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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혁명적소녀
작가 : an3375
작품등록일 : 2016.8.24

모종의 이유로 가문에서 도망치고 싶은 유리는 도피처로 바탈리온 제국의 기숙사제 아카데미, 아스테리아 학원에 입학한다. 오랜 세월, 인간과 이종족의 전쟁에 최전방에 선 바탈리온 제국은 아스테리아 학원에 극소수의 사람들 밖에 모르는 비밀을 심어 놓는데…….

 
Chapter 1. 그 소녀, 비밀(秘密) (7)
작성일 : 16-08-30 00:32     조회 : 425     추천 : 1     분량 : 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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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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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검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도피처라고 해야 할까?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신부 수업도 사교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싫었던 그녀에게 있어서 검술에 재능이 있다, 라는 건 정말 좋은 핑계였기 때문이었다.

 

 

 아를로시안 대륙이 이종족들과 전쟁 중이어서, 특히 고향인 바탈리온 제국이 이종족의 나라와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여서 참 다행이라고 유리는 생각했다. 항상 전시태세인 제국에서 병사로서 싸울 수 있는 마법사나 검사, 혹은 정령사들은 정말 귀한 대접을 받으니 말이다. 설령 그것이 데릴사위를 들여서라도 명맥을 이어가야하는 백작가의 후계자일 지라도…….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집중력을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하며 유리는 담벼락의 부분부분, 작게 튀어나와있는 작은 벽돌들을 밟으며 위를 향해 나아갔다. 마력으로 한껏 예민해진 오감이 그녀로 하여금 그늘진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앞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어라?’

 

 

 

 그리고 유리는 스스로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그리고 비교적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담벼락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밑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이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낮춰 바닥에 그림자가 지지 않게 조심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스스로의 능력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무래도 1학년인데다 학기 초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혹독하게 행해지는 훈련이 헛된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수업 첫날부터 먹은 것을 토해내며 양호실에 실려 갔던 같은 반 아이들을 떠올리며 유리는 ‘과연.’ 이라고 감탄했다. 타국의 평화로운 학원과는 달리 제국의 아스테리아 학원은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몸소 겪어보니 그 평가는 사실인 것 같았다.

 

 

 

 “…나쁘지 않네.”

 

 

 

 고작 한 달 사이 물집이 잡히다 못해 딱딱하게 굳은살이 베긴 손을 내려다보며 그녀는 제 몸을 그렇게 평하였다. 물론 여자아이의 몸은 가녀리고 부드러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모님은 이런 그녀의 변화를 못마땅해 하시겠지만, 어차피 이번 일이 잘 성사되면 그녀는 겨울방학 때까지 부모님과 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하엘에게 잘 말해 겨울 방학 때도 집에 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님! ……그렇게……안 돼요!”

 

 

 

 저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유리는 순간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어올렸다. 마력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예민해진 청각임에도 불구하고 드문드문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로 보아하니 상대는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빨리 리본첼 영애에게 이 여우를 가져다주고 제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담벼락 아래를 내려다보며 최소한의 피해로 내려갈만한 루트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안전한 경로가 그려지자마자 유리는 그대로, 망설임 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벽을 걷어차고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커다란 나무속으로 들어가 두터운 나뭇가지에 안착하는 일련의 동작은 몇 년간 서커스를 해 온 사람마냥 깔끔하고 유연하기 짝이 없었다. 떨어질 때의 중력과 가속도, 그리고 그녀의 무게로 인한 충격으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진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꽤나 멋지게 저 높은 담벼락에서 바닥까지 상처하나 없이 착지할 수 있었다.

 

 

 

 “후…….”

 

 

 

 공중에서 몇 번 구른 탓인지 그녀와 함께 구른 우리 속 여우가 불만스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나무 위에서 바닥으로 내려 온 유리는 여우에게 미안하다고 속삭이며-여우는 몇 번 더 그녀의 말에 대꾸하듯이 울더니 조용해졌다.- 머리와 몸에 붙은 잔가지와 나뭇잎들을 털어내었다.

 

 

 

 “두 번은 못하겠네…….”

