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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41.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작성일 : 17-11-20 21:13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8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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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가 영원히 저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닥터 리의 상담소를 찾은 철수는 조금은 편한 자세로 자신의 속내를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제이가 떠난다고 말했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철수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살포시 인상을 구겼다.

 

 물론 제이는 항상 자신의 곁을 떠나겠다는 말을 했었지만, 어젯밤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의 여파가 상상을 초월했다.

 

 어쩌면 정말로 그녀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철수의 심장은 미친듯이 쿵쾅 울려댔다.

 

  "예전과는 어떤 식으로 달랐습니까?"

 

 철수는 차분히 따듯한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예전에는 조금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저의 공황 장애 증세도 나아지고, 그녀에게 잘 대해주면 선생님께 지고 있던 저의 마음의 빚도 덜 수 있으니까."

 

  "……."

 

  "그래서 제이에게 잘 대해준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요?"

 

 닥터 리가 손가락으로 코끝에 걸려있는 안경테를 들어올렸다.

 

  "지금은 그저 제이가 웃는 모습을 보면 행복합니다."

 

 철수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여기 아주 깊은 곳에서 행복한 기운이 샘솟는 기분입니다."

 

  "……."

 

  "이게 바로 사랑인 거겠죠?"

 

 철수의 질문에 닥터 리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랬다. 철수는 지금 제이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제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고, 일하다가 피곤할 때면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보면서 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을 생각해서 그녀가 사온 화분을 살뜰하게 보살폈고, 캔들은 아까워서 사용하지도 않았으며, 그녀가 자신에게 준 선물을 보는 것만으르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따뜻함이 넘쳐흘렀다.

 

 꽝꽝 얼어붙어 있던 철수의 마음이 제이에 대한 사랑이라는 한줄기 빛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철수는 예전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사진을 망설이지 않고 찢어버릴 수 있었다.

 

 제이만 자신의 곁에 남겨둘 수 있다면 그깟 사진을 찢는 것따위는 일도 아니었다.

 

 철수는 제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제이 씨가 알면 무척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혹시 제이 씨한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철수는 대답 대신에 꿀꺽 침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물론 철수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해서 제이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결말이지만, 과연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물어보기도 전에 무섭고 두려웠다.

 

  "아직 그녀의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

 

  "그래서 많이 망설여지고 떨립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두려움은 제이와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었다.

 

 만일 철수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제이가 알고 부담스러워하면, 그녀는 영영 자신의 곁을 떠날 것이다.

 

 제이는 그가 영원히 소중히 아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가끔 그녀가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드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심장은 찢어지는 듯이 아픈데, 제이가 자신의 고백을 거절하고 멀어진다면 얼마나 심장이 아플까.

 

  "그래도 제이 씨가 철수 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 아닙니까?"

 

 닥터 리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철수는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적극적이었던 철수 씨가 왜 이렇게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는지 모르겠군요."

 

 닥터 리의 말에 철수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사실 자신도 느끼고 있던 바였다.

 

 그는 제이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약해지는 기분이었다.

 

 한국 시장에 진출한 '말디'가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이의 표정이 안 좋은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철수는 자신이 완전히 제이에게 빠져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녀의 미소,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섰다.

 

 표정이 어두워져 있던 그녀가 자신의 노력 덕분에 밝게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면 철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었다.

 

 제이의 가장 대단한 점은 언제나 철수에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매일 선물하는 그녀가 자신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가 그녀에게 고백했을 때 그녀의 반응이 신경 쓰여서 제가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못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

 

  "만약 그녀가 제 고백을 거절하면 그녀는 분명히 제 곁을 떠날겁니다."

 

  "……."

 

  "그녀가 제 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볼 바에야 그냥 제 마음을 숨기고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철수가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그녀의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제이 씨도 철수 씨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상황이었지만 헛된 희망은 자신을 더욱더 괴롭게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철수는 조용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직접 고백하는 것만이 제이 씨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환자분께서 갑자기 그녀의 앞에 나타났을 때 제이 씨의 표정이 어떤가, 철수 씨가 그녀에게 자연스러운 스킨쉽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이 있는가."

 

  "……."

