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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100번의 환생
작가 : 디버스대도서관
작품등록일 : 2016.8.22
100번의 환생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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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서평등 독자님들 존재감을 드러내주시면 감사합니다. :) 신급 로맨스 / 돌아온 커플 / 오글 달달 크리티컬 주의 /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널 잃는다. 그러니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루스) / 결국엔 당신도 나를 사랑했어요. (아카른) / 가만히 있어요. 이걸로 봐줄테니. (무차) / 기억을 잊은 채 100번의 환생을 거듭하는 여자. 그녀의 사랑을 갖고자 고군분투하는 왕들의 이야기.

 
음. 제 점수는요.
작성일 : 16-08-26 01:06     조회 : 183     추천 : 2     분량 : 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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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

 

 "......."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지금 나는 침대위에 앉아 있고, 루스경은 소파에 앉았다. 그는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는데, 동시에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내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며 입술을 달싹이다 말고를 반복했다. 처음 봤을 때도 그렇지만 무언가를 할 듯싶다가도 망설이는 모습이 은근 눈에 걸렸다. 이 남자 대체 뭘 저렇게 갈등하는 걸까.

 

 "저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어요?"

 

 그런 그를 보다 답답해 먼저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손으로 나를 가리키려 들다가 다시 입을 가렸다.

 

 "보기보다 성격이 내성적이신가 봐요."

 

 그는 헛기침을 했다.

 

 "흠. 그런 건 아닌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뭘요?"

 

 "......."

 

 아까 분쟁의 주기에 태어난 여자들을 죽이네 마네 하는 건 단호하게 자르더니, 그 외에는 심하게 갑갑한 남자 같아 보였다. 내게 뭔가 말하려고 하는데 되게 어려워하는 느낌이랄까.

 

 그가 내게 하기 어려워할 만한 얘기가 뭐가 있을지 살짝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희생양은 입성하고 3년을 못 넘기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여기까지 생각이 오자 이상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잔혹한 명령을 따르려고 하긴 해도 원래 사람 자체는 좋은 것 같아 보였다.

 

 어쩌면 내 앞날에 예정된 심한 일들이 있는 게 아닐까. 그게 불쌍해서? 미리 알려주고 마음의 각오라도 시켜주고 싶은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다 죽여야 한다고 말했었는데 내가 우겨서 나포함 11명이 살아남아있다. 그렇지만 성에 가면 어차피 죽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데 말하기가 너무 어려운 걸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차 안 좋은 상상들이 연이어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불안함에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내 불편한 표정을 루스경은 감지했는지, 조심스레 물어왔다.

 

 "괜찮아?"

 

 에이, 상상하는 것 보다 차라리 직접 듣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요."

 

 "내가 말하면 불쾌해 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심호흡을 했다.

 

 ".......무슨 말이 나와도 당신을 탓하지 않을게요."

 

 나와 루스경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잠시 뒤 그의 목울대가 일렁이더니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러고 잘 거야?"

 

 "네?"

 

 그의 시선이 내 얼굴부터 발끝까지 한번 내려갔다 다시 올라왔다. 그의 시선을 따라 나도 내 몸을 따라가는 순간.

 

 나는 저절로 눈을 감았다.

 

 이런. 그러고 보니 아까 내동댕이쳐지고 맞고 굴렀지. 옷도 뜯긴 걸 루스경의 망토를 둘러줘서 가리고 있던 참이다. 아직까지도. 난 순간 드는 민망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혼란이 왔다. 얼굴이 뜨거웠다.

 

 "무, 무슨 소리에요! 당연히 씻어야죠!"

 

 나는 벌떡 일어났다.

 

 "우물, 우물이 어디 있죠? 1층으로 내려가면 있나요?"

 

 내 말에 그는 자신의 미간을 잡았다. 잠시 그러고 있던 그는 곧 일어나 룸 한쪽의 문을 열고 말했다.

 

 "여기가 욕실. 여기서 씻으면 돼."

 

 그의 안내대로 나는 안에 들어섰다. 뭔가 은은하고 반짝이며 깔끔했다. 한 벽면이 모두 큰 거울로 되어 있었고, 세숫대야 비슷하게 생긴 그릇이 벽면 중간 높이에 붙어 있다. 욕조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금속과.......아! 그렇다. 도자기다. 전부 도자기로 만든 느낌? 그런데 물이 안 보인다?

 

 내가 한참이나 주변을 둘러보자, 그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욕조로 가서 벽에 붙어 튀어나와 있는 걸 올렸다.

 

 솨아---

 

 벽면에 붙어있던 긴 관에서 마치 비가 오듯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걸 다시 내렸다. 그리고 다시 올리더니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보이며 말했다.

