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소프트' 의 특수 감시반 팀장 최태훈이 회장과의 통화로 인해 진땀을 흘리고 있을 무렵.
이안과 일행들은 새로운 장비로 인해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비경에 앉아 앞으로의 퀘스트. 그러니까 신전 보수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를 하고 있었다.
퀘스트 자체는 이안에게만 주어진 개인 퀘스트이기는 했지만, 일행 모두가 셀레스틴의 권속이 된 이상 남의 일인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안은 일행들이 모두 볼 수 있게끔 바닥에 창대를 끄적여 폐허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폐허 대략적인 구조는 지금 이안과 일행들이 지하로 내려와 있는 대신전 건물 하나와 그 뒤로 4개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대신전을 감싸고 있는 형태였고.
거기에 더해 대신전의 정면으로는 거대한 광장이 하나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구조였다.
"얌마! 얼핏 봐도 '화이트 런' 의 '미트라' 신전 보다 훨씬 큰데. 이걸 어떻게 우리들끼리 고쳐?"
칼슈타인이 답이 안 나온다는 듯 자신의 대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그에 이안은 바닥에 끄적이던 창대를 거두며 칼슈타인을 쳐다 보았다.
"당연한 걸 뭘 물어? 애초에 우리가 직접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하다 못해 여기서 오두막이라도 만들어 본 사람있어?"
"....."
"....."
"....."
이안의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대답이 없는 일행들.
이안은 그런 일행들을 한번 쭉 둘러본 후 다시 칼슈타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봐. 지금 상황이 이런데 우리가 무슨 기술이 있다고 신전을 제건축 하냐?"
"우움~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시려는 거에요?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리아가 이안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셀레스틴에게 강제 퀘스트를 받은 이후로 이안의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져 있다는 것을 아리아는 이미 진즉에 눈치를 채고 있었다.
이안은 그런 아리아의 표정에 자신이 괜한 화풀이를 파티원들에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경직되어 있는 얼굴 근육을 풀며 슬쩍 미소를 내비추며 말했다.
"화이트 런에 있는 건축 길드에 의뢰를 맡길까 생각중입니다."
애초에 이안과 파티원들한테 건축 기술이 있을리 만무했지만.
설사 뛰어난 건축 기술을 가졌다고 해도. 이만한 규모의 신전을 지금 이 인원들 만으로 보수를 하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결국, 셀레스틴의 이 신전 보수 퀘스트는 애초에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대형 퀘스트였던 것이다.
그에 이안이 생각 해낸 방법은 바로 전문인력인 '건축 길드' 를 고용하는 것이었다.
그때, 여지껏 침묵을 고수하던 벨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돈은요? 아마 건축길드를 고용하려면 한두푼 들고 끝날 일이 아닐텐데요."
힐끔-
이안은 벨라의 질문에 대답대신 셀레스틴을 향해 눈길을 흘렸다.
명색이 여신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신전 전체 보수라는 막대한 퀘스트를 맡긴 당사자인데, 설마 그 정도의 돈도 없겠느냐 하는 순수한 의미에서였다.
곧, 이안의 눈짓에 따라 파티원들의 시선도 일제히 셀레스틴을 향해 돌아갔다.
그들도 '설마 신이 그 정도의 돈도 없을까?' 하는 마음은 이안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돌아온 셀레스틴의 대답은 그런 그들의 기대를 한꺼번에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후훗~ 간단히 생각해 보세요. 오랫동안 신도가 없었던 저한테 인간들의 화폐가 있을리가 없잖아요?"
태연자약하게 장미속에 파묻혀 누워 있던 셀레스틴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그에 이안은 그런 책임감 없는 셀레스틴의 모습에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어이가 없으려니... 빈곤을 당연하다는 듯 말하지 말라고..."
그러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이안의 귓가로 하나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생명의 여신 셀레스틴' 의 권능으로 인해 '신앙' 스텟이 2 감소 하였습니다.
"엥? 이게 뭐야...?"
이안은 순간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며 다시 한 번 알림창을 활성화시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이고,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었다.
고로 깎여나간 스텟도 절대 이안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 엄연히 눈앞에서 벌어진 사실이었다.
급격히 뒷골 땡겨오는 것을 느낀 이안은 얼른 셀레스틴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장미밭에 누워 발을 까딱거리며 비웃음을 짓고 있는 셀레스틴이 보였다.
"흐흥~ 그럼 못써요~"
"이런... 썅?"
이안은 깎여나간 스텟도 모잘라 이제는 한껏 비아냥을 머금은 셀레스틴의 그 미소에, 상대가 자신이 모시는 신이라는 것도 잊은 채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이안을 향해 돌아온 것은 셀레스틴의 사과도, 깎여나간 스텟에 대한 보상도 아닌.
그녀가 꺾어 던진 장미 한 송이였다.
"어라라~? 이제 엄연히 교단에서 종사하는 몸이신데 품위를 좀 지키셔야지 않겠어요?"
그리고 다시금 이안의 귓가로 들려오는 예의 그 알림음.
-'생명의 여신 셀레스틴'의 권능으로 인해 '신앙' 스텟이 2 감소 하였습니다.
툭-!
"이....?!"
이안은 뒤통수에 부딪혀 떨어진 장미를 내려다 보며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거칠게 발치의 투구를 집어 들었다.
