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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4.그녀의 일상을 뒤흔드는 남자
작성일 : 17-10-30 17:36     조회 : 17     추천 : 0     분량 : 7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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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버튼을 누르자 TV에 뜬 하얀 프레젠테이션 화면 위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자 제이의 표정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김종환 씨부터 시작하죠."

 

 철수는 레이저 포인터로 멀리서 몰래 찍은 종환의 사진을 쏘았다.

 

  "김종환 씨는 보증금 1억 7,000만 원인 전셋집에서 사는데, 밑으로 아들이 한 명, 딸이 한 명 있습니다. 자식들이 어려서 돈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제이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대체 이 남자가 나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다음 화면에선 지우의 증명사진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도지우 씨는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인 투룸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극배우인 지우 씨는 수입이 일정치 않아서 매일 월세를 내는 것도 빠듯할 겁니다."

 

 제이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걸 전부 다 조사하신 건가요?"

 

  "네."

 

  "정말 대단하시네요."

 

 제이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걸 눈치채지 못 한 철수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신기범 씨는 인천에서 부모님, 할머니와 함께 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마술사학교'를 출연해 얻은 유명세로 작은 기획사와 계약을 맺었고 계약금은 4,000만 원에서 6,000만 원 사이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요, 그렇군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제발 그만해요.

 

 하지만 제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철수가 재빨리 성대를 울렸다. 정말 얄미운 성대였다.

 

  "부모님께 집을 사 드리는 게 소원이라고 했는데, 이 정도의 금액으로 인천에 있는 아파트를 사는 건 턱없이 부족하죠."

 

 손으로 열심히 부채질했지만, 한 번 오른 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음은 마재윤 씨입니다."

 

  "계속하실 건가요?"

 

  "괜찮습니다. 힘들지 않아요."

 

 누가 걱정돼서 물어본 줄 아나.제이의 입에서 허, 하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마재윤 씨는 아는 사람들과 사업을 하다가 빚을 져서."

 

  "……그만, 이제 그만하세요!“

 

 더는 철수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제이가 참지 못하고 크게 목소리를 높이자, 화면을 주시하고 있던 철수가 고개를 돌려 제이를 바라봤다.

 

  "지금 저한테 무슨 소리 하시는 거에요?"

 

  "……모든 범죄는 면식범(피해자와 서로 얼굴을 아는 관계인 범인)에 의해 일어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단정 짓는 겁니까.”

 

 철수는 이렇게 명백한 데이터가 눈 앞에 있는데 왜 믿지 못하냐는 식으로 제이에게 반문했다.

 

 쿵쾅쿵쾅.

 

 제이의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초등학교 때부터 마술 대회를 나가느라 학교를 자주 빠졌던 제이의 주변에는 애석하게도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함께 오랫동안 공연을 했던 마술 단원들이 그녀의 곁에 남아있었다.

 

 남의 속사정도 모르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철수를 보고 제이는 머리끝까지 화가 솟구쳐 올랐다.

 

  "근데 제 주변 사람들 뒷조사는 어떻게 하신 건가요?”

 

  "흥신소에 의뢰했죠.”

 

  "……흥신소는 불법 아닌가요?”

 

 할 말을 잃은 철수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어떻게 마음대로 제 주변 사람들의 뒷조사를 할 수 있죠?”

 

 격양되어서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 제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요, 내 말 좀 들어봐요.”

 

  “내 몸에 손대지 마요!”

 

 제이는 다가오는 철수의 손을 거세게 뿌리치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정말 다 착한 사람들이에요. 제가 힘들 때 옆에서 응원해주고 따뜻하게 보듬어줬던 사람들이라고요.”

 

  “…….”

 

  “단지 어디에서 사는지, 얼마를 버는 지, 그런 거로 우리 아빠를 죽인 범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

 

  "철수 씨와 더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이제 다신 저한테 이상한 카드 보내지 마세요.”

 

 제이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벗어두었던 트렌치코트를 챙겼다.

 

  “잠깐만요.”

 

 그가 자신에게 뭐라고 변명하는지 들어는 봐야겠다 싶었던 제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멈췄다.

 

  "잠깐, 내 말 좀 들어봐요. 제이 씨가 왜 나한테 화가 났는지 알아요.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내가 제이 씨의 소중한 사람의 뒷조사를 함부로 한 건 정말 내 잘못이에요.”

