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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The Sky Is Filled With Clouds
작가 : ssssss
작품등록일 : 2017.7.30

여느 때처럼 구름이 가득한 영국 Norwich의 한 해변가. 그곳에는 어릴 적 불의의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녀의 피아노 소리가 매일 울려 퍼진다.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슬픔에 빠져 살던 그녀는 15살이 되는 해, 희망을 찾으러 뉴욕으로 떠나는데… 수 년이 흐르고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구름 속에 있는 한 남자를 본다. 그녀는 환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날 저녁, 그녀의 집에 노크 소리가 들린다…

 
The Present (Love) - 5화
작성일 : 17-07-30 20:01     조회 : 275     추천 : 1     분량 : 14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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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rd Day (셋째 날)

 

 날이 밝았다. 반쯤 열린 창문들 사이로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왔다. 오로르가 이곳에 온지 3일이 지났다. 오로르는 잠이 오지 않았지만 침대에 누워있었다.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녀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주위에 카페인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녀 주위에는 카페인은 고사하고 마실 것 조차 없었다. 반쯤 열린 창문 밖으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구름치기의 휘파람이었다. 오로르는 멜로디조차 들어본 적 없지만 그의 휘파람이 친숙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그가 싫지 않았다. 아직 그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었지만 더 이상 그가 두렵지는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어제밤을 떠올렸다.

 

 어두운 밤. 제인의 집 거실. 가로등 불빛이 창가를 통해 조용히 들어오는 밤. 그들 사이에는 마치 벽이라도 있는 것 같이 조용했다. 모든 소리가 그들 주위로 몰려들었다.

 "제인은 어느 병원에 있어요?"

 오로르가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그녀가 일어나자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묻었다.

 “오로르... 앉아. 지금 이 시간에는 면회도 할 수 없어. 제인도 아마 자고 있을거야.”

 사라는 거짓말을 했다. 벽시계는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시계는 10분 남짓 빨랐지만 면회시간인 오후 10시까지는 아직 충분했다. 사라는 오로르와 이야기를 끝마치고 싶었다. 아니, 끝마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로르는 선 채로 가만히 있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처럼 창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구름치기가 있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오로르는 곧 힘없이 털썩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사라… 제인이 많이 아프다면서요. 나 어떻게 해야죠?"

 오로르가 터져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아내며 물었다. 런던에서 그녀는 좀처럼 눈물을 참기 힘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때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울음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빠가 자신을 떠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울어도 삶의 소망은 생기지 않았다. 간혹 너무 힘들때면 그녀는 집으로가 홀로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받아주며 슬픔을 삼켰다. 자신의 안으로 슬픔을 쌓았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직은… 참을 수 있었다.

 "..."

 사라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의사가 어려울 것이라는데 그녀가 감히 어떻게 희망을 진단하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사라는 그냥 오로르를 쳐다보았다. 오로르의 눈가에 점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제인은 괜찮대. 오로르..."

 사라의 말 끝이 또 흐려졌다. 그녀는 한 숨을 길게 쉬었다. 제인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오로르에게 필요한 말들은 그런 객관적인 것들이 아님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인은... 할머니가… 저를 원망했나요?"

 오로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녀는 사라의 반응에서 많은 것들을 추측할 수 있었다. 당장에라도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그녀는 꾹 참았다. 사라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감싸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금 그녀를 안으면 그녀는 부스러져 사라질 것만 같았기에…

 “아니. 그녀는 단 한번도 너를 원망하지 않았어. 다만 너를 너무나 보고 싶어했어. 단지 너를 사랑하기만했어. 정말로.”

 사라가 천천히 말했다. 오로르는 마음속 딱딱한 것들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들을 녹아내려 눈물을 만들었다. 마음에서 흘린 눈물은 그녀의 눈가를 타고 볼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오로르가 울음을 터뜨리자 사라는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녀의 체온을 나누어주는 것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오로르는 사라의 체온에서 평안함을 느꼈다. 사라도 오로르의 체온을 느꼈다. 그들은 아무말 없이 서로를 꼭 껴안은채 앉아있었다. 그녀의 눈물이 멈출때까지 하염없이 그렇게 앉아있었다.

