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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The Sky Is Filled With Clouds
작가 : ssssss
작품등록일 : 2017.7.30

여느 때처럼 구름이 가득한 영국 Norwich의 한 해변가. 그곳에는 어릴 적 불의의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녀의 피아노 소리가 매일 울려 퍼진다.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슬픔에 빠져 살던 그녀는 15살이 되는 해, 희망을 찾으러 뉴욕으로 떠나는데… 수 년이 흐르고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구름 속에 있는 한 남자를 본다. 그녀는 환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날 저녁, 그녀의 집에 노크 소리가 들린다…

 
The Present (Love) - 7화
작성일 : 17-07-30 20:05     조회 : 272     추천 : 1     분량 : 1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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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th Day (넷째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이미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늦잠을 잤다는 알아차렸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고 싶었다. 11시 22분.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간만에 꿈도 꾸지 않은채 푹 잘 수 있었다. 오로르는 가치있는 휴식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오늘부터는 진짜 연습을 해야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몇일 후 그녀는 콘서트를 해야만 했고 이미 다 외우고 있는 곡들이지만 그녀는 여태까지의 자신의 연주를 한 차원 넘어서야만 했다. 그녀의 소속 회사가 마음에 들 만한 그런 연주를 해야만 했다. 솔직히 그렇게 한다고해서 그들이 그녀를 인정해 줄지도 미지수였다. 그녀는 시작도 전에 좌절감을 느꼈다. 거친 욕들이라도 입에 한껏 담아내면 한결 나아질까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제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오로르는 한참을 거기에 앉아 연습은 시작도 못한채 피아노와 씨름했다. 그러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침대로 가 앉았다. 한 숨이 연거푸 나왔다. 꼭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의 느낌이 이럴거 같았다. 날자는 다가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구름이 보였다. 구름치기가 생각났다. 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궁금하면서도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는 그와 함께하면서 벌거숭이처럼 그녀의 상처가 들어나는 것이 불편했다. 그녀의 내면 속 꽁꽁 숨겨두었던 오래된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이 싫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녀는 그가 곧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를 기다렸다. 모순이었다. 그녀는 그가 오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오기를 바랐다. 모순이었다.

 오로르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였다. 날씨는 약간 흐린 정도였으나 하늘을 가득 매운 구름들 사이로 해가 가끔씩 고개를 들었다. 그럴 때면 눈부시게 밝은 햇빛이 창가를 향해 드나들었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렸다. 어릴적 눈을 감고 조용히 듣던 파도 소리와 같았다. 그레이트 야머스의 바다는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화재가 그녀의 행복을 태워버린 그날의 것과도 같았다. 파도 소리가 그날의 아픔을 이끌고 왔다. 그리고서는 그녀 마음속 구멍을 채워갔다.

 “안돼, 엄마. 으으…”

 오로르가 작게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하지만 눈 위에서 치는 파도에 모든 것이 뿌옇게 보였다. 멀리 해변에서 파도 소리가 조용히, 그리고 때로는 거칠게 울렸다. 묘하게 리드미컬했다. 파도소리를 듣다보니 다시금 졸음이 쏟아졌다. 더 잘 수 있다는 희망에 연습에 대한 그녀의 강렬한 의지가 조용히 잠들었다. 그녀가 파도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들려 할 때, 조용히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마음을 만지는, 그리고 부드러운. 그 멜로디는 익숙했다. 쇼팽의 노래들. 그녀가 바로 몇일 후에 연주할 곡이었다. 그러나 그 연주는 그녀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녀의 슬픔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것은 행복에 가까웠다. 따듯한 그 연주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다시 한번 기분좋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다. 그녀는 태양이 보고 싶었다. 청명한 하늘이 보고싶었다. 하지만 깊게 낀 먹구름은 이미 그것들을 모두 삼켜버렸다. 땅에는 구름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니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들이 힘들게 세상이 밝히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편으로는 성난 바다가 으르렁거리며 파도 치고 있었고 그 바다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작은 길 하나가 저 멀리 수평선 끝까지 구불 구불 나 있었다. 그녀는 요란한 파도 사이에서 잠기지 않은채 꼿꼿이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그 길이 신기했다. 그녀의 왼편으로는 반대편 수평선 끝까지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도 마찬가지로 길이 하나 있었다. 바다위의 길에도, 그리고 모래위의 길에도 가로등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의 양 편에는 각각 하나의 좁은 길만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바람도 공기도 존재할 것 같지 않았다. 하늘이 하나인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파도와 모래 바람 소리가 전부였다.

