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와 시인이 검사실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곧 기훈과 치수가 도착했다.
“가수 뭐라대? 아부지 왜 쓰러시졌대? 둘이 어떻게 발견했노?”
“가수 행님은요? 시인아, 사장님 아직 안 깨어 나셨나?”
시인이 고개를 들어 기훈과 눈을 맞췄다.
어제 기억이 너무나 천천히 눈앞으로 지나갔다.
선수와 시인이 안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시인아버지는 거실에서 안방으로 반쯤 걸쳐 쓰러져 있었다.
아빠!
119, 119!
가수 오빠한테 얼른 전화해야지!
아빠!
일어나요!
아빠의 바지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선수와 시인의 옷에 핏자국이 말라 얼룩져 있는 모습을 치수가 발견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맞은 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훈은 검사실을 기웃거리며 앉지도 못하고 왔다갔다했다.
잠시 후, 아버지가 검사실에서 나왔다.
너무도 평온한 얼굴로 잠드신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지금 정가수선생님이 영상의학과장님과 판독 중입니다. 기다리십시오.”
간호사가 아버지를 모시고 바삐 중환자실로 돌아갔다.
시인이 뛰어 갔고, 남자 세 명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셋은 약속한 것도 아닌데 영상의학과 검사실 문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가수가 나왔다.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어떤 표정인지 알 수가 없어 다들 긴장하기 시작했다.
“암이다.”
“......”
기훈은 눈을 감았고, 치수는 주먹을 쥐었다.
선수만 오히려 표정이 차분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일단 내시경으로 출혈 잡았다. 쓰러지신 건 출혈이 갑자기 일어나서 쇼크가 왔을 거고.. 수술해야 한다.”
“수술하면 괜찮아 지는 거야?”
가수가 무표정하게 선수를 쳐다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대장암수술 잘 하시는 분이 지금 우리 병원에 와 있다. 학회가 있었거든. 병원장님.. 장인어른이 부탁하셨고 어렵게 승낙하셨다. 내일 수술 하실 거다.”
선수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내가 그거 물어봤어? 그래서! 수술하면 괜찮으냐고! 질문 못 알아들었어?”
“괜찮으실거라고 믿자.”
“뭐? 믿자고? 믿자고! 그 동안 뭐 했어! 형 그 동안 뭐했냐고! 아빠 저렇게 될 동안 의사새끼가 어떻게 몰라! 내가 병신이야? 아빠 바지가 다 젖도록 피가 나왔는데.. 어흐흐흑.. 그 정도면.. 어흐흐흑.. 가수형, 괜찮지? 아빠 괜찮지? 어흐흐흐흑.. 형이 의사니까 무조건 살릴거지? 어흐흐흑..”
선수가 가수를 붙잡고 울고 시작했다.
치수와 기훈이 눈물을 흘리며 선수를 가수에게서 떼 냈다.
가수를 여전히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일단 좀 쉬어라. 다들.”
그리고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시인이 걸어오며 가수와 마주쳤다.
걸어오는 가수를 보며 시인이 멈춰 섰지만 가수는 시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걸어갔다.
시인은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 아빠 상태를 묻지도 못하고 가수의 뒷모습만 보며 넋 나간 듯 그렇게 서 있었다.
아버지는 그 날 저녁, 정신을 차렸다.
아픈 데도 없는데 다들 호들갑 떤다며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눈이 퉁퉁 부은 자식들을 어루만졌다.
가수는 별다른 말없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도하시는 분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전했다.
아버지는 웃으며 고맙다고 말씀 하셨다.
아들이 의사라 조금만 아파도 최고 의사한테 이렇게 수술을 받는다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아버지의 손을 시인이 꼭 잡았다.
“아빠, 암 다 떼면 시원하겠다. 싹 다 떼고 나와요. 잠 푹 주무시고 나면 끝날 거야. 알았죠?”
“그래, 알았다. 우리 딸도 좀 자라. 얼굴이 퍼석하다. 선수는?”
“오빠야? 저기 뒤에 몰래 숨어 있어요. 아빠 수술 끝나고 볼 거래요.”
“우리 아들 무슨 겁이 저래 많노. 허허허.”
아버지는 웃으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시인은 수술실 문이 닫히자 수술환자 보호자 대기실로 뛰어갔다.
그리곤 ‘수술중’이라는 글자가 적힌 화면만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다.
선수는 수술실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은화가 손을 잡아 주니 한 번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처연해 은화가 도리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빠, 오빠가 힘내야 해요. 그래야 아버님이 웃으시지. 우리 같이 기다려요.”
가수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선수를 스쳐 수술실로 들어갔다.
가족이니 수술에 참여는 못하고 참관이라도 할 모양이었다.
이윽고 아름도 와서 선수에게 괜찮을 거라고 위로를 한 후 가수를 따라 들어갔다.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아직 수술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시간..
선수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의아하게 쳐다보는 선수와 눈이 마주쳤다.
가수가 선수를 쳐다보았다.
한참을 둘은 그냥 계속 마주 보았다.
“정선수, 가서 시인이랑 아버지 입원에 필요한 것들 좀 챙겨 온나.”
“수술 끝나고 가져 오면 되잖아.”
“수술 끝나면 바로 옆에서 간호해야지. 지금 갔다 온나. 금방 안 끝난다.”
“.... 알았다. 혼자 갔다 오께.”
“재수씨, 시인이 데리고 갔다 오세요. 아버지 물건이라 시인이가 잘 챙길 겁니다.”
“네, 아주버님. 빨리 다녀 올게요.”
“오빠, 얼른 가요.”
선수와 은화가 일어나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가수가 의자로 걸어가서 아주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곧 아름이 따라 나와 그 옆에 앉았다.
“끝났어?”
“응..”
“내가 의산데..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이렇게 손 한 번 못 쓸 때까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
“5년 전에 건강검진하고.. 어떻게 그 뒤로 한 번도 안 하셨을까..”
“......”
“내가 꼭 하시라고.. 매년 하셔야 한다고.. 그렇게 말만 했어. 말만..”
“......”
“엄청나게 아프셨을거야..”
“......”
“나는 어떡하지? 아버지 안 계시면.. 내가 누구한테..”
“가수씨.. 일단..”
가수가 아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 너는 답을 알고 있느냐고.. 간절한 눈빛이었다.
“동생들 오기 전에 한 번 울어.”
가수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마치 자기는 울 자격도 없다는 듯이.
“지금 아니면.. 자기 못 울어. 그니까 내 말 듣고.. 지금 울어.”
가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름이 가수의 얼굴을 안았다.
소리도 없이, 움직임도 없이..
아름의 옷이 젖어가고 있었다.
텅 빈 대기실의 화면에 글자가 바뀌었다.
‘수술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