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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The Sky Is Filled With Clouds
작가 : ssssss
작품등록일 : 2017.7.30

여느 때처럼 구름이 가득한 영국 Norwich의 한 해변가. 그곳에는 어릴 적 불의의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녀의 피아노 소리가 매일 울려 퍼진다.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슬픔에 빠져 살던 그녀는 15살이 되는 해, 희망을 찾으러 뉴욕으로 떠나는데… 수 년이 흐르고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구름 속에 있는 한 남자를 본다. 그녀는 환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날 저녁, 그녀의 집에 노크 소리가 들린다…

 
The Present (Love) - 6화
작성일 : 17-07-30 20:03     조회 : 288     추천 : 1     분량 : 1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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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해는 떠있었지만 구름속에서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날이었다. 영국에서는 흔한 날이었다. 지금 오로르는 사라의 차에 타고 있었다. 차는 큰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낡은 에머랄드색 비틀은 도로를 달리면서 마주오는 차들에 의해 흔들리기도 하고 가끔씩 알 수 없는 신음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녀는 고향의 풍경을 바라보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그녀는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채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잡 생각들로 가득했다. 머릿 속 한편에는 여전히 피아노에 대한 불안감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녀는 머릿속을 가득 매운 많은 생각들 중 단 하나의 기억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비밀.’

 그녀가 집에서 나올 때 구름치기는 그녀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또 따라나설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단지 문 앞에서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오로르가 사라의 차를 타고 골목을 돌아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그는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이드미러를 통해 점점 멀어지는 그를 보며 그녀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심 아쉬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가 오로르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 크게 외쳤다.

 "스스로 만들어낸 비밀만큼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없어요, 오로르. 어떤일이 있더라도 이 말을 잊지 말아요! 슬픔을 만들어내지 말아요!"

 시야에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 그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골목을 꺾자… 그는 사라졌다.

 그녀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비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이것도 슬픔과 관련된 일인가?'

 그녀는 사이드 미러에 시선을 고정한채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이드 미러에는 멀어져가는 건물들과 사람들이 끊임 없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하늘과 그 하늘을 가득채운 구름만큼은 멀어짐이 없었다. 한참을 침묵과 동행하던 사라가 오로르를 한 번 쳐다보았다. 반쯤 열린 유리창에 반사된 오로르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있었다. 사라는 오로르가 자고있다고 생각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하지만 오로르는 이제 구름치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의심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녀를 위하는 그의 말투는 진심인듯 했다. 따뜻했다. 그것은 이성간의 감정과는 달랐다.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행복하는 것이 그녀의 의무라고 했다. 오로르 그녀도 이제는 정말로 행복하고 싶었다. 과거 말로만 원하던 행복이 아니었다. 마음 깊이 행복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라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랬듯이 오로르는 사라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지 몰랐다. 사라는 운전에만 집중하지 못한채 라디오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틀어놓은 채널에서는 최근 신예라고 떠오로는 가수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목소리가 무거운 가사와 어울리지 않았다. 오로르는 그녀도 자신과 같은 새장 안의 새 라고 생각했다. 언제 주인이 내다 버릴지 모르는 존재. 적어도 지금 노래부르는 그녀는 그녀 자신인지 궁금했다. 갑자기 라디오가 꺼지고 목을 다듬는 사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로르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한 준비 동작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는 척 하고 계속 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 어제 잘 못잤니?"

 그녀가 능숙한 솜씨로 핸들을 돌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예? 아뇨.”

 오로르가 짧게 답했다.

 “아, 그렇구나.”

 그녀가 상냥하게 말했다.

 "아뇨. 미안해요. 아, 저기… 신경쓰게해서요.”

 오로르가 더듬으며 말했다.

 "그런거 전혀 아니야, 미안해하지 말렴.”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오로르는 적당히 이어갈 말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구름치기와의 일을 말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몇일 후 열릴 콘서트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적당하고 적절한 주제였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마치 목구멍에 코르크마개가 끼워져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침묵은 계속됐다.

 "이번 콘서트 준비는 잘하고있니?"

 다행히도 사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는 조심히 말을 꺼냈다.

 “아, 괜찮아요."