 

 오로르의 눈물이 멈추고 난 뒤, 그들은 그동안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이야기했다. 사라가 제인의 집에서 살게 된 이유, 최근 그들의 근황, 그리고 제인이 처음에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가 차차 좋아져 이제는 거의 완벽하다는 이야기까지 말해주었다. 오로르도 뉴욕에서 처음 6년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 피아니스트로서 살며 겪었던 에피소드들, 뉴욕에서 살며 어렵고 힘들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오늘 이곳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말했다. 모두 다 이야기했다. 단지 몇가지만을 제외하고선…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과거로, 그리고 현재로. 시간은 이제 미래를 향해 흘러갈 차례였다. 시간은 벌써 10시 30을 넘어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사라가 조용히 말했다.

 "저기, 오로르.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그녀의 얼굴 위로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오로르는 너무 기뻤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사라와 오늘 같이 있고 싶었다. 그녀와 더 많은 것들을 나누고 싶었다. 사라와 함께한 시간은 오래되었지만 오늘만큼 서로를 허물 없이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한층 더 가까이 가고자 했다.

 “사라, 정말 미안해요. 오늘은 힘들것 같아요.”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네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그녀의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녀는 차마 내뱉지 못했다. 구름치기 때문이었다. 오로르는 사라에게 구름치기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 대화의 처음부터 거실에 있었다. 그는 호기심깊게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대화의 분위기가 격앙될 때, 슬픔이 느껴질 때, 서로가 서로를 더 자세히 알아갈 때, 그는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오로르가 그를 바라봤다. 그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따뜻했다. 부드러웠다. 하지만 오로르는 기분나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에 대한 경계심은 없었으나 아직 그를 그녀의 울타리로 들일수는 없었다.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는 혹시 너가 좋아할 줄 알고…”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실망감이 그 끝을 매웠다.

 “아니에요, 사라. 정말로 정말로 너무 고마워요. 나도 아줌마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어요. 하지만 오늘은 꼭 연습을 해야해요. 정말이예요!"

 그녀는 사라가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말했다. 오로르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 알았다.”

 사라가 오로르의 변명에 미소로 대답했다.

 "고마워. 저… 그럼, 오로르. 연습하느라 바쁘겠지만… 저기… 나는 내일 오전부터 제인에게 가려는데… 혹시 시간되면 같이갈래? 너가 가면 제인도 많이 좋아할 것 같은데.”

 사라가 주저하며 물었다. 오로르는 즉각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라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오로르는 제인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쁘면서도 제인이 많이 아프다는 사실에는 가슴이 아팠다. 제인을 떠올리자 웃을수도 울 수도 없었다. 하지만 대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사라가 밝게 미소지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깊이 패인 주름살들이 기쁨을 그렸다. 둘은 얼마 동안 조금 더 이야기를 한 후 작별의 인사를 했다. 사라는 오로르를 현관까지 배웅해 주었고 오로르는 제인의, 그리고 사라의 집을 나왔다. 문을 열자 오로르는 밤 바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날씨는 조금 서늘했고 바람도 제법 불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영국의 날씨에 낯설음을 느끼지 않았다. 시간 때문인지 마음속의 응어리가 녹아서인지 그녀는 이제 이곳에서 고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오로르는 제인의 집에서 나와 가로등 앞에 잠시 섰다. 제인의 집에서 느꼈던 따뜻함이 아직 몸 안에 남아있음을 느꼈다. 그녀가 뒤돌아보자 구름치기가 있었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오로르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로르도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웠던 제인의 냄새, 추억의 냄새, 사라의 말투, 향기, 이 모든 것을 조금 더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었다. 잠시 후 그녀가 구름치기를 바라보았다. 구름치기가 살짝 미소지었다. 그리고 오로르도 살짝 미소지었다. 둘은 걷기 시작했다. 오로르의 얼굴에 희미하지만 진실된 기쁨의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사라는 창가에서 오로르가 골목을 돌아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로르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구름치기도 미소지었다.

 

 어제저녁

 

 오로르와 구름치기가 오로르 집 앞쪽 가로등 옆을 지나갈 때였다.

 "우리 잠시 이야기좀 해요.”

 오로르가 짧게 말했다.

 "네, 언제든 환영이예요.”

 그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따라올거예요?"

 그와 언제까지고 동행할 수는 없었다.

 "당신이 행복해질 때 까지 함께 하고싶어요.”

 그가 바로 대답했다. 마치 그녀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뭐라구요?"

 오로르는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다만 저녁에는 쫓아가지 않을게요.”

 그가 자신도 알만한 것은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확실한 증거를 보여봐요.”