 “철컹.”

 그녀는 고개를 숙여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발 주위로는 수많은 가방들이, 그리고 꽤 오래되어 보이는 작은 망원경 하나가 있었다. 각각의 가방들은 자물쇠로 굳게 채워져 있었다. 이 상황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곧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꿈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것은 없었다. 가끔은 자신의 의지로 꿈에서 깨기도 하지만 오늘 이것은 그런 종류의 꿈이 아니었다. 그녀는 일단 걸어보았다. 한 두번 악몽을 꾸어본 것도 아니니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오로르는 시계를 보았다. 그러나 시계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시침과 분침이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시계를 풀러 땅 위로 던졌다. 그러자 가방이 보였다. 멋스러운 가방들이었다. 하나쯤 들고 가볼까 했지만 가방들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무거웠다. 결국 그녀는 그것들을 포기했다. 그녀는 이곳이 어디든 간에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어디로든지 가려 했다. 주위는 이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멀리서 보이는 커다란 파도도, 모래 바람도 이제는 소리내지 않았다. 손목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거기에는 그녀의 빨강 머리띠가 있었다. 오로르는 잠시 거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 있었다. 갑자기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잘은 들리지 않았지만 소리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왼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멀리 떨어진 그곳에 오래된 피아노가 있었다. 피아노에서는 음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금 전 그녀가 그쪽을 쳐다보았을 때만해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꿈이기에 그럴수도 있다며 신경쓰지 않았다.

 '꿈이란 비현실적인 프레임의 연속일 뿐이니까.'

 그녀는 망원경을 들어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연주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피아노는 스스로 계속 소리 내고 있었다. 피아노 오른편으로는 금색의 서체로 글자 몇개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글씨까지 알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는 포기하고 망원경을 모래 바닥에 던졌다. 그러나 혹 다시 쓸 일이 있을까 싶어 그녀는 망원경을 다시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피아노는 계속해서 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멜로디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지루한 꿈.'