그때, 아리아가 서둘러 이안의 품으로 파고 들며 얼른 그의 입을 틀어 막았다.
"이안님 그만 하세요!"
가만히 뒀다가는 이안의 신성력 스텟이 0 이 될 때까지 깎여 나갈것만 같은 걱정에서였다.
하지만.
-'생명의 여신 셀레스틴'의 권능으로 인해 '신앙' 스텟이 2 감소 하였습니다.
"또 왜...?"
이번에는 전혀 예기치 못한 스텟 감소에 이안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셀레스틴을 쳐다 보았다.
그러자, 셀레스틴이 천천히 장미밭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신전내 불미스러운 신체접촉 금지."
"....."
그렇게 잠시 멍청한 눈빛으로 셀레스틴을 바라 보던 이안은 품속에 안기듯 기대어 있는 아리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아리아님 스텟까지..."
"네? 아니요... 그.. 저,저는 스텟이 멀쩡 한데요..?"
"......"
"젠장! 이렇게 빨리 현질을 하게 될 줄이야...."
우진은 결국 셀레스틴 에게서는 아무런 자금원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후.
로그아웃을 한 채 컴퓨터의 자판기를 두르리고 있었다.
물론, 여지껏 모델 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돈이 꽤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밉상인 셀레스틴을 위해 써야 한다니. 우진은 영 속이 쓰려왔다.
"으음... 1골드에 만원이라..."
우진은 입가를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아이템 거래 사이트의 '에스테반' 골드의 현금 시세는 현재 거진 만원 선에서 통일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신전의 보수 비용이 얼마나 들어 갈지는 인터넷을 통해서는 도통 알 방법이 없었다.
아마 내일 아침, '에스테반' 에 다시 접속해 '화이트 런' 의 건축길드를 방문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었다.
딩동-! 딩동-!
그때, 한창 '에스테반' 의 홈페이지에서 건축물에 대한 정보를 뒤적거리고 있던 우진의 귀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우진은 마우스에서 손을 때고는 거실 한켠에 자리 하고 있는 인터폰 화면을 심드렁히 들여다 보았다.
어차피 굳이 확인을 하지 않아도 이 늦은 시간에 우진의 집을 방문 할 사람은 단 한명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재진의 얼굴이 보였다.
철컥-! 삐비빅!
"여~ 여신님 종놈! 뭐하고 있었냐?"
문을 열어주자 마자, 마치 제집 마냥 자연스럽게 들어와, 거실 테이블에 맥주와 안주거리들을 늘어 놓으며 재진이 우진을 향해 물었다.
그에 우진은 대답을 하기에 앞서 우선 소파에 털썩 주저 앉으며 맥주캔을 하나 집어들어서 땄다.
치익-!
"하아~ 뭐하고 있었긴... 그놈의 신전 수리비용 알아보고 있었지."
"별 수 있냐? 우리의 잘나신 여신님인 셀레스틴님께서 돈이 없으시단데. 현질이 답이지. 그래도 B급 퀘스트 치고는 난이도가 그리 높은거 같지만은 않다? 일단 이 퀘스트는 돈만 바르면 해결되는 거잖아?"
재진이 참숯 향기가 그윽히 올라오는 족발을 한 점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다? 내가 보기에는 뭔가 더 있을거 같기는 한데.... 너도 생각을 해봐. 지금 이정도 수준이면 절대 B급 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안그러냐?."
"하긴.. 쩝쩝... 쩝.. 그것도 그렇긴 하지.."
사실 재진 역시 우진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셀레스틴의 퀘스트가 절대 이정도 수준에서 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신전의 수리만으로 끝나기에는 B급이라는 퀘스트의 난이도는 너무 비정상적으로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 현질 나도 보태줄게. 어차피 기왕 나도 성기사가 된거. 우리 교단이 좀 더 빵빵해야 나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
재진은 속이 탄다는 듯 맥주를 연거푸 들이키고 있는 우진을 가만히 바라 보다가 입안의 족발을 마저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됐다 됐어~ 회사도 그만두고 놀고 있는 놈이 무슨."
"노는게 뭐 어때서? 그리고 나만 노냐?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너는 훨씬 전부터 먼저 놀고 있던 놈이 무슨... 뭐, 아무튼 이 얘기는 내일 접속해서 그때 마저 하기로 하고. 그나저나 너 아리아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
이번에는 입안 가득 과자를 우물거리며 음흉한 눈빛으로 묻는 재진.
우진은 흥미 없다는 듯 맥주를 마저 홀짝이며 대답했다.
"또 뭔 소리를 하시려고?"
"응? 아니, 그분이 너한테 관심이 많아 보이길래 그러지."
"....."
재진의 말에 잠시 우진의 머릿속으로 아리아의 얼굴을 떠올랐다 사라졌다.
하지만 우진은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직 여자 만나고 그럴 마음 없다니까. 게다가 몇일이나 봤다고 아리아님이 나한테 관심이 있는 줄 아냐?"
"야! 그거야 딱 보..."
딩동--! 딩동--!
재진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소리.
그에 재진은 하던 말을 멈추고는 얼른 현관문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우진을 향해 물었다.
"뭐야...? 나 말고, 누구 또 불렀냐?"
"아니? 아무도 안 불렀는데... 잠깐만 있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