 오로르가 말했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확실한 증거라면 사라를 만난 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제가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그가 물었다. 거기에는 퉁명스러움이나 기분 나빠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안돼요. 그걸로는 부족해요."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뒤이어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것들로 믿기에는 아직 제가 너무 낯설고 수상한가요?"

 그의 입가 주위로 미소가 어려있었다. 비소가 아니었다.

 “그, 그렇죠.”

 오로르는 약간 당황하는 듯 싶더니 곧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정말 의심이 많군요.”

 그가 무언가 골똘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당연한 거예요. 생판 모르는 사람을 믿으라니… 당신이 비정상인거죠.”

 그녀가 힐난하듯 말했다.

 "정상 비정상은 중요하지 않아요. 믿음이 있냐 없냐가 중요한거죠. 믿음이 없다는 것은 슬픈거예요.”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믿음?...'

 

 낯선 인도자의 손을 잡고 깊은 숲 속을 걸어가던 그녀의 앞으로 작은 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 빛은 곧 사라졌다.

 '아니야. 이건 진짜 믿음이 아닐거야. 나는 경험했기 때문에 알아.’

 그녀는 낯선 인도자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낯선 인도자는 어둠 속에서 미소지었다. 그의 미소가 또 다른 어둠을 낳았다.

 

 "오로르, 내일 또 와도 될까요?"

 그가 물었다. 하지만 오로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싫다면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나를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말하지 않아도 좋아요.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좋아요. 그냥 옆에만 있게 해주세요.”

 그가 부탁했다. 그것도 간절히 부탁했다. 그녀가 그와 시선을 마주쳤을 때 그의 초록색 눈동자가 그 간절함을 더해주었다. 오로르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증거를 얻지도, 그를 떨치지도 못했다. 잠시 후 오로르는 그의 시선을 피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오로르"

 그가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어서 그는 등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는 어느것도 묻지 않았다. 부탁하는 것도 없었다. 다만 그냥 그렇게 떠나갔다. 그런 그를 보며 오로르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도, 어디에 묶을 건지도… 묻지 않았다. 그냥 사라져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골목 뒤로 사라지자 오로르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믿음없는 것이 슬픈일이라는 그의 말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녀는 자물쇠를 손으로 만지작 거리다가 잠그지 않은 채 2층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단순한 정이나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가 조금씩 거세어지고 있었다.

 

 오로르는 거의 자지 못했다. 벌써 4일째였다. 미친듯이 피곤했지만 그녀가 잔 시간이라고는 수면제의 약기운에 의존했던 2시간이 거의 전부였다. 정신은 깨어 있었으나 그녀의 몸은 아직도 일어나기를 거부했다. 오로르는 힘겹게 탁상시계를 들었다. 8시 3분. 오늘은 사라와 함께 제인을 보러가기로 한 날이었다. 오늘만큼은 컨디션이 좋기를 바라며 수면제까지 먹었지만 결과는 속만 쓰릴 뿐이었다. 게다가 겨우 잠들었던 그 2시간 동안은 악몽을 꾸었다. 그녀는 대게 꿈을 꿔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녀는 콘서트장 안에 있었다. 관중이 가득했고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를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는 주위의 분위기를 한 껏 즐긴 후 멋지게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 건반에 손가락을 대고 만지고 누르고 내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 피아노에서 소리가 나지 않음을 알아챘다. 처음부터였는지 아니면 중간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그것은 잔인했고 생생했다. 그녀는 피아노에서 소리가 나지 않자 당황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손가락을 계속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나지 않았다. 관객들은 그녀를 향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연이어 셔터를 눌러대었고 팬들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대 뒤에서 성난 감독과 제르딘의 표정이 보였고 스태프들 중 일부는 자기들끼리 수근대거나 비웃고 있었다. 로그는 그녀의 시선을 피한채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녀는 죽어라고 연주하고 있는데... 누구도 그녀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건반을 세게 내리쳐봤다. 그럼에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녀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꿈에서 그녀는 아무런 주도권도 갖고 있지 못했다. 이제 관객들이 서서히 떠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연주중이라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문이 열리는 소리와 관객들의 수근거림, 그리고 끊이지 않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소리를 내는데에만 집중했다. 제발 어떤 소리라도 나기를 기도하면서. 하지만 피아노는 아무소리도 내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연주는 소리없이 끝났고 그녀가 피아노에서 시선을 옮겼을때 홀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기자도 관객도 감독도 제르딘도… 그곳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홀의 입구를 쳐다보았다. 열려있는 문 너머로 반달이 보였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무대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희망과 두려움이 섞인채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존이 서 있었다. 그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희망을 기대했다. 그가 웃어주며 위로해주기를 바랐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는 비웃음이 있었고 조롱과 모욕이 있었다. 그녀는 그가 아무말 없이 떠나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생각마저 그녀의 소리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는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도 감을 수 없었다. 정말 잔인했다. 존의 입모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의 연주는 우리에게 닿지 않아.”

