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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고잉홈
작가 : 에이슈
작품등록일 : 2017.11.17

덩치 큰 사회, 덩치 큰 사람들, 덩치 큰 세상속에 작은 사회, 작은 사람들. 치이거나 가려지거나 소멸되거나 하는 이 작은 사람들의 공간에 빛을 비춰주고 싶은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작성일 : 17-11-17 13:18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1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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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연희

 1. 나른한 안식 이불 속에서 그가 자꾸 꼼지락댔다. 불편함에 잠이 깼는데 그제야 알람이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불을 재끼고 알람을 껐다. 나도 잠시 실눈을 떴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들숨을 쉬더니 몸을 일으켰다.

  “몇 시야?”

  난 다시 눈을 감고 그에게 물었다.

  “다섯 시.”

  그는 속옷 바람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냉장고를 향해 가며 대답했다. 난 다시 실눈을 뜨고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식탁 위엔 와인병과 맥주 캔이 뒤섞여 놓여있었고 개수대 안엔 설거지거리가 가득했다. 그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어 병째 벌컥벌컥 마셨다.

  “컵에 따라 마시라니깐......... 나도 좀 줘.”

  잠이 덜 깬 탁한 목소리로 난 그에게 말했다. 그는 마시던 생수병을 내개 가져와 내밀었다.

  “그냥 마셔.”

  난 이불로 몸을 감싸고 상체만 겨우 일으켜 그가 건넨 생수병을 받아들었다. 난 잠시 남은 물의 양과 불순물 여부를 확인하고 나서 벌컥벌컥 마셨다.

  “일어난 거야? 다섯 신데?”

  난 남은 물을 모두 마시고 바닥에 내려놓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일어나야지. 출근인데.........”

  그러고 그는 수건을 챙겨 비틀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그를 지켜보다가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어젯밤 일이 문득 떠올라 다시 눈을 떴다.

 

  용준이는 주말을 이용해 집에 다녀왔다. 원래 자주 내려가지는 않는다. 원주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는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집에 다녀온다. 그의 어머니 생신과 명절, 그리고 그 외 가족이나 친지의 경조사까지 포함해서. 그가 딱히 집에 가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닌데 혼자 계신 엄마가 아들 걱정 하시는 게 싫다고 했다.

  용준이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누나와 여동생이 있는데, 누나는 결혼 후 울산에 살고 있고 어머니와 여동생 둘이 원주에 살고 있다. 물론 그의 어머니도 아직 젊으시고 여동생도 직장에 잘 다니고는 있지만 그의 어머니는 늘 하나뿐인 아들 걱정을 그렇게 하신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어머니의 안달에 억지로라도 밤을 새 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그의 누나는 여상을 나와 일찌감치 취직을 했고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 만큼은 꼭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이 일 저 일을 마다않고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그는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서울로 대학을 갈 형편까지는 되지 못해 수도권으로 목표를 낮추었는데, 끝까지 미련을 떨치지 못하시는 엄마 때문에 힘든 수험생 시기를 보냈다. 결국 그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이곳에서 생활한지 벌써 만 7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동규 새끼가 엄청 좋은 거라고 귀가 닳도록 생색 냈어.”

  늦은 오후, 집에 도착한 용준이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 발판에 발을 닦으며 내게 말했다. 난 그가 씻는 동안 원주 집에서 그의 어머니가 보내주신 마른 반찬 몇 개와 과일을 깎아 바닥에 펴 놓은 상 위에 예쁘게 차려놓았다. 그리고 그가 조심스레 가져온 와인 병을 들고 서 있었다.

  “뭐, 읽을 수가 있어야지. 어디에서 사온 거래?”

  난 와인 병에 붙은 라벨을 열심히 살피며 그에게 물었다.

  “이탈리아였나? 몰라! 뭐, 스페인이랑 프랑스....... 몇 군데 다닌 모양인데........”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여행은 재미있었대?”

  난 와인 병을 차려놓은 상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응. 걔 허세 너도 알잖아. 귀가 다 아팠다니까!”

  그는 대답했다.

  “하긴........ 여자 친구랑 간 건데 오죽 했겠어? 근데...........”

  씻고 나와 스킨을 얼굴에 바르며 상 앞에 앉으려고 하는 그에게 난 말했다. 내가 말끝을 흐리자 그는 접시 위 오렌지 한 조각을 집어먹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음........ 우리도 어디 가까운 데라도 한 번 다녀올까? 요즘 날씨도 좋고. 뭐, 나들이라도.”

  난 조금 망설이는 투로 그에게 제안했다.

  “왜, 부럽냐?”

  그는 와인 코르크를 따느라 얼굴에 힘을 주고 있었다.

