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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The Sky Is Filled With Clouds
작가 : ssssss
작품등록일 : 2017.7.30

여느 때처럼 구름이 가득한 영국 Norwich의 한 해변가. 그곳에는 어릴 적 불의의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녀의 피아노 소리가 매일 울려 퍼진다.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슬픔에 빠져 살던 그녀는 15살이 되는 해, 희망을 찾으러 뉴욕으로 떠나는데… 수 년이 흐르고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구름 속에 있는 한 남자를 본다. 그녀는 환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날 저녁, 그녀의 집에 노크 소리가 들린다…

 
The Present (Love) - 4화
작성일 : 17-07-30 20:00     조회 : 280     추천 : 1     분량 : 1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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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

 사라는 제인의 집으로 다시 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문득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노르위치 종합병원에서 제인의 집으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그 쓸쓸한 추억의 향수는 집으로 향하는 여정 동안 그녀의 코끝에서 맴돌았다. 사라는 제인의 집에 먼저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면서 향수를 씼어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사라는 제인의 집에 6개월 전부터 살기 시작했는데 먼저 그 제안을 한 사람은 제인이었다. 최근 세계의 경제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가장먼저 여행에 대한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때문에 관광객들의 수는 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레스토랑과 각종 가게들로 생계를 꾸려가던 이곳 주민들의 삶도 어려워졌다. 어떤 가게들은 무기한 문을 닫기도 했고 어떤 가게들은 아예 팔기도 했다. 그나마 팔리는 곳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대부분 팔고자 하는 사람들도 사는 사람이 없어 난색을 표했다. 사라의 스톨도 이런 상황에서 피해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견뎌보려고 했지만 매출이 몇개월 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그녀도 결국 스톨을 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스톨은 좋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팔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그녀는 결국 집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아무 대책없이 집까지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제인은 병원에서만 살다보니 집에 꼬박꼬박 나오는 관리비라던지 전기세 수도세 등을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집은 점점 아무도 안사는 폐가처럼 변해갔다. 하지만 제인은 죽은 아들과의 추억이 서려있는 집을 처분할 수 없었다.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그녀의 유일한 보금자리를 팔 수 없었다. 그래서 제인은 사라에게 그녀의 집에서 사는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처음에 사라는 거절했지만 제인은 그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것이라고 설득했고 결국 사라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무언가 어색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지만 사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자기 집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늦은 오후 사라가 제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오늘 아침 문을 잠그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약간 긴장한채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집안에 누군가 들어온 흔적은 없었다. 그녀는 조심히 위층으로 올라가 구석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갖가지 잡동사니 물건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산더미같은 짐 속으로 침대와 옷장만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사라는 그 사이를 조심스럽게 해치며 들어가 옷가지를 꺼내었다. 그대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혼자였지만 괜찮았다. 그녀는 소파에 누웠다. 눈을 감은채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자 그녀는 곧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잠에서 깨었을때, 그녀의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었다.

 '믿음, 소망, 사랑.’

 그녀가 다시 병원으로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하늘에는 벌써 어둠이 조용히 내려 앉아 있었다.

 

 오로르

 오로르는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랐다. 어둠은 어느새 하늘을 덮었다. 그녀 옆에는 아직도 그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구름 위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가 따라오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다. 사라와 제인이 이 마을을 떠났을지도 모른는 상황이었다. 누구라도 그들의 근황을 알까해서 그녀는 정처없이 마을 주위를 떠돌아 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속에 존재하던 많은 이들은 이제 그 자리에 없었다. 고향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국 태양이 구름 뒤로 사라지려 하자 일단 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사라와 제인이 보고 싶었다.

 “오로르, 힘들어 보여요.”

 그가 말했다.

 “예, 힘들어요. 당신은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 몰라요.”

 그녀는 말 나오는대로 대충 대답했다.

 “흐음, 저기 오로르… 아직 슬퍼하기는 일러요.”