 

  "환자분을 그냥 단순한 룸메이트로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건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방법은 많습니다."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철수에게 다가온 닥터 리는 축 쳐져 있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대표님,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철수 씨만큼 멋있는 남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가요?"

 

 철수가 힘없는 목소리로 묻자 닥터 리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짝사랑이라는 게 정말로 대단한 것 같군요."

 

  "……."

 

  "언제나 자신만만하시고 재수 없을 정도로 당당하셨던 철수 씨가 이렇게 자신감이 떨어지시다니."

 

 닥터 리의 말에 번뜩 고개를 든 철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재수 없을 정도로요?"

 

  "……아, 그건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닥터 리의 너스레에 철수는 그저 웃음을 터트렸다.

 

 오랫동안 닥터 리가 주치의로서 자신을 지켜보았으니 그녀만큼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철수는 항상 여자에게 유혹을 받는 입장이었지 먼저 여자에게 다가선 적은 없었다.

 

 처음 사랑에 빠졌던 첫사랑인 전 여자친구도 자신에게 먼저 대쉬를 했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먼저 여자에게 고백했던 것은 철수의 인생에서 단 한번도 없었다.

 

  "처음부터 철수 씨가 제이 씨한테 사랑 고백을 하면 조금 놀라고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다정하게 대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면서 제이 씨의 반응을 한번 유심히 지켜보세요."

 

 닥터 리의 말에 철수는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철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이토록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살벌하게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한국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국, 일본, 필리핀, 태국에 진출하는 '아시아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하여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세상'을 바짝 따라잡고 있는 마트 '말디'의 성장세에 브레이크가 걸려서도 아니었다.

 

  [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닥터 리의 상담을 통해 자신이 연애고자라는 것을 확인한 철수는 제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알아보기 위해서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집단 지성의 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좋아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이미 철수가 던진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뜨거운 호응을 보내고 있었다.

 

 철수는 천천히 눈으로 사람들이 써준 고마운 댓글을 훑어 내려갔다.

 

  [여자는 좋아하는 남자가 뭐하자 그러면 눈을 빤짝거리면서 좋아하더군요.]

 

  [좋아하는 남자가 같이 뭐하자는데 안 좋아할 여자가 없지요. 사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 하느냐가 중요한 거거든요.]

 

  [맞아요.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라는 가사 보면 정말 공감되더군요. 제 여자친구도 썸탈 때 제가 커피 마시자고 그러거나 영화 보자고 그러면 한 번도 싫다고 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달에 제 여자친구랑 결혼합니다.]

 

  [괜히 튕기거나 밀당하려고 좋은데 싫은 척하는 여자도 있지 않나요?]

 

  [글쎄요. 좋으면서 싫다고 하는 여자는 개인적으로 별로. 저는 좋으면 좋다고 자기 의사 표현 확실히 하는 여자가 좋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면서 다음 약속을 잡으려고 하죠.]

 

 진지하게 연애 고수님들의 연애 팁을 전수받은 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해보기도 전에 제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접는 것은 자신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제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도는 확인해 볼만한 것 같았다.

 

 오늘은 회사에 출근한 철수는 아침에 출근하기 전 제이가 그의 회사 근처에서 쇼핑할 것이라고 얘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ㅡ 오늘도 회사로 출근하시는 거예요?

 

  ㅡ 네, 제이는 오늘 집에 있을 겁니까?

 

  ㅡ 아니요. 제가 쓰는 마술용품들이 다 닳아버려서 인사동에 가서 새 걸로 사려고요.

 

  ㅡ 인사동이면 우리 회사 근처군요.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니 그녀에게 점심이나 먹자고 해볼까, 하는 생각에 철수는 핸드폰을 들었다.

 

 심장에 한 손을 대고 쓸어내린 철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 띠, 띠.

 

 고막을 울리는 신호음 소리에 맞춰서 철수의 심장도 두근두근거렸다.

 

 계속 울리는 신호음에도 제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철수는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전화를 끊고 다시 해볼까 싶은 순간에 발랄한 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제이 씨!"

 

 그녀가 전화를 받자 너무나도 기뻤던 철수는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 엄마야, 깜짝이야.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깜짤 놀랐잖아요.

 

 자신이 크게 실수한 것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진 철수는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미안합니다."

