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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에디온
작가 : 염적
작품등록일 : 2017.11.7

과거 중간계를 휩쓸었던 원인모를 악마들의 습격이 일단락 된지도 어느새 20년, 전쟁을 종식시키는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세 명의 인간영웅 에디온 중 가장 강력한 자인 에르세데스 메데스의 아들인 에르세데스 이안은 평화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며 20살의 성인으로 거듭난다. 처음으로 맞는 방학에 떠난 첫번째 여행. 하지만 여행도중 대륙 곳곳에서 이상현상들이 발견되고, 이안과 일행의 앞에 다시 한 번 악마들의 위협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 2장 : 전조 (5)
작성일 : 17-12-13 21:18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8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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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관은 도시의 위용에 비해 그리 호화스럽지는 않았다. 대신 적당한 크기와 벽에 달려있는 알맞은 크기의 샹들리에들이 차라리 잔뜩 사치를 부린 것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일행의 표정을 보니 그들도 내 생각에 동조 하는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품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여관안은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붐볐다. 식당이 입구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풍겨오는 사람들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밀레가 여관 주인과 대화를 하면서 객실을 잡는 동안 나는 뒤를 돌아 북적이는 사람들을 향해 조금 더 유심한 시선을 건넸다. 다양한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은 채로 왁자지껄하게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몇몇은 이국적인 옷매무새를 지니고 있었고 또 몇몇은 누가봐도 무역업자처럼 보이는 후줄근하고 편안한 차림의 옷차림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벨라는 외국과의 무역이 중심이 되는 도시이기 때문에 그 중 무역업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 분들부터 작은 꼬맹이들까지, 상인, 점술사, 평범한 여행객, 모험가, 그리고 또 사제까지…… 어라? 사제라고?

 “조나단?”

 그는 이내 나를 발견하더니 곧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눈에 힘을 주고 그를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 정말 그가 앉아있었다. 에스일라에서 만났던 사제인 베르멜……. (여전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하튼 그 조나단이 저기 앞에 앉아있었다.

 “이안, 안 가니?”

 밀레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의문스러움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내게 한 번 더 물음을 건넸다.

 “뭐 신경쓰이는 거라도 있니?”

 “아, 저기 앞에 아시는 분이 앉아 계셔서요.”

 나의 그 말에 밀레의 표정은 의문에서 놀라움으로 변했다.

 “아시는 분? 여기에?”

 밀레는 몸을 빼며 내 뒤편으로 고개를 뻗었다.

 “반갑습니다, 빛나는 자의 사자여.”

 익숙한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나는 곧장 다시 몸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두건을 두르고 거추장스러운 로브를 두른 맹인 남자. 거기에 머리칼 틈새로 보이는 이마의 태양 마크까지. 조나단이 확실했다. 이런 우연이 또 있다니. 우연이 두 번이면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던데, 흠, 이런게 그런경우인가.

 “바, 반갑습니다.”

 밀레가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밀레의 이런 당황한 모습도 참 오랜만에 보는걸.

 “이안, 이분이 네가 안다는 분이시냐?”

 “아, 네. 에스일라에서 우연히 만났었어요. 다시 만나 반가워요.”

 조나단은 웃으며 내 인사에 답했다.

 “타오르는 화염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인사를.”

 “피어오르는 그대의 따스함에 나의 손짓을 건넵니다.”

 나는 웃으며 그의 인사에 대답했다. 밀레는 조금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너 그런 인사도 할 줄 알았니?”

 이런, 진짜 날 너무 무시하네?

 나는 밀레를 쏘아봤다. 그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 미소를 지었다. 우선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미소니까 넘어가주지. 사제님 앞에서 욕지거리를 하면서 싸울 수는 없으니까.

 “반갑습니다. 방금은 정신이 없어 제대로 인사 드리지 못했군요. 에라니스 밀레라고 합니다.”

 “헤델리아의 베르멜드리온 조나단이라고 합니다.”