  “아니 뭐, 꼭 부러워서 라기 보다......... 우리 둘이 제대로 여행 한 번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를 마주하고 앉으며 난 말했다.

  “왜 없어? 지난번에....... 이모 신혼여행 배웅하고 오는 길에 포천에서 하루 자고 왔었잖아.”

  그는 와인 코르크를 따서 내 잔에 따르며 말했다.

  “그게......... 그게 무슨 여행이냐? 밖에서 자고 오면 다 여행인 거야?”

  난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잔에도 와인을 채우고 내 잔에 건배를 하며 말했다.

  “여행이지, 그럼. 그 때 날씨도 좋았고 풍경도 얼마나 좋았는데.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또 호텔에서도 죽여줬잖아!”

  그는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내게 말하며 와인을 마셨다. 난 그의 대답에 무언가 다시 말하려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한숨을 뱉으며 와인을 마셨다.

  “나중에. 나중에 제대로 가자! 지금은, 너나 나나 열심히 벌어야 하잖아. 한가로이 여행 즐길 때가 아니잖아. 동규 그 놈이야 뭐 제 능력으로 그러고 다니는 거냐? 재수 좋게 분에 넘치는 여자 친구 만나서 호강에 요강에..........”

  그는 내 눈치를 보며 얘기하다가 멈칫하더니 다시 나를 힐끗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야, 근데 뭐 이거 엄청 비싸고 맛있는 거라더니. 뭐, 그 맛이 그 맛이네! 마트에서 만원주고 사 먹은 게 더 맛있는 거 같아. 그치? 으이구........ 미친 새끼, 엄청 생색을 내더니만!”

  “............ 준아!”

  난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말을 꺼냈다.

  “응?”

  그는 얼른 나를 쳐다보았다. 난 와인을 크게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음....... 난 맛있는데? 뭔가 떫은 듯하면서 향기롭고. 좋다!”

  난 입을 쩝쩝거리며 비싼 와인의 향을 느껴보려고 애썼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벌써 밤 열 두 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상 위의 밑반찬과 과일도 거의 동이 났고 뜯긴 과자 봉지와 맥주 캔 몇 개도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있던 우리는 어느 새 나란히 침대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그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맥주 캔을 찌그러뜨리며 말했다.

  “너랑 나........ 다 우리 둘을 위해서 내가 이러고 사는 거야. 안 그래? 이 오빠가 말이야, 다 너 땜에, 너를 위해서.......”

  그의 혀는 꼬여 들어갔고 눈도 게슴츠레 했다. 나도 졸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난 엷게 미소를 지었다. 그도 나를 보며 똑같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미안하다........”

  “뭐가........ 뭐가 미안한데?”

  나도 내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느껴졌다.

  “......... 아니........ 그만........ 그만하고 자자. 난 내일 출근해야 돼. 야! 넌....... 너 쉬는 날이라고 막 마시고!”

  그는 뭔가 말하려다 말고 시계를 보더니 갑자기 나를 나무랬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비틀거리자 난 얼른 그의 팔을 붙잡아 다시 바닥에 앉혔다.

  “알았어. 자자. 자면 되잖아.”

  난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입술을 떼는 나를 그는 다시 붙잡아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그의 입술과 혀의 느낌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의 날숨에서 와인향이 나는 것 같았다. 조금 전 자신의 몸도 잘 가누지 못하던 그는 날 들어 침대에 눕혔다. 그렇게 우리는 비싼 이탈리아산 와인의 도움으로 뜨겁게, 차가운 밤을 보냈다.

 

  다시 자려고 누웠지만 지난밤의 대화가 생각나 잠이 깨고 말았다. 정신이 말짱해지면서 두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욕실에서 그의 씻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지만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 그 때 그가 욕실에서 나오는 소리에 난 눈을 꼭 감았다.

  “잘 다녀와. 미안. 난 좀 더 잘게.”

  난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며 말했다.

  “그래. 신경 쓰지 말고 더 자.”

  그는 곧 머리를 말리고 스킨을 바르고 옷을 입는 듯 했다. 그리고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는 소리와 ‘띠리릭’하고 문이 잠기는 소리, 복도를 걷는 구두 발자국 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고 나서 난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원피스를 주웠다. 난 그것을 몸에 느릿느릿 걸쳤다. 침대에서 나와 냉장고를 열고 새 생수병을 꺼내어 선반 위에 있던 컵에 따랐다. 한 컵을 다 마시고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다시 한 컵을 따르려다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는 병 입구를 입에 대고 양껏 들이켰다.

