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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유니콘의 뿔
작가 : 앙졸라이트
작품등록일 : 2018.1.20

남방 최고의 국가 카프래이스....그들의 성곽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도로 강대한 공격에 맞서 무너지는 순간, 한 자루의 창날이 그들을 구원하고자 나섰다. 유니콘의 뿔을 찾아야만, 이들의 도시는 구원될 수 있을 것이다.

 
005-투항
작성일 : 18-01-23 00:24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1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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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으로 돌파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친 듯이 어려운 일이었다.

 

 "리드라! 내 쪽 엄호좀 해주게!"

 

  프릭스턴이 무예에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는 점도 이 어려운 난이도에 한몫했다. 리드라는 계속해서 프릭스턴이 놓친 적들을 잡아내줘야 했고, 보다 못한 프릭스턴의 말까지 적극적으로 적들을 짓밟아 죽이는 등 돌파에 일조했다.

 

 "어디까지 녀석들이 뻗쳐있을 것 같아?"

 

 "카프래이스의 국경만 넘어가면 괜찮아질 거 같아. 당장 레셈블에만 해도 그리 많지는 않았어."

 

 "그렇다면 레셈블 쪽으로 가는 게 좋을까?"

 

 "반대쪽으로 가야지. 레셈블쪽은 성에서 카프래이스의 국경이 가장 먼 곳이니까, 일단 카프래이스의 국경을 빠져나가려면 가장 형편없는 선택이잖아."

 

 프릭스턴이 얼굴을 찌푸렸다. 내 말의 의미를 이해는 하는 것 같았지만, 뭔가가 맘에 안 드는 것 같았다.

 

 "프리오스, 그런 짓을 벌였다가는 셰름의 국경으로 넘어가게 된다. 좋게 봐줄리가 없어."

 

 "그럼 투항해야지. 셰름에. 기왕 투항할 거라면, 가장 강한 도시에 투항하는 게 낫지 않아?"

 

 "....그럼 셰름에서 평생을 보낼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지. 다만 기회를 노려야 할, 뿐이야!"

 

  힘겹게 적을 하나 더 날려버리며 답했다. 프릭스턴도 자신 주변에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하느라 더 이상 떠들어대지는 못했다. 리드라는 우리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는 것 같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다했다.

 

 "세상에나, 끝이 보이는군, 프리오스, 끝이!"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내 평생 그렇게까지 멀리 힘껏 말을 달려본 적이 최초였던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이미 국경을 빠져나와 국경 중간지대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빽빽하게 몰려 성쪽으로 꾸역꾸역 이동하던 녀석들의 무리가 서서히 듬성듬성해지더니 이제는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내 말에 박차를 가했고, 말 또한 기세를 얻어 적들을 마구잡이로 밟아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끝이군."

 

  녀석들의 무리를 넘어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혹여나 있을 지 모를 적들의 추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 뒤로도 꽤 먼 거리를 달려 온 뒤에야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이제는 카프래이스의 거대한 성조차 새끼손가락 한마디보다 커 보이지 않았다.

 

 "프리오스 장군님, 꽤 대단한 일을 해내셨군요."

 

 "자네도 같이 해낸거지."

 

 리드라의 칭찬에 내가 어께를 으쓱했다. 하지만, 프릭스턴이 내 옆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 말하는게 아냐, 프리오스. 저길 보라고."

 

 고개를 내가 고개를 프릭스턴쪽으로 돌리는 순간, 거대한 흰 코끼리가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대했다. 정말로 거대했다.

 

  그 녀석이었다. 보통 코끼리 키의 두 세배는 되는 거대한 높이에, 거기에 제곱해서 비례한 중량감, 최고의 근육을 지닌 성인 남자의 허벅지보다도 두껍고 내 말의 전체 몸길이보다 더 긴 상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끝부분이 살짝 베였지만 여전히 무시무시한 무기가 달린 코 끝부분까지. 누워있는 코끼리와의 거리는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막대한 중량감은 그 몸이 바로 코앞에 있는 듯 느껴질 정도였다.

 

 "한번 살펴보는게 좋겠군.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 내가 가한 공격은 녀석에게 결코 치명상은 아니었을 텐데... 이해가 되질 않는군. 내가 혼자 가서 살펴봐야겠어."

 

 프릭스턴은 내가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이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는 나 또한 당황했다는 사실을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죽은 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어. 갑자기 일어나서 우리를 공격하면 어쩔건데?"

 

 "저 덩치가 일어나는 속도보다는 말을 타고 도망치는 속도가 더 빠를거라고는 단언할 수 있어."

