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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The Sky Is Filled With Clouds
작가 : ssssss
작품등록일 : 2017.7.30

여느 때처럼 구름이 가득한 영국 Norwich의 한 해변가. 그곳에는 어릴 적 불의의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녀의 피아노 소리가 매일 울려 퍼진다.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슬픔에 빠져 살던 그녀는 15살이 되는 해, 희망을 찾으러 뉴욕으로 떠나는데… 수 년이 흐르고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구름 속에 있는 한 남자를 본다. 그녀는 환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날 저녁, 그녀의 집에 노크 소리가 들린다…

 
The Present (Love) - 9화
작성일 : 17-07-30 20:11     조회 : 294     추천 : 1     분량 : 2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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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th Day (여섯째 날)

 

 오로르는 택시에서 내린 후 Norfolk and Norwich Hospital 의 입구부터 뛰기 시작했다. 아침은 이미 밝아 있었으나 구름 가득한 어두운 하늘에 마치 태양이 없는 것 같았다. 굵은 빗방울이 하늘에서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언제부터 내렸는지 모를 비에 땅 위로 여기저기 빗물이 고여있었다. 조리를 신은 그녀의 발이 아스팔트 땅을 밟을 때마다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아니, 이미 비에 젖어버린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온몸이 젖어버린 것도 개의치 않은채 뛰기만 했다. 오직 시선을 한 곳에 둔채로, 오직 병원을 향해… 그녀는 뛰고 있었다.

 

 그녀가 연락을 받은 것은 새벽5시 쯤이었다. 아직 꿈 속의 연주에 취해있을때, 아직 그녀가 달콤한 꿈 속에 있을 때 한통의 전화가 울렸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렇게 얼마나 울려댔을까. 수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그녀는 아직 잠에 취한 상태로 기다싶이 침대에서 내려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수화기를 귀에 대는 그 순간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여보세요?..."

 그녀가 가라앉고 갈라진 목소리를 꺼냈다. 전화기 너머로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과 우는 소리, 그리고 난잡한 발 소리가 들렸다.

 "네, 여기는 Norfolk and Norwich Hospital 입니다. 룻 테일러(가명) 맞나요?"

 한 여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로르는 그 목소리에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예, 저 맞습니다.”

 그녀가 천천히 대답했다. 그녀는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녀는 수화기 너머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녀의 바람일 뿐이었다.

 “다름 아니라 제인이 많이 아파요. 고비입니다.”

 여자가 딱딱하게 말했다. 오로르는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원래의 자리에서 떠나가는 것을 느꼈다. 소름이 끼치고 식은땀이 났다.

 "제인이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사라가 전화번호를 주며 전화를 부탁하더군요.”

 오로르는 어제 오후 제인에게 들르지 않은 것이 너무나 후회됐다.

 '당시에는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잠시만 시간을 냈으면, 노력했으면, 제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텐데...'

 오로르는 순간 수화기가 너무 무겁다고 느꼈다. 온몸 전체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눕고 싶었지만 오로르는 그럴 수 없었다. 혹시라도 수화기 너머로 어떤 희망의 메세지가 들려오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감을 저버릴 수 없었다.

 "캐런, 당장 뛰어와. 뭐하는거야!"

 “이런, 지저스… 뚜… 뚜..."

 오로르는 그제서야 그녀가 캐런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제인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캐런은 아무말도 없이 통화를 끊었다. 오로르가 기다리던 희망의 메세지는 없었다. 긴장감에 신경이 곤두섰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심장이 터질듯이 뛰었다. 그녀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후 집을 나섰다. 대로까지 뛰어나갔지만 아직 새벽이라 지나다니는 차들이 거의 없었다. 택시는 더더욱 없었다. 오로르는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불안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들은 그녀의 신경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라에게 전화했다. 사라의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 왜 꺼져있지? 배터리가 다 되었나? 아니면 지금… 제인이 그토록 심각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오로르는 어느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부정적인 마음이 그녀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럴 때 차라리 구름치기가 곁에 있었으면 했다. 누군가라도 그녀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갑자기 혼자있는 것이 두려워졌다. 두려움은 그녀의 모든 부분들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과거의 안좋은 기억들과 트라우마까지... 폭풍처럼 그녀에게 몰아쳐오고 있었다. 다리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과거 그녀가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했던 순간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살짝 낀 안개 사이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그녀의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려웠다. 사랑하는 존재가 느끼는 고통과 그 존재가 곧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데에 두려웠다. 두려움을 잠재울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느 한 존재를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간절히 바랐다. 두려움을 이기게 해달라고, 그리고 제인을 데려가지 말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떨리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그녀는 창피했지만 이 두려움… 아니,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소망에 계속해서 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두려움은 그대로였다. 그녀의 작은 소망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그러나 그 때 커다란 빛이 그녀의 어둠을 환히 밝혔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 앞으로 택시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택시 탈거예요?"