 밀레의 동공이 커졌다. 흐음? 밀레가 이렇게까지 놀라는 것을 보니 이 분이 정말 유명한 사제기는 한 모양이네? 그건 그렇고 성이 베르멜드리온 이었군. 베르멜드리…… 젠장 방금 전에 들었는데 벌써부터 가물가물하다.

 “조나단? 제가 아는 조나단말입니까?”

 조나단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것 같군요. 절 아시는 분이 생각보다 많은 걸 보니 제가 외부에서 좀 유명한가봅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쓸데없는 겸손함이라 여겼을 게 뻔하지만 조나단의 말은 정말 진실한 겸손 그 자체였다. 하긴 신전에서 평생을 보내면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리가 만무하지.

 “여기에는 무슨 일이세요?”

 내가 물었다. 조나단은 이번에도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아케도니아를 전부 돌아 이제 막 발라테라스로 건너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이안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중이었나요?”

 오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람?

 “저희도 막 발라테라스로 향하는 중이었어요. 이거 참 신기한 일이네……”

 “그렇군요. 저도 그저 머리가 이끄는대로 향했을 뿐인데, 마침 우연이 두 번이면 인연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군요.”

 내가 막 나도 방금 전 그 말이 떠올랐다는 말을 꺼내려는 찰나 밀레가 대뜸 나와 조나단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희는 내일 아침에 일찍 비행선을 탈 예정인데, 동행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엥? 상당히 갑작스럽다. 다짜고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동행 하자는 제안이라니? 혹시 나를 데리고 가는게 불안해서 도움을 줄만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인가? 뭐, 이유가 뭐였던간에, 상당히 밀레답지 않은 제안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밀레의 제안에 은근한 기대감을 품고는 조나단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머리에 두른 두건과 입가 주변에 계속해서 띄우고 있는 미소덕분에 그의 의중을 정말 띠끌 만큼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토록 완벽한 포커페이스라니. 조나단과는 절대 돈을 걸고 게임을 해서는 안 되겠어.

 “저야 거절할 이유가 없죠. 대단하신 분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니까요.”

 설마 설마 했지만 조나단은 밀레의 갑작스런 제안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수락했다. 이야, 이거 인원 좀 보라지. 안 그래도 대단하던 사람들에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사제님 중 한명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니. 첫 여행치고는 너무 과분한 걸?

 “어느 방에 머물고 계십니까? 저희는 막 207호로 예약을 마쳤는데.”

 “저는 꼭대기 층의 409호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본래는 내일 모레에 비행선을 타려고 이틀치를 예약해놓았는데, 하루치를 취소해야겠군요.”

 “아, 불편하시다면 굳이 동행 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밀레가 하루치를 더 예약했다는 조나단의 말을 듣더니 난색을 표했다. 아니, 밀레. 설마 여기까지 와서 성사된 이 대단한 파티를 와해시킬 생각은 아니겠죠? 제발 조나단, 아니라고 대답하세요, 제발, 어서……

 “아닙니다. 여행에서 말동무가 있다는 건 또 다른 축복이죠.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좋았어!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양반이다. 다행히도, 그렇게 이 대단한 파티는 유지될 수 있었다.

 “식사 중이셨습니까? 저희가 방해한 건 아닌지 걱정이 좀 되는군요.”

 “아닙니다. 아직 주문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기 제가 맡아 놓은 자리가 있으니 일행분들과 함께 합석하시는 건 어떤가요?”

 밀레가 뭐라 대답하려 입을 오므렸지만 나는 재빠르게 그의 발언권을 채갔다.

 “좋다 마다요! 에온! 레이널! 이리와봐요!”

 나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멀리서 우리 셋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레이널과 에온은 내 목소리를 듣고는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거기서 뭐하고 계셨어요?”

 “뭐 하긴. 그냥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었지. 그래서, 왜 불렀니?”

 “이분, 제가 그 때 말씀드렸던 사제님인데, 기억하세요?”

 “아…… 그때 그 분이시니? 꽤나 유명했던 분이었던 것 같은데 성함이……”

 “베르멜드리온 조나단.”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왜냐면 그 이름이 나나 밀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조나단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우리의 시선을 일제히 주목받자 에온은 부담스럽다는 듯이 곧바로 말을 이어 상황을 이해시켰다.