 

  하지만 리드라는 자신에게는 말이 없기 때문에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전차에서 내 말을 풀어주는 걸 포기하고 전차를 끌고 코끼리에게 이동했다. 알게 모르게 탈출 작전 동안 적잖은 손상을 입은 모양인지, 전차의 바퀴 부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요하군."

 

  가까이서 보니, 코끼리의 모습은 반드시 괴기하거나 공포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이 거대함이 형성해내는 장중함과 조금의 피로 얼룩지긴 했지만 표피의 순백색이 주는 신비함은 하나의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코끼리의 몸체는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듯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난 녀석이 죽은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죽었습니다. 확실해요. 만일 녀석이 살아있다면 숨쉬는 소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심장박동소리라도 우리 귀를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려야 할겁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리드라였다. 우리 모두 그 정도는 짐작했지만, 아무도 '왜' 이 코끼리가 뜬금없이 별다른 외상도 없이 여기 죽어서 누워있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일 수도 있지."

 

  프릭스턴이 코 끝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그의 말을 농담이라고 받아들였다. 녀석의 덩치를 생각해보면, 녀석이 과다출혈로 인해 사망하려면 피가 흐르고 흘러 이미 카프래이스와 셰름의 국경선 사이에 새로운 강을 만들었어야 했다. 내가 굳이 대꾸하지 않자, 프릭스턴도 입을 다물었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어쨌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에 의미는 없잖아요?"

 

  다시 리드라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그렇다고 이제부터 무엇을 할 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일단은 어느 다른 나라에 가서 투항한 뒤 도움을 청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는 결정된 바가 없었다. 셰름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사실 나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적국으로 간주하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셰름으로 가는 것은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말 발굽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내가 좀 더 높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서둘러 말 위에 올라탔다. 코끼리 시신 너머에서 누군가 말을 타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카프래이스의 기병대 갑옷, 상급 장교의 망토. 베어르였다.

 

 ---------------------------------------------------------------------------------------

 

 "세상에나, 장군님! 저 생지옥에서 어떻게 빠져나오신겁니까?"

 

  베어르는 다행히 녀석들이 도시의 후방을 점령하기 전에 안전히 빠져나왔고, 시민들은 국경 중립 지대에서 가족이나 무리 단위로 흩어지게 했으며, 기병대 또한 호송 임무가 끝나자 뿔뿔히 흩어지는 쪽을 택했다고 알려주었다. 무리로 몰려다니는 건 어짜피 그들을 보호해줄 국가도 없는 상황에서 주변 국가들의 쓸데없는 경계심을 살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도 나였더라면 무리로 몰려다니며 작은 거주지라도 어떻게든 만들어내서 다시 소규모로 독립하는 쪽을 택했겠다고 말했지만, 베어르는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또한, 베어르는 모두가 흩어진 뒤 다시 카프래이스로 돌아가 나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을 구출하려고 했지만, 이미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어 카프래이스 주변을 빙빙 돌며 애를 태우기만 했다는 것이었다.

 

 "아, 힘든 일이었어, 정말 힘든 일이었지. 뭐, 그래도 돌파에 쓴 전차도 나름 온전하고..."

 

  프릭스턴이 말을 하던 도중, 갑자기 전차의 한쪽 바퀴가 빠지더니 데굴데굴 굴러가 코끼리의 시신에 부딪혔다. 전차가 한쪽으로 풀썩 기울어지자 나머지 한쪽 바퀴마저 빠지더니 이번에는 통통 튕겨나가 코끼리의 한쪽 눈을 강타했다. 베어르는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전차를 바라보았다. 이제 전차의 한쪽 문은 너덜너덜해져 곧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저건, 어떻게 된 겁니까?"

 

 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을 보고서야 코끼리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베어르가 물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저건 더 이상 묻지 말게. 저거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지겨울 정도로 오래 생각했어. 하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네."

 

 "그러게 말입니다. 도대체 누가 저렇게 강력한 생명정지 마법을 사용한 겁니까?"

 

 그 순간, 모두가 놀람의 눈빛으로 베어르를 쳐다보았다. 베어르는 어께를 으쓱했다.

 

 "모르고계실 줄 알았습니다. 저도 이 주변을 빙빙돌다가 이 시체랑 몇 번을 마주쳤고, 답을 찾기 위해서 책을 몇 번이나 뒤적인 다음에야 알아챈 거니까요. 아무래도 이 정도로 고요한 시신은 생명정지 마법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를 않아요."