 그가 짧게 말했다. 그리고 무대 뒤로 사라지며 웃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마음속에 울려퍼졌다. 역겨웠다. 증오스러웠다. 그녀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분노와 슬픔에 떨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메아리 치며 홀 안을 돌아다녔다. 그녀는 울부짖었다. 소리없이… 그때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녀의 몸이, 마음이, 영혼이, 그리고 홀이 무너졌다. 그녀는 무너지는 무대에 깔리면서 악몽으로부터 벗어났다. 잠에서 깬 그녀는 식은땀 투성이었다. 숨도 헐떡이고 있었다. 최근 꾼 꿈 중에서 최악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그녀는 침대에서 새벽의 빛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했다. 아무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있었다. 언제까지라는 기약없이 그냥 이대로 줄곧 누워있고 싶었다. 그러나 곧 아래층에서 '땡' 하는 소리가 났다.

 

 오로르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계단을 반 쯤 내려갔을 때 거실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눈을 시리게 했다. 오랜만에 보는 밝은 햇빛 같았다. 뉴욕에서는 꽤나 흔한 일이었지만 영국에서는, 특히 그레이트야머스에서는 전혀 자주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간만의 햇살도 그녀를 기분좋게 해주지는 못했다. 지금 그녀는 여러가지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그리고 간밤의 악몽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게다가 지금 이 상황... 그녀는 깊은 한 숨을 내쉬고 문 앞에 섰다. 문 건너편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오로르는 문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녀는 이미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조용히 문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외시경으로 밖을 확인했다. 렌즈 너머로 그가 보였다. 문 밖에는 구름을 치는 남자가 서 있었다. 휘파람 소리가 멈췄다.

 "안녕하세요, 오로르?"

 그는 마치 오로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 가볍게 인사했다. 오로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문도 열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그는 다시금 휘파람을 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문이 아니라... 문 너머의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

 침묵

 .

 침묵

 .

 침묵...

 .

 ‘끼익.'

 1분 여간의 침묵이 끝나고 문이 열렸다.

 “어제 잘 잤나요?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오로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구름 사이로 빠져나온 햇빛이 그녀의 눈을 시큰거리게 했다.

 "오늘은 당신에게 특별히 중요한 날이잖아요. 괜히 제가 떨리네요.”

 그가 흥분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과는 상관없지 않나요?"

 그녀가 퉁명스레 물었다. 그녀는 괜히 기분이 나빴다. 그는 낯선 사람이었다. 오로르는 그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녀에 대한 일들을 쉽게 말하는 것이 싫었다.

 "상관이 없지 않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날인걸요?"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의 미소는 오늘따라 더 밝게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와 잘 어우러졌다. 하지만 오로르는 갑자기 심술이 났다.

 "그 말좀 그만할 수 없어요?"

 오로르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왜 자꾸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죠? 나는 당신을 몰라요.”

 그녀가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지 눈치를 살폈다. 다행해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거칠게 한 숨을 쉬었다.

 "그렇죠. 나를 당신에 대해 많이는 몰라요, 오로르. 하지만 모르는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지 않나요?"

 '이런 젠장!’

 순간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들이 솟구쳤다. 누가 툭 치기라도 하면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항상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그가 그가 짜증났다. 짜증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제르딘과 존, 로그를 믿고 좋아했죠? 사실 당신은 그들을 전혀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그의 눈동자에는, 그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그녀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뭐라구요?"

 그녀는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짧은 노력 위로 들끊는 분노가 덮쳤다. 턱밑까지 차올랐던 짜증은 용암같이 터져나왔고 분노의 빗줄기는 소나기가 되어 몰아쳐내렸다. 그리고 비난이라는 폭풍이 뒤이어 달려왔고 슬픔이라는 늪은 그녀의 마음 속 모든것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어!!"

 그녀의 고함소리가 집 안에, 그리고 거리 전체에 울려퍼졌다. 고함소리 뒤로 침묵이 흘렀다. 침묵 뒤로는 조용한 파도소리가 들렸고 파도소리 뒤로는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커튼을 쳐 밖을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의 고함은 이미 사라졌지만 감정의 토사물은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거기에는 분노가 있었다.

