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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48.철수 씨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작성일 : 17-12-01 19:13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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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덤덤했던 제이의 반응을 떠올리자 철수의 인상이 더욱 어두워졌다.

 

  ㅡ 철수 씨, 어디 아파요?

 

 어떻게 내 복근을 보고도 그렇게 덤덤할 수 있을까.

 

 제이는 잘 조각나있는 철수의 복근에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

 용기 내서 한 행동이었는데 덤덤하다 못해 차가웠던 제이의 표정을 떠올리자 철수는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제이는 정말로 자신을 한 집에서 같이 사는 룸메이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분명히 제이가 자신의 복근을 보면서 홀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건 자신의 착각인 것일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철수는 제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ㅡ 형, 원래 진짜 사랑이 그런 거야.

 

 이런 게 진짜 사랑이라면 다신 하고 싶지 않은데.

 

 태오의 덤덤한 말투에 철수가 손가락으로 눈썹을 매만지면서 되물었다.

 

  ㅡ 원래 그런 거라고?

 

  ㅡ 그래,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 앞에서만 약자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잖아.

 

 어젯밤, 철수는 심란한 마음 때문에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태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오는 역시 자신의 동생답게 말하지 않아도 왜 자신이 전화했는지 알고 있었다.

 

  ㅡ 제이 씨, 때문에 그렇지?

 

  ㅡ …….

 

  ㅡ 형이 지금 이 시각에 독일로 전화할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잖아.

 

 태오에게 정곡을 찔린 철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ㅡ 미안하다. 나도 여자 하나 때문에 너한테 이렇게 전화하게 될 줄은 몰랐다.

 

  ㅡ 괜찮아. 지금은 조금 한가한 시간이니까.

 

  ㅡ …….

 

  ㅡ 그리고 여자 하나가 아니잖아. 제이 씨니까 형이 이렇게 마음 좋이는 거겠지.

 

 철수는 태오의 말을 긍정하면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ㅡ 그래. 제이니까 내가 이만큼 고민하고 망설이는 거지.

 

 철수도 사랑이라는 것을 몇 번 해보았기에 그녀에 대한 감정이 다른 여자가 했던 것보다 더욱더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만 생각하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았고 그녀에게는 모든 것을 주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타고난 사업가였던 철수는 계산하지 않는 사랑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

 

 여자와 사랑할 때도 철수는 상대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과 줄 수 없는 것을 재빠르게 파악했다.

 

 철수는 그러한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철수는 단호하게 상대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과연 사랑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나는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을 돈같이 하찮은 것처럼 대했던 것이 아닐까.

 

  ㅡ 형이 짝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볼 줄이야.

 

 놀랍다는 듯이 말하는 태오의 목소리를 듣고 철수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철수도 자신이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만 두고 마음을 졸일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언제나 먼저 다가갔고 먼저 헤어짐을 고했던 철수는 항상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철수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거래하면서 협상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것이었다.

 

  ㅡ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 왜 제이 앞에서만 바보같이 변하는지 모르겠다.

 

  ㅡ 그래도, 형. 제이 씨 포기하지마. 제이 씨 형이 안달할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야.

 

  ㅡ ……누가 포기할 줄 알고?

 

 철수는 제이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누가 포기할까 싶었다.

 

 이미 갈 때까지 온 상태에서 이제 더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철수는 반드시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 것이다.

 

 철수가 제이에게 먼저 다가가고 항상 자신이 모든 것을 그녀에게 주기만 했는데, 이제 철수는 제이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다.

 

 제이가 자신의 품에 안기기만 한다면 철수는 죽을 때까지 그녀를 놔주지 않을 것이다.

 

 누가 놓아줄 줄 알고? 제이가 자신의 곁을 떠나가려고 하면 양팔로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을 것이다.

 

 평생 옆에 두고 마음껏 사랑해을 주고 받으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이다.

 

 똑똑똑.

 

 태오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용기를 낸 철수는 제이의 방문 앞에 가서 가볍게 노크를 했다.

 

  "무슨 일이세요?"

 

 방문 너머로 제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헛기침을 몇 번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철수가 입을 열었다.

 

  "제이, 잠깐 할 얘기가 있습니다. 잠깐 시간 내줄 수 있습니까."