 

 그때서야 나는 베어르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베어르는 말의 허리춤에 책 보따리를 싸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런 것들은 왜 들고 다니지? 참모들도 그런 책에서는 쓸 만한 정보를 얻어내는 걸 포기-"

 

 "그건 알고 있지만, 영 직성이 풀리지 않더라고요. 뭐, 결국은 참모들이 옳았다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프릭스턴의 물음에 베어르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생명정지 마법이라고 했나? 그건..."

 

 "네... 자신에게 종속되어버린 생명체에게 사용하는 마법이지요. 고통도, 감정도 모두 잊고 조종자의 의지에만 복종하게 된 생명체에게..."

 

 "그거라면 이 코끼리는 해당이 되질 않잖나. 이 녀석은..."

 

 "고통스러워했지."

 

  프릭스턴이 다시 끼어들었다. 리드라는 더 이상 집중하는 걸 포기하고 결론이 나길 기다리며 전차바퀴위에 걸터앉아있었다. 베어르는 어께를 으쓱했다.

 

 "반드시 '철저히' 종속되어있을 필요는 없어요. 애초에 '철저히' 종속된 생명체에게 굳이 죽음을 선고할 이유는 없지 않아요? 아무래도 종속 마법이 불완전했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그걸 사용한 마법사가 이 녀석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거일수도 있고요. 이 녀석을 조종한 마법사가 누구든, 굉장히 뛰어난 자에요. 이 정도 되는 녀석을 조종하려면...."

 

 "뭐, 이런 얘기는 그만두지. 지나친 추측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에 해가 될 테니까."

 

 더 이상 리드라가 혼자서 가위 바위 보를 하는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던 내가 말했다. 베어르도 고개를 끄덕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지?"

 

 프릭스턴이 내게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리드라가 선수를 쳤다.

 

 "저 사람들을 따라가는 게 어때요?"

 

 저 멀리 셰름쪽에서, 셰름의 갑옷을 입은 기병 수십 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그러니까, 의문의 공격을 당해 카프래이스가 멸망했고, 쿠우르 카프래이스는 전투 중 전사했으며, 그 유민은 뿔뿔히 흩어졌고, 당신들은 무리에서 떨어져서 셰름 쪽 국경 중간 지대에서 거대한 코끼리 시체에 대해 토의하고 있었다, 그겁니까?"

 

 "훌륭한 이해력이군요."

 

 셰름의 기병 장교는 자기가 말한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제일 곤혹스러운 건 우립니다. 마침 잘 됐군요. 그쪽의 왕에게 우리를 데려다주실 수 있습니까? 투항을 할 생각이거든요."

 

 "진짜로 투항을 한다고?"

 

 프릭스턴이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베어르와 리다르는 내 말에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 폐하께서 만나주실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성까지는 데려다드릴 수 있습니다. 다... 다만 목숨은...."

 

 "보장할 수 없다는 겁니까? 아 좋습니다. 어찌되었든 여기 있다가는 죽을 게 뻔하니까요."

 

 --------------------------------------------------------------------------------

 

  셰름의 거리는 카프래이스에 비하면 조금은 초라한 편이었지만, 사람 수나 규모는 비슷한 것 같았다. 어찌되었던, 내 고향보다는 거대한 도시라는 이야기였다. 셰름의 성벽과 성문은 모두 카프래이스의 그것보다는 낮은 편이었지만, 견고함 자체는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최근에 보수한 것처럼 보이는 흔적이 많았다. 카프래이스의 계속되는 위협이 적잖이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그럼, 먼저 제가 보고를 드리고 오겠습니다."

 

  성문 앞에 다다르자 비록 기병 수십의 삼엄한 감시 하에서긴 했지만, 우리가 무기에 갑옷을 지참하고 말까지 타고 이동할 수 있게 해준 착한 기병 장교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말에서 내려 성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표했다. 베어르랑 프릭스턴도 서둘러 따라했지만 이미 그가 문 안쪽으로 사라진 뒤였다.

 

 잠시 뒤, 그가 다시 문을 열고 나왔다.

 

 "말은 당연히 마구간에 맡겨 주시면 되는 것일 테고, 무기만 문지기에게 맡겨주신다면 입장을 허락하셨습니다. 갑옷은 입어도 괜찮다고 지시하셨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말한 뒤 나는 은빛섬광을 옆에 있던 기병에게 맡기고 내 창을 문지기에게 넘겼다. 프릭스턴, 베어르도 잇따라 자신의 창과 검을 내놓았다. 리드라는 석궁을 흔쾌히 내놓았지만 등에 진 화살더미를 내놓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혼란을 겪는 것 같았다. 문지기는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였지만, 리드라는 결국 '쇠붙이'를 성 안에 들였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했는지 화살 보따리를 통째로 문지기에게 안겼다.