 택시가 그녀 앞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은채 재빨리 택시에 탔다. 택시기사가 미러로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

 “노포크 앤드 노르위치 병원으로(Norfolk and Norwich Hospital) 가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그녀는 간신히 힘을 짜내 말했다. 남자가 퉁명스러운 표정과 함께 악셀을 밟았다. 고속도로를 타기 전까지 도로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서늘한 아침 기후 덕분에 택시 안은 시원했지만 오로르는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수건으로 닦아내었다.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있었다. 조금씩 진정이 되는 듯 했으나 좀 전 느꼈던 큰 혼란과 두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차가 악셀과 브레이크의 도움을 받아 부드럽게 흔들리자 그녀는 웅크린 몸을 피고 눈을 감았다. 곧 어둠에 쫓겨 긴장한 몸은 잠이 들었고 두려움은 더 이상 그녀를 지배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 두어명이 보였다. 오로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그들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있었고 무언가에 의해 지쳐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오로르는 병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병실에서 간호사 한 명이 의료기기를 끌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캐런이 나왔다. 그녀는 오로르가 뛰어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오로르가 병실 앞에 도착해 캐런을 쳐다보았다. 오로르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얼굴은 곧 의식을 잃을 것처럼 하얀빛을 띄면서도 캐런의 얼굴에서 어떤 대답이라도 들으려 노력했다.

 "다행이예요. 들어가 보세요.”

 캐런이 짧게 말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그녀의 대답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싸늘했다. 미소도 웃음도 없었다. 그녀의 모습에서 오로르는 제인이 얼마나 위독했는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캐런은 더 이상 아무런 말없이 오로르의 옆을 지나갔다. 오로르는 살짝 문을 열고 병실 안을 바라보았다. 사라가 보였다. 그녀는 제인의 침대 앞에 고개 숙인채로 앉아 있었다. 사라도 제인도 움직임이 없었다. 오로르는 천천히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새근거리는 제인의 숨소리와 오로르의 헐떡임, 그리고 기계의 '삐' 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전부였다. 화학 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제인 몸에 꽃혀있는 바늘들은 거창한 의료기기들과 연결되어있었고 기기의 모니터는 생명의 선을 나타내고 있었다. 오로르는 그 생명의 선이 요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자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식은땀도 멈췄다. 뛰느라 가빠졌던 호흡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오로르는 제인의 옆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마음속의 불안감이 한 층 씻겨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사라가 보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녀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는 것이 아니었다.

 "사라?"

 오로르가 말했다.

 "..."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주름진 볼 위로 물이 묻어있었다.

 "사라 괜찮아요? 제인은요? 어떤가요?"

 오로르는 제인이 혹시나 깰까봐 조용히 물었다.

 "응. 지금은 괜찮아. 잠든것 뿐이야. 그나저나… 몸이 다 젖었구나.”

 사라가 오로르의 젖은 옷을 만지며 말했다. 오로르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라는 침대 옆에 걸려있는 수건을 건네주었다. 오로르는 수건을 받아 머리와 젖은 옷가지에 있는 물기를 닦아내었다.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갑자기 아픈거예요?"

 "그냥 늙어서 그런거래. 이제 나이가 너무 많은거지. 고비는 넘겼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래.”

 사라가 제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모니터 안의 선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춤을 추었다. 오로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사라도 그랬다. 서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소중한 사람이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침묵 아래에서 둘은 한참을 그렇게 아무말 없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암 같은 고통스런 질병이 아니어서.”

 사라가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오로르는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침묵이 그들을 감쌌다.

 “미안해요. 어제 면회 온다고 하고 못와서.”

 이번에는 오로르가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너도 바쁘니까… 준비는 잘 되가니?"

 “그럭저럭요."

 오로르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나 사라의 시선이 오로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럭저럭?"

 오로르는 새벽부터 불안과 안도감을 번갈아가며 느꼈기에 어떤 불편함도 더 이상은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는 불편한 대답을, 사실을 원했다.

 "그냥, 뭐... 사실은 잘 안되고 있어요.”

 오로르는 말을 끌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생각보다는 덜 불편했다.

 "어떻게 잘 안되는데?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너의 연주는 늘 훌륭하던걸?”

 사라가 오로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기운은 없었지만 진지함이 베어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이으려다가 잠시 멈추더니 깊은 한 숨을 쉬었다. 그러나 곧 말을 이었다.

 “솔직히 너의 연주에서는 슬픔이 느껴지더라, 오로르. 그것도 아주 많이. 누구나 행복을 원해. 가끔은 슬픔이 너의 삶을 잠시 색다르게 보이게 해줄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단다.”

 사라의 말이 끝나자 다시 한 번 그들 사이로 침묵이 찾아왔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침묵이 흐르는 사이에 빗방울은 더 굵어지고 사나워졌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단다.”

 사라가 오로르에게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네. 하지만 그 행복이란 것을 정말 모르겠어요.”

 오로르도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순간 구름치기가 생각났다.

 "사라가 말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란 것. 나… 모르겠어요. 사라는 어떻게 찾은거죠? 사라에게 있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뭐죠?"

 오로르가 계속 허공에 시선을 둔채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후회했다. 이미 너무 무거운 이곳에서, 그녀는 사라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사라의 눈 두덩이 밑으로 난 보랏빛 테두리에서 오로르는 그녀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내뱉은 말을 도로 담을 수는 없었다.

 

 "글쎄, 너가 아직도 찾고 있었다니... 놀랍구나. 사실 지금 나의 믿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구나. 예전에 너에게 말해줄 때는 알것만 같았지만 말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모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 하지만 말야, 오로르. 사랑과 소망에 대해서는 알고있단다.”

 창백함에 밀가루처럼 하얗던 사라의 얼굴에 제법 분홍빛이 돌기 시작했다. 오로르는 그녀의 표정에서 긴장감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당황스러움도, 쑥스러움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웅얼거렸다. 오로르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라의 이런 모습에 덩달아 당황스러웠다.