 

 철수의 음성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지만 제이는 쉽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범죄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면식범에 의해 당한 적이 있던 철수는 제이에게 차마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털어놓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밀어 삼켰다.

 

  "아무도 믿지 마세요.”

 

  "…….”

 

  "믿어봤자 결국 당신만 손해 볼 겁니다.”

 

 이제 자신과 더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 제이는 주섬주섬 트렌치코트를 챙겨 입었다.

 

 쾅.

 

 문이 닫히고 무심한 정적이 무겁게 가라앉자, 혼자 남은 철수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윤정이 연습실에 들어선 제이를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

 

  "윤제!”

 

  "윤쩡!”

 

 중학교 때 제이와 함께 인천에 있는 학원에서 마술을 배웠던 친구였던 윤정은 비록 지금은 마술을 그만두고, 평범한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제이에겐 윤정과 같이 마술을 배웠던 소중한 추억이 남아있었다.

 

  "오랜만이야! 윤쩡, 이게 얼마 만이야.”

 

  "보고 싶었어, 윤제!”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띄운 제이가 윤정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며 동동 발을 굴렀다.

 

  "윤제이. 나는 안 보이지?”

 

  "야, 신기! 우리 윤설한테 뭐라고 그러지 마!"

 

  "어이고, 그러다 너희 둘이 정분 나겠다.”

 

 멀리 인천에 있는 마술 학원에 다니면서 제이는 기범이와 윤정이라는 소중한 삼총사를 얻었다.

 

  “윤설,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든 거야.”

 

  “미안, 미안. 요즘 너무 바빴어.”

 

 기범과 시윤은 회의실 책상 위에 올려진 떡볶이를 사이좋게 나눠먹고 있었다.

 

  "제이야, 너도 이리 와서 떡볶이 먹어.”

 

 세상에서 떡볶이를 제일 좋아하는 제이는 빨갛게 버무려진 떡볶이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오빠,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뭘 이런 걸 가지고, 맛있게 먹어.”

 

 시윤은 떡볶이를 먹는 제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때 느끼는 편안함과 즐거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따뜻한 온기가 온천처럼 솟아오르는 이 느낌.

 

 이런 분위기 덕분에 제이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래, 말도 안 되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우리 아빠를?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지우 누나! 지금 오면 어떡해."

 

  "미안, 미안, 늦어서 미안해."

 

 다른 연극 무대를 준비하느라 안타깝게 불참한 종환을 빼고 마지막으로 지우까지 오면서 마술 단원들이 모두 한데 모였다.

 

 마술 단원들은 관객들에게 좀 더 좋은 마술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매주 강남에 있는 연습실 겸 회의실에 모여서 회의했다.

 

  "아, 근데 연습실 화장실에 있는 오이 비누 딴 거로 바꾸면 안 될까?"

 

  "왜요?"

 

  "난 오이 비누 싫은데……."

 

 질 높은 마술 공연을 위한 회의였지만 시작은 언제나 시시콜콜한 잡담으로 출발했다.

 

  "누나 혹시 오이 못 먹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옆에서 가만히 있던 기범이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며 볼멘소리를 했다.

 

 “오이 비누가 어때서! 오이 비누가 얼마나 향이 좋은데.”

 

 “신기, 네가 오이 비누 가져다 놨어?"

 

 “그래, 연습실 화장실에 비누가 없어서 집에 있는 비누 가져다 놓은 건데……, 누나는 싫으면 쓰지 마요.”

 

 삐친 기범이가 흥, 하고 고개를 돌리자, 화를 내는 기범이를 귀여워하는 단원들이 오히려 더욱더 기범이를 놀려댔다.

 

  "사실 나도 오이 비누는 좀…….”

 

  "시윤이도 싫다잖아. 오이 비누보단 수박 비누가 낫지."

 

  "나도 오이 비누 별로."

 

 윤정도 자연스럽게 기범이 놀리기에 동참하자 진짜로 서러워진 기범이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왜 난 오이 비누 좋은데 완전 좋아."

 

  "역시 제이 밖에 없어!"

 

 기범은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어 제이를 향해 무한한 사랑의 하트를 날렸다.

 

  "근데 요즘 제이랑 기범이한테 악플 다는 이상한 애들 너무 많더라."

 

 단원들과 회의를 하다 보면 탱탱 볼이 튕겨 나가듯이 주제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순식간에 바뀌었다.

