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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성범죄 수사팀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12.11

과거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성범죄 피해자 차유연, 유연은 형사가 되자마자 성범죄 수사팀을 만들고 팀장인 한상혁과 함께 끝없이 일어나는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강남역에 일어난 강간사건의 해결을 위해 출동한 유연은 예상밖의 인물과 마주치는데, “네가 날 벗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해?” 뗄레야 뗄 수 없는 지독한 악연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유연과 강간의 후유증으로 자살을 택해버린 동생의 복수를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든 상혁의 미스터리 로맨스.

 
File 03. 애매한 시간
작성일 : 17-12-11 16:01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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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식 결과, 침대위에 흩어진 핏자국은 피해자 김주니의 혈흔이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인 이시완과의 성관계를 거부하다가 싸움이 일어났고, 이시완이 휘두른 주먹으로 인해 코피가 터졌다.

 

  예고 없이 쏟아진 피는 침대위를 흠뻑 적셨고, 이시완은 또 다시 폭행을 이어가려했지만, 급히 출동한 경찰이 모텔방안으로 들이닥치면서 더 이상의 폭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이 어떻게 알고 모텔을 찾아왔는지는 뻔했다. 바로, 피해자 김주니가 성관계를 하기 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미리 경찰에 신고전화를 넣었던 것이였다. 이시완에게 폭행을 당할걸 알고 있기라도 한건지, 김주니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고 덕분에 더 이상의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깨끗한 현장이었다. 깨끗하게 치워진 현장에 감식반은 늘 골머리를 썩고 했는데, 오늘은 그 경우가 좀 더 심한 듯했다. 모텔 방안은 손님을 받아도 될 정도로 깨끗했으니까. 모텔 주인에게 물어보자, 찝찝한 마음에 청소 팀을 불러 깨끗이 청소를 하였다고 했다. 아 물론, 침대만 빼고.

 

  청소는 경찰이 김주니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이시완을 경찰서로 연행할때 이루어졌다. 모텔로 온 경찰은 2명이였고, 그랬기에 현장에 신경을 쓸만한 여유가 없었던 듯 했다. 경찰이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사건 현장은 먼지한톨 없이 깨끗하게 치워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청소팀이 침대를 청소하려던 쯤에 경찰이 들이닥쳤는 것이었다. 경찰은 급히 청소를 막았고, 침대는 보존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피해자 김주니는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말했다. 바닥을 샅샅히 뒤져봤지만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청소팀이 치운 쓰레기들을 뒤져보려했지만, 이미 폐기장으로 보낸 후였다.

 

  “하, 정말.”

 

  하루종일 일이 꼬인다고 생각했다. 기껏 현장을 빨리 잡으면 뭐하겠는가? 일이 이렇게나 틀어져버렸는데.

 

  아무리 깨끗히 치웠다고 해도, 약간의 DNA는 남아있을 수 있었기에 증거를 찾는건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유연은 최대한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며, 방안 곳곳을 수색했다. 강간은 피해자의 진술도 중요했지만, 증거가 가장 중요한 편에 속했다. 확실히 입증할 자료가 있어야 했으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늦었네요.”

 

  상혁이 사건 현장으로 들어선건, 꽤나 오랜시간이 지난 후였다. 뭘하다 온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보아하니, 어디서 쿨쿨 잠이나 자고 온 듯했다. 상혁은 팀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허겁지겁 머리를 정리했다.

 

  금세 분위기가 달라졌다. 휙휙 돌아오는 시선들이 상혁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내렸다. 어떻게 자다와도 잘생겼냐, 민식은 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역시, 모델 출신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상혁은 예전에 모델로 활동한적 있는 모텔 출신의 형사였다. 상혁은 각진턱과 무쌍의 눈, 그리고 오똑한 코를 가지고 있었는데, 묵직한 턱선은 남자다운 느낌을 줬고, 떡 벌어진 어깨와 190을 웃도는 키는 어딜가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제가 좀 늦었죠?”

 

  유연의 곁으로 다가가며 상혁이 물었다. 금세 휙 돌아오는 고개엔 왠지 모를 짜증이 가득했다. 사건이 이 지경이 될때까지 뭐하다 온거야, 묻고 싶은건 많았지만 유연은 애써 묻지 않았다. 이미 제 시선만으로도 그 얘기를 전달하는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예, 늦었네요.”

 

  퉁명스럽게 답한 유연이 다시 현장을 샅샅히 수색했다. 하여간, 늘 쌀쌀맞다니까. 입을 삐죽 내민 상혁 역시 장갑을 끼며 현장을 살폈다. 강간 사건이 일어난 현장 치고는 너무도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사건 해결이 가능하려나, 탄성이 샜다. 피로 물든 침대위를 이곳저곳 수색하며, 상혁은 힘겨운 숨을 토해냈다.

