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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붉은 땅의 주인
작가 : 두부한모
작품등록일 : 2016.8.3

여섯번째 천 년.
전능하며 잔인하고 동시에 자비로운 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심판 받는 세상.
신의 이름을 외치며 인간 세상을 뒤덮은 대규모 민란으로, 남부를 지배해 온 천년 왕국 역시 무너졌다.

그로부터 십 여년.
은둔 왕족. 몰락 귀족. 천출 기사.
저마다의 이유로 통일 왕국을 세우려고 일어선 그들을 이곳에 기록한다.

 
프롤로그 : 초록 살무사
작성일 : 16-08-26 07:44     조회 : 490     추천 : 0     분량 : 8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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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91년 겨울 3일 : 단티시아 원로회당, 대회의장.

 

 “... 그리고 마지막 안건입니다. 수비대장에 대한 사항입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실 테지만, 지난 가을에 수비대장 자리가 공석이 되었습니다…”

 

 옅은 회색 빛의 수수한 단벌 의상을 입고 반원형의 대회의장의 시선이 모이는 의장석에 서 있는 자유시 단티시아 자유민 대표 발간디안은 잠시 말을 멈추고 탁자에 올려진 나무컵을 들어 물을 마신다.

 

 “수비대장, 발리크. 자비로운 신의 뜻을 기려 전력으로 우리 단티시아를 좀먹던 악인들을 처단하는 데 힘을 다 했습니다. 또한 우리 자유시를, 우리 자유민들을 적들로부터 지켜왔던 사람입니다. 안타깝지만, 위대한 기사를 이제 공식적으로 보내줄 때가 되었습니다. 우선 잠시 그를 기리며 묵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발간디안이 탁자에 두 손을 모아 올리고 눈을 감은 뒤 고개를 숙인다. 곧이어 대회의장에 들어선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 역시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다. 회의장의 정 가운데 통로 바로 오른쪽 제일 앞에 앉은 근위대의 부관 제롬과 그 뒤의 두 사람만은 고개를 든 그대로 앞을 쳐다보고 있다.

 

 잠시간 짧은 침묵이 대회의장을 지배하고, 저마다 묵념을 마친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묵념을 끝낸 발간디안은 모든 사람이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입을 연다.

 

 “그 동안 수비대의 발르 부관이 그의 대행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현재 수비대장 대행으로써 아무 문제 없이 잘 해오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발간디안이 자신의 오른쪽을 보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이에 대회의장 한쪽에 멀찌감치 서있던 발르가 그에게 다가선다. 관리를 잘 한 듯 흠집 하나 없는 흉갑과 견갑은 이리저리 빛을 반사시키고, 왼쪽 허리춤에 매달린 칼과 칼집은 어지러이 흔들린다.

 의장석으로 다가오는 발르를 바라보던 발간디안은, 그가 옆에 와서 서자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본다.

 

 “우리 단티시아의 새로운 수비대장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자유시를 대표하는 여러분들과 자유시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수비대와 선단의 대표들이 모여 선출하고자 합니다. 선거는 거수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발간디안은 왼쪽으로 걸음을 옮겨 한 뼘 높이의 단상을 내려온다.

 고개를 살짝 돌려 이를 쳐다보고 있던 발르가 천천히 단상에 올라선다. 발르가 탁자 뒤에 자리 잡고 허리를 펴 똑바로 서자, 발간디안은 그를 올려다보며 미소 짓는 얼굴로 크게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한 사람 두 사람 연이어 박수를 치기 시작하고, 좀 전의 묵념과 마찬가지로 제롬과 두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가 치는 박수소리가 대회의장을 가득 메운다.

 

 박수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하자 발간디안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입을 연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자랑스런 자유시 단티시아의 대표 여러분. 여기 이 자리에 서 있는 젊고 유능하며 청렴한 발르가, 우리 수비대의 우두머리로써 자격이 있는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잠시 휴식을 가지고, 찬성하는 분들이 먼저 손을 드는 방법으로…”

 “반대합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제롬이 별안간 발간디안의 말을 끊으며 일어선다. 오른팔을 높이 올린 그는 발간디안의 시선을 잡으려는 듯 바르게 쭉 편 손바닥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제롬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던 듯,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발간디안이 한숨을 길게 내쉰다. 고개를 살짝 돌려 제롬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발간디안은 무언가 웅얼댄 후 그를 바라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하자 제롬은 자신의 팔을 슬쩍 내린다.