 

 "이건 샤워기. 올리면 나오고, 내리면 그치고, 오른쪽은 따뜻한 물. 왼쪽은 찬 물"

 

 그리고 그는 세숫대야 옆 선반 위 꽃장식과 함께 놓여있는 예쁜 용기들을 가리켰다.

 

 "이건 비누. 이건 오일. 이건 치약. 뭔지 알지?"

 

 "그럼 제가 그런 것도 모를까 봐요?"

 

 내가 반문하자 그는 바로 한쪽 벽면의 선반 장을 열었다. 그러자 수건과 칫솔, 가운. 기타 목욕용품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보였다. 그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자. 이제 됐지? 그럼."

 

 설명을 마친 그는 바로 욕실 문을 닫고 나갔다.

 

 "......."

 

 들리진 않아도 왠지 그의 한숨소리가 느껴졌다. 문득 그가 뭔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나는 문 앞에 귀를 바짝 대었다. 나직하고 작은 목소리라 잘 들리진 않았지만 그가 했던 말 중 한 줄은 들을 수 있었다.

 

 "이번이 상태가 제일 심각하네. 은둔 마을인지 뭔지 원시 시대도 아니고.......우물이란 단어를 들을 줄이야."

 

 그는 한숨을 쉬며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의 표현을 빌자면 나는 시골 촌년이 아니라 원시 촌년 수준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물을 비처럼 쏟아낸 연결관을 보았다.

 

 "내가 저것도 모를까 봐. 샤워기."

 

 나는 툴툴대며 그가 알려준 샤워기의 조작 레버를 올렸다.

 

 시원한 소리와 함께 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다시 내렸다.

 

 뚝.

 

 물이 바로 멈췄다.

 

 다시 올렸더니 비가 한 줄기 쏟아진다. 다시 내렸다. 그의 말대로 오른쪽으로 돌려 올렸더니 곧 따뜻한 물이 쏟아졌다. 왼쪽으로 돌렸더니 차가워졌다.

 

 "아하. 아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나는 한참 샤워기의 조작 레버를 올리고 내리길 반복했다. 그러다가 이제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르고 있던 망토를 끌러 내렸다. 그러자 한 벽면 전부를 차지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오 이런. 디바인이여.

 

 곱게 빗어내려 찰랑거렸던 머리는 지들끼리 엉켰다. 얼굴 한쪽은 레단에게 얻어맞아 붉게 부어올랐고, 입술을 깨문 탓에 입가엔 피가 말라 붙어 있었다. 목 부근은 검댕이라도 묻은 듯 얼룩덜룩했다. 드러난 살결과 형편없이 구겨진 옷엔 흙과 먼지, 건초 부스러기가 붙어있었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레단에게 강제로 뜯겨 드러난 가슴 부근엔.......

 

 나는 천천히 그 붉은 흔적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두텁게 말라붙은 붉은 것들에 손가락을 대고 조금 더 힘을 주자 손끝에 지저분한 느낌의 끈적거림이 묻어났다.

 

 '너 어차피 죽을 거잖아!'

 

 문득 레단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듯 했다. 아까는 워낙 내 목숨에 집착하여 그의 죽음에 관해선 생각 못했다. 당시는 그저 나를 범하고 죽이려 위협하던 짐승이 치워진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러고 보니 그의 쌍둥이 누이 레아가 생각났다.

 

 '레단이 죽은 거 모르고 있을 텐데.......'

 

 그에게서 흐른 끈적거리는 혈흔을 만지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게 그를 잃은 슬픔인지, 배신감인지 모르겠다. 나는 모두 벗어버리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기의 물이 흐를수록, 혈흔도 먼지도 건초 부스러기도 쓸려 내려갔다. 나는 내친김에 옷과 그의 망토도 대강 빨았다. 이따 밖에 적당한 곳에다 널어야겠다.

 

 그러고선 잠시 비처럼 내리는 물줄기를 맞다가 비누로 몸을 씻어내었다. 더러움이 가실수록 욕실 안에는 은은한 비누향이 들어찼다. 다 씻고 난 후 다시 거울을 보았다. 씻었음에도 목은 여전히 얼룩덜룩했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모양으로 멍 자욱이 남았다. 한숨이 나왔다.

 

 보관장을 열어 수건으로 머리를 한번 턴 후에 전부 감싸 올렸다. 수건으로 대강 물기를 닦고 오일까지 바르고 나자 몸에서 기분 좋은 향이 풍기기 시작했다. 깨끗해지고 오일 향까지 나자 문득 무거웠던 마음도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다시 큰 거울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거울 안의 내 모습이었지만.

 

 수건으로 감싸 올렸지만 귤빛 머리칼의 몇 가닥은 다시 삐져나왔다. 젖은 머리칼의 끝에는 물방울이 고여 어깨와 쇄골을 타고 한 두 방울씩 흘러내린다.