 

  - 그런데 철수 씨,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그냥 제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습니다. 아직 인사동에 있습니까?"

 

  - 네, 아직 인사동에 있어요.

 

  "……그래요?"

 

 그녀가 아직 인사동에 있다는 말에 철수의 표정이 환해졌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철수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그럼 나랑 점심이라도 같이 먹을래요?"

 

 그녀에게 점심 같이 먹자는 말을 내뱉은 철수의 심장이 또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철수는 머릿속으로 그녀의 답변 몇 개를 예상해보았다.

 

 첫 번째로 제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면, 그녀는 기뻐하면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어머, 철수 씨, 정말요? 철수 씨랑 같이 점심을 먹다니. 너무 좋아요.'

 

 두 번째로 자신에게 이성적인 관심은 없으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점심이요? 좋죠. 그럼 철수 씨가 사주시는 거죠?'

 

 마지막으로 자신을 전혀 남자로도 생각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제가 철수 씨랑 점심을 왜 먹어요?'

 

 그녀의 예상 답변을 생각하면서 철수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제발 마지막 세 번째 답변만은 듣고 싶지 않았다.

 

 스피커에 귀를 대고 그녀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던 철수는 그녀의 침묵이 길어지자 초조한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절부절못하며 주위를 서성이던 철수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 점심이요? 어쩌죠? 제가 오늘은 윤정이랑 점심을 먹기로 했거든요.

 

  "……아, 그래요?"

 

 예상지에서 한참을 벗어난 제이의 답변에 철수는 김이 빠진 듯 울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네, 죄송하지만 다음에 같이 점심 먹어요.

 

 제이는 진심으로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철수에게 말했다.

 

 그나마 그녀가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것을 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미 제이가 좋아할 만한 음식점을 검색해보고 그녀와 같이 점심을 함께할 곳의 후보까지 정해놓았던 철수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 정말 미안해요. 철수 씨. 철수 씨랑 미리 약속했으면 윤정이랑 점심 약속을 잡지 않았을 텐데.

 

  "아니에요. 선약을 지켜야죠."

 

 철수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으면서 말했다.

 

  - 그래요, 그럼 이따 집에서 봐요.

 

 철수는 우울한 표정으로 끊긴 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겨우 점심 약속을 거절당한 것뿐인데 철수는 가슴이 저릿하며 아파왔다.

 

  '강철수, 이 바보 같은 놈.'

 

 철수는 제이에게 아침에 미리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했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랬다면 제이도 윤정과 점심 약속을 잡지 않고, 자신과 고급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윤정 씨의 점심까지 사준다고 그럴 걸 그랬나.'

 

 철수는 내가 이랬으면 저랬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복기하며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제이에게 거절당한 철수는 오늘 홀로 점심을 먹어야 했다.

 

 어쩐지 오늘 점심으로는 산해진미를 먹어도 맛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철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철수는 카페에서 나오는 제이를 보고 살짝 클랙슨을 눌렀다.

 

 양손에 새로 산 마술용품을 한 봉지씩 들고 있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바로 운전석에서 내렸다.

 

  "철수 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

 

 직접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카페 창가에 앉아 공부를 하는 제이를 발견하고 철수는 운전대를 돌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제이가 보였습니다."

 

 우연히 만난 제이를 보고 철수는 반갑기만 했건만,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철수가 부담스러운 듯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신에게 거리를 좁히지 않는 제이를 보면 철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마음속에서 제이의 존재는 커지기만 하는데, 제이에게 자신은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철수는 자신의 존재가 제이에게 고작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현실이 서글펐다.

 

  "제이, 그거 나한테 줘요. 내가 들어줄게요."

 

 철수의 말에 제이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거뜬하게 들 수 있어요."

 

 두 손을 등 뒤로 숨기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살짝 언성을 높였다.

 

  "내가 들어주겠습니다. 어차피 나랑 같이 차 타고 집에 갈 거잖아요. 설마 이거 들고 지하철 타고 갈 겁니까?"

 

  "네? ……아, 아니요."

 

 갑자기 화난 철수의 모습에 놀란 제이는 순순히 짐꾸러미를 그에게 넘겼다.

 

 짐을 싣으려고 뒷좌석 문을 연 철수는 제이에게 차에 타라고 고갯짓을 했다.