 "너란다, 오로르. 나의 소망은 바로 너란다. 그리고 사랑은 너가 나의 소망이 되는 근본적인 이유이자 너에게 다가가는 수단이자 너를 앞으로도 사랑하게끔 하는 힘이란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오로르를 쳐다보았다. 주름진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분홍빛 얼굴은 소녀의 것처럼 아름다웠다. 오로르는 아무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새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아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너라는 존재가 내게 있어서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몰라. 또 내가 꿈꾸던 가정의 결과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아마도 약 3년전 그날부터 너가 나의 소망이 되어버린 것 같아, 오로르.”

 사라가 천천히 말했다. 오로르는 그녀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음을 보았다. 피곤해서인지 솔직한 고백에 뒤따르는 감정들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너는 그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에게 삶의 행복이 되어주었어. 너의 미소가 내게 힘이 되어주었고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는 것 같았어. 하지만 내가 어찌 너의 그 깊은 상처들을 다 알 수 있겠니? 내가 어떻게 그 상처들을 치료해 줄 수 있겠니? 나는 단지 너의 주위에서 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단다. 그리고 항상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거라는 기대를 했단다. 그래서 너를 향해 늘 기도하고 기도했어. 그러나 어느날 나는 너의 행복을 바라는 사랑의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얻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단다. 이런 사랑의 과정은 계속 반복되었고... 순환되면서 너가 더욱 소중해졌단다.”

 사라가 시작할때 처럼 조용하게 말을 끝마쳤다. 그녀의 눈은 아까 전보다 더 빨갛게 변해있었다. 오로르는 너무나 기뻤다. 환한 무언가가 그녀의 마음속을 가득채웠다. 그것이 마음을 넘어 몸 안으로 퍼져나갈 때 그녀는 자신 안에 있던 슬픔이 옅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벼워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희석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긍정의 에너지가 그녀 안에서 솟아올랐다. 아까와는 달리 기분 좋은 땀이 이마에 맺혔고, 또 흘렀다.

 "놀랐니? 의도치 않던 상황에서 너에게 말하게 되었구나.”

 사라가 그녀와 얼굴을 마주치치 못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분홍빛이다 못해 붉은빛을 띄었다.

 "너무 좋아요, 사라. 너무 좋아요. 고마워요.”

 오로르는 쿵쾅거리는 기쁨의 심장 소리를 두 손으로 느끼며 말했다. 오로르의 왼쪽 뺨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나 처음이예요. 엄마가 죽고나서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는거요. 아니, 사랑한다는 그 말을 직접 들은거요. 나 처음이예요.”

 갑자기 뜨거운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넘치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흐르는 것이 땀인지 눈물인지, 아니면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기쁨의 흐느낌이, 기쁨의 울음소리가 병실에 울려퍼졌다.

 "제인과 사라가 나를 사랑하는것을 알면서도 늘 두려웠어요. 아버지처럼... 누군가가 나를 버리고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두려웠어요.”

 흐르는 눈물에, 흐르는 감정에 그녀의 발음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라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으로...

 "오로르, 나도 두렵단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어. 나의 남편, 그리고 클라라도. 너의 아버지와는 달리 그들은 나와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이 나를 그들과 떨어지게 만들었어. 하지만 오로르,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다. 내가 받은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단다. 사랑을 주고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추렴. 사랑할 대상이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집착하고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단다.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사랑을 주렴. 그리고 또 받으렴. 두려워 말고 있는 힘을 다해 사랑하렴.”

 사라가 오로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러가지 감정이 아직도 그녀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지만 사라의 진지한 이야기에 오로르는 마음이 한껏 가라앉았다.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 오로르가 그 어느것보다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그 어느것보다 강렬하게 바라던 것이었다. 오로르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사라에게서 받는 사랑, 그리고 자신이 진실하게 사랑을 받고있다는 사실에 마음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생적인 사랑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너와 있으니 너무 좋구나.”

 사라가 제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오로르도 사라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제 가보렴.”

 사라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준비할 것도 많을텐데 여기 오래 있어봤자 지금은 너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게다가..."

 사라가 누워있는 제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 사라가 잠시 말을 멈추고 오로르를 바라보았다. 오로르는 순간적으로, 그리고 직감적으로 그녀가 무슨말을 할지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라의 입에서 직접 말이 나오기를 기다릴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가 있으렴. 게다가 이번 콘서트는 매우 중요하잖아. 그런데 나는 아직 너의 얼굴에서 아무런 확신도 읽을 수가 없구나.”

 사라는 오로르의 예상대로 콘서트에 대해 말을 꺼냈다.

 "사라, 그래도 그럴수는..."

 오로르가 재빨리 그녀의 말에 대꾸하려 했지만 사라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제인은 말야 오로르… 제인이 만약 너가 자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아마 괴로워 할거야. 오로르. 나도, 제인도 너의 피아노는 늘 최고라고 생각한단다.”

 오로르가 고개를 떨군채로 사라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사라가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최고라고 말하자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연주가 절대 최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연주 수준에 슬픔이 아닌 행복의 멜로디가 가미된다면... 그야말로 굉장할거야. 정말이야.”

 사라의 말이 끝나자 오로르는 고개를 들었다. 사라가 크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에 오로르도 덩달아 미소지었다. 둘은 그렇게 한동안 아무런 말 없이 미소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쳐다보며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마음을 읽고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병실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제인의 가냘픈 숨소리와 빗소리 뿐이었다. 바깥에는 아까보다는 덜했지만 아직도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택시 잡아줄게, 타고가렴.”