 오로르는 거짓말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했다. 웃음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미소가 왜곡된 것임을 알고있었다. 갑자기 구름치기가 말했던 왜곡된 노력이 떠올랐다. 그녀 스스로 만들어낸 비밀과 슬픔 속에 그녀를 가두어 버리는... 그들은 이제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사라는 오로르가 아무말 않자 머쓱한 미소를 한 번 짓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다른 장르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오로르는 계속 사라에게 사실대로 모든 것을 이야기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잠시 해가 났다. 햇빛이 사방으로 비추자 잠시 눈부실 정도로 밝아진 주위에 세상도 밝아진 것만 같았다.

 “사라, 사실… 저 이번 콘서트가 마지막일지도 몰라요.”

 사라가 놀란 표정으로 오로르를 쳐다보았다. 오로르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라는 순간 흠칫하더니 재빨리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녀는 라디오를 껐다.

 "왜? 무슨소리야?"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아, 저기. 어제 말한 것들요. 그중에 제가 다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그걸 사라랑 이야기하고 싶어요.”

 오로르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 잘한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뱉어내려는 순간, 그녀는 가슴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가 마주쳐야만하는 과거의 고통이요 두려움이었다.

 "심각한 이야기구나. 오로르, 말 못한 것들이 더 있다면 다 해주렴. 숨기지 말아줘. 적어도 우리 앞에서는 말이다..."

 그녀의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뒤에 밀려오는 약간의 서운함도 느낄 수 있었다.

 "오로르. 너가 잠시 기다려줄 수 있다면 병원에서 제인과 같이 들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많이 아는 것은 없다만 둘이 듣는다면 더 좋은 방법이 나올지도 모르잖니.”

 그녀가 차창을 내리며 말했다. 열린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자 사라의 머리카락이 거칠게 날렸다.

 "네. 괜찮아요. 사라, 혹시 화가났다면 미안해요. 아직 저도 잘 믿기지 않아서요. 그리고 그 생각만 하면 너무 힘들기도 하구요.”

 오로르가 힘없이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고 변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라에게 처음부터 말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녀가 섭섭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괜찮아, 오로르. 하지만 어차피 너가 헤쳐나가야 할 일이라면 이제 더이상 피하지 말으렴. 너도 성인이잖니.”

 사라가 조용히 말했다. 대답을 마치고나서 그녀는 입을 굳게 닫았다. 오로르는 괜히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아 후회했다. 구름치기의 말을 너무 귀담아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고맙다, 오로르.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오로르는 조용히 눈을 감았고 사라는 조용히 운전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후회의 침묵이 아니었다. 사라의 한마디에 후회의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대신 오로르의 입가에는 조그마한 미소가 열렸다.

 

 '노포크 앤드 노르위치 병원이요(Norfolk and Norwich Hospital).’

 노르위치 시내를 지나 한참을 더갔다. 오로르는 사라가 거의 매일같이 이 길을 왔다갔다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사라는 매일 오다 보면 별로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수줍게 웃고 넘겼다.

 "처음에는 동네 병원에 있었어. 하지만 그쪽에서 수술은 커녕 장기 입원도 어렵다고 시내의 병원을 추천해줬어. 그리고나서 이곳으로 옮길 수 있었지. 대기자가 몇 있었지만 운이 좋아서 어렵지 않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

 주차장에는 차들이 북적였다. 사라는 라운드 어바웃을 통과해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는 완벽했다. 그녀는 사라를 따라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긴장감으로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곳 어딘가에 있을 제인과 곧 만난다는 사실에서 오는 떨림이었다. 그것은 기대감이었고 동시에 두려움이기도 했다. 만남에 대한 설렘이기도 했고 동시에 건강이 많이 나빠진 그녀를 보는데에 대한 불안이기도 했다. 대학교 소속 병원이라서 시설도 깔끔했고 사람도 많았다. 간호사와 의사들의 발소리가 바쁘게 들렸다. 잠시 후 그들은 목적지인 4층에 도착했다. 그곳은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있는 곳으로 분위기부터 적막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랐다. 어떤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한 약냄새가 났다. 숨이 막혔다. 복도는 조용했다. 복도 한 가운데의 간호사 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오로르는 하마터면 자신이 어디 있는지 잊을 뻔했다.