 그가 마치 그녀를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슬퍼할 일이 아니라구요? '슬퍼할 때’ 는 내가 정해요. 당신이 누군데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거죠? 당신은 모른다구 했잖아요.”

 그녀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제발 떠나달라는 말이 턱 밑까지 올라왔다.

 "당신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요, 오로르. 당신은 그들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요.”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아직 모든 집에 물어보지 않았잖아요. 그들이 당신에게 정말로 그렇게 소중하다면 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요? 그들 중 한명은 제인과 사라의 근황을 알 수도 있어요."

 그의 말이 끝나자 오로르는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그녀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녀는 혹시 겪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처가 두려워 남아있는 희망의 불씨를 이미 외면해버렸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오로르, 당신은 지금 나와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를 의심하고 있죠?"

 그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의 갑작스런 질문에 오로르는 당황했다. 한번이라도 아닌적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묻죠?"

 "나는 정말로 구름 위에서 왔어요. 당신은 아직 나를 믿지 못하는군요, 오로르.”

 그가 오로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 시선에는 깊은… 무언가가 존재하는 듯 했다.

 "오로르, 나를 한번만 믿어줄래요? 당신이 원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줄게요.”

 그는 마치 무슨 비밀이라도 말하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 후로 찾아온 잠시의 침묵은 그녀가 그를 쳐다보게 하였고 그녀의 시선이 그의 눈위를 지나갈 때 그녀는 그의 초록색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라

 이제 사라는 문 밖으로 걸어갔다. 오늘따라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제인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안간다고해도 그녀는 당연히 이해해줄테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 제인의 건강이 나빠질 때마다 사라는 그녀가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사라는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가 그녀의 가슴 위에 커다란 돌을 올려다놓은 것 같았다. 열쇠로 대문을 잠그려는 순간 그녀는 머뭇거렸다.

 '형편없는책...'

 잊고있었던 책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녀는 문 앞에 잠시 서서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로르

 오로르는 제인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 옆에는 그가 있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그 멜로디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으나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다. 물론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가장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다.

 "제인의 집으로 가자는 이야기죠?"

 오로르는 걸음을 멈춰서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네."

 그는 그런 그녀에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오로르는 당장에라도 거기 무엇이 있고 그녀가 가야하는 이유를 알려달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는 이번 한 번만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기에 마음속에서 쏟아져나오는 질문들을 마음속에 꾹 눌러담았다. 오로르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도 다시 휘파람을 불며 그녀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사라

 사라는 자신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책을 침대에 휙하니 집어던지고 책 꾸러미로 파고들었다. 높이 쌓여있는 책들 중에서 그녀는 한 권을 집어들었다. 그녀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방을 나왔다. 앞 부분의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차 운전석에서 남은 에필로그를 마저 읽었다. 그녀는 나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곧 시동 소리가 저녁의 고요한 침묵을 깨고 요란하게 울렸으나 사라의 차가 제인의 집에서 멀어지면서 다시 저녁의 고요한 침묵이 그 자리를 매웠다. 그 뒤로 파도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오로르

 이제 한 골목만 돌면 제인의 집이었다. 어디서 퀭한 자동차의 비명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점점 멀어졌고 이내 사라졌다. 파도 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멀리서 갈매기가 울음소리가 한번 들리는가 싶더니 곧 퀭한 자동차의 비명소리가 다시 들렸다. 어느새 그의 휘파람 소리가 조용해졌다.

 

 사라

 사라는 문 잠그는 것을 또 잊어버린채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대로에 들어서기 직전이라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돌아가기로 했다. 사라는 도둑이 침입할 위험은 적더라도 만일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집이 아니라는 생각에 책임감있는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차를 돌려 다시 제인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저 멀리 제인의 집이 보였다. 그 앞으로 한 여인이 눈이 부신 듯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사라는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상향등을 주행등으로 바꾸었다.