 

 이번에 제이는 군소리 없이 철수의 옆좌석에 탔다.

 

 철수가 운전석에 타자마자 제이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깜짝 놀라서 그랬어요. 우연히 철수 씨를 만난 게 너무 놀라서."

 

  "……."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철수는 액셀러레이터를 길게 밟았다.

 

 7월 중반이 되면서 태평양의 고기압이 몰려온 건지 이제는 밤이 되었는데도 날이 더웠다.

 

 지이잉.

 

 마침 차 안에 설치되어있는 에어컨이 고장이 나서 철수는 더위에 지친 그녀를 위해 창문을 내렸다.

 

 고개를 돌려 철수와 눈이 마주친 제이는 생긋 미소를 짓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제이는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철수는 갑자기 몰린 인파 때문에 생긴 교통체증에 살짝 미간을 좁혔다.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몰렸군요."

 

  "오늘 한강에서 불꽃 축제가 있었잖아요. 그거 끝나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걸 거예요."

 

 제이의 설명에 철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만을 기다렸다.

 

 가뭄의 단비처럼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오자 제이의 하얀 민소매 와이셔츠의 깃이 팔락거렸다.

 

 철수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려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제이를 몰래 훔쳐봤다.

 

 두어 개 푸른 단추 사이로 제이의 하얗고 부드러운 속살이 보였다.

 

 철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쇄골로 향했고 점점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갑자기 그의 손에 땀이 맺히자 철수는 자신의 바짓단에 양손을 문지르고, 얼른 고개를 창밖으로 향했다.

 

 철수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까지 양손으로 운전대를 부여잡고 앞만 바라보았다.

 

 심각한 교통난에서 빠져나온 철수는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라디오를 틀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후둑, 둑, 후두득.

 

 차의 천장에서 빗방울이 덜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저 지나가는 여우비인가 했더니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순식간에 소나기가 하늘에서 내렸다.

 

  "요즘 우리나라 날씨는 열대 지방 같아요. 갑자기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네요."

 

 철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버튼을 눌러 창문을 닫은 다음 계속 운전에 집중했다.

 

 집에 다 도착할 때까지 소나기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그녀가 집으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게 철수는 아파트 통로 근처에 자동차를 세웠다.

 

  "고마워요, 철수 씨. 일단 저 먼저 집에 들어갈게요."

 

 가방을 방패 삼아 빗속을 뛰어가려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덥석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잠깐만요. 제 차 트렁크에 우산이 있습니다."

 

 말을 마친 철수는 빗속을 헤치고 트렁크에 있는 우산을 찾기 위해 차 뒷쪽으로 향했다.

 

 트렁크에서 우산을 찾은 철수는 우산을 펴서 제이가 타고 있는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우산 쓰고 들어가요."

 

 아직 그녀에겐 철수의 존재가 개미보다 작을지라도 그는 그녀를 대신해서 비를 맞는 게 행복했기 때문에 그녀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는 진심으로 상관없었다.

 

 철수는 제이에게 손수 우산을 씌워주고 다시 운전석으로 뛰어왔다.

 

 철수의 몸을 적신 물 때문에 운전석 시트가 축축하고 젖어있었다.

 

 철수는 제이가 우산을 쓰고 통로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차를 주차장으로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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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9.영원히 그와 함께 하고 싶어. 2017 / 12 / 2 254 0 7901   
48 48.철수 씨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2017 / 12 / 1 248 0 8611   
47 47.무릎과 무릎 사이에 2017 / 11 / 29 628 0 8123   
46 46.제이는 철수를 좋아해? 2017 / 11 / 27 277 0 8107   
45 45.슬프면 슬프다고 말해요 2017 / 11 / 26 260 0 8563   
44 44.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2017 / 11 / 24 261 0 8193   
43 43.제이가 내 사무실에는 어떻게……? 2017 / 11 / 24 258 0 8265   
42 42.미래의 남편이요? 2017 / 11 / 22 253 0 8823   
41 41.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2017 / 11 / 20 261 0 8481   
40 40.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2017 / 11 / 17 241 0 8478   
39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2017 / 11 / 16 240 0 7984   
38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2017 / 11 / 15 272 0 7784   
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2017 / 11 / 14 235 0 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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