 사라가 먼저 운을 떼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아니예요. 제가 알아서 타고 갈게요.”

 오로르가 먼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녀가 문을 향해 걸어나가자 사라는 그녀를 향해 미소지으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오로르는 문 앞에서 몸을 돌려 사라를 바라보았다. 제인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서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오로르는 복도를 걸어가면서 제인의 죽음을 앞둔 이런 상황에서도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죄책감을 느껴야하는지 자문해 보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기쁨과 사랑을 느꼈다. 힘이 났다. 그렇다고 슬픔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죽음에 한 층 가까워진 제인에 대한 슬픔은 있었지만 그것들은 지금 그녀의 마음 속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기쁨과 사랑에는 비할 수 없이 적었다. 1층 병원 로비를 빠져나오면서 오로르는 내일 아침에 또 이곳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 정문 앞에 서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몇대가 보였다. 오로르가 택시에 올라타자 택시는 천천히 병원을 빠져나갔다. 하늘 한가득 끼어있는 구름 속으로 굵고 사납게 울어대던 빗방울들이 조금씩 엹어지기 시작했다.

 

 ‘끼익... 탁.’

 비가 내리치는 날씨 속에서 폭풍우처럼 거칠게 내달리던 택시 한 대가 그레이트 야머스의 한 집 앞에 멈추었다. 택시가 골목을 돌고 커브를 할때면 쏟아져 내리는 비에 고인 물들이 이리저리 튀었다. 택시가 집 앞에 멈춰섰을때 오로르는 마치 납치범에게서 도망치는 인질처럼 재빨리 내렸다. 택시는 그녀를 뱉어내자마자 다시 골목을 돌아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떠나갔고 그녀는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동안 문 앞의 계단 손잡이를 잡고 서 있어야만 했다. 오로르는 불과 이틀전 그녀의 아버지가 이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앙상한 손으로 이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오로르는 그의 흔적과 닿았다는데에 기분이 나쁘지도 불쾌하지도 않았다. 불과 삼일전의 그녀였다면 더러운 욕을 내뱉으며 몇번이고 손을 씼어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앙상하던 아버지의 손... 그리고 죄를 호소하던 그의 모습에서 동정심과 연민이 느꼈다. 아버지만 생각해도 복수심과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에 치를 떨던 그녀의 옛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녀는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알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무언가가 변했다. 수년동안, 아니, 수십년동안 변하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 주위 산발적으로 퍼져있던, 그리고 그녀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는 것의 근본적 이유를 알고싶었다. 물론 아직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사라, 제인과의 관계 뿐이지만 그녀는 지금 마치 몇일 전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그녀 주위에 있던 많은 것들이 이 짧은 시간동안 무너지고 변화하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존재와의 만남,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쌓여있던 오해와 갈등의 해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 그러자 동시에 따라오는 희생과 용서까지.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지만, 아직 그녀의 피아노에 대한 문제는 풀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마음속에서 강한 긍정의 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띠리리링.'

 2층에서, 구석진 방 안에서, 그녀가 그리던 멜로디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아름다운 쇼팽의 연주였다. 슬픈 연주가 아니었다. 애당초 쇼팽이 이 곡을 작곡하고 완성했을 때 그가 원했던 음색은 아니겠지만 이 연주는 행복했다. 기쁨이 넘쳐 흘렀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오로르는 아름답다는 단어 외에 이 곡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한참을 그곳에 서서 연주를 들었다. 손잡이를 잡은채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채로... 그녀는 연주를 음미했다. 예전 같았으면 담배를 피며 들었을 테지만 지금 그녀는 담배를 찾지 않았다. 비록 손에 허전한 느낌은 있었지만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과거 담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오로르에게 있어 슬픔을 나타내주는, 언제나 그녀의 슬픔을 대변해주고, 그리고 그 슬픔과 함께해주는 친구였다. 그러나 담배는 이제 그녀 곁에서 조금씩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폐에 붙어있을 끈끈한 타르가 깨끗하게, 마치 따뜻한 물에 조금씩 씻겨 내려가고 있는것 같았다. 이제 무겁게 느껴지던 어지럼증이 사라졌다. 다리에 힘이 났고 시야 역시 환해졌다. 그러자 가슴이 쿵쾅거리고 기분좋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치 안개로 둘러싸인 거리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그래서 이제야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오로르는 집 안으로 들어가 연주가 울리고 있는 곳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계단을 올라가 복도를 걸었다. 오로르의 발걸음에 오래된 나무 바닥이 살아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 처럼 소리를 냈다. 그의 연주가 집 안 곳곳에 울려퍼졌다. 오로르는 부모님의 방 앞에 멈춰섰다.

 '저 고장난 피아노로 어떻게...'

 그녀가 채 감탄을 끝내기도 전에 그의 연주가 멈췄다. 연주가 끝나자 조용해진 집에서는 침묵이 감돌았다. 밖에서 갈매기 울음 소리가 났다.

 "잘 다녀왔나요?"

 그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나 오로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피아노 앞에 앉아 그녀를 쳐다보는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를 만난 시점부터 정상적인 일은 하나도 없었다. 구름을 친다는 그는 남의 눈에 보이지 않았고 타인의 감정을 어느정도 읽기도 했으며 문이 잠긴 집에 제멋대로 드나들기도 했다. 또 그는 타인의 가장 사적인 가정사에도 개의치 않고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했을 때, 항상 특별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그 특별한 일들의 결과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녀가 반응할 때 결과는 늘 그녀가 예측했던 방향과는 너무도 다르게 나아갔다. 오로르는 그것들이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그’ 라는 존재의 영향력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여기에 있었다.