 

 오로르

 한 대의 차가 제인의 집 앞으로 다가왔다. 상향등에 눈이 부셔서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오로르는 짜증이 났지만 참았다. 대신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도착했어요. 이제 여기에 오자고 한 이유를 말해주세요."

 그녀가 참을성 없이 말했다. 상향등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전혀 얼굴을 찡그리거나 찌푸리지 않았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 때 상향등이 주간등으로 바뀌더니 곧 완전히 꺼졌다. 그녀는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사라

 헤드라이트의 빛이 여전히 한 여자를 덮고 있었다. 가로등 옆에 차를 세우고 그녀는 라이트를 껐다. 시동도 껐다. 바로 앞의 여자에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건냈다. 하지만 여자는 그대로 선채, 가만히 그녀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라가 차에서 내렸다.

 

 오로르

 헤드라이트의 빛이 사라지자 그녀는 잃어버렸던 시야를 되찾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색은 에메랄드였다. 에메랄드색… 비틀. 그녀의 앞에는 에메랄드색 비틀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낯익은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오로르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사라

 사라는 차에서 내려 집 키를 꺼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익숙한 모양의 열쇠가 잡혔다. 그녀가 문을 향해 걸으며 손가락에서 열쇠로, 열쇠에서 문으로 시선을 옮길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사라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짧은 침묵이 있었다. 서로는 서로를 쳐다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침묵은 깨졌다. 늘 그러하듯이...

 

 "오로르....?"

 .

 .

 .

 "사....라?"

 .

 .

 .

 그리고 그가 환하게 미소지었다.

 

 '쪼르륵...'

 오로르와 사라는 테이블에서 서로를 마주본채 앉아있었다. 사라가 주전자에서 보라빛 물을 떨어뜨렸다. 향긋한 차의 향기가 오로르의 긴장을 완화시켜주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오로르는 얼른 시선을 떨어뜨린 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곧 컵을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조용한 침묵이 이어졌다.

 오로르는 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극적인 재회의 기쁨을 음미했다. 마치 앞으로 평생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다소 어색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가 자신이 만나게 해준다고 이야기했기에 더 극적인 기분이 들었다.

 오로르는 조심스럽게 사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3년 전 그날보다 더 늙어있었다. 세월의 흐름이 그녀의 얼굴에 흔적을 남겼놓았다. 그녀의 표정이 바뀔 때마다 양 볼에 깊게 패여있는 주름이 요동쳤다.

 "무엇을 그리 생각하니?"

 사라가 오로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세월이 그녀에게 선사한 주름은 그녀의 멋스러움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사라가 오로르를 향해 미소지었다. 오로르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로르의 입에서 홍차의 향이 사라지자 그제서야 그녀는 사라가 질문이 떠올랐다. 이제는 질문에 답을 할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좀 피곤한가봐요.”

 오로르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오로르는 사라 뒤로 조용히 서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한 말들은 옳았다. 그는 사라를 만나게 해주었으며 그는 사라에게 보이지 않았다. 오로르는 순간 그가 자신이 말한 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감미로운 재회의 순간 속에서 그녀는 그에 대한 생각을 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가 미소를 지었다. 신비로운 느낌이 그녀를 감쌌다. 이 특별한 경험에 그녀는 마치 자신이 동화책 속의 주인공이 된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그를 믿지 못했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상황은 그녀를 한없이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사라를 바라보았다. 사라는 그녀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오로르는 지금은 그에 대한 생각을 일단 접기로 했다. 지금은 사라와 풀어야 할 문제도 있었다. 그것이 문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사라의 입가에 몇가지 단어들이 어른거리다 다시 사라졌다. 오로르도 말은 꺼내고 싶었지만 딱히 어떤 말을 꺼내야할 지 몰랐다. 사라가 무슨 말을 혼자 웅얼거리는 듯 싶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오로르 역시 어떤 말이라도 꺼내보려 했지만 입가에서 맴돌 뿐 나오지 않았다. 무거웠다. 무거운 어색함과 무거운 공기가 침묵을 만들었다.