 

 ‘마술사학교’에 출연하고 입에 담지 못할 악플에 시달렸던 기범과 제이가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맞아, 집에서 할 일일 없는 얘들이 많나 봐. 대체 악플 같은 건 왜 쓰는 거야?"

 

  "우리 제이랑 기범이 같이 착한 애들이 어디있다고."

 

 지우가 볼을 쓰담쓰담 하면서 기범을 위로했다.

 

  "안 그래도 나 오늘 오다가 완전 이상한 일 겪었잖아.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내 손을 보더니 '마술사인데 손이 왜 이렇게 여자 손 같아요?' 이러고 가버리는 거 있지?"

 

  "뭐야, 완전 이상한 사람이네."

 

 윤정은 기범이 당한 봉변을 자기가 겪은 일처럼 흥분하며 화를 냈다.

 

  "마술사 같은 손은 어떤 건데?"

 

  "내 말이!"

 

 기범이 흥분하면서 소리쳤다. 가만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이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악플 같은 거에 대처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기획사와 계약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로 더욱 심한 악플에 시달리고 있던 기범이 귀를 쫑긋 세웠고, 사람들도 시선을 일제히 제이에게 돌렸다.

 

  "뭔데? 뭔데? 무슨 좋은 방법 있어?"

 

  "응, 그냥…… 비추천 누르면 돼."

 

 제이가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하자 주변 사람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와, 대박!“

 

  “진짜 좋은 방법이다!”

 

  “제이야, 넌 어떻게 그런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어?”

 

 그 뒤로 계속해서 제이는 마술 단원들과 웃으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그다음에는 시윤이 비트코인(세계 최초로 개발된 암호 화폐)의 원리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줬는데 정말 유익하고도 재밌는 시간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면서 제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나를 배신할 리가 없지.'

 

 이상한 사람이 한 말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자.

 

 

 

 ***

 

 

 

 끼이익.

 

 건물 근처에 차를 세운 철수는 오른쪽 손목에 감겨있는 가죽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 시각은 밤 8시. 제이가 마술 단원들과 회의를 마치고 연습실에서 나올 시간이었다.

 

 째깍째깍.

 

 하지만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제이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늘도 늦게 귀가하는 건가.

 

 쉬는 날이었던 철수는 늘 입는 흰 와이셔츠 대신 그레이 피케티를 입고 자연스럽게 앞머리를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편안한 캐주얼 스타일로 꾸민 철수는 세계적인 기업의 CEO라기보다는 평범한 대학원생 같았다.

 

 머리를 두 손으로 넘긴 철수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기다리는 건 딱 질색이었지만 제이가 연습실에서 나오는 시간은 제멋대로 일 때가 많아서 언제나 일찍 와서 기다려야 했다.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철수는 평소엔 전혀 듣지 않는 라디오를 켰다.

 

  - 그러니까 요즘 욜로(YOLO)가 대세긴 대세에요.

 

 스쳐오는 바람의 냄새만 맡아도 행복해지는 날에 백룡의 부고가 한국에서 들려왔다.

 

  ㅡ 뭐라고 하셨습니까, 윤 선생님이…… 뭐라고요?

 

 그날은 야속하게도 하늘이 무척 맑았던 날이었다.

 

  "제이야, 잘 가."

 

  "네, 모두 잘 들어가세요."

 

 마술 단원들과 한데 뒤섞여서 밖으로 나온 제이가 홀로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꺼버리고 철수는 조용히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의 뒤를 따라 천천히 운전던 철수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귀에 이어폰을 꽂는 제이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이어폰 끼고 걸어 다니면 위험한데.

 

 하지만 철수는 톡톡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고 계속해서 그녀의 뒤를 따라붙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조금 더 늙은 백룡이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짓고 있는 미소는 딸이 마술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면서 철수에게 자랑하며 짓던 미소 그대로였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제이는 상복을 입은 채로 인형같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철수는 장례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제이를 지켜보았다. 굳게 입을 일자로 다물고 조용히 문상객들을 맞이한 제이에게 철수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왜 그녀는 홀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을까.

 

 언제나 딸 자랑을 하며 바보같이 웃던 백룡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게 철수는 한동안 가만히 제이를 응시했다.

 

 집으로 가는 270번이 도착하자 제이는 버스에 올라탔다.