 

 2. ‘처음’이라는 것

 

  2년 전 봄. 난 드디어 4학년을 맞이했다. 직장생활 도중에 결심한 대학 공부였기 때문인지 유달리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대학생활이었다. 난 활동적이거나 적극적인 성격이 못되어 서클 활동을 한다든가 친구들과 맘껏 어울려 논다든가 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급우들은 모두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잠깐 들렀다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카페로 직행했다. 저녁 여섯 시부터 카페가 영업을 마무리하는 시간까지, 대여섯 시간정도를 일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어 겨우 귀가하곤 했다. 특별할 것 없는 늘 똑같은 일상이 내겐 평화롭기도 했고 고역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혼자라는 것과 지겨운 일상에 대해 맘 놓고 불평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상대가 없다는 것은 지친 육체를 더욱 지치게 하는 것이었다.

 

  중 3때까지 난 부모님이 있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왔다. 그 평범함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는 걸 이듬해인 고 1이 되면서 깨닫고 말았지만.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다. 엄마는 그 때 내가 대학을 갈 때까지 만이라도 참으려 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만 것에 대해 무척 미안해 하셨다. 아빠는 당시 집을 떠나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 ‘엄마 말 잘 들어라.’ 라고 얘기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는 연락이 없으셨다. 엄마와 단 둘이 산지 일 년 정도가 지났을 때 엄마는 내게 말씀해 주셨다. 아빠는 오랫동안 만나온 여자와 살고 있다고 그래도 내 용돈과 생활비도 보내주시고 가끔 연락해서 안부도 묻곤 하신다고 했다. 아마도 소식 없는 아빠를 내가 궁금해 한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물론 엄마의 착각이었겠지만. 엄마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와 단 둘이 지냈던 일 년 동안의 시간이 내게 알려 주었다.

  아빠가 생활비를 보내 주는 건 사실이었지만 엄만 늘 돈 때문에 힘들어 하셨다. 집에 와 보면 항상 세금 고지서와 영수증 같은 걸 가득 쌓아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고 있곤 하셨다. 나에게 용돈을 주거나 책, 옷가지들을 사는 일에도 엄마는 내 눈치를 보셨다. 언젠가 부터는 외출하셨다 늦게 들어오시곤 했는데, 그런 날 밤엔 어김없이 내가 자러 들어가면 혼자 소주를 안주 없이 드시다가 울며 잠드셨다. 새벽에 잠이 깨어 몇 번 목격했던 엄마의 모습니다.

 

  “연희야, 엄마랑 오랜만에 외식할까? 엄마 밥하기 귀찮은데.........”

  일요일 오후, 혼자 방에서 멍하니 앉아있을 때였다. 엄마는 내 방에 슬며시 들어오시더니 뜬금없이 외식을 제안하셨다.

  “외식? 웬 일로?”

  난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웬 일은....... 그냥 그러고 싶은 거지. 딸이랑 둘이.”

  엄만 태연하게 말했지만 표정은 낯설었다.

  “그래!”

  난 군 말없이 엄마를 따라 나섰다.

  “뭐 먹고 싶어? 딸?”

  엄마는 내 팔짱을 끼며 다정히 물으셨다. 엄마의 그런 표정을 언제 봤었나 싶었다.

  “음........ 아무 거나 말해도 돼?”

  난 잠시 생각하다 엄마에게 물었다.

  “응! 너 먹고 싶은 거 아무 거나. 네 맘대로 정해.”

  “음......... 고기! 고기 먹어도 돼?”

  난 일부러 뜸을 들이고 말했다.

  “그래라! 무슨 고기 먹을까? 돼지? 소? 소고기 먹을래?”

  엄마는 시원하게 말했다.

  “그래!”

  나도 시원하게 대답했다. 뭔가가 있구나 싶었지만 불안하거나 궁금해 미치겠다거나 하진 않았다. 우리는 동네 밖으로 나와 상점가를 돌아다니다 ‘수원 본 갈비’ 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간판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여기요! 소갈비 2인분하고........ 너 밥도 먹을래?”

  엄마가 주문을 하다 말고 묻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밥 두 개 주세요!”

  엄만 주문을 마치고 내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소주도 한 잔 해!”

  내 제안에 엄마는 고개를 가로 저으시며 물을 마셨다.

  “훤한 대낮부터 무슨 술이야? 엄마 술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엄마의 대답이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근데 고기는 왜 먹자고 한 거야? 무슨 일 있어?”

  나도 물을 마시며 물었다.

  “엄마........ 취직했어! 내일부터 일 나가.”

  뜻밖의 엄마의 말에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뭐? 엄마가? 엄마........ 한 번도 일 같은 거 해 본적 없잖아! 아르바이트도 하나 안 해봤다면서?”

  “안 해봤다고 못하라는 법 있니? 나 아직 마흔도 안 됐거든? 아직 젊은데 뭘.......”

  “무슨 일인데? 힘든 거 아니야?”

  난 엄마가 조금 걱정 되었다.