 

 정말로 호의였다. 셰름에서 이 정도로 관대하게 나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 셰름의 왕은 바보가 아냐. 오히려 약소국에 불과했던 도시를 카프래이스를 상대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키운 전략가지. 카프래이스가 멸망했다는 것이 사실이란 것 정도는 이미 파악했을 터고, 그렇다면 그게 인접국인 셰름에 거대한 위협이란 사실도 곧장 파악했을 거다. 우리를 박하게 대하기보다는 우리를 포용하고, 우리가 아는 정보를 이용해 대비하려 할 거야."

 

  프릭스턴이 놀라워하는 날 보며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그 말 대로였다. 직접 대면해본 셰름의 왕은 우리에게 우리가 아는 내용, 즉 내가 이미 전술한 내용을 사실상 모두 말하게 할 정도로 코치코치 캐물었다. 개 중에는 여관에서 발견한 시체와 같이 프릭스턴 또한 모르는 내용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던 중 그가 어떻게 들소의 눈알을 얻게 되었는지를 궁금해 했기 때문에 내가 들소를 죽인 이야기까지 해야 했다. 곧 셰름의 왕은 이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 나 만큼이나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고, 대략 내가 모든 걸 다 말해갈 때 쯤, 귀신같이 내가 모든 걸 말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질문을 멈추었다.

  셰름의 왕은 그런 사람이었다. 작고한 카프래이스의 왕 쿠우르 카프래이스가 '격정적인 늙은 왕'이라면, 셰름의 군주 비튼 셰름은 '지혜로운 젊은 왕'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 하나 없었고, 짙은 갈색 눈썹과 얼굴 아래쪽을 깔끔하게 덮고 있는 턱수염과 콧수염은 신뢰할 만한 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질문을 코치코치 하되 매번 어조를 조금씩 바꿨고, 그 어조의 변화가 이야기의 흐름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자였다. 옷은 품위 있되 사치스럽지 않았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초록 망토는 보석과도 같은 빛을 내며 번쩍임에도 불구하고 사치 스럽다기 보다는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왕좌는 황금으로 만들었음에도 수수했고, 높은 곳에 앉아있었지만 시선조절에 뛰어나 마치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왕은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비범함은, 자신의 강인함을 감추는 데에 있었다.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로군."

 

  왕은 곧 우리와 동등한 수준의 근심에 빠진 듯 보였다. 그는 우리와 동등한 것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동등한 수준의 근심, 어쩌면 더 심각한 수준의 근심에 빠지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 같았다. 우리의 나라는 망했지만, 그의 나라는 위험했다. 그가 심각한 근심에 빠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좋다. 과인이 그대들의 투항을 받아들이겠다. 프리오스 일렉타는 탐험부대장에, 베어르 페르와 리드라 콜른 또한 탐험부대에서 근무토록 해라. 그리고 프릭스턴.... 자네도 프리오스가 지휘하는 부대에 들어가도록 하는 게 좋겠군."

 

  프릭스턴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놀라움과 공포가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프릭스턴의 얼굴은 불만족스러운 찡그림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휘하에 배당된 게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폐하, 탐험부대는 뭡니까?"

 

 셰름의 왕 옆에 있던 셰름의 참모가 내가 묻고 싶던 것을 대신 물어주었다.

 

 "과인이 방금 개설한 새로운 부대지. 부대원은 부대장 포함 총 네 명이라네. 추가 모집은... 부대장 마음이겠지. 어쨌든 과인은 그 부대의 지휘권을 전적으로 프리오스 일렉타에게 맡길 것이네. 그럼 조금 순서가 늦은 것 같지만, 서약하게 프리오스. 자네는 셰름에 평생 충성을 바칠 것인가?"

 

 기꺼이 서약할 생각이었지만, 셰름의 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내 보호를 받는 한 동안은, 내게 충성을 바쳐주겠나?"

 

 조건이 부담이 없어지자, 더욱 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프리오스 일렉타, 폐하께 서약합니다."

 

 "베어르, 페르-"

 

 "아니, 괜찮네, 자네들은 괜찮아."

 

 베어르와 리드라가 즉시 무릎을 꿇고 나를 따르려 했지만, 왕이 손사래를 쳤다. 그는 그런 부담스러운 절차는 질색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프리오스가 대표로 서약한 것으로 하지. 난 처음부터 서약이란 걸 별로 좋아하지 않네. 그럼, 물러나도록 하게."

 

 "폐하, 어디로 말입니까?"

 

 그때까지 무릎도 꿇지 않고 왕을 노려보던 프릭스턴이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왕을 향한.... 악감정이 어려 있었다.