 그녀는 꿈에서 깨고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식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 꿈의 주인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딱히 할 일도 없기에 모래 언덕 위의 피아노를 향해 천천히 발을 떼었다. 그때 무언가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다리에 쇠줄로 수많은 가방들이 얽히고 엉켜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없던 쇠줄이 어디서 생겨나 그녀의 다리를 묶고 있었다. 그녀는 쇠줄을 풀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쇠줄도, 가방들도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예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저 멀리 모래 언덕 위로 피아노가 보였다. 태양이 뜨거웠다. 힘들고 피곤했다. 그녀는 꿈속에서도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멜로디를 알아 들을 수 있을 때까지만 걸어가 보기로 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무거웠다. 한 10분쯤 걸었을까? 그녀는 이미 발을 질질 끌고 있었다. 모래 길 위로 고통의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그녀 얼굴의 땀이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걷고 또 걸어도 피아노와의 간격은 줄어들지 않았다. 힘이 들어서 그런지 멜로디 소리도 더 희미해진 것 같았다. 강렬한 햇빛과 바람도 불지 않는 모래길 위에서 타는 듯한 열기를 느꼈다. 그녀는 더위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녀는 걷기로 한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면서도 이미 꽤 걸어온 그녀의 노력에 보상받고 싶었다. 그녀는 그만두는 대신 발걸음을 재촉했다. 힘을내어 발걸음을 떼었다. 다행히 현실에서 느낄만한 고통의 정도보다는 덜했다. 그럼에도 그 정도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그녀는 여태까지 단 한번도 이런 종류의 고통을 느껴본적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얼마 더 못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주저 앉았다. 발가락에서 질척한 무엇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통증으로 인해 그것이 정확히 액체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무릎 꿇은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을 힘도 없었다. 아직도 희미하게 들리는 피아노 소리와 모래를 제외하고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의 머리 뒤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더위에 지쳐 반가울 법도 했지만 한 번의 만남으로 오싹함을 느낄 정도로 기분 나쁜 차가움이었다. 그녀는 목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소름은 이제 그녀 몸 전체로 퍼졌다. 파도가 모래길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파도는 그녀 바로 뒤에 있었다. 그러나 파도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않았다. 파도 위의 길은 거의 사라진 채 고개만 겨우 내밀고 있었다. 그 길의 중간 부분은 작은 산등성이처럼 높게 솟아있었다. 아까 전에는 없던 모습이었다. 거기에는 모래 언덕 위에 놓여있던 것과 같은 피아노가 있었다. 오래된 피아노였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스타일의 피아노였다. 오로르는 잠시 어딘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겉모습이 워낙 평범한 스타일의 피아노여서 그러려니 했다. 피아노에는 모래 언덕의 그것과는 달리 한 여자가 앉아 연주하고 있었다. 소녀로 보이는 연주자는 거칠게 치는 파도 속에서 슬픈 표정으로 피아노를 치고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봐도 그녀의 피아노 소리 역시 희미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망원경을 꺼내 그곳을 보았다. 연주자는 피아노를 치는 동시에 노래도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울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 철썩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로르는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저 멀리서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파도를 보았다. 주위의 모래는 아무 소리도, 저항도 없이 파도 속으로 잠식되어 사라졌다. 파도는 모래 언덕을 향해 계속해서 쳐대었고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거세게 성내는 바다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라지는 모래길을 바라보자 두려움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오로르는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꿈 속임에도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사로잡았다. 몸을 돌리기 전, 그녀가 아직 뒤를 바라보고 있을때 그녀는 마지막으로 파도 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린 소녀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피아노도, 그녀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그녀를 비웃고있는 바다가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끔찍한 두려움이 일었다. 차가운 바람도 그녀의 몸을 훑으며 그녀를 비웃는 것 같았다. 꿈이기에 죽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서웠다. 그녀는 이제 쇠줄로 몸에 매여있는 무거운 가방들을 이끌고 사력을 다해 모래 언덕 위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제법 높이 나있는 모래 언덕 위로 올라가면 안전할거라 생각했다. 그녀의 종아리에 차갑고 서늘한 물이 튀었다. 신발 아랫부분이 젖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언덕 위의 피아노에 시선을 고정한채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그녀 바로 뒤에는 그녀를 삼키려고 쫓아오는 거대한 파도가 있었지만 파도는 여전히 아무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더 두려웠다. 뒤를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언덕을 향해 꽤 오랫동안 뛰었지만 피아노는 아직도 멀리 있었다.

 '이 필요없는 가방들만 없었어도 좀더 빠르게 뛸 수 있을텐데.’

 하지만 이렇게 뛰어대도 쇠줄도 가방도 그녀의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젠장, 젠장!"

 그녀는 거칠게 욕을 했다. 숨은 점점 가빠졌고 다리는 근육통과 두려움으로 떨려왔다. 언덕 위의 피아노는 아직도 스스로 연주하며, 그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향해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파도가 그녀의 발목을 덮었다. 몸에 기분 나쁜 전율이 일었다. 가방들은 물에 젖자 더 무거워졌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쳐다보았다. 두려움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죽고 싶지 않았다. 꿈이지만 그녀는 곧 죽을것만 같았다. 거기에는… 그녀의 뒤에는...

 

 정신이 들자 가장 먼저 빗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자 창가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보였다. 눈물 때문에 주위가 온통 뿌옇게 보였다. 오로르는 자신이 아직 떨고 있는 것을 느꼈다. 꿈인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서도 두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오로르는 지금이라도 뒤를 돌아보면 거칠게 몰아치는, 그러면서도 소리내지 않는 파도가 여전히 그녀를 뒤쫓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깊은 한 숨을 쉬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한편 꿈의 내용을 다시 처음부터 떠올려 보았다. 각 장면의 이미지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선명히 되살아났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만 기억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마치 누군가가 그 부분만 지워놓은 것처럼 일말의 추측도 허용치 않았다. 마지막 바로 전에 그녀는 분명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었다.

 '파도가 나를 덮쳤었나?...'

 그녀의 몸은 떨림으로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머리는 기억하지 못했다. 마치 예리한 칼로 기억을 도려낸 것 같았다. 식은땀에 등이 축축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몸은 한결 가벼웠다. 마치 충분히 운동한 후에 느껴지는 개운함 같았다. 그녀는 손목 시계를 보았다. 꿈에서 차고 있던 것과 같은 손목시계. 다행히 시침과 분침이 있었다. 12:42분. 악몽 속에서는 하루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한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오로르는 침대에 좀 더 누워 마지막 부분을 기억해보려 했지만 식어가는 식은땀 때문에 곧 일어났다. 그녀는 곧장 타월을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갈 때 열려있는 방문 사이로 눈에 익숙한 것이 보였다. 거기에는 고장난 피아노가 보였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 피아노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었다. 어디선가 낯이 익은 피아노였다.