 

  "……네? 지금요?"

 

  "네, 지금요."

 

  "죄송한데 지금 바빠서 안 될 것 같아요."

 

  "많이 바쁜겁니까?"

 

  "네, 많이 바빠요."

 

 바쁘다는 말을 끝으로 제이의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철수는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쓸쓸한 표정으로 조용히 뒤돌아섰다.

 

 

 

 ***

 

 

 

 책상 앞에 앉아서 멍한 표정으로 볼펜을 돌리고 있던 제이는 툭, 하고 볼펜을 떨어트렸다.

 

  "후우, 미치겠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긴 제이는 책상 위에 양팔을 겹치고 고개를 파묻었다.

 

  ㅡ 저한테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제이의 물음에 철수는 대답 대신 사용하지 않은 립밤을 내밀었다.

 

  ㅡ 이게 뭐예요?

 

  ㅡ 이거 발라요.

 

 얼떨결에 받아든 립밤을 입술에 바른 제이는 그가 다시 손을 내밀자 립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자신이 건네준 립밤을 그의 입술로 가져가 바르는 모습을 보고 제이는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섬세하고 길게 뻗은 손가락. 날카롭지만 깊은 눈매.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던 눈동자.

 

 자신을 보면서 미소 짓던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제이는 고개를 거세게 가로로 내저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또 그때의 장면이 떠올랐고, 그녀의 심장도 또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제이는 통제 불능 상태인 자신의 심장에 손을 대고 속으로 혼잣말했다.

 

  '이거 혹시 심장병 아닌가?'

 철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뛰는 심장을 느끼면서 제이는 엉뚱하게 자신의 건강을 걱정했다.

 

 철수에 대한 제이의 감정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서 어색하고 어설펐다.

 

 사랑이라는 것은 TV 속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것이었다.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사랑을 경험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이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제이는 철수가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가 사랑의 징조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건 어느 날 갑자기 기대하지 않은 선물처럼 불쑥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제이는 영화 속에나 나왔던 사랑 이야기만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다.

 

 제이는 자신과 철수 사이에서 이미 사랑이라는 감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스무 살, 아직 너무나도 어린 나이의 그녀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철수와 제이의 만남은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철수는 존경하던 선생님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기 위해 한국을 찾았고 제이는 불쑥 그녀의 앞에 나타난 그를 수상하게만 생각했다.

 

 이상한 사림이라고 이해 못 할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어느새 그는 그녀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들어 갔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자란 그들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물들어 갔다.

 

 철수를 떠올리면서 웃음 짓는 날이 많아졌고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 철수는 제이의 마음 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있었다.

 

 딸랑.

 

 경쾌하게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어보니 카페 늘봄에 철수가 들어오고 있었다.

 

 일부러 그를 피한 것은 아니었지만 집안에 단둘이 있는 것이 불편했던 제이는 카페 늘봄에서 그를 만나자 반가운 마음 반 당황스러운 마음 반이었다.

 

  "제이, 없어서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군요."

 

 오늘 철수는 무슨 볼일이 있는 건지 출근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슈트를 차려입고 머리를 위로 올리고 있었다.

 

 집에서 자연스럽게 앞머리를 내리고 있는 철수의 모습에 익숙했던 제이는 지금 자신의 앞에 딴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카페 늘봄에서 작업하면 더 잘 됩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럼 왜 나왔습니까?"

 

 마음대로 제이와 마주 않은 철수가 손으로 턱을 받치고 생긋 웃었다.

 

 두근두근.

 

 또 다, 또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자신을 부드럽게 바라보는 철수의 눈동자를 보고 제이의 심장이 눈치 없이 또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카, 카페에서 하면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를까 싶어서요."

 

  "그렇습니까?"

 

 제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철수는 부드러운 거품이 올려져 있는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셨다.

 

 창가에 앉은 두 사람의 테이블 위에는 화사한 햇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제이는 차를 마시면서 몰래 앞에 있는 철수를 바라보았다.

 

 밤을 새운 것인지 조금 피곤한 듯했지만 철수는 또렷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시선을 마주치면, 그에게 속마음을 들킬 것만 같아서 제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난 제이가 나한테 화난 줄 알았습니다."

 

  "……네?"