 "잘 지냈니?"

 사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가 오로르를 바라보았다.

 “예, 저는 뭐..."

 오로르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잠시 짧은 침묵이 다시 이어졌다.

 “그래... 잘 나가는 모양이더라. 몸은 더 말랐네.”

 사라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어깨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로르는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그러면 안될 것 같은 기분에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사라도 미소지었다. 그녀의 미소도 자연스럽지는 않았지만 오로르의 것보다는 훨씬 부드러웠다.

 “네, 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오로르가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자 거짓말이었다.

 "그렇구나..."

 또 다시 짧은 침묵.

 “아, 오로르, 3년전 너의 초대에 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일단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구나. 그 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지만 연락이 안되더구나.”

 사라가 먼저 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의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진심어린 미안함이 느껴졌다. 오로르는 사라가 그날에 대해 미안해 한다는 사실에서 일종의 안도감과 함께 죄책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네. 핸드폰이 고장났었어요. 그리고..."

 오로르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의도하지 않게 튀어나온 '그리고' 라는 단어가 불편했다.

 “그리고… 아니예요, 미안해요."

 오로르가 또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왜 무슨일인데?"

 사라가 되물었다. 오로르는 그녀의 말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

 오로르는 짧은 모음을 내뱉었다. 이제 그녀의 말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그녀 스스로도 두려웠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녀의 3년하고도 수개월 동안의 여정, 약 3년전 그날의 감정들, 그리고 그 외의 길고 긴 이야기들이 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오로르는 자신의 목소리가 칼칼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 주위에 마실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르는 자신 앞에 앉은 한 여인에게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사라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오로르를 쳐다보았다. 오로르도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깊은 주름도 쳐다보았다.

 "그런일이 있었다니 몰랐구나..."

 사라가 조용히 말했다. 오로르의 끄덕임을 시작으로 침묵이 이어졌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 갈매기 소리, 그리고 시계바늘의 재잘거림이 들렸다.

 "제인은요?"

 침묵을 깬 소리. 그리고 정말 궁금했던 질문. 그녀는 사라를 만나고 여태까지 쌓아왔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자 무거웠던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틀 전의 배신은 말하지 않았다. 아직 말할 수 없었다. 이제 사라와 제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정말 궁금했던 이야기. 하지만 그녀 자신의 고민들 속에 뭍혀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혹시나 있을 그들의 서러움에 불안해 꺼내지 못한 이야기, 그리고 현실이지만 현실같지 않은 느낌에 어색해 꺼내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래. 내가 너에게 제인에 대해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구나. 너를 너무 보고 싶었지만 막상 만나니까 실감이 나질 않아서..."

 사라가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다. 감상에 젖은 말투였다. 그녀도 오로르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정신이 없었구나.”

 그녀가 말을 끝냈다.

 "하지만 제인에 대한 이야기 역시 너가 한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긴 이야기야."

 사라가 깊은 한 숨을 쉬었다. 오로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긴장됨을 느꼈다. 사라가 그녀의 끄덕임에 눈을 감았다. 또 한 번의 깊은 한 숨이 뒤따랐다. 순간 그녀의 주름이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사라는 손목시계를 한번 바라보았다.

 "시간이 매우 늦었구나. 정말 괜찮겠니?"

 오로르는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전보다 강하게… 끄덕였다.

 "그래. 사실대로 말할게. 약 10년전 너가 런던으로 간 그날 부터 말야.”

 사라가 짧게 말했다. 그녀는 이야기가 생각한 것보다 길어질 것을 느꼈다.