 “아시는 분입니다. 예전에 사막 근처에서 한 번 뵌적이 있죠.”

 “호오…… 방랑 생활중에 말인가?”

 밀레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때 신세를 좀 졌었는데, 여기서 다시 뵙게 되는군요.”

 “목소리를 들으니 그 때 그 검사님이시군요?”

 조나단이 여전히 환한 미소를 입가에 담으며 에온을 향해 물었다.

 “예,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해질녘의 태양을 다음날의 일출속에서.”

 “돌고도는 따스함의 축복을 맞이하리.”

 둘이 서로 인사를 주고 받자 레이널은 그 모습을 꽤나 흐뭇하게 쳐다봤다. 유명한 상급사제와 과거 기사단이었던 발라테라스의 귀족의 인사라니, 하기야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겠군.

 “그래서 왜 부른거니?”

 그는 그 흥미로운 광경을 충분히 감상한 후 몸을 돌려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발라테라스까지 가는 길이 같아서 이분과 동행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는데, 어떠신가 좀 묻고 싶어서요.”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 조차도 없었다. 그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소리로 들려오는 대답 대신 눈으로 보이는 기쁨의 감정이 가득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레이널은 됐고, 다음은 에온에게 물어볼 차례다.

 “에온, 어때요? 당신도 괜찮아요?”

 “뭐 아시는 분 한 분 추가되었다고 별로 달라지는건 없으니까. 상관없어.”

 에온이 별 고민없이 즉각 대답했다.

 “그럼 이제 자리에 가서 앉을까요? 오랜 시간 달려왔더니 배가 좀 많이 고프군요.”

 “좋습니다. 함께 해 주실거죠?”

 레이널이 조나단을 바라보며 물었다. 눈에 칭칭 감은 두건 덕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조나단은 레이널을 향해 똑바로 고개를 돌리고는 그를 향해 또 다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이죠.”

 우두커니 홀의 중앙에서 서있던 우리는 식당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을 옮기니 탁자위에 놓인 여행객들의 접시에서 풍겨오는 음식들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그러다보니 배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꼬르륵 거리며 밥을 달라며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먹지 않으면 폭풍우라도 일으킬 기세로 울리는 배에 나는 그 누구보다 앞서서 자리를 찾으러 나섰다.

 식당가는 생각보다 좁았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앞쪽을 지나서야 간신히 몇 좌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6명이나 되는 인원이 간신히 테이블에 부대 낀 채로 앉자 주변에서는 꽤나 관심있는 시선들이 보내져오기 시작했다. 하긴, 눈가린 사제님과 함께있는 볼품없는 행색의 네 사내들이라니, 신기하게 보일만도 하지.

 “신전에서는 왜 나오신 건지 여쭈어 봐도 괜찮을지요?”

 밀레가 자리에 앉자마자 조나단을 향해 물었다. 조나단은 여전히 미소를 띄우고 있다. 나는 에스일라에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질문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옆 테이블을 보니 풍겨오는 냄새에 걸맞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놓여있다. 음식부터 시키면 안 되나, 쩝.

 “대사제가 되기 위한 순례 과정 중 하나입니다. 세 인간 왕국을 모두 도는 것이 첫번째이죠.”

 밀레는 그 대답을 듣고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물론 그것은 레이널도 마찬가지였다. 음? 에온은 그다지 놀라지 않은 표정인 걸 보니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나보다.

 “실례지만 나이를 좀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올해로 37살입니다.”

 여기에 밀레와 레이널은 한층 놀라움을 더한 표정을 보여준다. 여전히 에온과 나는 평안하고. 음.

 “그런 젊은 나이에 대사제의 자리에 오르시다니, 믿음이 대단 하신가 보군요.”

 “아직 오른 것은 아닙니다.”

 조나단이 여전히 그 인자한 미소를 품은 채로 밀레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아, 물론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놀라운 것은 어쩔수가 없군요.”

