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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금요일에 만나요
작가 : 시더우드
작품등록일 : 2017.6.6

감정의 무게를 재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노래 가사처럼 사랑과 우정 중 무엇이 더 무거울까요.
죄책감과 질투 중 어느 것이 더 가벼울까요.
감정의 경중에 따라 우리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또는 선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여기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있습니다.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고민합니다.
선택이 어떠하든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모두가 행복할 수도 있겠지요.
서로의 선택이 바꿔 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열여덟번째 금요일 : 여름밤
작성일 : 17-07-31 22:16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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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내 마음은 여름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데, 시간은 잔인하게도 재빠르게 나를 개강 날로 데려가 버렸다. 9월이라는게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오랜만에 학교 정문을 바라보며 제각기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 등교길을 걸어가니 새삼 개강이 실감이 났다. 개강이 다가오기 전, 다행히 카페 사장님과 합의를 통해 나는 저녁 시간대로 아르바이트를 그대로 옮기게 되었다. 새로운 걸 또 구해야 하나 걱정하던 차에 정말 다행이었다. 9월의 개강은 분위기가 참 3월과는 확연히 달랐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던 시간은 찬란한 만큼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내 인생에서 처음 가져 보았던 활기는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뜨거운 온도에 녹아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성희도 마찬가지였다. 개강 첫 날, 첫 수업을 함께 하게 된 동지로서 만난 우리는 교양 건물 앞에서 서로 더위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상태로 만났다.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강의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성희는 아직 수업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책상에 팔을 뻗고 누워 버렸다.

 "아직 수업도 시작 안했다, 야. 많이 피곤해?"

 "으응. 엄청…"

 "오늘이 개강인데…?"

 "개강이 문제가 아니라. 연애가 피곤해."

 성희가 눈을 비비며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워 기지개를 켰다. 연애가 좋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또 금새 피곤하다니.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성희를 바라보았다.

 "좋다며? 아주 좋다고 웃고 다녔을 때가 아직 한 달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좋아! 되게 좋은데. 거리를 어느 정도 까지 유지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연애를 하면 나 자신을 알게 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더라. 내가 이렇게 내 시간과 공간이 중요한 사람인 줄 몰랐어. 물론 날 이해해주기야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에 맞춰 따라가는 일이 이렇게 힘든 거라고 아무도 안 알려줬다구.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내가 미안해 하고 있어."

 성희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하긴 성희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성희는 독특하고 재밌다는 평을 듣는 만큼 가지고 있는 취미, 관심사도 다양하고 또 그에 따른 친구들도 많았다. 내가 평소에 연락을 할 때도 오늘은 어떤 전시회를 간다, 무슨 행사가 있다 등등 여기 저기 다니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연애 이전처럼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고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나는 혼자 다니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성우는 그게 잘 이해가 안 가나 봐. 자기가 있는데, 왜 혼자 가야 하냐고 묻더라구. 나한테는 그게 충격이었어. 나는 혼자 다니는 일이 너무 당연한 거였는데 누군가를 사귀면 그게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고…"

 연애를 시작하기만 하면 꽃길이 펼쳐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누군가는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성희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수업 오리엔테이션은 이미 말할 것도 없이 적당히 지루했고, 또 적당히 빨리 끝났다. 오티를 듣는 내내 성희는 처음 보는 골똘한 표정을 하며 교수님 너머 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음 수업도 전공 과목이었기 때문에 함께 들으러 갈 수 있어 참 좋았다. 수업이 시작하려면 한참 여유가 있어서, 우리는 지난 학기에 눈여겨 보았던 한적하고 시원한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약처럼 들이키더니 성희는 고민해왔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사실 아예 연애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냥 나는 평소의 나 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상처받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 그게 우리가 좋아하는 과정 속에 포함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고. 나 때문에 누가 상처받는 걸 보는게 이렇게 미안한 건 줄 몰랐어."

 "건이도 그런 말을 했었는데."

 "아, 진짜? 의외인데. 연애도 많이 안 해봤다며, 건이."

 "응. 그런데 자기가 연애를 하면 상대방을 너무 힘들게 할 것 같아서 연애 안 한대."

 성희를 따라 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꿀꺽, 삼켰다. 입가에 쓰디쓴 맛이 가득 맴돌았다. 나는 아직도 이 쓴 맛이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성희는 어떻게 저렇게 벌컥 벌컥 마시는지 신기했다. 카페 창가로 한 여름의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창 밖으로 바라보는 푸른 하늘은 더위와는 상관없이 아름다워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이 창 밖을 조금만 벗어나면 뜨거운 더위가 목을 조르겠지. 연애는 지금 안에서 바라보는 이 파란 하늘처럼 시원하고 달콤하기만 한 줄 알았다. 시작하기만 하면, 누군가를 만나기만 한다면. 그러나 연애는 창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덥든 춥든 날 것 그대로의 관계였다.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이 두려워졌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곧바로 성희는 이제 막 썸을 타는 너에게 어두운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며 성우 오빠와 있었던 즐거운 일화들도 몇 가지 이야기해주었다. 함께 어두운 강변을 걷다가 성우 오빠가 발목을 삐끗해 성희가 집까지 데려다 준 일, 첫 데이트 때 어느 식당을 가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했던 일 등, 성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고민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증거겠지.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며 카페를 나섰다.