 

 

 

 신체를 강화시키기 위해 끌어올렸던 마력을 해제하자 피곤함이 몰려옴과 동시에 팔다리가 욱신거렸다. 마법사와는 달리 기사들이 쓰는 마력의 사용법은 훨씬 더 쉽고 간단했지만 후유증이 즉각적이고 신체의 능력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유리는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건 수업에서도 아직 다루지 않는 부분이고 상급생의 기술을 대충 눈대중으로 보며 독학으로 익힌지라 아직 익숙하지 않아 더 후유증이 심한 것 같았다.

 

 

 고작 특별동 기숙사 담벼락을 넘는데 갈고 닦은 능력을 쓸 줄은 몰랐지만 역시 미숙한 기술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었다. 괜히 속으로 하엘의 탓을 하며 몸 상태의 체크를 마친 유리는 특별동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대다 보름달이 환했기 때문에 그녀는 되도록 담벼락의 그늘을 이용해 벽을 따라 빙 둘러 이동했다. 유리는 중간 중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최대한 발소리를 죽였지만 경비가 엄중했던 밖에 비해 특별동 안쪽은 허무할 정도로 아무도 없었다.

 

 

 

 ‘안 쪽은 원래 경비가 없는 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쪽엔 경비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녀는 기척을 죽이는 걸 그만 두고 적당히 발소리를 내면서 뛰었다. 특별동 건물이 곧 눈앞이었다.

 

 

 

 “그러니까, 안 된다니깐요!”

 

 

 “대체 왜 안 된다는 거야?”

 

 

 “…카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달리던 유리가 멈칫한 것은 건물 옆, 작은 화원에서 들려 온 낯익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들리는 목소리는 세 명, 느껴지는 기척은 넷이었다. 유리는 너무 놀라서 몸을 굳혔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 난 딱히 나쁜 짓 한 거 없어!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고 보고 싶은 걸 보고 싶다고 말하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뭐 어때서!”

 

 

 

 여자치고는 낮지만 남자라 여기기엔 높은 목소리였다. 소리를 지르고 성질을 내고 있음에도 쟁반 위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그 고운 미성(美聲)을 유리는 알고 있었다. 다만 평소 조용하고 다소곳하게 말하는 것 밖에 보지 못한 지라 유리는 그녀가 이런 식으로 화를 내는 걸 처음 들었다…….

 

 

 

 “본인이 처하신 위치와 상황을 조금 더 생각해보시죠!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시는 건 위험하기…….”

 

 

 “아아, 당사자가 상관없다는데 뭐가 문제야! 안 위험해, 하~나도 안 위험하다고! 애초에 넌 너무 걱정이 많아!”

 

 

 “…이봐.”

 

 

 

 …그리고 그녀가 이런 식으로 상대를 비꼬는 말투를 쓰는 것도 처음 들었다. 대화를 하는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유리는 처음 듣는 리본첼 영애의 말투에 놀라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굳어있다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리본첼 영애가 기숙사에서는 교실에서와 다른 말투를 쓰든 말든 자신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엘에게서 영애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은 정보를 계속해서 주입받아왔기 때문인지 유리는 의식적으로 리본첼 영애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다. 당사자가 모르게 사생활을 파헤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었을까, 유리는 이미 영애가 어떤 모습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던 간에 관심을 갖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난 이 학원의 여왕님이나 다름없다고! 평소 애들이 날 어떻게 대하는 지 못 봐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방금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거야 처음 보는 모습에 놀란 거지 그 외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유리는 이 뜻밖의 기회에 속으로 환호했다. 굳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영애에게 말을 걸 수 있다니! 임무의 난이도가 절반은 줄어든 셈이었다.

 

 

 

 “어차피 이 특별동에 들어올 수 있는 학생이 있을 리도 없고 애초에 누가 이런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등에 매고 있던 여우를 앞으로 고쳐 안아 든 유리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물론 유리에겐 리본첼 영애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방금 있었던 그녀의 사생활을 하엘에게도 입도 벙긋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유리는 숨어 있던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열려고 하였다.

 

 

 

 “이 완벽한 가슴이 가짜라는 걸 말이야!”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진 우리 속에서 애처로운 여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네 쌍의 시선이 갑작스레 등장한 유리에게 꽂혔지만 유리의 시선은 바닥으로 떨어진 새하얗고 둥근, 찐빵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

 

 

 

 곧 그녀의 시선이 두 개의 찐빵에서 그 찐빵이 떨어진 곳, 즉 리본첼 영애의 가슴으로 향했다. 대차게 흰 가운을 들어 올려 상체와 맨다리가 다 보이는 영애의 가슴은 남자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평평했다. 그러니까…….