 “네."

 그녀가 초록색 눈동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피아노... 어떻게 연주하는거예요? 그거... 고장났다구요.”

 오로르가 그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물었다.

 "아니예요, 오로르. 고장나지 않았어요.”

 오로르의 시선이 그의 눈동자에서 손가락으로 향했다. 그의 손가락들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살짝 움직이더니 건반 몇개를 눌렀다. 정확한 소리가 났다. 그가 곡의 몇 마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잘 되는걸요.”

 그가 오로르에게 대답했다. 오로르는 피아노를, 그의 손가락들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고장난 피아노였다. 그 피아노가 쓸 수 없게되어 슬퍼했지만 그랬기에 결국 그녀는 런던에 가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제인도 사람을 불러 고쳐보려 했지만 고칠 수 없었기에 그녀에게 다른 피아노를 선물했다. 그리고 오로르는 몇일 전에 직접 먼지에 쌓여있는 그 피아노 커버를 열어 고장난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녀가 깊이 한 숨을 쉬었다.

 "행복이 뭐죠?"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뜬금 없이 어디선가 튀어나온 질문 같았다. 다소 황당한 질문이었다. 피아노 이야기에서 갑자기 행복이라니. 하지만 오로르는 더 이상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어떤 마법을 부린건지는 몰라도 지금 그녀 앞에서 피아노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그녀도 부인할 수 없었기에 지금 그녀가 계속 고장난 피아노였다 주장한다해서 달라지는것은 없었다. 그는 계속 고장나지 않았다고 대답할 것이니까. 그녀는 그럴바에야 차라리 궁금했던것을 물어보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에 관한 질문은 지난번 그가 말을 꺼낸 이후로 계속해서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늘색 눈동자가 초록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소망 믿음 사랑이 행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했죠? 소망과 믿음 사랑을, 그리고 행복을 알고 싶어요.”

 그가 큰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간절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오로르, 당신은 나를 믿나요?"

 그가 질문을 던졌다. 오로르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쉽게 생각 해요, 오로르."

 "네,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믿음이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면 정말 그것이 믿음이라고 믿고 살아갈건가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오로르는 말문이 막혔다. 시작부터 꼬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아니요. 하지만 당신이 납득할 만한 주장을 한다면 동의하고 수용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요.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행복도, 그 어느것도 한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어요. 수많은 단어들로 정의될 수 있죠. 하지만 진리는 하나뿐이예요.”

 그가 또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이죠?"

 "거짓의 조합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진리는 하나뿐이라는 거예요. 행복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그 안의 핵심은 하나라는 거죠.”

 오로르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손에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가 오로르에게 물었다.

 "아마도 기분좋은, 그리고 부러울 것 없는… 그런 것 아닐까요?"

 그가 피아노 커버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었다.

 "너무 추상적이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그녀는 행복에 대해 자세히 말해보려 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무엇이 행복인지, 대충 머릿 속에서 그려지기만 할 뿐, 정의할 수 없었다.

 "좋은 가정과, 적성에 맞는 직업, 능력, 그리고 좋은 이성친구. 그리고… 아… 지금 갑자기 생각하려하니 잘 떠오르지 않네요."

 그녀가 얼버무렸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오로르, 정말로 그런것들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나요? 행복은 끝없는 탐욕의 계단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건가요? 영원하지 못하는, 지속되지 못하는... 단지 순간의 만족. 그것이 행복인가요?”

 그녀는 그의 말에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몰랐다. 침묵이 흘렀다.

 "아니예요, 오로르.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행복은 축복이예요. 영원한 거예요.”

 그가 확신에 찬 태도로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행복이란 무엇이죠?"

 그녀가 물었다.

 "나의 행복은… 나의 행복은 내가 지음받았다는 것, 날 지으신분이 날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구름을 치도록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예요. 한가지 덧붙인다면 당신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당신과 지금 같이 있는 것 또한 나에게는 행복이랍니다.”

 그가 자신있게 말했다. 자랑스러운 듯 기쁘게 말하는 그를 보자 그녀는 누구보다도 행복하기를 원했으면서도, 자신에게는 너무 과분한 것이라 치부한채 한번도 행복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창피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수많은 갈등, 고통과 슬픔, 그리고 욕망들이 영원한 행복을 방해하니까요.”

 오로르가 말했다. 그녀는 그의 행복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을 알기보다는 그의 주장을 허물어뜨리고 싶었다. 행복에 대한 그의 정의가 맞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행복을 얻기 위해 여태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자신이 바보처럼 보일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행복은 한 순간으로 정의되지 않아요, 오로르.”

 그가 바로 대답했다. 그러나 뒷 문장을 잇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행복이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행복은 영원의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점이 아니라 범위인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고통, 슬픔, 욕망들은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없어요. 그것들은 순간이기 때문이죠. 슬픔의 상처가 오래간다고 해도 그 상처는 영원하지 않아요. 욕망이나 고통도 마찬가지구요. 기쁨도 마찬가지예요. 그것들은 행복과는 다른 범주에 있다고 생각해요.”

 오로르는 그가 하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럼 행복은 무엇이예요? 당신이 말한 행복의 진리 말이예요.”