 

 수업이 모두 끝나자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일부러 맞춘 것은 아니지만, 선호도 이 즈음해서 끝날 예정이었다. 성희는 아까 울적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좋은 시간 보내라고 말한 뒤 미처 잡을 새도 없이 뛰어가버렸다. 카톡을 확인해보니 선호도 수업이 끝난 모양이었다. 우리는 모든 학우들이 만나는 만남의 장소, 정문 앞에서 지금 만나기로 했다. 누군가를 이런 방식으로 만나러 가는 길은 참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에도 동기들과 허구한 날 만나기로 하는 장소인데도 이 익숙한 길 때문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이런 게 설레는 걸까. 좋아하는 걸까. 나는 궁금해졌다. 어쩌면 나는 건이가 항상 곁에 있어서, 그래서 건이를 좋아한다고 착각했는지도 몰라. 항상 눈 닿는 곳에 있으니까, 아주 조금만 더 하면 손에 닿을 것 같으니까 마음이 흔들렸는지도 몰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정문으로 향했다.

 

 선호는 지난 번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깔끔한 셔츠에 슬랙스 차림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키가 많이 큰 편은 아닌데도 깔끔하게 입는 스타일 덕분인지 키가 커 보이는 느낌이었다. 정문 벽에 기대 핸드폰을 하고 있던 선호가 내가 몇 발자국 더 다가가자 어떻게 알았는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바라보자 무표정했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감돌았다. 나를 바라보고 미소를 피워내는 사람을 보는 기분은 참 묘했다. 고맙기도 하고, 나도 함께 미소가 맴돌 만큼 달콤한 기분이었다. 첫 만남보다 훨씬 서로를 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막상 만나니 약간 어색함이 감돌았다.

 "아직 배는 안 고프지?"

 "응. 시간이 애매하네. 더운데 카페 갈래?"

 "괜찮아? 아까도 성희랑 카페 갔다고 했었잖아."

 "나 카페 완전 좋아해. 더운데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나아. 내가 좋아하는 카페 가도 괜찮아?"

 "그럼."

 우리는 나란히 서서 걸었다. 발을 맞춰 걷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리 오후가 되어도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짙은 녹음과 어우러져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와, 우리 학교에 이런 데가 있었어?"

 "괜찮지? 내가 우리 학교 주변에 있는 카페는 다 가봤는데 여기 만한 데가 없어. 내 비밀 카페인데 너만 알려주는 거야."

 적당한 사람을 찾는 것 만큼이나 적당한 카페를 찾는 일은 어려웠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문을 열었을 때 볼에 와 닿는 산뜻한 촉감, 코를 감도는 달콤한 커피 향,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수의 사람들, 너무 부담스럽게 친절하지도 않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카페 사장 아저씨. 이 곳은 내가 찾은 최적의 카페였다. 사실 나 홀로 온전히 찾은 것은 아니었다. 수현과 처음 만난 카페가 바로 이 곳이었다. 그 이후로 여러 곳을 떠돌아 다녀 봤지만 결국에는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수현도 이곳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지난 학기에는 별다른 약속을 하지 않아도 이 곳에 오면 수현이나 혹은 수현과 함께 있는 건이를 만나곤 했다. 건이는 혼자서는 카페를 잘 찾지 않았다. 그러나 수현이 전 남자친구와 이 곳을 자주 찾았기 때문에 요새 이 곳에 오는 횟수를 줄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역시나 다행히도 수현은 없었다. 나는 마음껏 나의 심미안을 선호에게 뽐내며 이 곳은 이 커피가 맛있다고 내가 카페 사장 아저씨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선호는 커피를 거의 입에 대지 못했다. 원래 술을 잘 못 마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커피도 잘 못 마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선호는 평소와는 다른 의미로 부끄러워 하며 오후에 커피를 한 입이라도 마시면 밤에 잠을 자지 못잔다고 고백했다. 귀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카페 사장 아저씨는 커피를 못 마신다는 선호에게 블루베리 에이드를 추천해주었다.

 

 "여기 자주 와?"

 "응. 지난 학기부터 엄청 자주 왔어. 나랑 친한 친구가 여기 단골이었거든. 나도 원래 너처럼 커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여기 알게 되고 나서는 엄청 마시게 됐어. 카페인 중독이야."

 "나는 어떻게 이런 데가 있는 줄 몰랐지."

 "원래 카페 잘 안 가지 않아? 커피 못 마신다며. 그러고 보니까 지난 번에는 커피 어떻게 마신거야?"

 생각해보니 분명 지난 번에 선호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셨었다. 나는 충격 받은 표정을 지으며 선호에게 물었다. 선호는 엄청 당황해 하며 변명했다.

