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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무제
작가 : 시예랑
작품등록일 : 2017.11.19

가뜩이나 힘든 세상, 오지랖까지 넓어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고생하는 수호. 서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세상, 사람과 깊게 엮이는 것 자체가 질색인 재인. 완전 반대성향인 이 둘의 유쾌한 로맨스.

 
33화 - 술 한잔(1)
작성일 : 17-12-12 23:44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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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 탕!

 

 재인이 짜 증날 때마다 주로 오는 곳이 클레이 사격장이었다. 날라 오는 물체를 산산조각내야 직성이 풀리는지 단 한 개의 물체도 놓치지 않고 재인은 방아쇠를 당기었다. 남은 실탄까지 소진하고 나서야 귀를 막고 있던 귀마개를 벗는데 뒤쪽에서 박수 소리가 작게 들렸다.

 

 

 "하여튼 집중력 하나는 알아준다니까. 가끔 오는데도 실력은 여전하네.."

 

 "...왔냐."

 

 

 이태민, 고등학교 동창인 재인의 오랜 지기 친구였다. 재인이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대충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직감한 태민은 괜히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워커 홀릭인 네가 웬일이냐? 칼퇴근은 잘해도 땡땡이 치는 경우는 없었잖아? 지금 시간은 퇴근하기엔 좀 이른데.."

 

 "아.. 사무실에 잡상인이 들어왔거든. 한동안 난리 칠 게 뻔하니까 그냥 내가 나와 버렸어."

 

 "그 잡상인이 혹시 너희 가족이냐? 아님 친척?"

 

 "첫째 고모"

 

 "그분은 왜 그러시냐.. 저번 저희 주주총회 때도 난리를 피웠다고 들었는데.. 극성이다 진짜. 그래서 네가 여기 왔구만.. "

 

 "응. 눈앞에 사람이 거슬려서 이렇게라도 쏴 죽이고 싶은데 그러지는 못하니까.. 여기서라도 쏘면 대리만족한 기분이라도 들잖아?"

 

 "야..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건 알지만 가끔 네가 그렇게 말할 때 깜짝 놀란다. 이러다 진짜 폭발하는 날에 큰일 치르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 마. 난 범법 행위는 절대 안 해. 누구 좋으라고 하겠어?"

 

 "하하.. 그렇겠지.."

 

 

 차갑게 웃으며 말하는 재인의 모습을 보고 태민은 부디 그럴 일이 없길 바랐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에 유진아가씨가 너에 대해서 묻더라. 너 잘 지내냐고.."

 

 "왜 너한테 그런 걸 물어?"

 

 "내가 너랑 친구인 거 아니까 그런 거겠지. 내가 볼 땐 아직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던데..."

 

 

 유진아가씨는 ST그룹 부회장 아들인 태민이 ST그룹의 차녀인 성유진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처음에 재인을 알게 된 계기도 태민을 통해서였고 재인과 정략결혼을 추진했던 것도 유진의 몫이 컸다. 결혼 문제로 어른들끼리 만나기 직전 그런 찌라시만 돌지 않았다면 유진은 어떻게 해서든 결혼을 추진했을 것이다. 하필 게이라니... 유진이 선택한 완벽한 남자가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어찌할 바를 모르던 유진은 결국 어른들의 단호한 거절로 결혼이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이후 재인은 남자들과 어떠한 추문도 들리지 않았다. 찌라시 내용이 정말 사실인가 할 정도로... 그래서 용기를 내어 친구인 태민에게 재인의 안부를 물었던 것이다.

 

 

 "하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넌 쓸데없이 나서지 마."

 

 "계속 꼬치꼬치 물으면 안 나서고 싶어도 나설 수밖에 없거든. 뭐... 네 찌라시가 아직 영향이 있어서 유진아가씨도 섣부르게 너한테 다가가지는 않겠지만... 근데 넌 정략결혼이 그렇게 싫었냐? 그런 찌라시를 네 손으로 공개할 만큼?"

 

 "싫어. 정략에 묶일 바엔 혼자 살 거야. 그러는 너는? 정략결혼이 좋아?"