 "그래요? 오로르 화가났다면 미안해요. 하지만 잘 생각해봐요. 누군가 당신을 알아야만 좋아할 수 있다면 당신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당신을 아는 사람은 오직 신뿐이예요. 아무도 당신을 제대로 알 수 없죠. 심지어 당신 조차도요.”

 그가 차분히 말했다. 조금 전 그녀가 고함을 쳤을때도 그는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다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완벽히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어요.”

 그녀가 반박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분노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거죠? 당신 스스로 정해놓고 있나요?"

 그가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물었다. 그의 대답에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랐다. 그녀는 그가 말하는 것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누가 말해준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문득 생각난 사라와 제인을 생각하자 오로르는 그가 한 말처럼 누군가를 알아야만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그녀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해준 것처럼 그도 아무런 조건없이 그녀를 좋아할 수 있었다. 그것을 표현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싫다고 해도 그는 그의 감정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은 아니죠. 하지만 내가 왜 당신에게 이런 것을 설명해야 하는 거죠? 당신에게 이야기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요? 제발…”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떨리는 목소리를 마음 속에 가두었다. 그리고선 튀어나오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하지만 목이 간지럽고 가슴이 답답했다. 마음이 썩어들어갈 것만 같았고 곧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깊은 한 숨 뒤로 벌어져있는 입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젠장! 아무것도 필요없으니까 지금 당장 나가줘요. 제발 꺼지라구!”

 그녀는 뱉어버렸다. 가슴 깊이 고여있던 온갖 아픔과 슬픔이 만들어낸 단어들을 뱉어버렸다. 단절을 의미하는 말을 뱉어버렸다. 하지만 속은 후련했다. 후련히 뱉어버렸다. 그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는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더이상 미소가 걸려있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더 이상 밝게 빛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구름은 해를 반쯤 걸치고 있었고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오로르,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이 슬픔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내가 하늘에서 왔다는 것은 믿어주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당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말아요. 슬픔은 늪이예요. 사람들은 처음에 늪이라는 곳에 빠지면 그 사실에 당황하고 충격을 받아요. 두려움이 생기죠.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고 안간힘을 써봐요.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아요. 어찌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깊숙히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그리고 어느 순간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서서히 자신이 빠져드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요. 오히려 기분이 좋기도 하죠. 그 상태에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이까지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그 순간 죽음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다가와요. 사람들은 후회하고 도망가려해보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어요. 발버둥치는 만큼 더 깊고 빠르게 빠져들죠. 결국 마지막 순간 사람들은 후회하죠.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후회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슬픔에 사로잡힌 채로 사라지죠. 당신을 늪에 가두지 말아요, 오로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늪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줄 때 그 손을 뿌리치지 말아요. 당신은 스스로 늪에 빠져 그것을 키워나갔어요. 그리고 그 늪에 빠진 자신을 발견했을 때 당신은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택하기 보다는 그곳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만들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고 말았어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이제 그녀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흥분은 가라앉았다. 또 다시 소리친 자신이 창피했다. 하지만 그보다 방금 그가 한 말이 그녀의 귓가에서 맴돌며 그녀의 마음을 붙잡았다. 늪...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그 단어가 나올때마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파고드는 것만 같아 고통스러웠다.

 "과거의 불행은 당신 탓이 아니예요, 오로르. 당신이 비난받아야 할 일은 어디에도 없어요. 과거는 사실들을 담고 있지만 당신이 '현재' 속에서 노력할 때 '미래' 의 소망을 이루어낼 수 있어요. 과거의 행복만큼 소중하지는 않더라도 지금 당신에게는 많은 것들이 남아있잖아요. 오로르, 과거는 돌아올 수 없어요. 하지만 그것을 딛고 살아갈 수는 있지요. 당신이 만들어낸 늪은 당신만이 없앨 수 있어요. 오로르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가 오로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다시 밝게 빛났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로… 그렇게 서 있었다. 이제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어디서 온지 모를 구름들이 하늘을 빼곡히 채웠다. 해는 늘 있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당신의 친구들도 도와줄거예요. 늘 웃으며 너무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하던 한 아이가, 내가 구름위에서 늘 바라보던 한 아이가, 어느날 모든 것을 잃었어요. 미소도, 아름다운 연주도. 빠져나와요, 오로르. 슬픔은 당신의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예요. 당신은 슬플 수 밖에 없던게 아니예요. 그건 당신의 운명이 아니예요. 당신이 선택한 것이예요. 행복이 당신의 의무예요.”