 나는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에온도 그렇고 여기엔 참 다들 대단하신 분들만 모여있군요?”

 그러자 레이널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런, 이런 의도로 꺼낸 말은 아닌데. 너무 주눅들지 말라고요 레이널, 그 중 나는 그냥 유명무실한 사람일 뿐이니까.

 “어쩌다보니 평범한 여행길이 조금은 거창해 진 듯한 기분이 드는군.”

 밀레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동료는 많을 수록 좋습니다.”

 에온의 말이었다. 우리는 이어지는 그의 말에 주목했다.

 “누가 귀족이고, 누가 유명한 사람이면 어떻습니까. 여행길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과정에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뭐 우리는 마냥 가벼운 여행만을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각기 다른 목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기회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것은 당연하죠.”

 우리는 잠시 넋을 놓은 채 그의 말에 온 귀를 전부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시선이 전부 자신에게 주목된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운지 한 번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마무리 지었다.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말입니다.”

 “의미있는 말씀이로군요.”

 조나단의 말이었다.

 “보기보다는 박식한 편입니다.”

 에온의 유쾌한 농담에 우리는 모두 크게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식사를 주문 하실까요.”

 배는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쾅쾅거리며 밥을 요구한다. 밀레, 말 잘했어요. 어서 주문을 하던지 해야지 이놈의 배가 좀 조용해지지.

 나와 레이널은 소고기 수프에 닭을 우린 육수에 끓인 면 요리를 각각 시켰다. 밀레는 간단한 양념이 들어간 볶은 밥요리를 시켰고, 에온은 꽤나 성대한 정식을 하나 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나단은 사제답게 요상한 나물요리를 시켰다.

 음식을 주문하고 우리는 다시 찾아온 여유에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시작은 조나단이었다.

 “발라테라스에 찾아가는 용무가 궁금해지는 군요. 마냥 가벼운 여행만을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니라니.”

 아까 전 에온이 뱉은 말이다.

 “아 사실 간단한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여행이기는 합니다만, 도중에 해야하는 일이 하나 생겨버려서 말이죠. 요즘 발라테라스에서 흉흉한 소식이 들려와서 말입니다. 질병이 퍼져 가축들과 작물들이 모조리 죽어나간다는 군요. 몇몇 짐승들은 광폭화 돼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조나단의 낯빛이 처음으로 조금 어두워졌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실제로 들어오는 수입품의 품목과 수량도 현저하게 줄어 들었으니까요. 마침 그 현상을 위한 조사단이 필요하던 중이었는데, 어찌 어찌 저희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흠, 아마도 수호의회에서 파견 되신 어떤 분이 임무를 주셨나 보군요, 이안님을 데리고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인가를 주는 대신.”

 오 세상에, 정확한 추리다. 심안을 가지면 무슨 마음이라도 꿰뚫어 볼 수 있는 건가? 그건 그렇고 내 이름 뒤에 붙는 저 ‘님’자는 정말 부자연스러운데. 나보다 족히 10살은 넘은 분이 나를 ‘님’이라고 칭하다니. 이상하다. 그런데 이거 이렇게 막 말해도 괜찮은 임무인 건가? 아무리 그래도 정부기관에서 하달받은 임무인데, 흐음.

 “맞습니다. 마침 미케라벨에 칼리프가 머무르고 있었죠. 그에게서 받았습니다. 에온도 그 덕분에 합류하게 되었고요.”

 “저에게 동행을 요청하신 것도 이안님과 함께하는 여행에서의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서였겠군요.”

 “맞습니다. 예리하시군요.”

 윽, 저 님자좀 어떻게 해야겠다.

 “저기, 조나단.”

 “예?”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이 정말 보이지 않는 게 맞긴 한건가?

 “저에게까지 존대를 쓰실 필요는 없어요.”

 나는 은근히 그가 곧바로 내 말에 숨겨진 요청을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제가 하고싶어서 하는 것 뿐이니, 괜찮습니다.”