 

 그녀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 평범한 클래식 스타일의 피아노는 오로르가 꿈에서 본 피아노였다. 그것은 모래 언덕 위의 피아노였고, 파도 속에서 소녀가 치던 피아노였다.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 낯익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지만, 모래 언덕 위의 피아노와, 파도 위의 피아노는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파도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소녀는 과거의 오로르였다. 소녀도, 피아노도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기에 몰랐었지만 이제 오로르는 알 수 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소녀는 자신이었다. 슬픔의 연인인 오로르였다.

 

 '땡...'

 가벼운 소리...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 하나를 눌러보았다. 오로르는 꿈 꾸기 전에 들려왔던, 그녀가 또 다시 잠에 빠져들 수 있게 해준 그 연주를 떠올려 보았다. 멜로디 자체는 이미 다 외우고 있는 것들이지만 그 연주의 특별한 분위기를 떠올려보려 노력했다. 눈을 감았다. 손가락과 목을 가볍게 풀었다.

 '땡...'

 그녀는 다시 한 번 건반을 눌렀다. 손가락을 번갈아가며 건반을 하나씩 눌러 보았다. 이것이 피아노를 치기 전 그녀 만의 준비운동이자 습관이었다. 피아노의 음을 생각하고 그 음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연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간단한 워밍업이지만 그녀는 프로가 되고나서 연주 전 단 한번도 이 동작을 빼먹은 적이 없었다. 쇼팽의 곡들(미정), 그녀는 콘서트에서 연주할 곡들을 처음부터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이 장소가 콘서트 홀이라고 상상하며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집중했다. 감정을 끌어올리고 디테일한 기술들도 동원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작 두어 곡을 연주한 채 멈췄다. 그녀는 자신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것을 알았다. 숨이 차오르고 있는 것도 알았다. 그녀는 이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정말 최선을 다해 연주했다. 몇일 만에 하는 연습이기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허무함과 좌절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멈추었다. 기술적으로 그녀의 연주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감정이 문제였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집중할 때, 평소대로라면 그녀의 슬픔이 마음을 한껏 지배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오로르는 평소와는 다르게 슬픔과 다른 감정이 섞여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슬픔외의 무언가가… 그녀에게로 들어왔다. 처음이었다, 이런 느낌은. 오로르는 혼란스러웠다. 방금 전 감정이 섞인 연주는 아름답지 않았다. 이도저도 아닌 연주였을 뿐이다. 박자도 기술도 부족하지 않았지만 사람들 마음 속을 울리는 그 신비한 내면의 힘이 없었다. 그녀는 프로였다. 피아니스트였다. 그녀의 연주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돈만 많지 음악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음악을 아는 사람도 있었고 그 중에는 간혹 굉장한 전문가들도 있었다. 게다가 제르딘과 존도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평가할 것이다. 아주 냉혹하게... 그들이 이런 그녀의 음악을 듣는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녀는 여태까지 자신의 깊은 슬픔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연주를 해왔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슬픔은 그녀가 알 수 없는 다른 감정과 섞여 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색이 변해가는데 불안감을 느꼈다. 고작 일주일이라는 시간 안에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연주를 훌륭하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 강한 슬픔에 취하고자 했건만, 지금 그녀를 파고든 감정은 슬픔과는 아예 다른 것이었다. 슬픔의 색… 그것은 클라라가 죽은 날부터 여태까지 그녀과 함께하며 그녀를 지배하는 동시에 그녀를 살아가게, 그리고 동시에 죽어가게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오로르는 슬픔이 너무나 괴롭고 무겁고 무서워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슬픔은 어느새 그녀에게 마약과도 같은 존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10여년 동안 그녀는 피아노를 쳤다. 슬픔에서 그녀를 건져내줄 믿음 소망 사랑을 찾기 위해… 그것이 그녀의 최종 목적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슬픔은 지금 그녀가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의 지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그녀는 방향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채 선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에게 어느날 알 수 없는 존재가 찾아왔고 그녀는 변해가고 있었다. 어디를 향해 어떻게 변해가는지는 그녀도 몰랐다. 다만 지금 그녀는 자신이 아주 조금이지만 변화한 것을 느꼈다. 다만 단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것은 그 변화가 더 큰 슬픔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기쁘지 않았다. 아직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아직은 더 큰 슬픔의 길로 기울어진 그녀의 믿음에서 벗어나 또 다른 믿음을 찾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어느새 슬픔에서 떨어지고 싶다는 바람보다 슬픔속에 안주하며 느낀 안도감과 피아니스트로서 얻은 명성과 지위가 더 소중해졌기 때문에… 그녀는 이 변화가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더 큰 슬픔으로인한 실력의 증진, 그리고 그로 인해 달성될 그녀의 복수, 그것들에 대한 그녀의 욕구도 한 몫 했다.