 오로르가 물었다. 그녀는 행복이 점인지 범위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지금 그녀는 그토록 헤메었지만 찾지 못한 행복을, 그리고 지금 그녀 앞에 서있는 남자가 안다고 하는 행복을 듣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행복의 진리는… 내 존재 자체예요.”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오로르를 향해 말을 덧붙였다.

 "행복은 ‘나' 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이고 내가 살아 숨쉬는 이 삶, 생명 그 자체예요.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말에 저는 동감해요. 행복을 단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처럼 여기거나 목적을 달성할 때 잠시 느껴지는 기분좋은 감정 따위로 여기는 것은 행복을 과소평가 하는거라 생각해요. 마치 한 해변가를 보고 모든 바다가 이럴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은거죠.”

 오로르는 행복이 존재 자체에 있다는 말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나의 행복은 내 존재를 만들어주시고 나에게 삶을 주신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한 창조주에게서 와요. 그가 나를 사랑하기에 행복해요.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행복해요. 내가 그가 만든 창조물이기에 행복해요. 그의 형상대로 만드신 나의 모습에서 기쁨, 기대, 감사 등을 느낄 수 있고, 슬픔과 두려움 등 또한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리고 전능하신 창조주와 이야기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언젠가 그분 옆으로 간다는 사실에 행복해요. 그것이 내가 행복한 이유예요. 그것이 내 행복이예요.”

 오로르는 그를 바라본 채로 아무말 없이 서 있었다. 분명 그의 말은 설득력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신앙 안에서 해석되자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망설여졌다. 사람들이 흔히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서 낯설음을 느끼는 것처럼 오로르 역시 신앙 이야기에서 낯설음을 느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창조주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니까 행복할 수 밖에 없죠.”

 그의 얼굴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오로르는 환하게 웃은 그의 얼굴에서 진실함을 읽을 수 있었다.

 “나... 나는 아직 행복을 모르겠어요.”

 "당신이 꼭 당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로르. 행복은 주관적이예요. 그러나 분명히 행복에 대한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해요. 당신은 지금 그 진리를 보고 있지 못하지만 마음을 열고 고개를 돌리면 진리를 가리고있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러면 행복의 진리를 볼 수 있어요. 행복의 진리를 찾아요, 오로르. 당신만의 행복을 찾아요.”

 그가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를 그녀의 마음속에 새기며 말했다.

 "행복의 진리는 믿음에 기초해요, 오로르.”

 ‘쾅.'

 .

 .

 .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던 마음의 벽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버렸다. 벽은 무너져 내렸고 가슴 속을 막고 있던 응어리들은 뻥 뚫려 사라진 듯 했다. 그것은 허전함이 아니라 만족감이었고 불안함이 아닌 기쁨이었다. 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녀가 거진 10년 동안 찾고 헤메던 것이 이제야 형체를 보이는 듯 했다. 이마에서는 흥분으로 땀이 흘렀다. 그가 밝게 미소지었다. 구름 가득한 날씨였지만 그의 초록색 눈이 마치 햇빛에 반사된 것 처럼 반짝였다. 오로르도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아니… 우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것은 분명 흐느낌과 웃음, 그 사이의 것이었으니까... 새벽부터 일어나 계속 돌아다니고 비까지 맞았지만 그녀는 너무도 홀가분한 마음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저기... 아까 연주한 쇼팽 한번만 더 연주해줄래요?"

 그녀는 행복의 멜로디를, 행복의 연주를 들으며 이 느낌을 지금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오로르는 그가 말한 모든것을 받아들이거나 아직 자신의 행복에 확신이 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느낀 것에 만족했다. 지금은 오랜만에 느끼는 이 평안을 즐기고 싶었다. 곧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지도 모르지만, 곧 제인이 죽을지도 모르지만, 아버지가 돌아옴으로 인해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이 매 순간 그녀를 깊게 누르고 질식시키려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것도 상관없었다. 두렵지 않았고... 슬프지 않았다.

 그의 연주가 시작되자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멜로디가 공기를 타고 방안을 날아다니다 그녀의 귀에 앉았다. 그리고선 노래하기 시작했다. 소리로 기쁨이 전해졌다. 즐거움 속에서 그리고 평안 속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슬픔의 쇼팽이 아니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마지막 멜로디가 그녀의 귓가에서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는 피아노 커버를 닫고 있었다.

 "용서란 도대체 무엇이죠?"

 아직 행복에 대해서도 무엇 하나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그녀가 무엇보다도 간절히 알기를 원했던 것들이... 안개너머로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 실체가 그녀가 원하던 것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간에 그녀는 일단 이 안개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은 이미 알고있지 않나요?"

 구름치기가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이미 용서를 알고 있다? 내가? 정말로?'

 그녀는 당장 그녀 머리 속으로 들어가 닫혀있는 용서의 서랍을 통채로 꺼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서랍이 어디있는지 짐작 조차 가지 않았다.

 “난... 모르겠어요. 내가 정말 알고있다고요?"

 “네. 난 그렇게 생각해요.”

 오로르가 그를 향해 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구름치기가 좀 더 확실하게 말해주기를 바랬다.

 "오로르, 답은 없어요. 행복에 답이 없듯이 용서에도 답이 없어요. 어떤 형태도 용서가 될 수 있어요.”

 오로르는 그의 대답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로르, 결론은 당신 몫이예요. 타인이 어떠한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려줄 때 우리는 그저 보고 듣고 평가만 내리면 되죠. 주로 그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심판만 하면 되요. 하지만 결과가 우리의 몫이 되면 우리는 흠 없는 정의를 내리려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결국 아무런 정의도 내리지 못할 때가 많죠. 또는 아주 편협하고 집착적인 결론을 내리던가요.”