 그가 말을 끝내며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화해를 의미했고 믿음을 의미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슬픔은 그녀가 여기까지 오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녀는 슬픔이 자신의 원동력인 동시에 자신을 먹어치우려 하는 늪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슬픔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고 슬픔은 그녀의 마음속에 둥지를 만들었다. 슬픔은 거기서 또다른 슬픔을 낳았고 그것은 또다시 새로운 슬픔을 낳았다. 이윽고 깊고 넓어진 슬픔의 늪은 그녀가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할 때 놔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녀를 빨아들였다. 전보다 더 빨리, 그리고 강하게. 이미 그녀는 더 이상 그녀 마음 속 주인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녀는 손님이 되어있었다. 슬픔은 그녀를 마음을 지배했다. 그녀를 강하게 붙잡았고 괴롭혔고 계속해서 더 많은 슬픔을 낳았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더욱 깊은 슬픔 속으로 빠져들었고 그곳에는 어둠이 있었다. 하지만 알아도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슬픔 속에서 그녀는 더 깊은곳으로 빠져드는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녀는 늪 속에서 잠들었다. 모든 현실을 부정한 채 거대한 늪 속에서 그녀는 잠들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현실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미쳐버릴 듯한 스트레스 때문에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부터 그녀는 노력하기를 관두었다. 현실의 아픔으로 인해 그녀는 자신에게 익숙한 슬픔을 피난처로 삼았다.

 

 그러나 이제 슬픔이 그녀를 떠나려 하고있었다.

 

 ‘슬픔이 내 삶에 어둠을 선사하고 떠나갈때면 나는 모든 희망을 잃은채 빛을 잃어가겠지... 그리고 나를 떠난 슬픔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겠지. 언젠가 내가 모든 빛을 잃어버릴 때면 나는 죽어서 사라지겠지. 왜냐하면 빛이 사라졌다는 것은 어둠이 가득하다는 이야기와 같은 말이니까. 빛이 없는 세상이야말로 죽음이니까 말이야. 아니,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거지.’

 

 그녀는 생각했다. 아니, 그녀의 마음이 말했다. 슬픔이 자신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로르는 자신이 삶에 대한 희망을 찾는다는 이유로,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핑계로 말기의 암 덩어리처럼 그녀를 잠식해오는 슬픔을 보지 않았다. 그녀가 슬픔을 피난처로 삼은 후, 슬픔은 놀라운 속도로 그녀를 잠식해오던 이전과는 달리 그녀의 목을 서서히 조여오기 시작했다. 가끔씩 숨이 막혀 그녀가 홀로 슬픔에서 빠져나오려고 할 때마다 그녀 안의 슬픔은 그녀를 매질하고 그녀 안에서 더욱 팽창해 갔다. 그와 동시에 빛은 계속해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슬픔에 기반을 둔 그녀의 피아노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로르, 당신이 슬픔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던 모든 노력들은 당신을 슬픔의 늪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한 왜곡된 노력들이었어요. 부디 늪에서, 슬픔에서 벗어나요.”

 그가 간절하게 말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곧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골목 너머에서 에메랄드색 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는 천천히 오로르의 집 앞으로 다가오더니 멈추었다. 차창이 내려오자 사라의 얼굴이 보였다.

 "오로르, 괜찮아?"

 사라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오로르는 그제서야 자신의 볼 위로 눈물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로르는 아직도 잠옷을 입은채 문을 열어놓고 서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구름치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확실히 사라는 그가 보이지 않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오로르, 괜찮은거야?"

 사라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오로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는 아직도 오로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로르?"

 그가 물었다.

 "오로르, 제인에게 가려면 준비해야지.”

 사라가 시동을 끄고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오로르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조그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서로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도 크고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오로르 정말 아무일도 없는거야?"

 사라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그 미소가 자신을 위한 미소라고 생각함이 분명했다. 오로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라가 집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둘은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사라가 집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 오로르는 뒤돌아보지 않은채 자신의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직은 아무런 빛도 발견하지 못했으나 가슴속에서 작은 희망을 느꼈다. 그녀의 볼이 핑크빛으로 상기되었다. 그녀의 심장은 설레임으로 쿵쾅거렸다.

 “사라, 금방 준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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