 "이곳이야. 따라오렴.”

 사라가 아무렇지도 않게 복도를 걸어가며 말했다. 오로르는 자신이 없던 3년 동안 이것이 사라의 일상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녀가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그러면서도 불평이 가득했던 그녀의 일상이었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사라를 따라갔다. 병실의 앞에는 환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사라, 왔군요.”

 누군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약간은 통통한 중년의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사라를 향해 인사했다.

 "네. 저 왔어요.”

 "어제는 일찍 갔더라구요. 다시 올 줄 알았어요.”

 그녀가 데스크에 앉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무슨 차트를 꺼냈다. 차트 제일 위에 '면회' 라고 써 있었다.

 "네. 어제 무슨일이 있었거든요. 캐런, 이 친구는 특별 게스트예요. 오로르 이쪽은 간호사 캐런.”

 사라가 한 손으로 오로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특별 게스트라니 제인이 좋아하겠어요.”

 캐런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오로르도 손을 내밀었다. 둘의 악수가 끝나자 캐런은 사라를 쳐다보았다. 사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로르를 쳐다보았다.

 "오로르, 잠시만 기다려줘.”

 사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오로르는 고개를 짧게 끄덕인 후, 데스크에서 약간 거리를 두었다. 오로르가 적당히 거리를 두자 사라와 캐런은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로르는 그들의 대화가 궁금했지만 관심 없는 척을 했다. 하지만 사라가 곧 미간에 인상을 쓰며 심각한 표정을 짓자 오로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집중한 결과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고마워 뿐이었다. 대화가 끝나자 사라가 오로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캐런은 오로르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으나 오로르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녀는 사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가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도 걸음도 무거워보였다.

 "오로르, 조금만 더 여기서 기다려줄래? 제인은 아직 너가 온 것을 몰라. 어제 제인이 나를 기다렸대. 먼저 들어가서 혼 좀 나고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어."

 사라가 무거운 표정위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기쁨의 미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방이 가슴아프지 않도록 자신이 대신 가슴아프며 짓는 그런 희생의 미소였다.

 "네. 여기 있을게요.”

 오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는 바로 데스크를 지나 복도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로르는 사라를 지켜보았다. 사라는 복도 맨 끝까지 걸어가더니 오른쪽 병실로 들어갔다. 걸음 소리,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조용히 울렸다. 오로르는 사라가 들어간 병실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캐런도 자리에 앉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다. 3분. 5분. 오로르의 참을성은 이미 바닥났다. 그녀는 이제 불안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아까 전 사라의 무거운 표정과 무거운 걸음이 떠올랐다.

 “저기… 제인과 사라, 참 좋은 사람들이죠?"

 데스크 뒤에서 캐런이 말했다. 오로르는 데스크 근처로 걸어갔다. 캐런은 컴퓨터를 통해 차트를 보고있었다.

 "네. 그럼요.”

 오로르가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오로르 맞죠?"

 그녀가 오로르를 살짝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잘 정리된 데스크 위에서 안경을 집어들었다. 오로르는 대답없이 고개만 살짝 흔들었다.

 “틀림없군요."

 그녀가 말했다. 안경을 쓴 후 그녀는 오로르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당신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사라의 딸이라도 되는줄 알았죠.”

 그녀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예요. 요즘같은 시대에 자식도 아닌 사람을 이렇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은 흔치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맞아요. 너무 많은 은혜를 입었죠..."

 오로르는 말끝을 흐렸다. 오로르는 한편으로 캐런이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녀의 좋은 의도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신이 안다니 다행이군요. 제가 상관할바는 아니지만 그렇다면 그들에게 표현해 봐요. 당신의 감정을요. 당신이 감사해한다는 것을 알면 기뻐할 거예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확실히 그녀가 상관할바는 아니었지만 오로르는 그녀의 말투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에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캐런의 말대로 오로르는 자신이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충분하게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감사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받을줄만 알았지 줄 줄은 몰랐다.

 "정말이네요. 고마워요.”

 오로르가 짧게 대답했다. 캐런은 미소지었다. 그녀는 다시 안경을 벗고 차트에 골몰했다.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다.