  “엄마 친구가 일하던 회산데, 식품회사야. 음........ 국수나 떡....... 뭐 이런 거 만드는 작은 회산데 엄마 친구가 얼마 전에 결혼 했거든. 임신을 해서 조심해야 된다네. 그래서 회사 그만 둔다고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덥석 한다고 했지!”

  엄마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그래? 힘든 일이 아니라면 다행이긴 한데........ 잘 할 수 있겠어? 그래도 처음 하는 일인데.........”

  내 걱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를 넌 바보로 아니? 엄마가 대학은 못 갔어도 학교 다닐 때 공부도 꽤 했어! 어려운 일은 아니래. 경리도 보고 사장님 비서 역할도 좀 하고....... 복잡한 일은 아니야. 걱정 말지, 딸!”

  엄마의 얘기가 끝날 때쯤 주문했던 소갈비와 밑반찬들이 상 한가득 놓여졌다.

  “월급이 많은 건 아니어도 우리 둘이 생활하긴 괜찮을 것 같아. 엄마가 내일부터 너 아침 대충 준비해 놓고 나갈 테니까 꼭 먹고 가고, 학교 다녀와서도 알아서 잘 챙겨먹어! 여섯 시 퇴근이긴 한데 처음이라 시간이 얼마 더 걸릴지도 모르니까.”

  “엄마야 말로 날 바보로 알아? 엄마보다 낫거든!”

  난 엄마의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아 얼른 대답했다. 오랜만이 아니라 난생 처음, 엄마와 단 둘이 외식을 했던 그날, 다행히도 그녀의 웃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어서 난 좋았다. 그러고 보니 갈비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난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엄마가 구워주는 갈비를 먹으면서 깨달았다.

 

  난 수능 시험을 보지 않았다. 엄마가 일을 시작했던 그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을 뿐더러 남들보다 일찍 돈을 벌어 엄마와 편하게 살고 싶었다. 난 내 계획을 졸업 할 때까지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고3 후반부터 취업을 위해 이곳저곳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다녔다. 어떻게든 졸업 때까진 취업을 할 계획이었지만 혹시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해하고 있었다. 수능 시험 날부터 성적표가 나오는 날, 대학 원서를 내고 당락 통보를 받는 일까지 겨우 겨우 거짓말과 연기를 해가며 엄마의 눈초리를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엄마가 꽤 바빠지셔서 일일이 확인하진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졸업이 다가오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와 불안감에 떨었던 건 사실이다.

  그 땐 정말 운이 좋았다. 2월이 되던 날, 난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증권회사 사무실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초조해 하고 있던 나에게는 뛸 듯이 기쁜 소식이었지만 그 며칠 후, 내 고백을 들은 엄마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엄마는 배신감이 든다고 내게 말했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하지 않던 일을 하고 피로와 외로움을 견디고 계신지에 대해 내게 하소연하며 우셨다. 정말 엄마가 그렇게 까지 속내를 내게 드러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난 엄마를 설득하고 달랬지만 이미 소용없었다. 엄만 한참을 우셨다. 그동안 삼켰던 모든 설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난 그런 엄마를 안아주는 일 밖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다시 후회와 불안감을 맞이해야 했다.

 

  그 후, 일 년이 넘게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물론 경제적인 차원에서였다. 엄마의 일은 안정을 찾은 듯했고 나도 생활비를 보탤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대학 보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 두라고 하지는 않을게. 하지만 언제가 됐든 늦기 전에 대학은 꼭 가. 지금은 네가 안정적인 것 같아도 더 나이 들면 분명 후회하게 될 일이야. 엄마가 꼭 그랬어. 엄마가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다고....... 그러니까, 연희야! 꼭 그렇게 해. 엄마가 얼마든지 도울게! 그게 엄마의 소원이야.”

  난 엄마의 얘기가 협박으로 들리거나 부담스러워서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엄마의 고집보다도 내 일 년 동안의 사회경험에 설득을 당한 것이다.

  고졸이라는 학력이 핸디캡이 될 줄도 몰랐고 막내 여직원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난 늘 비교를 당하거나 어떤 일에 대해서는 늘 열외 되곤 했다. 일 년 전, 난 너무 어렸고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였던 것이다.

  난 엄마의 설득에 수긍하고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다시 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와 학원을 오가며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생활했다. 그 해 겨울, 난 집 근처에 있던 한 대학에 지원을 했고 합격통보를 받았다. 또 한 번의 운이 따라 주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무척 기뻐하셨다. 날 안고 또 한참을 우실 정도로.