 

 “제롬… 맞나요?”

 “예! 제가 수비대의 부관, 제롬입니다!”

 제롬의 목소리가 회의실 내부에서 메아리 친다.

 “발르 부관이 수비대장이 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제롬의 말에 발간디안은 또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채운 사람들을 둘러 본다.

 

 “아, 제가 설명을 제대로 못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혹시 여기 모인 대표분들 중 거수에 의한 의사표명이 익숙치 않은 분들이 계실 수도 있기에 다시 설명 드리자면, 잠시 후 제가 안건에 대해 찬성 하느냐 하고 묻게 되면 그 때…”

 “아닙니다 대표님. 제가 반대하는 건 이 안건 자체입니다.”

 

 말을 마친 제롬이 살짝 자신의 뒤를 돌아보자, 그와 마찬가지로 수비대의 부관인 기민과 길리안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회의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멋대로 해선….”

 

 발간디안이 급하게 한 마디를 뱉어내지만, 제롬은 자신의 머리위로 양 팔을 뻗어 크게 X자를 만들어 끊어 버린다. 양 팔을 세 번 더 붙였다 떼며 X자를 만들어 보인 뒤, 유난히 큰 걸음으로 의장석을 향해 걸어나간다. 갑작스런 일에 발간디안의 눈가가 잠시 찡긋했지만, 입만은 여전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단상의 바로 앞에 선 제롬은 말 없이 발르를 올려다 본다. 마찬가지로 제롬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발르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하자, 제롬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뒤로 돌아선다. 그는 곧바로 회의장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천천히 훑어본다.

 이윽고 자리에 앉은 모두와 눈을 맞춘 제롬은 양팔을 모아 팔짱을 낀다.

 

 “어려운 말 다 생략하고 쉬운 말로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수비대 최고참 부관과 임관한지 일 년을 겨우 넘긴 신삥 중 어느 쪽이 새로운 수비대장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롬은 왼팔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어깨 뒤편을 가리킨다.

 

 “여기 있는 부관, 발르가 발간디안 대표의 양아들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말입니다.”

 “아니, 이봐. 그건….”

 

 발간디안이 얼굴에 미소를 지우며 서둘러 손을 뻗는다. 제롬의 어깨를 붙잡으려는 듯 급하게 걸음을 옮겨 다가서나, 그는 잽싸게 앞으로 한 발짝 나선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발르의 오른편에 선다.

 제롬은 왼손으로 발르의 어깨를 붙잡은 뒤, 앞으로 힘을 주며 단상에 오른다. 잠시 발간디안과 제롬을 번갈아 보던 발르는 별다른 저항 없이 제롬이 밀면 미는 데로 밀려날 뿐이다. 발르보다 단상의 중앙에 더 가까이 선 제롬은 발르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걸친다. 그는 어깨동무를 한 채 웃는 얼굴로 회의장을 천천히 둘러 본다. 갑작스런 돌발 상황에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침묵만이 회의장을 가득 메운다.

 

 “방금 전 여러분께 드린 물음에 대한 대답은 잘 들었습니다. 여러 대표분들의 지지에 보답하기 위해 수비대장으로써 목숨 걸고 단티시아의 안전을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민과 길리안이 서 있는 자리에서 크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넓은 회의실을 울리는 썰렁한 박수소리가 계속해서 메아리 치지만 다들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호응하는 사람이 없다. 두 사람은 발간디안이 손을 크게 휘저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박수를 이어 나간다. 한참 후에야 이를 웃으며 보고 있던 제롬이 탁자 위로 살짝 손바닥을 펴 보이자 박수를 멈춘다.

 

 “이보게들, 잠시만. 잠깐 기다려보게. 이런 법이 어디 있나?”

 

 발간디안이 단상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니며 계속 손을 흔들어 회의장에 들어선 사람들의 시선을 한데 모은다.

 여전히 단상에 서서 이를 가만히 보고 있던 제롬은 발간디안이 굳은 얼굴로 그의 앞에 서자 천천히 입을 연다.