 

 

 

 “누군가 있다…….”

 

 

 “…빨리도 말하는군, 리오넬.”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거지?

 

 

 유리는 대체 어디서부터 무얼 지적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찐빵에 대해서? 길고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이름 모를 남학생의 귀에 대해서? 그도 아니면 머리 위에서 쫑긋거리는 다른 이름 모를 남학생의 귀에 대해서? …어느 쪽도 혼란스러웠다.

 

 

 그 때였다.

 

 

 

 “야, 리오넬!”

 

 

 

 쨍그랑, 하고 창문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등 뒤에 커다란 날개가 달린 여학생 한 명이 우렁찬 목소리로 그들이 있는 쪽을 향해 외쳤다.

 

 

 

 “지금 세디안이랑 메데이아랑 붙었어! 너도 그 녀석들이랑은 그만 놀고 이리 와! 오늘이야 말로 우리 수인들이 엘프 녀석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자!!”

 

 

 

 그리고 건물 안에서 쾅, 하고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세디안이 한 방 먹였어!’ 따위의 기쁨어린 비명을 지르더니 바람처럼 건물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

 

 

 

 죽음보다도 싸늘한 침묵이 그들 사이를 맴돌았다. 유리는 자신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어디선가 찰칵, 소리를 내며 맞춰진 것을 깨달았다. 하나가 맞춰지자 다른 퍼즐들도 연달아 이어져 이윽고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였다. 유리는 방금 자신이 깨달은 사실에 경악하며 입을 딱 벌렸다.

 

 

 

 “…엘프랑 수인?”

 

 

 

 그럴 리가 없었다. 아니, 그들이 여기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인간과 이종족은 100년도 더 넘게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고, 아스테리아 학원도 이종족에 대응할 병사들을 육성하기 위해서 강도 높은 훈련과 수준 높은 지식을 제공하고 있을 테고,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그러니까…….”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눈앞에 있는 남학생의 귀의 모양이 바뀐다든가 건물 안에서 들리는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유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에 맞춰 의자에 앉아있던 나머지 학생, 아니 수인과 엘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려! 이건…….”

 

 

 

 절로 긴장되어 수축되었던 몸이 리본첼 영애, 아니 이제는 영애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이의 말에 의해 폭발하듯이 유리는 그대로 뒤를 돌아 도망쳤다. 아니, 정확히는 도망치려고 했다.

 

 

 

 “기다려 리오넬! 그러면 안 돼!”

 

 

 

 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신체를 강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유리는 확장된 감각으로 ‘그것’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마치 몸과 정신이 따로 분리된 듯이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서로의 신체적 능력의 차이는 명확했다.

 

 

 

 “……!”

 

 

 

 커다란 둔탁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등과 머리에 가해진 충격에 눈앞이 아찔하였다…….

 

 

 유리는 제 얼굴의 절반과 목을 틀어쥔 수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크고 두꺼운 수인의 손은 아무리 그녀가 손으로 때리고 할퀴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겁에 질려 커다랗게 뜨인 유리의 눈동자에 어느새 인간의 모습이 아니게 된 검은 늑대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늑대의 이빨은 금방이라도 그녀를 잡아 뜯어 놓을 듯이 크고 날카로웠다. 유리는 덩치 큰 늑대가 저를 향해 코를 킁킁거리자 더욱 기겁하며 발버둥 쳤지만 늑대의 긴 주둥이는 점점 더 가까워져만 왔다.

 

 

 그녀는 이제 목을 울리며 그릉거리는 늑대의 울음소리와 뜨거운 숨소리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의지를 배반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지만 흐려진 시야 사이에서도 황금색으로 번뜩이는 수인의 눈은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유리의 두 눈은 똑바로 늑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늑대의 주둥이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자자, 그만! 거기까지!! 떨어져, 리오넬!”

 

 

 “커헉!”

 

 

 

 턱을 아리도록 쥐고 있던 손이 떨어지자 입을 통해 공기가 급격하게 들어와 유리는 숨을 헛들이키고 말았다. 가슴을 부여잡고 기침을 하던 그녀는 등에 누군가의 손이 닿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괜찮은가?”

