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듯 짜증스럽게 울부짖었다. 은빛섬광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베어르 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표범의 시신을 발로 걷어차서 저 멀리 날려버렸다.

 

 "힘이 좋군요. 그 말."

 

 한결 자신감을 얻은 목소리로 리드라가 말했다. 나는 황급히 말머리를 돌려 리드라를 바라보았다.

 

 "정말 고맙군. 일행에 훌륭한 궁수가 있으면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거였어. 언제나 그렇게 우리의 뒤에서 우리를 받쳐준다면 그보다 든든한 일은 없을거네."

 

 ".... 과찬이시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리드라의 표정으로 봤을 때 전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럼, 계속 가지요. 숲은 넓고, 위험은 많아요. 하지만 여기 머무르는 거야 말로 가장 큰 위험일겁니다."

 

 나는 베어르의 말에 동의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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