 

 “법이라면 어떤 법을 말하는 겁니까?”

 “우리 자유민 대표 회의에는 회의 규칙이 있는 걸세,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의장에게….”

 “제가 알기론 여기 불려 온 자유민 대표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말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닙니까?”

 “아니, 그래서야 누구나 저 할 말만 하고 그래서 회의 진행이 되기는 하겠나? 게다가 이건 순 어거지 아닌가? 그래서 규칙이 있는 거고, 그러니까. 우선 의제를 나에게 제출하면, 그 후에 순서를….”

 “아, 그렇군요. 그건 제 실수군요, 인정합니다. 자 그럼!”

 

 일방적으로 발간디안의 말을 끊어 버린 제롬은 잠시 말끝을 끌며 발르에 어깨에 올린 손을 내린다.

 

 “… 잠시만… 기다… 리시면, 정식… 으로….”

 

 발르를 향해 돌아선 채 무릎을 반쯤 굽힌 제롬은 양손으로 발르의 허리춤에 매인 여러 가죽 끈을 고르기 시작한다. 금새 하나를 골라 낸 그는 이를 풀기 위해 이리저리 손을 쓰기 시작한다. 회의장에 들어선 누구도 입을 열지 못 하고 이를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제롬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수비대장의 지휘도를 칼집째 끌러 탁자 위에 올려 놓는다. 제롬은 발르를 다시 옆으로 밀어 단상에서 내려 보낸 뒤 단상의 한가운데, 탁자 뒤에 정자세로 선다.

 

 “그럼 여기 대표님이 방금 전 말한 그거 하겠습니다.”

 

 제롬은 왼손을 들어 동행한 부관들을 향해 재빠르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한다. 이를 본 길리안과 기민이 빠른 걸음으로 각각 발르의 왼편과 제롬의 오른편에 서서 회의장 방향으로 돌아선다.

 두 부관이 정자세를 취하는 것을 기다린 제롬은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의장석 맞은 편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발간디안을 가리킨다.

 

 “이 분이 좋아하시는 그 정식… 뭐더라? 규 머시기? 의 뭐?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잘하는 게 칼 쓰는 거! 큰 소리치는 거! 그런 거! 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제롬은 좌우를 한 번 둘러 본 뒤 계속 말을 잇는다.

 

 “수비대에선 옛날부터. 수비대장이 얘가 내 다음 대가리다! 라고 지정을 안 하고 죽으면, 부관들끼리 모여서 결정하는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만! 어째서 작년에 발리크 수비대장이 죽은 다음, 멋대로 발르가 수비대장 대행이 됐는지는 궁금합니다, 만! 지금은 안 묻겠습니다.”

 

 말 중간 중간 잔뜩 힘을 주며 멋대로 뱉어 낸 제롬은 작위적으로 입꼬리를 양쪽으로 길게 올리며 웃어 보인다. 이를 올려보고 있던 발간디안 역시 제롬을 향해 웃어 보이며 양손바닥으로 제롬의 손가락을 살포시 접어 누른다.

 

 “그래서 어쨌든. 그, 먼저 내야 한다는 그걸로. 여기 부관 발르와 저 제롬 중에 누가 다음 수비대장이 될 지에 대해서 여러 대표들께서 정해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그 의 머시기 제출하면 되는 거지요?”

 

 또 다시 말끝에 힘을 주어 끝을 맺은 제롬은 발간디안의 대답은 기다릴 생각도 없는 듯, 곧바로 자신이 탁자에 올려 놓은 지휘도를 왼손으로 들어 올린다.

 제롬은 발간디안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뗀다. 곁눈질로 제롬을 살피던 기민이 잽싸게 옆걸음으로 자리를 비켜주자, 제롬이 옮겨 선다. 곧이어 발간디안을 바라보며 보란 듯이 칼집을 든 왼팔을 들어올려 칼 손잡이로 의장석 방향을 가리키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발간디안은 말 없이 작게 숨을 고른 뒤 만면에 미소를 띄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는 미소를 잃지 않고 제롬의 지휘도를 살짝 옆으로 밀친 뒤 의장석에 올라선다. 그는 약간의 시간을 두고 넓은 회의장을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참석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춘다.