 

  기대했던 대학생활도 결국 크게 다르진 않았다. 깐깐한 학점관리(이해가 안 갈 정도로 명랑 쾌활한 성격이거나 여유로운 경제적 배경과 빼어난 외모가 학점을 따기 위한 그 어떤 노력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조건이라는 한계), 등록금 문제, 교우관계에 있어서 모두 그랬다. 난 당당하거나 애교가 있거나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었고 돈이 많지도, 외모가 빼어나지도 않았다. 게다가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수업에 임하고 시험을 준비해서 학점을 받는 일, 그리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 등록금을 충당해야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등록금은 어느 정도 엄마가 서포트 해주고 있었지만 생활비와 용돈까지 해결하려면 아르바이트는 물론 학자금 대출에까지 의존해야 했다.

  내게는 1학년 2학기 때부터 같이 다니는 유일한 친구가 있었다. 두 살 동생이지만 다소 까칠하고 시크한 성격의 동기였다. 재영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귀여운 미소년 같은 이미지의 동생이었다. 마치 남중생의 이미지가 풍기는 찰랑거리는 바가지 커트 머리에 늘 단색의 셔츠, 여름엔 5부 반 바지, 겨울엔 청바지에 하얗거나 검은 운동화, 커다란 백팩을 착용했다. 난 한 학기를 모두 보내는 동안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첫 개강 수업 때 그녀를 처음 보았는데 그녀는 내게 먼저 이렇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복학생이세요?”

  “.................”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재영이가 이어폰을 끼고 책을 보고 있던 내 책상을 톡톡 건드리며 물었다. 난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이어폰을 빼고 나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처음 보는 분 같아서........”

  “아닌데요. 복학생.........”

  내가 대답했다. 재영이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 라고만 반응했다.

  “복학생이세요?”

  이번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저요? 저도 아닌데....... 요........”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렸고 내겐 그 순간이 매우 신선한 느낌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녀도 그렇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부터 통성명을 하고 점심을 함께 먹었으며 이 후로 서로에게 유일한 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재영이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늘 내게 불평불만 같은 말들을 쏟아내곤 했다. 학과장이나 교수들이 학문 연구는커녕 연구실에서 낮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고 학생들의 과제 점검도 사실 하지 않는다거나 유흥이나 즐기고, 몰래 제자들을 사적으로 만나거나 촌지를 거래하듯 뒷돈을 챙긴다고 비아냥댔다. 또 학생들은 쉽게 학점을 따기 위해 또는 취업을 위해 교수 추천을 받으려고 돈과 몸을 아끼지 않고 그들과 더러운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며 일부 동기나 선배들의 흉을 보기도 했다. 물론 재영이의 말이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재영이처럼 일일이 그들의 행위에 관심을 갖고 반응을 하고 불만을 품기엔 나의 정신적 에너지는 부족했고 내 역할 역시 턱없이 미비했다. 그렇다고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못마땅해 하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 상태를 환기하고 제 자리를 한 번씩 점검하면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일종의 방법이라고 난 이해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끔 맞장구 쳐주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는 정도로 우리는 ‘친구’라는 단어의 의미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이어가면서 우리는 정작 놓치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아마 분명히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니, 빨리 좀! 왜 이렇게 굼뜨지? 오늘?”

  재촉하는 재영이가 평소의 그녀답지 못했다.

  “알았어! 왜 안 가던 술자리엔 가자고.......”

  주섬주섬 책들을 챙기는 나를 그녀는 억지로 일으켰다. 난 끌려나오듯이 강의 동 밖까지 나왔다.

  “이것 좀 놓을래? 가고 있잖아.”

  내가 그녀의 팔을 뿌리치자 그녀는 툴툴거리며 내게 말했다.

  “거기 앉을 데도 없다고! 아르바이트까지 미뤄놨는데 자리 없어서 참석 못하면 나 진짜 열 받을 거 같거든!”

  이번엔 내 손을 잡고 앞장섰다. 4학년 개강파티. 원래 재영이와 나는 과모임이나 엠티 같은 데에 잘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개강 후 며칠 전부터 재영이는 처음이자 마지막 개강 모임이라며 아르바이트 쉬는 날까지 바꿔가며 꼭 참석할 것을 내게 강요해왔다. 그리 내키진 않았지만 나 또한 졸업반이라는 것에 굳이 이유를 두고 아르바이트 쉬는 날을 주말과 바꿨다.

  막상 술자리에 도착하고 보니, 고등학생 티를 아직 벗지 못한 신입생 몇 명과 재학생을 포함해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은 인원이 있었다. 재영이 말대로 장소는 매우 협소했지만 준비해 놓은 술과 안주, 그리고 자리는 남아돌았다.

  개강한 지 2주째가 되는 금요일이었다. 처음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테이블 위에는 빈 술병과 접시들이 눈에 띄었다. 재영이와 나는 거의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었다.

  “취한 것 같은데....... 괜찮아?”

  재영이가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 비어있던 옆자리에 누군가 앉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 네?”