 

 불쑥 내던지는 철수의 말에 제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많이 바빴습니까?"

 

 철수의 말을 듣고서야 제이는 어제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때 제이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철수에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싸늘하게 대했다.

 

  ㅡ 제이, 잠깐 할 얘기가 있습니다. 잠깐 시간 내줄 수 있습니까.

 

  ㅡ ……네? 지금요?

 

 그러니까 제이는 철수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자 통제 불능 상태에 놓여있는 심장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었다.

 

 늘 집에서 자연스럽게 철수와 마주쳤는데 립밤 사건 이후로 제이는 자꾸 그가 신경 쓰였고 그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ㅡ 네, 지금요.

 

  ㅡ 죄송한데 지금 바빠서 안 될 것 같아요.

 

 제이는 자신의 심장이 울리는 소리가 절대 철수에게 들리지 않길 바랐다.

 

 그를 생각하면서 혼자 얼굴을 붉히는 게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ㅡ 많이 바쁜 겁니까?

 

  ㅡ 네, 많이 바빠요.

 

 제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싸늘하게 반응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 같았다.

 

  "조금 바빴어요. 여러 가지 문제로 머리가 복잡했거든요."

 

 요즘 제이가 앉고있는 고민은 그를 볼때마다 울리는 자신의 심장이었다.

 

 제이는 태연하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시선이 그의 입술로 향했다.

 

 두근두근.

 

  "얼굴이 많이 붉어졌습니다. 많이 아픈 것 같은데, 잠깐만 이리와 봐요."

 

  "……아니요! 괜찮아요!"

 

 제이는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으려는 철수의 손길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철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지만 제이는 사과할 생각도 못 하고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 그러니까……."

 

 제이가 자신의 발끝만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철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바빠서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군요."

 

  "네? ……네!"

 

 제이는 얼른 앞에 있는 차를 마시면서 철수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반응에도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는 듯했다.

 

 안심한 제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서 철수와 눈을 마주쳤다.

 

  "바쁜 일 다 끝나면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맛집이라도 갑시다."

 

 자신에게 젠틀하게 미소짓는 철수를 보고 제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 시각이 다 되었다면서 철수는 일어서서 제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나가는 철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제이는 조용히 다짐했다.

 

  '되도록 철수 씨와 마주치지 말아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난 심장이 터져서 죽고 말 거야.

 

 

 

 ***

 

 

 

 그 후로 철수는 며칠 동안 제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외출하고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제이을 보면서 처음에는 요즘 그녀가 무척 바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철수는 제이가 자신을 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오늘도 제이는 공연 스케줄 때문에 통금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메시지 하나만 남기고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로 우두커니 소파에 앉아서 제이를 기다리고 있는 철수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삐, 철커덕.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철수는 벌떡 일어서서 문 앞으로 다가갔다.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제이는 철수가 자는 줄 알았는지 눈앞에 나타난 그를 보고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철수 씨, 여기서 뭐하세요? 깜짝 놀랐잖아요."

 

  "제이, 요즘 많이 바쁜 것 같군요."

 

  "네? ……네."

 

  "무슨 일 있습니까?"

 

  "스케줄 때문이에요. 요즘 공연 준비도 하느라 바쁘고 여기저기서 저를 찾으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스케줄 때문에 온종일 외출하는 겁니까?"

 

 하이힐을 벗은 제이의 발은 온종일 서 있었는지 퉁퉁 부어 있었다.

 

  "네, 스케줄 때문에 바빠요."

 

 제이의 말에 철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스토커에게 이상한 일을 당할 뻔한지 아직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의 경계심은 누그러져 있었다.

 

  "제이, 그러지 말고 스케줄을 좀 줄이는 게 어떻습니까?"

 

  "……네?"

 

  "물론 그건 내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래도 이상한 놈이 우리 집에 침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늦게 들어오면……."

 

  "철수 씨."

 

 살짝 굳은 표정의 제이는 자신을 올려다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

 

  "철수 씨가 저에 대해서 무엇을 걱정하고 계신지는 알고 있어요."

 

  "……."

 

  "그리고 철수 씨한테 너무 고맙고 철수 씨랑 함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일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습니까."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단호하게 말하는 제이를 보고 무안해진 철수는 뒷머리를 만졌다.