 

 또다시 5분정도 시간이 흘렀다. 오로르는 이제 기다림에 지쳤다. 하지만 사라의 부탁을 어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데스크 근처를 빙글빙글 돌았다. 순간 문득 불안감이 들었다.

 "저기요, 캐런..."

 오로르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캐런은 여전히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니터 안에는 구부정한 색색의 그래프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보였다.

 “아까 사라와 하던 이야기 말예요. 제인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된 것에 대한 건가요?"

 오로르는 캐런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보고자 했다. 캐런도 오로르의 눈을 바라보았다. 캐런은 오로르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어내었다. 두려움. 그녀는 피곤함이 엄습했는지 안경을 벗어 머리위로 올린채 엄지와 검지로 눈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오로르, 사라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캐런이 물었다. 오로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인의 건강이 많이 안좋다고 들었어요.”

 오로르가 무슨 비밀얘기라도 하듯 속삭였다. 두려움이 그녀의 마음 속 연약함을 우롱하고 있었다. 오로르는 불안감에 물어본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음, 제인이 어제 피를 토했어요. 피를 토한다는건 좋은 증상이 아니예요.”

 그녀가 망설이다가 말을 시작했다. 피라는 단어를 듣자 오로르의 가슴이 철렁 했다.

 "그녀는 약 5년전에 심한 차사고를 당했고 3년전에는 몸의 마비까지 왔죠. 가뜩이나 나이가 많아 건강히 지내도 잔병 치레가 많을텐데..."

 캐런이 잠시 말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깊은 한 숨을 내쉰 후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몸이 혹사당했으니 나이가 들면서 더 힘들어 지는거죠. 그래도 보통 사람 같으면 제인의 나이에 저 정도의 마비는 희망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은 말을 할 수 있어요. 그것도 아주 잘해요. 기적같은 일이죠. 비록 얼굴 부분 뿐이지만 거의 완치 수준으로 마비가 풀렸어요. 하지만... 더 이상 기적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오로르.”

 캐런이 유감이라는 표정으로 오로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복도에 깊은 침묵이 일었다. 오로르가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캐런은 다시 안경을 썼다. 그리고서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 보았다. 오로르는 가슴이 철렁했다. 충격으로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 했다. 제인의 병실 쪽 복도는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더이상 기적을 바라기는 어렵다고요? 그게 무슨 의미죠?"

 오로르는 캐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캐런은 그런 오로르를 바라본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찰칵.”

 멀리서 들릴까 말까한 조그만 소리.

 캐런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고개 끝에는 사라가 있었다. 그녀는 복도 끝에 서서 오로르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오로르는 멀리서도 그녀의 밝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사라의 미소를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오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캐런.”

 오로르가 짧게 말했다. 캐런은 어느새 다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아직도 같은 페이지를 보고 있었다. 오로르가 발을 떼고 걷기 시작했다.

 "오로르, 그건 사라에게 물어보도록 하세요.”

 캐런이 걸어가는 오로르에게 조용히 말했다. 캐런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로르는 잠시 걸음을 멈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사라를 향해 걸어갔다.

 "미안 시간이 오래 걸렸지? 제인에게 간단히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

 복도 끝에 도착하자 사라가 말을 꺼냈다. 오로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떨렸다. 살짝 열려있는 병실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침대 하나를 간신히 볼 수 있었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티비 소리가 들렸다. 문 옆에는 환자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제인 왓슨.

 

 오로르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병실에는 진짜 제인이 있었다. 하지만 오로르는 발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오로르, 어서 들어가보렴.”

 사라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부드러웠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발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러나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발걸음은 저절로 문턱을 넘어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며 흰색의 작은 병실의 내부가 보였고 두 개의 침대와 그 위로 누워있는 한 환자가 보였다. 병실에서는 약 냄새가 강하게 진동했다. 오로르는 병원이 이렇게 외로운 곳이라는 사실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오로르는 누워있는 한 환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알던 그 사람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초라한 얼굴을 한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불을 가슴까지 덮어쓴 그녀는 오로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제인이었다. 그 환자는… 제인이었다. 오로르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른채... 마냥 서 있었다.

 "제인, 오로르예요.”

 사라가 그녀 뒤로 들어오며 말했다. 하지만 제인은 오로르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제인.”