 그녀는 그 곡들을 다시 연주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감정이 끼어들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연주였다. 또 연주했다. 그리고 또 다시. 머릿속으로는 제인에게 오늘 찾아가기로 한 약속이 신경쓰였지만, 구름치기가 어제 저녁부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신경쓰였지만 그녀는 오늘 만은 모든 신경을 연습에만 집중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자 그녀는 자신 앞에 처해있는 상황이 얼마나 복잡하고 절박한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연습하는 동안 창문 밖으로는 비가 수차례 쏟아지다 멈췄다를 반복했고 해도 수차례 고개를 들이내밀다 사라졌다. 도대체 몇번 연주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쯤 되서야 그녀는 잠시 쉬기로 했다. 새로 갈아입은 티셔츠는 또 다시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날씨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연습을 위해 꺼두었던 핸드폰을 켰다. 5:12분. 날씨는 춥지 않았지만 핸드폰은 계속해서 심하게 떨어대며 사라에게서 온 수많은 부재중 통화를 보여주었다. 오로르는 사라와 제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니 미리 연락을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오로르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그녀는 사라에게 오늘은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짧은 메세지 하나를 보냈다.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기 전 지난 몇일 동안 그녀에게 온 문자메세지를 모두 확인했다. 회사와 매니저에서 온 메세지는 하나도 없었다. 로그도, 제르딘도, 존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녀는 메세지함을 바라보며 차라리 이게 그녀를 위해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왜곡된 위로나 거짓 동정도, 그리고 어떤한 속임수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다. 거리에 그녀의 집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거리 어디에도 구름치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타올을 가지고 다시 샤워실로 향했다. 아까 전 모습 그대로 열려있는 부모님의 방 문 사이로 오래된 피아노가 보였다. 그녀는 선 채로 피아노를 마냥 바라보았다.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는 피아노는 여전히 커버가 닿힌 채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것은 오로르가 없던 지난 약 10년간 이곳에 이대로 있었을 것이다. 오로르는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가 피아노의 커버를 열었다. 색이 바랜 치아처럼 약간은 누렇게 변해버린 피아노의 건반들이 그녀를 맞아주었다. 그녀는 어릴적 부모님 앞에서 이 피아노를 쳤다. 그녀는 그때를 생각하며 오랜만에 추억을 되새겼다. 눈가가 젖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로르는 어머니가 죽은 후 매일같이 그녀를 그렸다. 마음에 그렸고 도화지에 그렸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죽을듯이 보고 싶어 잊지 않기 위해 매일 그렇게 그녀를 그렸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다. 그리고 어머니가 죽기 전의 아버지가 그리웠다. 따뜻한 그의 품. 매일 같이 그녀가 잠들기 전에 방에 들어와서 이야기하고 굿나잇 키스를 해주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보고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둘 모두 그녀 곁에 없었다. 한사람은 몸이 죽었고 다른 한사람은 마음이 죽었다. 한사람은 그리움이 되었고 다른 한사람은 증오가 되었다. 한사람은 사랑의 증거가 되었고 다른 한사람은 사랑의 악몽이 되었다. 그녀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렸다. 한방울 한방울... 그녀는 두 손으로 양쪽 볼을 가렸지만, 그리고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았지만 폭포처럼 볼을 타고 떨어져내리는 눈물을 다 씻어낼 수는 없었다. 그녀의 눈물이 건반 위에 떨어졌다. 그녀의 슬픔이 건반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흐느낀 후에야 오로르는 진정할 수 있었다. 그녀는 건반 위의 눈물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 중 하나를 살짝 눌러보았다.