 

 씻고 나자 붓기가 약간 가라앉은 얼굴. 목. 팔. 가슴. 허리. 엉덩이. 다리. 매끄럽게 떨어지는 라인, 내 몸은 못 봤어도 또래 여성들의 나신은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그들은 나를 보고 감탄했는데, 나는 내 전신을 볼 수 없기에 그게 어떤 차이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보니 알 것 같다. 그들과 나는 몸의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예쁘다."

 

 난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몸에 감탄했다. 이런 몸이었나. 그러고 보니 내 알몸을 전체적으로 본 건 지금이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넋을 놓고 나를 감상하다가 밖에서 그가 한 노크에 정신이 들었다.

 

 "........멀었어?"

 

 "곧 나갈 거예요."

 

 나는 재빨리 가운을 입었다. 그러다 문득 그가 어딘지 모르게 좀 불안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까도 이런 그의 분위기에 무서운 상상이 들어 긴장했었는데, 사실 씻으라는 얘기였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원래 그런 성격인가보네."

 

 가운이 풀리지 않도록 허리 매듭을 꼭 쥐어 매고선 머리를 다시 한 번 수건으로 매만졌다. 완벽히 마르진 않았지만, 이제 깨끗해 보였다.

 

 나는 빨래를 챙겨들고 욕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 문 앞에 서 있는 루스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여기 서 있어요?"

 

 "......."

 

 그는 나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나를 살폈다.

 

 "왜요? 아직 더러운 데가 있나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그의 시선의 끝에는 내가 대강 빨은 빨래가 들려있었다.

 

 "그거 뭐야?"

 

 그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더러워진 제 옷이랑 당신 망토요. 내건 대강 빨았지만 루스경 건 제대로 빨았어요. 널어서 말린 후에 돌려줄게요."

 

 그러자 그는 내 손에 들린 빨래 뭉치를 낚아채더니 방 한편에 놓인 통에 넣었다. 내가 의아한 듯 보자 그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다 버려. 별 짓을 다 해. 지금부터 이런 거 할 필요 없어."

 

 얘가 지금 뭐라는 거니. 옷이 이거밖에 없는데? 당황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에에? 그럼 난 뭐 입어요?"

 

 그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새로 줄게."

 

 그는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잠시 숨을 멈췄다. 분명히 그의 시선이 아래쪽부터 내 얼굴까지 올라왔다. 그러다 다시 내려간 시선이 얼굴과 가슴 사이에서 멈췄다.

 

 "?"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자, 그는 내 한쪽 뺨을 어루만지더니 이어 내 목을 조심스레 만졌다. 그러더니 미간이 일그러졌다. 금방 그 의미를 눈치 챌 수 있었다. 목에 멍이 있었으므로. 곧 그는 잇새를 무는 듯 턱에 힘이 들어갔다. 왠지 모르지만 매우 불쾌한 듯 했고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당한 건 나였지만 왠지 그를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질 거예요."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 목소리에 그는 내 눈을 바라봤다. 살짝 한숨을 쉰 그는 그 손은 마치 나를 도닥이듯 내 어깨를 살짝 잡았다. 곧 내 눈을 떠난 그의 시선이 어딘가에 잠시 멈추더니 목울대가 일렁였다.

 

 입술. 분명히 그는 내 입술을 보고 있었다. 문득 그는 제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참는 듯.

 

 그와 나 사이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의 미묘한 반응에 불현듯 '그가 내게 키스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처음으로 자세히 본 그의 얼굴을 나 홀로 속으로만 평가하자면.......전체적인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조화로웠다. 강한 눈빛은 고집스러워보였지만. 마지막에 무언가 갈등하는 듯 그의 매력적인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입술에 내 입술을 대어보고 싶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와중에 별 생각을 다한다. 난 내 안의 충동을 억지로 쫓으며 속으로 그의 외모에 대한 평가 중이었다는 걸 억지로 떠올렸다. 음. 그러니까 제 점수는요.

 

 "10점 만점에 11점입니다."

 

 순간 그의 집중한 표정이 풀렸다. 아뿔싸.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한 걸 그가 똑똑히 들었다.

 

 "뭐?"

 

 "요.......욕실 말이죠. 정말 좋았어요."

 

 나는 급한 대로 얼버무렸다. 그러자 긴장이 풀린 듯, 그는 한쪽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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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네Alfine 16-08-26 02:06
 
이 장면을 몇 번 읽는지 모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ㅋ 이때부터 저는 확실히 루스 편으로...쿠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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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스대도서… 16-08-27 00:07
 
알피네님께서 좋아해주시는 장면이라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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