 

 

 

 손등으로 대충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자 난생 처음 보는 영롱한 녹색 눈동자가 코앞에 있었다. 유리는 입을 딱 벌렸다. 그녀의 안색을 살피는, 보는 각도에 따라 명암을 달리하는 신비로운 눈 때문이 아니라 청녹색 머리칼 사이로 길게 뻗어있는 귀 때문에…….

 

 

 

 “인간이란 무척이나 약해서 손에 힘을 주면 터진다고 들었다.”

 

 

 “…….”

 

 

 

 무례할 정도로 그의 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유리는 그의 헛소리에 그대로 굳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이게 무슨 개소리야?’ 라는 생각과 동시에 역시 눈앞의 이 남자가 인간이 아닌 이종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런 인간을 무식하게 힘만 센 수인이 쥐었으니 아팠겠지. 어디 터진 곳은 없는 건가?”

 

 

 

 부드럽게 턱 끝에 닿은 타인의, 그것도 인간이 아닌 자의 온기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찔거렸다. 일방적으로 닿는 것을 거부하는 몸짓이 기분 나쁠 법도 하건만 그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불쌍하게도 잔뜩 겁에 질렸군. 턱이 으스러져 말을 못하는 거라면 미흡하지만 내 치유마법으로…….”

 

 

 “…그렇게 세게 안 쥐었어.”

 

 

 

 어느새 머리 위에 솟은 털이 복슬한 귀만을 남긴 채 인간의 형태로 돌아 온 수인이 불만스럽게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두 종족의 태도에 리본첼 영애, 아니 유리가 여태껏 카릴 폰 리본첼 영애라고 알고 있던 정체 모를 이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며 발랄하게 말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인간이 이종족들보다 약하긴 하지만 손에 힘을 준 것만으로 터지진 않는다는 거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아니 할 수 없었던 유리의 눈앞으로 불쑥, 새하얀 손이 내밀어 졌다.

 

 

 

 “괜찮아? 일어날 수 있어?”

 

 

 

 허리 아래로 찰랑거리는 금발에 곱고 낭랑한 목소리. 하엘이 더없이 좋아해 마지않았던 큰 가슴이-찐빵이- 없어진 걸 제외한다면 눈앞의 인물은 여전히 그녀가 알고 있던 카릴 폰 리본첼이었다.

 

 

 손톱 끝까지 잘 정리된 그 고운 손을 잡는 대신 유리는 물었다.

 

 

 

 “…당신은 누구야?”

 

 

 

 경계심 가득한 그 눈초리에도 유리에게 손을 내민 이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층 더 밝아진 얼굴로 당당히, 그녀가 말했다.

 

 

 

 “내 이름은 에시단 카릴 라 바탈리온.”

 

 

 

 …아니, 그가 말했다.

 

 

 

 “이 바탈리온 제국의 3황자이지.”

 

 

 “…….”

 

 

 

 놀랍게도 유리와 리본첼 영애, 아니 3황자의 뒤에 서 있던 남자의 입이 동시에 딱 벌어졌다. 커다랗게 떠진 두 눈과 충격으로 인해 벌어진 입이 그들이 지금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경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그런 비밀을 함부로 밝히면 어떻게 합니까, 에시단님!!!!”

 

 

 

 황자의 뒤에 있던 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정작 ‘비밀’을 밝힌 당사자는 태연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뭐 어때, 내 가장 커다란 비밀이었던 가슴에 대해 이미 알아버렸는데 이 정도는 별거 아니잖아?”

 

 

 “#$%#$#^@!”

 

 

 

 뒤에서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다는 듯이 황자는 여전히 아름답게 웃으며 유리를 향해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

 

 

 “나에 대해 궁금한 점이 다 풀렸을 테니 이제는 내가 궁금한 점에 대해 우리 저 쪽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까?”

 

 

 

 궁금한 점이 다 풀렸을 리가 없지만, 아니 오히려 묻고 싶은 점이 더 늘어났지만 유리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물 밖으로 나온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는 그녀를 보며 3황자의 눈이 예쁜 호선을 그렸다.

 

 

 기이하게도 리본첼 영애가 사실은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리는 자신에게 눈웃음치는 그의 모습이 웬만한 여자보다 눈부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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