  난 옆을 보았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구 찾아?”

  선배인지 동기인지는 모르겠으나 후배는 아닌 것 같았다.

  “어! 재영이......... 가........”

  “아......... 걔가 재영이구나! 걔, 좀 전에 집에 가는 것 같던데?”

  내 옆에 앉은 그가 말했다.

  “네? 정말요? 아.........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아이 씨........”

  난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재영이가 집에 갔다는 말에 짜증이 났고 얼른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가려고?”

  그가 말했다.

  “.................”

  난 그의 말을 들은 체 않고 가방을 둘러맸다.

  “바래다줄까? 집이 어느 쪽이야?”

  난 그가 누군지 몰랐지만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연무동이요.”

  “어? 나도 연무동인데........ 그럼........ 같이 나갈까? 나도 아까부터 너무 졸려서 가려던 참이거든.”

  “.............”

  나는 걸음을 떼려다 잠깐 멈칫했다. 그러자 그가 나의 등을 살짝 밀며 나를 앞세우고 말했다. 그리고 술자리에 남아있는 동기와 후배들을 향해 말했다.

  “나 먼저 간다. 너희들도 얼른얼른 들어가! 잘 정리 하고!”

  난 얼떨결에 앞장서 나왔지만 무언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러자 그는 나를 앞지르며 내 손목을 잡고 인도로 나왔다.

  “씨...........”

  난 인상을 쓰며 작은 목소리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술김이라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는 내 목소릴 들었는지 내 손목을 얼른 놓으며 말했다.

  “미안! 난 그냥........ 네가 취한 것 같아서........ 춥지 않으면 걸어갈래? 술도 깰 겸. 가깝잖아........”

  난 그가 한 말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춥지 않을 정도로 느껴지는 찬 공기가 시원했고 술을 깨고 싶었다. 난 그와 상관없이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얼마가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내 자취집 근처까지 와 있었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니 그는 여전히 내 뒤에서 걷고 있었다.

  “여기야?”

  난 깜짝 놀랐다. 무언가 기분이 나쁘고 겁이 나기도 했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어? 정말 가깝네? 그럼 들어가. 내일 보자!”

  그는 멋쩍게 내게 손짓을 하며 돌아섰다. 난 그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고 그는 뒤돌아 걷다가 두어 번 다시 나를 돌아보며 손짓을 하고는 모퉁이 뒤로 사라졌다.

 

  토요일은 숙취를 안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나마 일요일엔 오랜만에 실컷 밀린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난 월요일 아침에 있었던 수업에 지각할 뻔했다. 헐레벌떡 강의실에 뛰어 들어오느라 확인하지 못했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보니 재영이가 보이지 않았다. 난 강의실을 나와 동기 아이들 몇 명에게 재영이를 보았는지 물었다.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전화를 해 보기로 하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누굴 그렇게 찾아?”

  “..........? 아......... 안녕하세요.”

  지난 금요일 집까지 함께 걸었던 선배였다.

  “아까부터 누굴 계속 찾는 것 같던데.”

  “아....... 네....... 재영이......... 혹시 못 봤어요?”

  난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소리 내어 웃으며 내게 말했다.

  “하하........ 넌 맨날 걔만 찾는구나. 어? 저기 있네!”

  그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건물 입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얼른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재영이가 여유롭게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난 그녀에게 달려가 말했다.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다그치듯 묻자 그녀는 눈치를 살피며 내게 말했다.

  “나가자. 커피 한 잔 마셔야겠어.”

  그녀는 내 팔을 잡아 다시 출입구 쪽으로 끌어당겼다.

  “안녕? 네가 재영이였구나. 이재영, 맞지?”

  선배는 나가려는 나와 재영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재영이는 잡았던 내 팔을 살며시 놓더니 그의 시선을 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뭐야? 너, 지금 온 거였어? 금요일에도 나 몰래 집에 가고! 뭐야?”

  난 그녀에게 원망스런 투로 말했다.

  “미안. 그 날 진짜,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어. 언닌 물 만난 고기마냥 재밌어 보이길래 그냥 나왔지.”

  “내가? 내가 언제? 참 나.........”

  재영이는 소극적인 말투로 변명했다.

  “커피........ 내가 쏠게, 갈래?”

  한 발짝 뒤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가 한 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자 재영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난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그는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재영이와 나에게 차례로 건넸다.

  “.......... 잘 마실게요.”

  나도 우선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가 나를 보며 싱긋 웃으며 말한다.

  “그럼, 난 수업이 있어서. 다음 수업은 늦지 말고!”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커피를 뽑아 치켜들며 손 인사를 하고는 가버렸다. 재영이는 그를 향해 꾸벅 인사하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저 오빠, 어때?”

  난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강의 동 앞 벤치를 향하며 대답했다.