 

 

 *

 

  시언이 성범죄 수사팀 사무실로 돌아온건 꽤나 늦은시간이었다. 얼마전, 선경이 사고를 친 사건을 수습하느라 하루종일 들고 뛰고 한 탓에 그야말로 온 몸은 난장판이었다.

 

  벌컥 문을 열자, 한없이 시린 공기가 흘렀다. 조금 복잡한 강간사건이 터졌다고 하더니, 그게 거짓은 아닌 듯 사무실은 텅텅 비워진 뒤였다.

 

  짙은 눈썹과 삐죽 올라간 눈꼬리, 그리고 한없이 싸늘해보이는 눈매까지. 시언은 얼굴만큼이나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며 자리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며칠째 잠도 못자고 사건에만 매달렸더니, 온 몸 구석구석 안쑤신 곳이 없었다. 아이고, 앓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주물거리던 중, 익숙한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아, 뭐야.”

 

  탄성이 터졌다. 시언의 시야엔 사무실 구석에 놓인 소파위에서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는 선경의 모습이 보였다. 시언은 흠칫 몸을 떨다가, 다시 돌아가려는 듯 몸을 틀다가, 어정쩡한 행동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선경의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얘는 뭐 이런데서 자냐.”

 

  괜히 마음이 쓰였다. 일이 많다고 하더니, 그게 거짓은 아닌듯 선경의 앞에 쌓여있는 서류가 꽤나 빽빽했다. 노트북까지 앞에 켜놓고 잠든걸 보아하니, 아마 일을 하다가 잠이 든 듯했다. 물끄러미 선경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시언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눈물자국에 자꾸만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설마, 나 때문인건가?

 

  아까전 버럭버럭 화를 내던 자신의 모습과 몰래 숨어서 울던 선경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시언을 괴롭혔다. 그러게, 일 처리를 잘했으면 됐잖아, 하고 중얼거리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금세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그런게 뭔 소용이냐. 마음이 축 늘어졌다. 일이 어떻게 되었던 간에 여자를 울렸으니, 저도 잘한 짓은 없는건 확실했다.

 

  시언은 물끄러미 선경을 내려다보았다. 아까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보니 얼굴이 꽤나 헬쓱해져 있었다. 며칠 밤을 샜다고 했더니, 그게 거짓은 아닌 듯 선경의 눈 밑엔 평소에 보지 못했던 거뭇한 다크서클까지 생겨있었다. 뭐하러 이런 곳에 들어와서, 시언은 혀를 쯧쯧차며 머리를 벅벅 헝클였다. 왜 자꾸 마음이 쓰이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시언은 생각보다 선경을 많이 신경 쓰고 있었다. 남의 일이라고는 웬만해서 신경쓰지 않는 시언에겐 아주 독특한 경우이기도 했다. 밥을 먹을때도 힐끔, 일을 할때도 힐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선경을 쳐다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제가 바보같다는거 알면서도, 마음이 저절로 움직이는거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오늘 역시 시언은 선경을 무시하지 못했다. 화를 낸것도 자신의 감정표현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 없던 탓에 그렇게 된 일이었다. 화를 내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또 그러는 것을 반복했다. 선경이 많은 상처를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라는게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제길, 욕을 뱉은 시언이 뒤로 주춤 물러섰다. 더 이상 누군가와 가까워지는건 한없이 두렵기만했다.

 

  그런데, 사실 시언이 선경을 자꾸만 신경쓰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바로.

 

  “좋아해요.”

 

  선경의 고백이 있었으니까.

 

  처음엔 미쳤다고 생각했다. 얘가 왜 나를? 몇십번, 아니 몇백번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딱히 나오는 답은 없었다. 처음엔 장난치는건가 싶다가, 생각해보니 굳이 이런 장난을 칠 필요는 없잖아 하는 결론에 다다르자, 시언은 으악 하는 비명을 터트렸다. 뭐야, 진짜 날 좋아한다고?

 

  그때이후로 둘 사이가 틀어져버린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한없이 어색하고, 한없이 부끄러웠으니까. 시언은 선경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연애를 할만한 상황도 아니였고, 같은 직종에 일하는 사람에게 감정을 느껴본적도 없었기에 그럴만도 했다.

 

  큰 소파라도 선경이 누우니 꽉 차보였다.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에이씨, 짜증이 샜다. 이런거 정말 내 성격이랑 안맞는데. 누가 있나 싶어 주변을 휙휙 둘러보다가, 의자에 걸어놓았던 셔츠를 들어 선경의 몸위로 휙 집어던졌다.

 

  워낙 운동신경이 좋은 탓인지, 휙 던져진 셔츠는 선경의 몸위를 포근하게 덮었다. 시언은 코를 쓱 매만지며, 다시한번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아무도 없지? 텅 비어진 사무실이라는걸 알면서도 한없이 부끄럽기만했다.

 

  “잘 자라.”

 

  작게 속삭인 시언이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붉게 달아오른 귓가가 한없이 뜨겁기만 했다. 머지않아,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질끈 감겨있던 선경의 눈이 스르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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