 

 방문객들이 찾아오지 않는 깊은 밤이 되자 철수는 마지막으로 백룡에게 인사하기 위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ㅡ 흑, 흐흑, ……흐윽!

 

 도자기 인형처럼 굳은 표정으로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던 제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후두둑 흘러내렸다.

 

  ㅡ 흐윽,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혼자 남은 제이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면서 쉼 없이 '아빠'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이제 다시는 부르지 못할 ‘아빠’라는 단어를 마지막으로 부르는 듯 했다. 철수는 차마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제이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ㅡ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바닥에 엎드려서 엉엉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철수는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끼익.

 

 신호등이 빨간불로 변하자 철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철수의 차는 제이가 탄 270번 버스와 나란히 서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제이가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 듯 눈꺼품을 아래로 내리자, 선선하게 부는 밤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지나갔다.

 

 철수는 고개를 돌려 신호등을 확인했지만 아직 신호등은 빨간불이었다.

 

  [제목업음]

 

 장례식이 끝난 후, 철수는 백룡이 교통사고로 죽기 2주일 전에 자신에게 보낸 이메일 한 통을 발견했다.

 

  [갑자기 이렇게 메일을 보내서 미안하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자네밖에 없어서 말이야.]

 

 어쩐지 긴박감마저 느껴지는 메일이었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마술 노트가 담긴 금고를 자네가 맡아주게.]

 

 마술 트릭을 적은 마술 노트를 목숨같이 생각했던 백룡은 철수가 무슨 일을 해도 화를 내지 않는데, 자신이 마술 노트를 건드린 사실을 알고 불같이 화를 냈었다.

 

 후에 백룡은 멋쩍어하면서 마술사에게 마술 트릭은 생명 같은 것이라서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미안하다며 철수에게 사과했었다.

 

  [금고는 내 서재 책상 밑에 있다네.]

 

 철수는 백룡의 메일을 확인하고 의아했다.

 

 왜 선생님이 죽기 전에 이런 메일을 내게 보내신 걸까.

 

 이리저리 벌여놓은 사업이 많아서 수습하기에도 모자란 시기라 일이 너무 바빴던 철수는 백룡이 죽고나서야 그의 메일을 확인했다.

 

 그게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백룡이 철수에게 보낸 마지막 구조요청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해졌다.

 

 초록 불이 켜지자 철수는 출발하는 버스를 따라 핸들을 왼쪽으로 돌렸다.

 

 Rrrrrr.

 

  "여보세요?"

 

  - 네, 안녕하세요. 행복흥신소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 부탁하신 대로 윤백룡 씨가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카센터에 찾아갔습니다. 자동차 점검했던 분한테 고압 펌프 상태가 어땠는데 물어 봤는데요.

 

  "……,"

 

  - 아무 이상 없었다고 합니다.

 

 핸들을 양손으로 꽉 움켜쥐자 철수의 팔뚝에는 힘줄이 솟아났다.

 

  "……네, 알겠습니다."

 

 제이를 태운 버스가 속력을 내자 철수도 액셀러레이터를 길게 밟았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선생님이 자신에게 그런 메일을 보냈을까, 혹시 선생님의 신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선생님은 목숨처럼 생각했던 마술 노트를 철수에게 맡겼다. ……왜?

 

 아무리 보여 달라고 졸라도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마술 노트를……, 어째서?

 

 끼이익.

 

 제이보다 먼저 그녀의 집 앞에 다다른 철수는 가로등이 꺼진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 채로 가만히 제이가 걸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백룡이 죽은 이유는 단순한 급발진 사고 때문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왜, 언제, 어떻게, 누가, 무슨 연유로 백룡을 죽였는지 궁금했다.

 

 독일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백룡이 자신에게 보여줬던 믿음과 사랑 덕분이었다.

 

 새파랗게 젊기만 한 자신에게 보여준 믿음 그리고 실패해도 괜찮다면서 격려해준 사랑.

 

 백룡이 베풀어 준 믿음과 사랑은 철수의 뿌리가 되어, 3년 전에 있었던 끔찍했던 그 사건을 겪고도 포기하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되었다.

 

 흠, 흠, 허밍을 하면서 춤을 추듯이 산뜻한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제이를 보고 철수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제이가 조그마한 마당이 딸려있는 2층 단독 주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몇 분 뒤, 2층에 있는 방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딸을 부탁하네.]

 

 

 제이의 방에 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한 철수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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