  “뭐....... 글쎄, 별로. 그냥 그런데?”

  재영이도 나를 따라 걸음을 떼며 내 팔짱을 꼈다.

  “개강 모임 때 보니까, 저 오빠 언니한테 관심 있는 거 같던데........ 술 마시는 내내 언니만 쳐다봤어.”

  그녀는 커피를 호로록 소리를 내며 마셨다. 난 당황스러웠다. 재영이는 당황한 내 얼굴을 확인하며 다시 말했다.

  “저 오빠정도면 괜찮지 않아? 키도 크고 뭔가 분위기도 있어 보이고........ 오늘 보니까 자상한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종이컵 안을 들여다보며 남아있는 커피를 흔들어 저었다.

  “글쎄......... 좀 느끼하지 않아? 처음 보는데도 막 아는 척하고....... 난 좀 그래.”

  대답하는 나의 표정을 또 다시 확인하고 조금 전과는 다른 또렷한 말투로 그녀는 말했다.

  “그래? 난 그게 매력 있어 보이던데....... 진짜 저 오빠 처음 봐?”

  “응. 이번에 복학한 사람 아니야?”

  재영이는 이렇게 말하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아닌데....... 지난 학기에 복학했는데. 우리랑 같은 수업도 들었었고. 진짜 몰랐어?”

  그녀의 표정이 음흉하게 느껴졌다. 난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잘 해봐. 둘이 어울려.”

  “야!”

  음흉한 미소 끝에 내게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어깨를 난 툭 건드리며 정색했다. 그러자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팔짱을 꼈다.

 

  며칠이 지난 금요일, 재영이와 나는 수업을 받기 위해 강의실로 향하고 있었다. 재영이는 역시 내 팔짱을 끼고 새로 수강하는 교양과목 교수가 꽤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쉴 새 없이 하고 있었고 난 맞장구치며 걷고 있었다.

  “헤이!”

  재영이의 작지만 빈 틈 없이 들려오던 목소리를 뚫고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 선배였다. 먼저 뒤를 돌아본 건 재영이었다.

  “어?”

  갑자기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난 얼른 재영이가 끼고 있던 팔을 뺐다. 팔짱이 풀리자 그녀는 나를 힐끗 보았다.

  “몇 번 불렀는데....... 복지법 수업이지?”

  그는 숨을 고르며 우리에게 물었다.

  “네. 오빠도요?”

  “안녕하세요.......”

  재영이는 그의 질문에 대답했고 난 인사를 했다. 그는 계속 숨을 고르며 재영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재영이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아니.”

  우리는 그의 대답에 의아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본 후 그를 보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남아서....... 아점 같이 먹을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

  “어! 그래요? 그럼, 저희랑 같이 가요!”

  그의 말에 재영이는 반색을 띠며 말했다.

  “야!”

  난 놀라서 그녀를 팔꿈치로 툭 쳤다.

  “괜찮아. 사정이 있었다고 하고 다음 수업 들으면 돼.”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하고 그를 보며 웃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래? 그럼 같이 밥 먹어줄래? 내가 살게!”

  “정말요?”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학교 앞 주택가의 한 오래된 밥집에 들어갔다. 단골들의 낙서로 도배된 식당 한 쪽 벽에 걸려있는 시계가 오전 열 한 시를 넘기고 있었고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을 하러 온 다른 손님들이 몇 보였다. 우리는 방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홀인 작은 공간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 공간 안엔 두 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우린 한 쪽을 차지하고 앉아 주문을 했다.

  “뭐 먹을래? 뭐 좋아해? 부대찌개? 두루치기?”

  그가 물었다. 재영이는 벽에 적힌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고 있었지만 난 물만 마셨다.

  “선배는요?”

  재영이가 그에게 물었다.

  “난 아무 거나 다 좋아. 나 여기 단골이야. 내가 부탁한 거니까 너희가 골라.”

  “음....... 그렇다면....... 부대찌개로 해요. 이 언니가 좋아해요!”

  재영이의 말에 그와 내가 동시에 그녀를 쳐다봤다.

  “저도 좋아해요!”

  재영이는 웃으며 말했다. 그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난 물 컵을 입에 갖다 대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이모! 여기 우선 부대랑 밥 세 개 주세요! 아, 소주도요!”

  그는 밖에다 대고 큰 소리로 주문을 하고 우리에게 다시 물었다.

  “반주, 괜찮지? 안 내키면 내가 마실 테니까 걱정 말고.”

  “아! 좋아요. 반주!”

  재영이는 대답했다. 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날 모른 척했다.