 이런, 실패다. 아니 내가 불편하다고요오오오.

 “아니, 아니. 제가 좀 불편해서 그래요. 그냥 이안이라고 불러주세요.”

 다행히 그의 입가에는 아직 미소가 남아있었다. 이어서 그는 평소와 같은 온화한 목소리를 유지한 채 내 요청에 답했다.

 “알겠습니다, 이안.”

 휴, 이제야 좀 듣기 편해진 듯한 기분이다.

 “그렇다면 우선 어디로 향할 건가요?”

 이번에 물은 것은 에온이었다.

 “우선은 가장 가까운 곳인 레이드안부터 들러야겠지. 정확히 괴현상이 발생하는 지역을 알지 못하니까. 그래도 레이드안의 중앙으로 들어가 관처에 들른다면 그 현상에 대한 윤곽이 좀 드러나지 않겠는가.”

 “생각보다 일이 오래걸릴 수도 있겠군요.”

 레이널이 거들었다. 하긴 우리가 지금 그 임무와 관련되어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 동물들의 광폭화로 인한 마을의 파괴, 알 수 없는 질병, 그리고 작물들의 황폐화정도?

 “그렇네. 하지만 뭐 그렇다고 급한 임무는 아니니 여유롭게 둘러보면서 돌아오자고. 이안의 방학이 거의 100일 가까이 되니까 아마 시간적 여유는 충분할 거야.”

 “조나단께서는 시간이 충분하신가요?”

 레이널이 조나단을 향해 물었다. 그는 잠자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자신을 향한 질문이 들어오자 차분히 목을 가다듬고는 대답했다.

 “네, 걱정은 안 하셔도 충분합니다. 여러분들을 만난 것도 어찌보면 인연이니, 그에 따라 주어지는 과정도 제 운명의 일부겠죠.”

 충실한 종교인 다운 답변이군, 운명이라.

 “감사합니다, 조나단. 저희는 내일 이른 오전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비행선 표를 예약하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늦게 가게 되면 표가 전부 팔릴 수도 있으니까요.”

 밀레가 말했다.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나는 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난데.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도 그럴까요?”

 “그거야 알 수 없지. 이벨라의 비행장은 무역관련 업종을 제외하고도 여행객들 만으로도 충분히 붐비니까.”

 에온이 은근한 기대를 얹은 나의 질문에 곧장 대답했다. 이어서 레이널이 덧붙였다.

 “맞아. 게다가 대부분의 학교들이 방학을 했고, 혹시라도 표가 전부 팔려나간다면 또 반나절씩이나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

 흠, 반나절씩이나. 그건 좀 별로군. 좋다. 그렇다면야 뭐 어쩔 수 없이 일찍 출발해야지.

 그렇게 대화를 나눈지 십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주문했던 음식들이 한 번에 줄을 서서 몰려나왔다. 덕분에 계속되던 우리의 담화도 잠시 주춤할 수 밖에는 없었다. 음식은 정말 여태까지 내가 봐 왔던 그 어떤 여관의 음식보다도 훌륭한 외관의 모습이었다. 냄새는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관건은 맛인데……

 “오, 이거 정말 맛있군요.”

 나와 같은 메뉴를 시킨 레이널의 말이었다. 그를 보니 그는 연한 노랑빛에 짙은 갈색빛의 소고기들이 담긴 수프를 한 입 떠먹고는 감탄한 표정으로 그 말을 내뱉었던 것이었다.

 북적거리는 식당가의 소리를 타고 바깥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훑었다. 나는 느껴지는 상쾌한 바람의 손길에 더욱 기분이 좋아져서는 스푼을 집고 수프를 크게 한 수저 떠서는 곧장 입으로 넣었다. 으으음. 맛, 향, 외관까지. 새로운 동료까지 생기고 오늘 밤은 왠지 시작이 좋군 그래. 좋아, 완벽하다. 뭔가 유쾌한 여행길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벌써 부터 내일이 기대되는군. 나는 그렇게 잔뜩 밀려오는 기대감에 흠뻑 젖은 채로 식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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