 “땡."

 '이상한소리...'

 그녀는 잠시 먼지가 수북히 쌓인 피아노 앞에 앉아 손가락과 목을 가볍게 스트레칭하기 시작했다. 늘 하던대로. 그리고 건반을 하나씩 누르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늘 하던대로. 그녀가 건반을 누를 때마다 묵직한 슬픔의 소리가 났다. 그녀는 천천히 연주하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그리고 슬프게… 손가락은 건반을 누르고 누르고 슬픔의 색을 노래했다. 하지만 연주는 엉망이었다. 그녀는 한 곡만이라도 끝까지 연주해보려 노력했지만 제멋대로 울리는 고장난 피아노 소리에 지쳐 그만두었다. 오로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아노도 그녀의 과거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참으며 피아노 커버를 덮었다. 이제 그녀의 어린 시절 처럼 설레임과 즐거움으로 이 피아노 커버를 여는날이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혹시나 기적이 일어나 피아노가 고쳐지지는 않았을까하는 희망으로 피아노를 다시 열어보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그녀는 방을 나가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곧장 샤워실로 들어갔다. 쇠소리가 나고 문이 걸어 잠기자 이어 복도에서는 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슬피우는 가녀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변에서도 구름에서 쏟아지는 물 소리와 함께 슬피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려왔다. 거칠게 떨어지는 샤워기의 물 소리 위로 마치 어둠 속에서 비추이는 한 줄기 빛처럼 아름다운 멜로디가 그녀의 귀에 닿았다. 그것은 스킬이 뛰어나다고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현란함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끌려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로르는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귀에 환청이 들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확실히 환청은 아니었다.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분명한 소리였다. 음반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녀가 소장하고있는 쇼팽의 앨범에는 이런 스타일의 곡은 없었다. 쇼팽이라면 어릴적부터 이미 수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오로르는 조용히 샤워기의 물을 껐다. 샤워기의 물소리가 사라지자 소리가 한결 더 청명하고 아름답게 들렸다. 그녀는 샤워부스에서 나왔다. 한순간도 이 소리에서 귀를 떼지 않으려 노력했다. 두렵지는 않았다. 대신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너무 아픔다워 1초라도 더 듣고 싶었다. 이런 쇼팽은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어찌 누가 쇼팽의 곡에서 깊디 깊은 슬픔의 멜로디를 완전히 긁어낼 시도를 했겠는가. 연주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때 오로르는 서둘러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후 옷을 갈아 입었다. 이 연주를 조금 더 가까운데서 듣고 싶었다. 손잡이를 돌려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녀의 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랜드 피아노였다. 그녀는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소리에 황홀함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어갔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발자국 소리에 연주가 멈추게 될까봐였다. 그녀는 연주에 자신을 맡겼다. 그리고 이 연주에 취했다. 그녀의 오른발이 그녀의 방 문지방에 닿았다.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구름치기가 있었다. 그의 손가락들이 건반을 누를 때마다 피아노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뿜었다. 마치 구름치기를 짝사랑하는 피아노의 애절한 구혼 같았다. 그가 손가락으로 말할때마다 피아노는 사랑의 멜로디로 반응했다. 오로르는 구름치기가 이곳에 있다는것도, 그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가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했다.

 "오랜만이군요, 오로르. 잠은 잘 잤나요?"

 그가 연주를 멈추고 말했다.

 "구름위에서 늘 당신이 치는 것을 보고 한 번 따라해 봤어요. 어때요?”

 그가 살짝 미소지었다. 오로르의 오른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냥 따라해봤다구? 이게 따라해서 낼 소리야?'

 오로르는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믿을 수 없네요. 저는 이런 멜로디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한거죠?"

 그녀가 약간의 존경심을 묻어내며 물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생각보다 지나쳤는지 그녀는 왠지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당신의 연주를 따라한 것 뿐이예요. 정말 그뿐이예요.”

 그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예상 외였다. 늘 그랬듯이… 그가 너무 당연하게 대답하자 그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음악은 마음의 감정을 표출하게끔 도와주는 도구잖아요. 우리는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다른 연주를 하게 된 것 아닐까요?"

 잠시 이어진 침묵 사이로 그가 대답했다.

 “서로 다른 감정이요? 그렇다면 내 감정은 어떤거죠?"