 이윽고 모두와 눈인사를 끝낸 발간디안이 고개는 정면을 향한 채, 양손을 탁자 위에 어깨 넓이 정도로 벌려 올린다. 그는 길게 한 번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쉰 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러면, 조금 전 중단되었던 선거를 다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 설명을 드리자면. 이것은 찬반의사표시로, 제가 안건을 발표한 후 각각 찬성이나 반대에 손을 들어 표시를 해 주시면 됩니다.”

 

 발간디안은 왼쪽으로 몸을 조금 틀어 발르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발간디안과 눈이 마주친 발르는 고개를 작게 좌우로 흔들어 보인다. 하지만 발간디안은 이를 무시하고 다시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서 팔을 뗀 후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원래라면 여기 발르 부관이 그 동안 문제 없이 수비대장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그걸 계속 하는 것에 대한 인정 여부에 관한 찬반선거였습니다만. 제롬의 의견도 있고 하니 의제를 조금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멈춘 발간디안은 잠시 고개를 돌려 제롬을 곁눈질한다. 눈알을 위아래로 굴리며 제롬을 훑어 본 발간디안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정면을 바라본다. 그는 탁자의 양 끝을 손으로 잡고 목소리를 높인다.

 

 “왕국이 무너진 후 10년. 이 단티시아의 혼란을 수습했고. 바인 대신관께 인정 받고 추천 받아. 자유시의 대표가 된 게 바로 저 발간디안입니다. 그런 사람의 수양 아들이며, 동시에 부관이 되기 전 수도자로써 신께 봉사했던. 그러니까 다시 말 해. 수도자였던 제가 그 재능에 반해 데려와 자식으로 삼을 정도의, 여기 수비대장 대행 발르가. 우리 자유시 단티시아의 수비대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시면 오른손을 들어주시고. 반면 어수선한 시기엔 저기 촌구석에 살다가. 우리 자유민들이 썩어빠진 단티아의 개들을 몰아내고, 자유민 대표회를 만든 이후에나 수비대에 들어 와서는. 나이와 경력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여기.”

 

 발간디안은 오른팔을 옆으로 뻗어 엄지손가락으로 제롬을 가리킨다.

 

 “제롬 부관이 수비대장이 되어야 맞다고 생각하시면 왼손을 들어주십시오. 잘들 한 번 생각해 보시고, 잠시 후 시작하겠습니다.”

 

 발간디안의 말이 끝나자 회의장 내부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다. 선단장과 부관, 여러 신관들, 근처 마을의 농부와 어부들, 시내의 가게 주인들 등 이십 여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옆에 사람을 찾아 작은 소리로 무언가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어수선한 와중에도 발간디안은 미소를 머금고 대표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려 분주히 시선을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미소를 잃지 않은 제롬은 발간디안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눈을 감은 뒤 검을 든 그대로 양팔을 앞으로 모아 팔짱을 낀 상태로 침묵을 지킨다.

 

 “자, 그러면.”

 

 발간디안의 한 마디에 회의장의 웅성거림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이윽고 완전한 침묵이 찾아오자 발간디안이 다시 입을 연다.

 

 “오늘의 마지막 의제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제 왼편에 선 현 수비대장 대행 발르가 수비대장직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른손을 들어 주시고, 반면 제롬이란 사람이 수비대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손을 들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발간디안이 말을 마치자 회의장이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여러 대표들을 한 번 둘러 본 그가 미소 지으며 자신의 오른손을 반쯤 올렸을 때 별안간 제롬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

 

 “기민! 길리안!”

 “네! 대장!”

 

 두 부관이 재빠르게 차렷자세로 대답하자, 여전히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비딱하게 정면 위로 향한 채로 제롬은 다시 한 번 큰소리를 지른다.

 

 “전투 자세!”

 “네! 대장!”

 길리안과 기민은 대답과 동시에 각기 자신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들고 정면을 겨눈다. 동시에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무릎을 살짝 굽힌다.

 

 “이… 이봐! 뭐, 뭣들 하는 짓인가!”

 

 회의장에 참석해 있던 선단장 라난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외쳤다. 갑작스런 일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 가운데 그가 다시 입을 연다.

 

 “이보게들, 회의 도중에 감히 그런….”