 "아니, 그 때 너가 커피를 좋아한다길래. 나도 너한테 잘 보이고 싶고, 커피 한 잔 쯤이야 뭐, 마실 수도 있는거고…"

 선호의 횡설수설을 듣고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커피를 마시는 중간 중간 기침을 하면서 얼굴을 찌푸리더라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참 고마웠다. 결국 소개팅 날 저녁 집에서 한 숨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고 선호는 고백했다.

 

 선호의 고백 덕분에 약간 어색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우리는 그 동안 카카오톡 메시지로 공유했던 서로의 일상들을 탐구해갔다. 내가 한가한 오후에는 보통 무엇을 하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친구와 하는 사소한 장난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 것 누군가와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은 생경하게 느껴졌다. 사실 이런 작은 것들은 친구하고도 잘 나누지 않는 것들이니까. 아직은 낯선 이 소년에게 나의 내밀한 부분을 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우리가 한창 대화에 몰두하고 있을 때, 아직 햇볕이 은은하게 맴돌고 있던 창가가 어쩐지 어두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창가를 바라보니 수현과 건이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현은 완전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건이가 있었다. 건이는 나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만 지은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순간 나는 표정이 굳어 버렸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런 장면을 건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선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굳었던 표정을 풀고 수현과 건이를 향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미안, 내 친구들이야. 아까 여기 같이 자주 온다고 말했던 애들. 쟤들도 양반은 못된다. 말하니까 진짜 나타나네."

 "아, 정말?"

 수현과 건이도 카페로 들어오려는 듯 문 쪽을 향해 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판단이 서질 않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의 표정을 보고 선호가 걱정스럽게 물어 보았다.

 "혹시 불편해? 자리 옮길까?"

 "응, 아냐. 갑자기 만나서 좀 당황스럽네. 나야말로 미안해, 갑자기."

 내가 다시 미소를 짓자 선호도 다시 편안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니 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현과 건이는 가볍게 인사만 건네고 그렇게 오래 우리 곁에 머물지는 않았다. 수현은 흥미로운 눈빛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딱 깔끔하고 정중한 태도로 나와 선호에게 인사만 건네고 건이와 함께 2층 자리로 올라갔다. 수현과 건이가 올라가고 우리는 다시 우리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선호도 그저 친구들 굉장히 미남미녀다, 하고 선호다운 표현 방식으로 칭찬을 하고는 다른 이야기를 물어 보았다. 그냥 학교 주변에서 만나다보니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일 뿐이었다. 그러나, 선호와 이야기를 하고 웃고 떠들어도 대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창가에서 마주쳤던 건이의 모습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가시에 찔린 듯 가슴 한 쪽이 따끔거렸다.

 

 나는 선호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카페를 나와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때마침 저녁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학교 주변은 개강파티를 즐기기 위해 나온 온갖 사람들로 북적거렸기 때문에 우리는 학교와는 좀 더 떨어진 번화가로 가기로 했다. 나나 선호 둘다 과에서 개강파티가 있긴 했지만 둘다 정말 가고 싶지 않다는데 마음이 통했다. 지난 번에 선호가 가자는 대로 갔었기 때문에 오늘의 저녁 메뉴는 내가 정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나서는 선선한 여름 밤 거리를 선호와 함께 걸었다. 함께 걸으며 팔이 스치고, 손이 스치고 눈빛이 마주치고 어깨를 부딪혔다. 집까지 데려다 준다는 선호를 말렸다. 선호는 지난 번 헤어질 때와는 확연히 다른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배웅했다. 느낌이 왔다. 성희가 말했던 그 느낌이었다. 한 번 더 만나면, 우리는 사귀게 될 것이라는 그런 예감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정확하게 좋아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참 달콤했다. 선호는 특히나 다정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애정을 알릴 줄 아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방식은 참 따뜻해서 언제까지나 곁에서 그런 애정을 받고 싶은 욕심이 일게 했다. 그렇게 평범하고 다정한 커플, 나중에 헤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좋게 끝을 맺을 수 있는 그런 연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건이와 아주 잠깐, 그 찰나 창가에서 마주쳤던 순간이 선호와 함께 있는데도 종종 머릿속을 잠식했다. 평소와 달리 아주 엷은 미소를 띄웠던 그 얼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눈빛이 맴돌았다. 어쩌면 아직까지 내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을지 몰랐다. 지난 번 말했던 것처럼 갑자기 연인이 생길 것 같다는 나의 말에 당황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이 모든 것이 나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내 곁을 떠나면서 자신이 더 상처받은 표정을 했던 건이가 떠올랐다. 항상 내 곁을 먼저 떠나면서도, 자신이 어쩔 줄 몰라하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내내 나는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멈출 수 없는 생각의 흐름에 그대로 나를 내맡겼다. 답은 없었다. 확고한 마음도 없었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상태로 오늘의 이 여름밤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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