 

  좋아하는 찌개이지만 무척 싱겁게만 느껴졌다. 잠깐 졸았던 모양이었다. 먹던 찌개는 싸늘히 식어 국물이 모두 졸여진 채 있었고 소주는 세 병이 놓여 있었다. 반주로 소주를 마신 것이 잘못이었다. 밤 열 한 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유독 피곤한 날이면 오히려 잠을 설친다. 저녁부터 내내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다음 날을 맞이하곤 한다. 잠이 부족한데다 적어도 열여덟 시간 이상 공복 상태였던 것이다.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를 보았다. 오후 한 시도 채 안 된 시간이었고 바깥 홀은 점심 손님들로 북적였다.

  “이모! 여기 한 병 더 주세요!”

  재영이가 지나가시던 이모님을 부르더니 빈 소주병을 흔들며 말했다.

  “야! 우리 수업!”

  난 그녀를 제지했다.

  “나도 수업 있는데........”

  그는 이모님이 가져다주신 소주병을 받아들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내 앞에 놓인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죄송해요. 오빠....... 저희 가봐야 해요!”

  이번엔 그의 손을 내가 제지하며 말했다.

  “오빠? 오빠 아닌데....... 그냥 ‘용준아’ 해도 돼. 그쵸, 오빠?”

  재영이의 혀가 살짝 꼬였다.

  “아마도! 편한대로 불러. 난 상관없어.”

  그는 재영이의 말에 대꾸하고 나서 나에게 건배를 청하며 말했다.

 

  벽에 걸린 큰 시계가 오후 네 시를 향하고 있었다. 바깥 홀 손님은 거의 빠진 상태였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를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술기운이라고 변명하기엔 너무 바보처럼 느껴졌다.

  소주병은 어느새 다섯 병. 안주도 바뀌어 있었고 재영이와 그의 목소리도 커져 있다. 재영이는 큰 목소리로 무언가 말하고 있었는데 난 집중하지 않았다. 얼핏 언젠가 내게 했던 교수님과 그의 애제자에 대한 뒷담화인 것 같았다. 잠깐 이야기가 끊기자 그녀는 나와 그를 번갈아 한 번씩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아....... 나 이제 가야겠어. 힘들다.........”

  “어! 같이 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재영이를 보고 난 말했다. 하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재영이는 벌떡 일어나 다시 한 번 그와 날 번갈아 보고는 혀 꼬인 말투로 말한다.

  “아냐, 아냐. 나 약속 있어. 늦었어....... 주말들 잘 보내요!”

  그녀는 중심을 잃은 듯한 몸을 억지로 가누려 애쓰며 식당을 나가버렸다.

  “야..........!”

  그녀를 불렀지만 여전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숙여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정적이 흘렀다.

  “우리도 일어날까?”

  그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응........”

  난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그와 나는 말없이 또 그 길을 걷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집 앞이었다.

  “오늘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하다. 나 때문에 수업도 못 듣고.........”

  내가 집 앞임을 확인하고 걸음을 멈추자 그가 조용히 말했다.

  “음........ 당연히 미안해야지!”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박용준이야. 선배 아니니까 그냥 용준이라고 불러.”

  난 그가 내민 손을 보았다. 대꾸를 하거나 그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가 민망했는지 내밀었던 손을 한 번 쥐었다 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알았어. 그럴게. 잘 가.”

  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가 갑자기 내 앞으로 오더니 길을 막았다.

  “아, 아직 해도 안 떨어졌는데........ 자.. 잠깐 술이라도 깨고 갈래? 커... 커피라도 마시면서.........”

  “박용준? 그래, 너. 박용준......... 술이 깨려면 집엘 가야지, 어딜 가? 그리고......... 오늘 수업 빼먹은 거랑, 알바 못 가는 거랑....... 나 너한테 피해보상을 청구해도 모자랄 판이야. 뭐, 내가 뿌리치지 못한 죄가 있어서 말 안하려고 했는데....... 넌 시간이 아깝지 않니? 박용준........ 난 지금부터 오늘 잃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매워야 할지 고민해야 되거든. 잘 가라. 박용준!”

  난 취기에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의식이 입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걸 알아 챈 것이었을까.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는 ‘풉!’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너, 너 왜 웃어? 박용준! 기분 나쁘게....... 난 내가 지금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래, 송연희! 미안, 미안하다. 내가 피해보상 해 줄게! 꼭 해줄 테니까 기억하고 있어라. 송연희! 얼른 들어가. 나, 갈게. 잘 쉬어라. 송연희! 월요일에 보자.”

  그는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중간 중간 흘려가며 말하고는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모퉁이 뒤로 사라지는 그를 보고 서쪽 하늘에 낮게 떠 있는 해를 보았다. 작지만 강렬했다. 눈이 부셨지만 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두 눈이 시큰했고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했다. 집으로 들어가면서 아르바이트와 수업에 대한 걱정이 그 속에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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