 

 "뭐... 난 다음 주에도 김대인 국회의원 손녀 딸이랑 맞선 자리가 잡혀 있으니까.. 맞으면 결혼하는 거고... 아님 아닌 거지 뭐.."

 

 

 원래 성격자체가 느긋하고 태연한 태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에 대한 소신도 심드렁하게 얘기하자 재인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사격 장비를 내려놓았다.

 

 

 "너 기분도 많이 우울한 것 같은데 이런 데에서 총질이나 하지 말고 나와. 친구인 내가 네 기분 풀어주지 누가 풀어주겠냐?”

 

 “어디 가려고?”

 

 “가보면 알아! 마침 아는 형님한테 어제 좋은 거 받아왔거든.”

 

 “받아? 뭐를?”

 

 

 바로 바(bar)의 골드회원카드를 말하는 거였다. 빛나는 골드카드를 가게 문 앞에서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들어가는 태민의 모습이 꼴보기가 싫어 돌아서 가려던 참에 태민이 재인을 급하게 붙잡은 채 소리를 낮춰서 말한다.

 

 

 “야! 너 어디를 가려고! 여기 들어가는 거 요즘 되게 힘들어! 맛도 대박이지만 칵테일 쇼가 워낙 유명해져서 고객이 너무 많아졌거든, 그래서 이제 회원제로 리뉴얼해서 새단장 했다고! 근데 회원도 까다롭게 받는 지라 무조건 다 회원으로 받지않는데. 돈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더라…”

 

 “…그래서?”

 

 “그래서긴… 말그대로 요즘 여기 핫플레이스라 이거지! 카드 보여주면서 들어가니까 사람들 다 쳐다보는 거 못봤냐? 관심있는 여자랑 여기 오는 남자는 90% 다 잘된다더라. 그만큼 분위기랑 술 맛 좋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물이 엄청 좋대! 괜히 회원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재인은 짜증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 정도면 네가 내 친구인지 의심스럽다 진짜. 나 사람한테 치이는 거 질색하는 거 모르냐? 평소라면 몰라도 짜증날 때 이런 곳은 더 아니지..”

 

 “내가 그걸 모를까! 네 유일한 친구인 내가! 물 좋은 건 그냥 한 말이고 너 칵테일 쇼 보면서! 맛있는 칵테일 음미하면서! 기분 풀라고 데려 온 거지. 야, 나도 이 좋은 기회를 여자랑 와야 하는건데 친구 좋은 게 뭐라고 이 카드 받자마자 처음으로 개시한 게 너다! 너를 위한 내 마음을 정말 모르겠냐?”

 

 

 어.. 모르겠는데. 재인은 뒷목이 뻐근한 듯 잠시 하늘을 응시했다. 어차피 이 시간은 차도 막힐 게 뻔하다. 최근 가족들로 인한 짜증에 술이 생각났던 것은 사실이니 재인은 태민에게 귀찮다는 듯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어때? 너 여기 와본 적 한번도 없지?! 분위기 대박이지 않냐?! 쇼 보면 너 깜짝 놀랄 거다.”

 

 “그래 다음엔 여자랑 꼭 와라. 나 데리고 오지 말고.”

 

 “큭큭. 당연하지. 쇼 보면 너도 좋아할 거다!”

 

 

 슬슬 쇼가 시작되는지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회원제여서 그런지 다행이 생각보다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쇼도 그저 바텐더가 칵테일 쉐이커를 흔들며 벌이는 쇼일 줄 알았는데 그런 것과는 확실히 다르게 규모도 컸고 화려한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왜 태민이 그런 호들갑을 떨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쇼가 끝나고 다들 테이블로 돌아가자 주문했던 칵테일과 안주가 서서히 나오고 있었다. 태민은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예쁜 칵테일 잔을 들고 한잔 마시더니 바로 이 맛이라면서 실실 웃어댔다.

 

 

 “이거지! 네 건 맛 어떠냐? 맛있지?”

 

 “진토닉 맛이 거기서 거기지 뭐..”