 그녀가 진지하게 물었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잖아요. 대부분은 슬픔이죠. 그러나 슬픔만 있지는 않아요. 사람이 한가지 감정으로 가득하다면 그거야말로 악몽이죠. 당신의 마음 속에는 슬픔 보다는 적어도 기쁨, 사랑, 인내, 두려움 등등 많은 감정들 역시 존재해요.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하나로 섞여 당신을 이루어내죠. 그래서 사람은 누구 하나 같을 수 없어요. 생김새 뿐만 아니라 그 마음까지도요. 하지만 당신들은 그것을 모두 이해하지 못해 단순한 카테고리 몇가지로 나눠서 이해하려 해요. 그래서 당신들은 때때로 누군가를 훌륭한 사람 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틀로만 나누기도 하죠. 그러나 엄밀히 보자면 그것은 옳지 않아요. 사람은 모두가 아름다워요. 모두가 동일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악기를 연주할때 모두가 다른 색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을거예요.

 그가 허공을 향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뿐 만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한 사람의 연주도 매번 같을 수 없죠. 매번 다르고… 매번 아름다워요.”

 이제 그는 방금 전의 황홀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오로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 같은 연주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거죠?"

 오로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불가능해요. 말했잖아요. 나도 이제 똑같은 연주를 하기란 불가능해요.”

 그가 짧게 말했다. 그는 이제 피아노 페달을 발로 밟으며 장난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지금 당신의 그 연주처럼 뛰어난 실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오늘 계속해서 연습하고 있던 거라구요. 당신이 구름 위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면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잖아요?”

 그녀가 짜증을 참으며 말했다. 그는 지금 오로르가 간절히 원하는 연주를 그녀 눈 앞에서 보여주고서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로르는 화가나고 굴욕적이었지만 그 연주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필요하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오로르. 당신이 내가 했던 연주를 하고 싶다면 나와 같은 영혼과 내면의 감정들이 필요해요.”

 “도대체 어떻게요?"

 그녀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물었다.

 "그건 내가 뭐라고 대답해줄 수 있는게 아니군요, 오로르.”

 그가 웃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애의 어처구니 없는 질문에 웃음보가 터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당신은 빨강색 물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파랑색으로 칠하지 않는다고 미워하거나 비난하겠어요?"

 그가 천천히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녀는 그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빨강색 물감을 들고있길 원해요. 내가 그 연주를 하지 못하면 미워한다구요.”

 오로르가 조금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깊이 묻혀있던 분노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아니요, 오로르. 세상은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 비난하지 않아요. 단지 당신이 당신을 비난하고 있어요. 당신을 질책하고 당신에게 책임 지우고 심지어 미워하고 있어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마치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하는 것 처럼. 이런 그의 태도에 그녀는 더욱 화가났다.

 "아니예요. 당신은 몰라요. 나는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있어요.”

 그녀가 모든 단어들을 강조하며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죠.”

 그가 조용히,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는 움찔했다. 그녀가 완성하지 않은 문장의 마지막을, 그녀가 그녀 자신마저 속여왔던 비밀을 그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오로르, 레코딩 회사와 계약이 끝났다고 당신이 미움을 받는 것은 아니예요. 어머니가 어릴적에 죽었다고해서 당신이 비난 받아야 할 이유도 없어요. 아버지가 당신을 떠난 것도 당신이 질책받아야 할 일이 아니예요. 당신은 당신의 색깔 그 자체로도 이미 너무 아름다워요.”

 그가 오로르의 하늘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로르는 그가 자신의 가슴 아픈 과거를 연이어서 말하자 당황스러웠다. 가슴 한 편에서 묵직한 아픔이 느껴졌다.

 "아름다워도 인정받지 못하면 그만이예요. 당신은 왜 나의 과거가 비난받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 말하는거죠? 그 이유를 말해봐요.”

 그녀가 따지듯이 말했다. 이야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점점 연주와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행복' 과 연관이 있어요.”

 그가 짧게 말했다. 그의 초록색 눈동자에서 빛이나기 시작했다. 오로르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거기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에서 슬픔을 읽었다. 그녀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 속에서 작디 작은 한 줄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띵동. 띵동.'

 벨소리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방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있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로르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채 조심스레 방 밖으로 걸어갔다. 그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오로르는 재빨리 현관으로 내려왔다. 외시경으로 밖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덩치좋은 한 남자가 서있었다. 애석하게도 오로르는 그를 한 눈에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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