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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경찰서 강력팀 편경위는 오후에 서장실로 급하게 불려 올라갔다.
서장실에는 교통사고 조사계의 변경장과 교통과 선임 과장이 먼저 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사진 밑에 앉아서 위아래로 서류를 훑어 보던 서장이 책상 위로 서류를 거칠게 쾅하고 집어 던졌다.
“아 씨발 골치 아퍼…검시관 시팔것들…”
“죄…죄송합니다.”
교통과 직원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전전긍긍했다.
“몇 달만 있으면 서울 본청으로 영전 가는데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터지고 지랄이냐…”
편경위는 오늘은 무슨 일로 서장이 저 짓거리를 하는지 궁금했다.
“야 편경위! 니가 좀 뛰어야 겠다. 엊그제 구리한강시민공원에서 끌어 올린 검정색 카니발 있잖아. 거기서 아줌마 하나가 건져 나왔는데 타살이란다. 타살!”
“네? 타살이요?”
편경위는 서장의 갑작스런 지시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고사나 익사가 아니고 딴데서 머리가 깨부서져 가지고 죽은 다음에 시체유기된 거라고 여기 보고서에 나와 있다.”
“그러면 어디서 죽었습니까? 그 곳이 우리 관할 내 인가요?”
“아 그게 젠장할! 범행 장소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일단 여기서 수사하라는데…
광역수사대 놈까지 전부 평택 파업현장에 투입되는 바람에 광수대에 일할 사람이 없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냐구? 이럴라면 뭐하러 광수대 만든거냔 말이야!
하! 나 이거 참~ 영전 직전에 완전 재수 똥 밟았네…”
이게 무슨 일인지 편경위는 잘 알고 있었다. 살인사건은 점수도 크고 고과에도 즉각 반영된다. 하지만 미결로 남는다면? 그건 그 반대의 경우가 초래된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이렇게 견적이 안나오는 사건이 발생할라치면 최대한 남한테 떠넘기는 것이 유리하다.
열받아 펄펄 꾾는 서장 대신에 교통과 선임과장이 좀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신원조회 결과가 나왔는데 사망자끼리 특별한 연관성이 없습니다. 두 명은 외국계 사설 경호업체 직원이고 죽은 여자는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 입니다.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그게 바로 문제라는 거야.
이렇게 접점이 잘 안잡히는 경우는 잘 풀리지도 않고 미제로 남는 경우가 많다고…
거기다 외국계 경호업체라니…이건 또 뭐하는 세키들이야?
왜 남의 집 가정주부 머리통을 깨뜨리고 한밤중에 어디로 데려 갈려고 한거냐고?”
서장은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짜증을 냈다.
“야. 일단 논현동 거기 여자 주소지에 가서 탐문 좀 해보고 사설경호업체에는 사망자 당일 행적 조회 좀 해달라고 요청해.
그리고 이번 사건은 교통과에서 형사과 강력팀으로 넘기고.”
서장은 설렁설렁하게 교통정리를 해줬다.
“근데 말입니다…
엊그제 112 지령센터에서 접수 받은게 우리쪽 연관되서 넘어 왔는데 사건을 목격하고 제보한 놈이 있답니다.”
변경장이 서장의 말이 끝나려는 찰나에 조심스럽게 끼어 들었다.
“오잉? 뭐야? 그럼 게임 끝난거네.
당장 목격자 찾아가서 조서 받아가지고 와!”
갑자기 서장의 목소리에 화색이 돌았다.
“그것이 어린 학생 목소리 같은데 중간에 전화가 끊겼습니다.”
“왜? 먼저 제보했다며?”
“그게 제보 중 통화가 끊기고 다시 전화가 안 왔습니다.”
“하~ 이 세키들이 지금 장난하나.
아줌마에 사설경호업체에 화물차 추돌에 어린 학생놈 제보전화까지…
니네 지금 나 가지고 노냐?”
“아…아닙니다.”
교통과 변경장과 선임과장은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서장은 그냥 만사가 다 귀찮은 듯 서류를 편경위한테 던져 주며 명령 했다.
“어이 편경위. 이거 자네가 전담해서 해결해봐. 자네가 우리 서의 에이스 잖아.”
“저…저는 지금 수택동 강간범 사건부터 처리해야 하는데…”
“아 그거 대충 넘기고 이거부터 하라고! 이게 더 중요한 거잖아.
TV뉴스에서도 벌써 찍어갔고!”
서장은 짜증이 머리 끝까지 뻗쳐 있었다.
결국 편경위는 뭔가 잔뜩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어야만 하는 일을 억지로 떠맡게 되었다.
*****
나는 서둘러 분당을 떠나 더 멀리 남쪽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에릭이 서울 근처에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그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이동하기 위해 찜질방에서 빠져 나온 후 근처에 있는 성남시 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러다 갑자기 급하게 마음을 바꿨다. 귓가에 화물차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반드시 택시만 타고 현금으로만 계산해라.>
난 이제부터 그 사내의 말을 최대한 듣기로 했다. 그의 말대로 <최대한 멀리 벗어날 것>을 지킬 것이며 <버스나 지하철, 기차 대신> 택시만 타고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이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킬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가 전해준 종이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일요일밤에 연락하라는 말이었다.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잃어버렸으니 도저히 그 말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우선 맨발 때문에 신발을 하나 사서 신고 어찌어찌해서 택시를 바꿔 타고 성남,수원,천안을 거쳐 대전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계속 가야할지 멈춰야 할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밤에 잠 잘곳도 정하지 못했다.
