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뛰어들어 누워 있는 사람에게 갔다. 하완이 따라 들어가긴 했지만 차마 환자의 얼굴까지 보기 힘들었다. 다행히 교수는 경동맥을 짚고 동공반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뒤돌아 그를 쳐다봤다. 그때 그가 하완을 알아보았다.
"어? 너는? 뭐해? 가서 저 환자 체크해!"
"네? 아, 네..."
그제야 그가 누워있는 다른 이에게 갔다. 그리고 용기 내어 엎드려 있는 사람을 앞으로 돌렸다. 파랑도 아니고 시아도 아니었다. 그제야 그는 마음이 놓여 반사반응를 확인했다. 다행히 맥이 짚어졌고 동공은 빛에 반응했다.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숨도 쉬고 있고 의식도 있었다.
"으...으..."
"이, 이것 봐요? 정신이 들어요?"
그가 지켜보던 무리 중 한 명을 가리켜 외쳤다.
"거기 파란 옷 입은 남자분! 119에 전화 좀 해주세요! 빨리요!"
그리고는 환자를 최대한 반듯하게 눕히고 근처 가게로 가 부목이 될만한 것들을 들고 와 골절이 예상되는 부위에 감았다. 감는 내내 손이 후달거리고 심장이 뛰어 미칠 지경이었다. 교수가 보고 있는 사람도 시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잠깐이었다. 공포감이 수시로 엄습하는 통에 그는 현기증이 일었다. 응급처치를 다 하고 보니 하늘이 노랗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그의 달팽이관 속을 자극하고 뇌 속 여기저기 부딪치며 돌아다녔다. 그가 구급차에 환자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 일어나는 순간, 의식을 잃고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어? 어? 이 녀석!"
그가 쓰러지는 걸 본 교수가 땅으로 떨어지는 그의 머리를 가까스로 받쳤다. 그 바람에 그 역시 바닥으로 어깨를 부딪치며 같이 쓰러졌다.
"아, 아..."
그렇게 넘어져있는 두 사람을 본 구급대원이 다가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같이 타시겠어요?"
"아...난 뭐 타박상인 것 같은데 얘는 실어가야겠네요."
"선생님께서도 같이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손에 피가 납니다."
"나? 아, 이런..."
그렇게 구급차는 하완과 교수까지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흩어져 제각기 갈 길을 갔고 경찰차만이 남아 주위 정돈을 했다.
***
하완이 병원에서 눈을 떴다.
"어? 여기는?"
"이제 일어났냐? 젊은 애가 깨는데 뭐 이렇게 오래 걸려?"
일어나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봤다. 손을 숨긴 교수가 그를 보고 있었다.
"어? 교수님!"
"너 아직도 헤마포미아냐?"
"아, 네..."
"쳇...그거 고치면 돌아오고 못 고치면 안 돌아오겠다더니...NP에는 가본 거지?"
"아직..."
"갈 마음이 없구나?"
"아직 용기가 안 납니다."
"무슨 용기? 의사가 될 용기? 아니면 병을 고칠 용기?"
"..."
"겁쟁이 자식..."
"..."
"아까워서 그런다. 아까워서...딱 본과까지만 견디고 NR이나 NP로 가면 되지. 그럼 너 같은 강박증 환자 니가 더 잘 이해할 거 아냐? 피 볼 일도 없고..."
"그걸 넘기기가 두렵습니다. 언제 또 이렇게 쇼크가 올지도 모르는데 환자보다 제가 더 먼저 실려갈 것 같아서...그런 의사한테 누가 병 고치겠다고 찾아오겠습니까?"
"핑계 대지마, 이 자식아."
"..."
"너 다른 꿍꿍이 있지?"
"네?"
"너 그림 그리려는 거 아니냐?"
"아, 그게 무슨..."
"너 점묘화로 그린 오간 그림 다들 삽화인 줄 알고 착각했잖아. 너, 그림 좀 그렸지? 학교 다닐 때."
"옛날 얘기입니다."
"휴학하고 난 뒤 살 찌고 얼굴 환해진 거 보니 살맛나나 보네. 이미 의대에 마음이 떠났구나?"
그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속속들이 자신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 내장만 보는 게 아니라 뇌 속 생각도 보이는 것 같아 창피했다.
"내 딸도 미술해. 잘 하는지 모르겠지만 맨날 늦게 들어와. 공부하는 지 뭘하는 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영 소질이 없는데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재능이 없는데 그 길로 꾸역꾸역 가는 거."
"..."
"그런데 내가 봐주고 있어. 그렇게 가보라고 하는 중이야. 왜인 줄 알아?"
"왜..."
"니가 생각 나서...포기 안 하고 가다보면 또 길이 나오거든. 방법도 나오고. 꼭 재능대로만 살라는 법은 없어. 그 안에 연계된 또 다른 길이 있어. 한 직업에도 얼마나 갈라진 분야가 많아? 그렇게 내 갈 길을 찾아가는 아니겠어?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디 옛날처럼 단순하냐? 수천가지의 직업이 있는데...난 절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아."
"제가 후회할 거란 말씀이시죠?"
"니가 내 아들이라면 넌 이미 맞았어. 다리몽둥이 하나 작살 났다고. 내가 아들이 없어서 그렇지..."
그는 웃음이 풋 하고 나왔다. 정말 의도치 않은 웃음이었다. 이분은 충분히 그럴 분이었다. 그렇게 부러뜨리고 다시 아까처럼 부목으로 붙였을 것이다.
"웃기냐?"
"네? 아, 아닙니다."
"얼른 와라. 나 있을 때. 나마저 병원 나오면 너 이해해주는 교수도 없다."
"...네."
"아유, 자식 진짜 아들이었으면...진짜 내가 제대로 트레이닝 시켰을 텐데..."
하완은 그런 말이 애정으로 들려 마음이 따뜻해졌다.
"난 간다."
그가 손을 흔들자 흰 붕대가 보였다.
"어? 괘, 괜찮으십니까?"
"너가 내 것까지 수납해! 니 스컬 깨질까봐 내가 받혀서 이렇게 된 거니까. 말도 안 듣는 자식 스컬 따위 뭐가 중요하다고..."
"네, 네?"
그가 갸우뚱하며 뒷통수를 만졌다. 아픈 데라곤 없었다. 그래서 도통 저게 무슨 소린지 고개만 갸우뚱하는 그였다. 그리고 다시 누워 남은 수액을 마저 맞았다.
"뭔 일이 있었던 거지? 아, 교통사고! 시아, 파랑!"
그의 기억은 대리점에서 그들이 나가고 쾅하는 소리에서 멈췄던 것이다.
"어떻게 됐지? 여기로 같이 온 건가?"
그렇게 응급실을 두리번거렸다. 마침 수액을 빼러 온 간호사에게 물었다.
"혹시 오토바이 사고 환자들 여기 있나요?"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수술 예정이구요."
"수술? 어떤 수술이요?"
"중태거든요. 코마에요"
"네에? 코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