 

 “엥? 반응 좀 보소? 여기 바텐더팀 엄청 유명한데… 그 중에 한명은 세계바텐더대회에서 우승한 이력도 있거든. 그런 사람이 만든 건데도 그저 그렇다고?”

 

 

 이 바의 무슨 홍보대사인가? 왜 이렇게 이곳을 어필하는 지 모르겠지만 태민에게 꽂힌 곳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맛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태민처럼 저렇게 유난 떨 맛은 아니라는 거지..

 

 

 “하긴.. 네 입 맛이 좀 까다롭냐? 그래도 잘 마시는 거 보니 나쁘지는 않은가보네. 다른 것도 마셔 봐. 입에 맞는게 분명 많을…. 잠깐만, 저분 회사 거래처 사람인데? 나 잠깐만 인사 좀 하고 올게.”

 

 “저렇게 멀리 있는 사람인데 용케 알아봤다? 잘 보여야 할 사람이야?”

 

 “아니. 옛날에 상대했던 거래처인데 뭘.. 그냥 오랜 만에 만난 것이니 칵테일 한잔 사면서 안부나 물어보려고 하는 거지. 금방 갔다 온다.”

 

 

 하여튼. 성격도 참 좋은 녀석이다. 자신 같았으면 저렇게 멀리 있는 사람을 굳이 사석에서 아는 척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업에 중요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전혀 관련도 없는 것 같은데 귀찮게 뭐 하러 술까지 한잔 주고 온다는 건지.. 생각해보면 저 녀석도 참 오지랖이 넓지… 그 아랫집 여자처럼.

 

 ……..…그래서 자신이 아랫집 여자한테 친구하자는 쓸데 없는 이야기를 지껄인 건가? 유일한 친구인 저 녀석이랑 성격이 비슷해서? 그 날은 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한 건지도 생각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몸이 한결 가벼워 진 뒤에야 쓸데 없는 소리를 했다는 것을 인식 했고…

 

 괜히 생각이 복잡해지자 재인은 잔을 들이켰다. 다른 한잔을 주문하려고 하는데 테이블에서 미끄러지듯 잔을 건네는 여성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보여 시선을 돌렸다. 태민이 봤다면 넋을 잃고 쳐다봤을 법한 외모의 여성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한잔 건네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글쎄요.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함부로 먹지 말라고 배워서요.”

 

 “어머. 어릴 때 말 잘 들었나 보네. 역시 가정교육 하나만큼은 철저하게 배우셨네요.”

 

 “절 아십니까?”

 

 “그럼요. 최근에 QI기업 10주년 창립기념 파티에서 뵀었거든요. 그때 한번 말 좀 걸어보고 싶었는데 금방 돌아가시더라고요.”

 

 “제가 좀 바빠서요. 이번에 말 걸어보셨으니 소원 성취하셨네요. 이만 자리로 돌아가 보시죠.”

 

 

 건넨 잔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냉정하게 말하는 재인의 모습에 잠시 당황한 듯 하였으나 이내 여성은 다시 한번 웃더니 아예 옆자리에 앉아 그 잔을 마시며 말했다.

 

 

 “1년 전 그 찌라시가 사실인가 보네요. 저 솔직히 웬만한 남자들한테 이런 대접 받지 않거든요.”

 

 “찌라시 내용을 아시는 분이 저한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는 게 신기하네요. 혹시 찌라시가 사실인가 아닌가 궁금해서 다가온 겁니까?”

 

 “설마요. 그런 어설픈 호기심 때문에 제가 GIO 그룹 차기 후계자에게 말을 걸었을까 봐서요. 내빼는 성격 아니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그때 본 이후부터 관심 있었는데.. 혹시 전 어떠세요?”

 

 “1년 전 찌라시 내용을 다 까먹으셨나? 기억하고 있으면 이렇게 대놓고 여자가 다가오는 경우는 없을 텐데… 물론 그 찌라시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지만 덕분에 전 편했거든요. 이런 치근덕거림은 줄어들어서 말이죠.”

 

 

 치근덕거린다는 단어에 여자는 살짝 기분이 나빠진 듯 보였으나 이내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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