 

 "아차, 깜빡했군. 이보게, 탐험부대는 어느 집무실을 쓰면 되겠는가?"

 

 왕은 분명 프릭스턴이 내뿜는 악감정을 알아챈 것 같았지만, 그리 개의치 않았다.

 

 "에.. 폐하께서 카프래이스와 전쟁에 대비해 병력을 규합하느라 3층의 기병 1부대실을 비우시긴 하셨습니다만은...."

 

 왕의 옆에 대기하던 참모가 보고했다. 왕은 씽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 그래. 전쟁 위협이 사라졌으니 거기로 다시 병력을 분할할 생각이었는데, 안 그래도 되겠군. 탐험부대는 그 방을 쓰도록 하지. 좀 넓긴 하겠지만, 위기 상황에서 그 정도 특별대우는 해줄 가치가 있는 자들이네. 이제, 물러날 수 있겠나?"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뒤 꾸벅 인사하고 뒤로 돌아섰다. 내가 가장 앞에 있었기 때문에 나갈 때는 제일 늦게 나가게 되었다. 베어르와 리드라가 차례로 나가고 프릭스턴이 나가려는 순간, 왕이 내게 말을 걸었다.

 

 "프리오스."

 

 "예, 폐하?"

 

 내가 바로 왕을 향해 돌아섰다. 왕의 눈에는 무언가를 꿰뚫어보는 기색이 담겨있었다.

 

 "카프래이스에서는 모르겠지만, 셰름에서는 왕을 대면할 때 품에 칼음 품고 있는 건 심각한 결례라네."

 

  그 순간 나도, 프릭스턴도, 그리고 왕 옆에 있던 참모도 흠칫했다. 특히, 왕이 하는 말의 의미를.... 짐작하고 있는 나와 프릭스턴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네가 품고 있는 그 칼이라면 결례가 될 게 없겠지."

 

 "폐하... 그게 무슨..."

 

  왕이 화들짝 놀라며 겁에 질린 자신의 참모를 바라보았다. 분명 참모는 왕의 말을 자세히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내가 품 안에 칼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들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왕은 그의 말을 능청스럽게 받아냈다.

 

 "용기 말이네, 용기! 하하하. 프리오스 일렉타 부대장은 가슴속에 용기라는 거대한 칼 한자루를 품고 있지. 이런 농담은 우리끼리만 있을 때 했어야 하나보네, 프리오스. 그럼 진짜로 물러나보게."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이 사태에 대해 아는 모든 사실들 중에, 왕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사실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카프래이스의 왕권을 상징하는 검을 속에 품고, 문지기에게 내놓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프릭스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분명 프릭스턴이 나간 후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가 독심술을 부리는 마법사일 거라고 생각해?"

 

  성의 계단을 올라가며 프릭스턴이 내게 물었다. 난 내가 마침 하고 있던 생각을 꿰뚫린 느낌이었다. 프릭스턴도 나와 같은 추측을 하던 것일까? 내가 대답을 미루자 프릭스턴이 자신만만하게 덧붙였다.

 

 "내 생각에 그렇지는 않아. 그는 마치 내가 너의 생각을 읽었듯 같은 방식으로 네 생각을 읽었을 뿐일걸. 대략 짐작으로 때려 맞춘 걸 수도 있지. 그 정도 대담함은 있는 자처럼 보이더군."

 

 "네가 어떻게 내 생각을 읽었는데?"

 

 프릭스턴의 말에 내가 대꾸했다. 프릭스턴은 고개를 약간 아래로 숙였다.

 

 "너의 사고방식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한 거지. 넌 언제나 모든 걸 마법으로 풀어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검은 그림자의 정체에 대한 것도, 흰 코끼리의 정체에 대한 것도. 뭐, 그 두 경우는 네 추측이 옳은 경우지만, 그게 언제나 옳은 건 아니지. 아마 그는 네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폐하께서 네게 검을 넘겼다는 사실을 짐작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진짜 독심술사는 질문을 하지 않아. 물론 극적 효과를 위해 몇 가지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정도로 자세히는 안 해. 그들에게 질문이란, 시시한 거거든."

 

 나는 그가 진짜 독심술사와 만난 적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작가의 말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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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04-멸망 2018 / 1 / 22 224 0 10101   
4 003-침공 2018 / 1 / 22 210 0 9780   
3 002-습격 2018 / 1 / 21 206 0 8160   
2 001-전차 2018 / 1 / 20 196 0 9354   
1 서문-프리오스의 회상 2018 / 1 / 20 348 0 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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