 오로르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무슨 말이든 꺼내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제인의 얼굴이 약간 떨렸다. 마른 그녀의 살가죽이 얼굴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오로르는 제인이 자신을 사랑하고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로르, 잘왔다. 정말 보고 싶었다.”

 제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꺼풀 사이로 작고 빛나는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오로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참으려 애를썼다.

 "이렇게 잘 커버린 너를 안아줄수가 없다니... 너를 안아주고 싶구나, 얘야. 너를 안아줄수만 있다면..."

 그녀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물 한 방울 뒤로 또 한 방울이 떨어졌다. 눈물은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졌다. 오로르는 제인에게로 다가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인도 오로르를 바라보았다. 제인은 마치 그녀를 한시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듯 눈동자를 돌려가며 그녀를 자신의 시야속에 두었다. 오로르는 이제서야 제인이 전신마비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목조차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목구멍으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애를 써봤지만 더 이상은 헛수고였다. 터져버린 눈물샘이 그녀의 뺨 위로 한 줄기의 강을 흘려 보냈다. 오로르는 제인을 꽉 안았다. 그녀의 몸에서 이미 늙어버린 자의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뒤에서 쳐다보던 사라도 몸을 돌려 눈물을 훔쳤다. 그들은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잠시동안 눈물이라는 훌륭한 언어로 대화했다.

 

 어느새 밤이 왔다.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서로 즐거워하고 서로 같이하지 못했던 지난 수년간의 세월을 이야기했다. 서로의 이야기는 막힘이 없었고 그들 사이에는 지난 날의 슬픔의 벽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르는 잠시 모든것을 잊고 이 시간을 즐겼다. 슬픔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헤어지는 순간이 이렇게 아쉬웠던 적은 오랜만이었다. 캐런이 그들에게 3번째 신호를 주자(캐런에게는 마지막 경고인 셈이다.) 오로르와 사라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끌며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집으로 가야한다는 아쉬움 뒤에 그들과 곧 또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과 기대가 있었다. 그녀는 이 순간만큼은 슬픔에서 벗어난 것만 같았다. 희망적이었다.

 "오로르, 내일도 올 수 있니?"

 제인이 오로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 뒤로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오로르도 간절히 그녀와 더 있고 싶었다.

 "네, 제인. 물론이지요.”

 오로르의 대답에 제인이 밝게 웃었다. 사라가 오로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따뜻했다.

 

 제인을 병실에 남겨둔 채 사라와 오로르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시내를 지나는 동안에도, 고속도로를 타는 동안에도, 그리고 집에 오는 내내 오로르는 오늘 일어난 모든 일들이 믿기지 않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행복이 손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소망과 희망이라는 단어도 필요 없었다. 그냥 이 상황이 그녀의 모든 것을 구제해 준것만 같았다. 차가 그레이트 야머스 역을 지나 오로르의 집에 도착했다. 사라의 차가 종종 기침소리를 내곤 했지만 그래도 안전한 여정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한 후에 그녀는 사라와 헤어졌다. 사라의 낡은 에메랄드 비틀이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은 것은 어둠과 고요뿐이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희망으로 가득찼던 그녀의 마음 속에 다시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으로 익숙하고도 어두운 것들이 다시 그녀를 채웠다. 그것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슬픔이 가득 찬 현실… 그리고 더 큰 슬픔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 그녀는 만 하루동안 잊고있던 담배를 꺼냈다. 어제부터 딱히 생각나지도, 피고싶지도 않았지만 습관적으로 입에 가져가 물었다. 더럽고 쓴 맛이 느껴졌다. 마치 처음 담배를 피울 때 느낌이었다. 그녀는 담배를 반쯤 피우다 말고 땅에 버렸다. 그녀는 집안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휘몰아치는 듯한 초조함이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피아노의 건반을 눌러보았다. 검지로 도를 눌렀다. 생각보다 가벼운 소리가 났다. 검지 손가락으로 다른 건반들도 눌러 보았다. 역시 가벼운 소리가 났다. 이제 여러 손가락들로 건반들을 눌러 보았다. 그녀는 딱히 연습도 연주도 하지 않은채 이렇게 손가락으로 건반을 치면서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동안 창가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다. 구름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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