 “아! 선단장님! 지휘하는 배는 얼마 안되지만, 그래도 어쨌든 단티시아 선단의 최고 아니십니까?”

 

 어느새 눈을 뜬 제롬이 여전히 팔짱을 낀 상태로 말을 잇는다.

 

 “거기서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려서 그런데, 할 말이 있다면 앞으로 나와 주시지요.”

 “이 중요한 회의 도중에 갑자기 칼을 빼들고 그러면….”

 “뭐라고요? 잘 안 들리니 앞으로 나와주시지요. 동행자가 있다면 같이 나오셔도 됩니다. 아니, 나와주시지요.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제롬. 내가 나서서 할만한 그런 이야기가….”

 

 라난이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어 나가려는 찰나 제롬이 다시 한 번 그를 쏘아붙인다.

 

 “그….”

 

 홀로 자리에서 일어서 있던 라난은 멋쩍은 표정으로 주위를 몇 번 둘러 본다. 이윽고 그의 부관들이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뱉어낸다.

 

 “그… 그냥 계속 하시게.”

 

 결국 입을 다문 그가 별 수 없이 도로 자리에 앉는 것을 보자, 제롬은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회의 계속 하시지요. 의장님.”

 

 발간디안은 고개를 돌려 칼을 뽑아 든 두 부관을 번갈아 본다.

 

 “아니, 아닐세.”

 

 발간디안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치만 살피는 라난을 한 번 쏘아 본 뒤, 고개를 돌려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제롬을 쳐다본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발간디안은 오른편으로 몸을 틀어 단상을 내려와 제롬의 앞에서 발을 멈춘다.

 

 “자네가 이겼네. 서임식은 예정대로 진행함세.”

 

 작은 목소리로 제롬에게 말을 건넨 발간디안이 회의장 벽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려 이를 보고 있던 발르가 그를 따르려는 듯 발을 움직이자, 그 옆에서 칼을 뽑아 들고 있던 기민이 팔꿈치로 쳐 주의를 준다. 결국 발간디안은 조용한 회의장의 한 켠에 있는 보조 출입문을 통해 홀로 빠져나간다.

 

 발간디안의 발소리가 사라지자 그제서야 눈을 뜬 제롬은 팔짱을 풀고 의장석으로 올라 선다. 손에 들고 있던 지휘도를 단상 위에 큰 소리가 나게 내려 놓은 뒤 양팔로 단상을 짚은 채 앞으로 몸을 기댄다. 그대로 회의장을 한 번 훑어 본 제롬이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작은 소리로 말한다.

 

 “됐어. 이제 거둬.”

 

 기민과 길리안이 각각 자신의 칼을 다시 칼집에 꽂아 넣은 뒤 정자세를 취하자, 제롬 역시 앞으로 기댔던 몸을 세워 정자세를 취한다. 탁자에 올려 둔 지휘도를 허리띠에 대충 꽂아 넣은 뒤 만면에 미소를 띈 채로 큰 소리로 말을 꺼낸다.

 

 “아무래도 긴 회의 때문에 의장님께선 피곤하신지 먼저 들어가신 모양입니다. 뭐 어쨌든! 오늘 회의는 이상입니다. 모두 돌아가 주시고! 내일 대신전에서 있을 서임식에 빠짐 없이! 참석 바랍니다.”

 

 말을 마친 제롬은 한껏 미소 지으며 자신의 팔을 뻗어 발르를 끌어 당긴다. 고개를 숙인 채 눈치만 살피고 있던 발르는 순순히 단상 위로 올라선다.

 

 “길리안, 발르 데리고 가서 수비대 전원 집합시킨다. 기민, 대신전에 가서 서임식 준비하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롬은 발르를 앞으로 밀어 버리고 발르는 역시나 말 없이 탁자를 돌아 단상 앞으로 내려선다. 제롬의 말에 정자세로 고개만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은 재빨리 그를 향해 몸을 돌리며 오른주먹을 올려 가슴에 대고 상체를 숙인다.

 

 “네! 대장!”

 

 제롬은 역시 탁자를 돌아 단상의 앞으로 내려서며 발르의 등에 양손을 올린다. 발르의 등을 밀며 회의장을 가로질러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자, 돼지들아! 제대로 한 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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