 

  "네, 그럼 이만 전 방으로 들어가 볼게요."

 

 할 말을 마친 제이는 곧바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제이의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철수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같은 자리에 내려온 기분이었다.

 

 그녀가 조금 가까워졌다 싶으면 그녀는 다시 또 멀찍이 멀어졌다.

 

 제이가 마술을 얼마나 사랑하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그도 잘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제이가 걱정되어서 한 소리였는데 그녀에게는 단순한 간섭 내지는 오지랖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이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서운함을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왜 자신에게 멀어지려고만 하는 걸까.

 

 철수는 이제야 제이에게 다가갈 용기를 내고 있건만 그녀는 또 자신에게 멀리 떨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제이의 냉정한 뒷모습을 보는 것이 철수에게는 가장 괴로운 일이었다.

 

 안타까웠지만 여기서 더 그녀에게 애걸복걸한다면 분명히 자신을 질려할 것이라는 생각에 철수는 입을 다물었다.

 

 철수는 제이의 방문을 두드리는 대신 조용히 자신의 서재로 돌아왔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 찬바람을 맞은 철수는 얼마 전에 했던 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ㅡ 일주일 후에 한국방송협회에서 주관하는 시상식이 열립니다.

 

 드라마, 영화, 예능 등을 통틀어 방송과 문화계에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시상식이었는데, 문화산업을 지원하는 철수와 마술을 대중에게 소개시키고 마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제이가 시상식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어쩌면 하연주와 이정혁도 올지 모르는 시상식에 참여하는 것이 철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주최측의 간곡한 어조로 부탁했다.

 

  ㅡ 철수 씨랑 제이 씨가 꼭 나와주셨으면 합니다. 두분 이 사실상 이 시상식에 주인공이시거든요.

 

 시상식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시 한번 제이의 방으로 다가간 철수는 살짝 열려진 문틈으로 제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글쎄 난 잘 모르겠어."

 

  - 모르겠다고?

 

  "……응."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하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조금 있다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구나 생각하고 등을 돌렸다.

 

  - 철수 씨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글쎄, ……그런가."

 

  - 뭐야 반응이 왜 이렇게 심드렁해?

 

  "철수 씨가 날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지금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 그래?

 

  "응,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문틈 사이로 들리는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철수는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듯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제이에게는 자신이 신경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존재인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의 마음속에서 뜨겁게 솟아오르고 있는 감정이 혼자만의 감정이라는 것을 확인받은 철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충격을 받은 철수는 살짝 비틀거리며 자신의 서재로 돌아왔다.

 

 지금 자신의 귀로 똑똑히 들은 말을 떠올리면서 철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철수의 책상 위에는 오직 그녀만을 생각하면서 골랐던 드레스가 놓여 있었다.

 

 자신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시상식 장안으로 들어서는 제이를 생각하며 철수는 옷을 고르며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우연히 제이의 통화를 들은 철수의 표정에는 비소가 걸려있었다.

 

  '……날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철수는 으드득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철수는 지금까지 제이를 대했던 자신의 행동에 엄청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론 절대 제이에게 내 마음을 드러내지 않겠어.'

 

 철수는 굳은 표정으로 절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에게 표현하지 않고 조금씩 멀어지려고 노력하다 보면 지금 자신의 머리와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제이에게서 깔끔하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원래는 이래야 했었던 거지.'

 

 철수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자신을 경계했던 제이가 그를 남자로 볼 리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까워질 수는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제이랑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하지 말았을 걸 그랬어.'

 

 철수는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는 생각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철수의 양미간은 좁혀져 있었고 표정도 무섭게 굳어져 있었다.

 

 주먹을 움켜쥐고 바깥을 내다보는 철수의 눈매는 날카롭고 차가워 보였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처연한 슬픔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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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2017 / 11 / 24 267 0 8193   
43 43.제이가 내 사무실에는 어떻게……? 2017 / 11 / 24 267 0 8265   
42 42.미래의 남편이요? 2017 / 11 / 22 259 0 8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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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2017 / 11 / 17 248 0 8478   
39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2017 / 11 / 16 248 0 7984   
38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2017 / 11 / 15 280 0 7784   
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2017 / 11 / 14 243 0 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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