일단 눈에 띄는 아무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 곱빼기를 시켰다. 사건 발생 겨우 이틀째인데 벌써 몸과 마음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는 사람에게 연락하지 말라> 고 했는데 자꾸만 어머니나 기남이에게 전화 하고 싶었다. 게다가 휴대폰이 없으니 연락도 받을 수 없고 너무 불편했다.
짜장면 곱빼기가 나왔다. 사흘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먹었다. 마침 TV 에서는 <6시 내고향>을 하고 있었다.
-자~ 아름답고 수려한 바다에 둘러쌓인 맛의 고장,
어서 여수로 오셔서 입맛 없는 한여름에 남도의 끝내주는 맛의 진수를 느껴 보세요~
여자 리포터는 오버를 해가면서 여수에 오면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나는 짜장면 곱빼기를 먹으면서 즉흥적으로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
여수에 와보니 역시 그 여자 리포터는 쌩구라쟁이였다.
TV에서 떠들던 그 맛집들은 비싸고 맛이 없었다. 게다가 1인상은 잘 차려주지도 않을 뿐더러 한여름이라 수산물이 좋은 것이 잘 없다고 했다.
살면 살수록 사람들에게 대한 신뢰를 잃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울이나 수도권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난 천천히 걸어서 연안선터미널근처 교동시장이나 돌산대교 근처의 밤바다를 돌아 다녔다.
잠은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서 초라한 여인숙에 들어가 눈만 좀 붙였다 나왔다.
내 행색은 점점 더 초라해져만 갔고 몸은 쇠약해져 갔다.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진 받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일도 걱정이었다.
심장에 문제라도 생기면 급하게 사용할 비상약조차 있지 않았다.
PC방에 들어가 그날 밤 벌어진 논현동 주부 사건으로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다. 주르륵 뜨는 기사는 나보다도 더 아는게 없었다. 그나마도 진척이 없는지 하루만에 눈에 띄게 기사가 확 줄었다.
아직도 이 멍청한 기자라는 것들은 화물차 기사가 밴을 뒤에서 추돌했고 밴이 한강에 빠져 여자와 남자 둘이 죽은 단순 교통사고로 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일단 구리경찰서 이름이 기사에 나오는 걸로 봐서 그곳이 관할서인거 같아 인터넷을 찾아 관련부서 전화번호를 쭉 받아 썼다.
그 다음에는 에릭 방이란 이름으로 미친 듯이 폭풍검색을 해보았다.
전부 다 신화의 에릭에 관한 결과 뿐이었다.
조합어로 ‘에릭 + 지부장’으로 좁혀서 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 였다. 무슨 에릭이라는 영어학원하고 마산의 중고차 영업사원 ‘에릭 곽’ 등 이상한 이름 나부랭이만 잔뜩 뜰 뿐이었다.
목요일에는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연안선여객터미널 앞에 있는 공중전화로 갔다. 거기서 관할서인 구리경찰서 종합민원실로 전화를 했다.
-뚜르르륵. 철커덕
-네. 구리경찰서 종합민원실 입니다.
-저…문의 좀 드릴려고 하는데요
-네. 하세요
-지난 월요일에 구리한강시민공원에서 카니발 차량이 한강에 빠진 사건 있었잖아요. 그 사건 범인 잡혔나요?
-누구신지 모르지만 조사중인 사건은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연락처 남겨 주시면 저희가…
-연락처는 없고요 전에도 제보했는데 그거 살인사건 이라구요. 범인은 외국인 이에요. 이름은 에릭 방이라고 고등학교 학생이에요.
-여보세요. 일단 담당수사관 바꿔 드릴 테니 거기다 말씀 해보세요.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계속 이러고 있다간 누군가 또 나를 알아볼 것만 같아서 그만 전화를 끊고 자리를 떴다.
며칠을 그렇게 별 소득도 없이 PC방과 여인숙을 왔다갔다 하면서 나와 관련된 사건기록을 계속 검색해봤다.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날짜는 수목금토…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화물차 기사와 연락하기로 약속한 일요일 자정 12시도 그냥 속절없이 지나가 버렸다.
일요일 밤에는 비가 왔는데 비오는 밤바다를 바라다 보니까 어머니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갑자기 또 한 여자가 내 머리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안경을 쓰고 약간 도도하면서도 무표정한 얼굴…장선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대로 죽는 다면 그녀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수중에 가진 돈도 점점 줄어 들어서 이젠 백만원 좀 넘게 남아 있었다. 이대로라면 난 여수 길바닥에서 굶어 죽은 변사체로 발견 될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낯선 도시 여수의 여인숙에서 나는 그렇게 숨어 지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