 그가 말을 마치며 오로르를 향해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정의를 내리는 몫이 다시 그녀의 손 아귀 속으로, 그녀의 울타리 안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땅을 향해 신음과도 같은 한 숨을 내쉬었다.

 "용서에는 진리가 없나요?"

 "당신은 이미 용서했잖아요.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든거죠?"

 거의 동시에 서로가 말했다. 서로의 말이 공중에서 교차해 상대방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오로르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이미 용서했다구요? 누구를요?"

 오로르가 더듬 더듬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그녀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았다. 4명이 떠올랐다.

 "그중 한 명은 이미 멋지게 용서했잖아요. 그것이 당신의 용서 아닌가요?"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그들 중 한 명을 용서했다는 말에 낯설음을 느꼈다. 분명 언젠가 그녀의 상처받은 마음이, 굳어버린 마음이 용서 할 수 있다면 하고싶다고... 적어도 그와 비슷한 생각은 했었지만... 그녀는 아직 자신이 그를 용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누군가의 용서는 복수예요. 누군가의 용서는 잃어버림이죠. 누군가의 용서는 잊어버림이예요. 그리고... 누군가의 용서는 사랑이예요. 글쎄요, 용서에 진리가 꼭 있다고는 대답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내가 믿는 용서는 단지 누구의 행위에 마땅한 복수를 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잠시 미뤄주고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 따위가 아니예요. 그런 용서는 진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용서는 완전히 그 사람이 한 행동을 극복하는 거예요. 거기에는 어떠한 대가나 복수도 없어요. 그런 것들이 숨겨져 있지도 않죠. 오직 사랑으로 덮는거예요. 한 사람이 무언가를 잘못하면 그것을 잊기란 쉽지 않아요. 복수하고 싶죠. 또는 그냥 그 사람을 버려서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떠나 보내기를 원하죠. 하지만 기억이 나더라도 사랑으로 그 사람이 잘못한 모든 것들을 덮어주는게 용서라고 생각해요. 생각하기도 싫어 그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떠올라 나를 괴롭히더라도 사랑으로 덮는 거예요. 그렇게 잊어가는 거예요.”

 그녀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속으로 그녀는 과연 사람에게 이러한 용서가, 사랑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이런 용서는 대단히 힘들죠. 하지만 이런 용서야말로 진짜가 아닐까요?"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용서는 힘든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것 같은데요?"

 그녀가 마음속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당신의 의지로는 불가능하죠. 오직 사랑으로만 가능해요. 그래서 나는 용서는 오직 사랑에서만, 그리고 사랑으로만 가능하다고 믿고있답니다.”

 꽤 그럴듯해 보이면서도 알아듣기 힘든… 이상론 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는 그가 말하는 행복에 대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과연 이 남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녀는 자신이 그런 '진실한' 용서를 해본 적이 있는지, 그런 용서를 아는지 생각해보았다.

 "내가... 그런 용서를 안다구요?"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아 그에게 물었다. 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 당신은 희생적인 사랑을, 그러면서도 헌신적인 사랑을 느껴보지 않았나요? 누군가를 위해서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을것만 같은... 오로르, 당신이 느낀대로 희생은 단순히 자신이 여유로울때 더 있는 것을 남에게 베푸는게 아니예요. 당신이 여유롭지 않아도, 심지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것을 다 주어야 한다고 해도 개의치 않고 주는거죠. 이것 역시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감정이고 행동이죠. 하지만 당신은 과거에 수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늘 두려움과 슬픔에 자신을 가두고 그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오늘... 당신은 느낄 수 있었어요. 슬픔이라는 감옥에서 이제야 조금씩 빠져나오면서 당신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고 있어요.”

 희생. 그녀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희생을 했을지언정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해보지 않았다. 늘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뜨겁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회의적인 생각이 그녀 안에 가득했고 사랑, 그 아름다움 자체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것이 언젠가 떠나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늘 초조해하고 두려워하며 때로는 거부하기도 했다.

 "오로르, 이제 조금은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 알 것 같나요?"

 그의 질문에 오로르는 고개를 끄덕여야할지 아니면 가로저어야 할지 망설였다. 무언가 알 것 같으면서도 아직 모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그것들은 굉장히 광범위하죠. 주관적이예요. 때로는 이상론처럼 들리기도 하고 마냥 추상적으로 들리기도하죠. 하지만 그것들이 당신 속에 확실하게 자리잡는다면 당신은 흔들리지 않는 멋진 기초를 닦아놓는 것과도 같아요. 마치 탄탄한 골조를 세우는 것과 같죠. 어떤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지으려면 마찬가지로 어떤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는 기초와 골조를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말이예요.”

 그가 말을 마친 후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다시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이 흘렀다. 오로르는 머릿 속을 가득채운 여러 생각들이 곧 그녀의 머리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지금까지 들은 말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동시에 정리해 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때, 그녀는 그제서야 그들 사이로 짙은 침묵이 오랫 동안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거기서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쳐다만 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또 그렇게 계속 흘러갔다. 그런 침묵이었다. 누군가가 이 침묵을 먼저 깨지 않는다면 서로는 그렇게 계속 아무말도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침묵이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다행히 얼마 지나지않아 오로르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 소리는 방 밖에서 들려왔다.

 “잠시만요."

 그녀가 몸을 돌려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복도를 걸어가 그녀의 방에서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친숙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기운 없는 목소리였다.

 "네, 사라?"

 떨림이 일었다. 불현듯 오늘 새벽에 받은 한 통의 전화가 기억났다. 그녀는 크게 한 숨을 쉬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저기... 혹시 내일 같이 교회갈 수 있니? 제인도 함께 말이야. 제인이 너와 꼭 한 번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사라가 천천히 물었다. 오로르는 이번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론 억지로 갈 필요는 없어.”

 사라가 오로르의 한숨 소리를 듣고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니예요, 사라. 저는 혹시라도 제인에 대한 안좋은 소리가 있을까봐해서... 내일 교회 같이가요. 저도 제인과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오로르는 사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자신의 미세한 반응에도 신경을 써주는 사라가 고마웠다.

 "응. 제인은 지금 많이 괜찮아졌어. 하지만 너무 나이도 많고 과거의 사고 후유증도 있어서 오래 사시지는 못할거라고 하더라..."

 오로르는 사라의 말에서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제인에 대한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오로르는 불과 얼마 전의 자신 같았으면 슬픔만을 느꼈을텐데, 지금은 자신도 누군가의 사랑을,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래서 너가 콘서트 때문에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 너와 같이 교회도 가고 시간도 좀 보내고 싶어. 너만 괜찮다면 제인에게 시내 구경도 좀 시켜드리고 싶구나.”

 오로르는 사라의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번을 느껴도 기분좋았다.

 "괜찮아요. 저도 제인과 있고 싶어요. 지금은 피아노보다 제인과 사라와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해요.”

 진심이었다. 지금 그녀의 연주는 형편없었다. 3년 전 그 때의 수준보다 더 떨어지는 것 같았다. 테크니컬한 부분은 어떻게 해서든 커버할 수 있다 치더라도 지금 그녀의 음색은 슬픔도 그 외의 다른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연주를 해서는 절대 전문가들과 기자들이 만족하지 않을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이번 콘서트에서 존과 제르딘에게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포기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오로르에게는 지금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심지어 피아노와 피아니스트로서의 지위 보다도 말이다.

 ‘이것이 희생이고 사랑인가?’

 "너무 잘됐구나. 고마워, 오로르. 그럼 내가 내일 제인을 데리고 너희집으로 갈게. 괜찮니?"

 "네. 고마워하지 말아요, 사라.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인걸요.”

 오로르가 부끄럽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그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제인도 쉬어야 하니 나도 집으로 가서 준비를 해야겠구나.”

 사라가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라, 저기... 내일 교회는 어디로가요?"

 오로르가 물었다.

 "교회는 집 앞쪽에 늘 가는 곳으로 가려하는데?"

 "아..."

 오로르가 약간 망설였다. 그러나 말을 이었다.

 "내일은 다른 교회로 가도되요?"

 “다른 교회? 너가 가고싶은 교회가 있니?"

 사라가 놀라며, 그러나 기쁜 말투로 물었다.

 “네."

 "교회는 안다니지 않았어?"

 "네..."

 "그럼 왜?..."

 사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가 다니던 교회예요.”

 오로르가 대답했다. 사라가 교회에 가자고 말하자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그리고 앞으로 하려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더 흐르고, 더 늦어지기 전에 가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그곳에 갈 수 있을까요?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전하고 싶은 말이라고? 오로르, 너 괜찮니?"

 "네. 아버지가 그곳에 오시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거기에 계신 목사가 아버지 친구분이예요. 그분에게 아버지가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셨대요. 그 교회도 시내에 있으니 병원에서도 가까울 거예요. 괜찮을까요, 사라?"

 한 동안 아무 대답도 없었다. 오로르는 그녀가 싫다고, 안된다고 말한다면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가 좋다면 내가 뭐라고 말하겠니. 그렇게 하자. 제인에게는 내가 말할게.”

 오로르는 자신이 무어라 말하든간에 사라가 늘 믿어주고 이해해주는데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도 사랑을 느낄 수 있게되자 자연스럽게 고마움도 따라 일었다. 오로르는 내일 아침 차에서 그들과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버지와 있던 일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은 간단한 짧은 마무리 인사를 끝으로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오로르는 이미 꺼져버린 수화기를 들고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이 내린 결정이 옳은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순간적으로 생각했고 순간적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아직은 없던 일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좀 더 깊이 생각해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런 확신도 서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그녀는 아직 그에게서 받은 상처에 대해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설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결정이 후회가 되더라도, 이성적이지 않더라도, 여태까지 느껴본 적 없는 이 감정을 믿고 따라보기로 했다.

 그녀는 복도를 따라 조용히 다시 아버지의 방으로 걸어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피아노 의자는 깔끔하게 다시 피아노 안쪽에 놓여있었고 피아노 커버는 닫혀있었다. 하지만 그 위로 눈처럼 소복히 쌓여있던 먼지들은 사라져 있었다. 이것이 그가 조금 전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줄 유일한 증거였다.

 다시 그녀의 방으로 돌아온 오로르는 어느새 다가온 밤을 맞으며, 또 다른 내일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오늘 기나긴 하루 동안 있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용서. 그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우면서도 희생적인 사랑안에서 자라는 진주라는 이름의 열매...

 이른 저녁이었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 위에 눕자마자 그녀는 램프를 끄는 것도 잊어버린채 깊이 잠들었다. 그리고선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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