 "너가 런던으로 간 날 제인은 많이 울었어. 사실 그때 그녀의 눈물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어. 너가 떠나는 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너가 지고 있는 슬픔 때문이었는지. 너가 떠나자마자 제인은 너와의 추억들을 기억하고 적어가기 시작했어. 그리고 매일 같이 교회에 나갔고 매일 같이 기도했지. 그녀는 너를 위해서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다고 했어. 심지어 나에게도 부탁했지. 그런 그녀의 열정에 몇번인가 같이 교회에도 갔었지. 기분... 좋더라. 내가 모르던 마을사람들도 알 수 있고 나를 위해 진정으로 울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볼 수 있었어.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슬픔들, 불안과 두려움을 볼 수 있었고 차츰 나아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어.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시간이 지나자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나를 볼 수 있었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와 보내는 시간 또한 많아지게 되었단다. 예전에 우리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어. 서로 클라라를 친구로 두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비난했지. 그녀는 틀에 매여있지 않은 나의 모습을 싫어했고 나는 그녀의 젊잖은 척 하는 모양이 싫었단다. 하지만 너가 처음 떠난 6년 동안 우리는 매우 가까워질 수 있었어. 점점 그녀와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지. 물론 대부분의 이야기는 너에 대한 거였지만. 어느날 보니, 우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있더구나.”

 사라는 그때를 회상하며 그리움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생각외로 공통점이 많았어. 비슷한 추억도 있고 말야. 그녀도 사실 과거에는 엄청난 커피중독이었대. 매일 손이 떨릴 때까지 마셔댔다고 하더라. 나도 생각없이 마시다보면 종종 그랬거든. 그런데 매일같이 그러니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몸이 나빠진 것을 느끼겠더라고. 너가 떠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불면증 비슷한 증상이 찾아와서 고통스러운 매일 저녁을 보냈지. 그래서 끊었어. 커피랑 담배. 의사가 그러더라고. 끊을거면 두개 다 끊으라고. 그래서 이왕 담배를 끊는김에 커피도 끊었지. 처음에는 힘들었어. 미치겠더라고… 그래도 했어. 정말 미쳐버리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때는 그 정도로 무엇보다 정말 잠을 자고 싶었어.”

 사라가 오로르를 향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샌 것 같구나. 그리고 3년정도 지났을 때 제임스와 제인이 사고를 당했어. 3년전 기차를 기다리면서 간단히 이야기해주었지? 그때 제인은 아들을 잃었어. 사고로 인한 몸의 고통도 아들을 잃은 마음의 고통도 그녀는 신앙으로 이겨냈어. 그녀는 그 후 종종 그 사고자리를 찾아가곤 했었지.”

 사라가 말 끝을 흐렸다. 그녀의 말투는 과거형이었다.

 "지금은 안하나요?"

 오로르가 질문했다. 사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기뻐서 떠오른 미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슬픔과 안따까움의 미소였다.

 "더 이상은..."

 그녀가 또 다시 말 끝을 흐렸다. 오로르는 이어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사라는 긴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큰 변화는 없었어. 3년 전 너가 잠시 돌아왔을 때를 제외하고 말이야. 오로르, 이제 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으렴.”

 사라가 짧게 말했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깊은 무거움이 느껴졌다. 오로르는 긴장되었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창가 밖을 쳐다보고 있을뿐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너가 제인의 집을 나가고 나서 내가 너를 쫓아갔지. 그날 사실 나는 너에게 한가지 커다란 거짓말을 했어.”

 말을 멈춘 사라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했다. 오로르는 지금껏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날 사실은 제인이 쓰러졌었어..."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 끝을 흐렸다. 말을 마치고서 시선을 땅에다 쳐박았다. 다시는 고개를 들지 않을 것 만 같이… 오로르는 그녀를 계속 바라보았다.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사라가 무슨 말이라도 계속해 주기를 바랐다. 땅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오로르는 그녀의 입술이 있을 자리를 계속 주시했다.

 “제인은... 살아있어.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병원에 있어..."

 사라가 고개를 숙인채 말했다. 다행히 그녀의 목소리는 한 껏 차분해져있었다. 떨림은 가신것 같았다. 오로르는 사라의 반응으로 보아 제인이 죽은줄로만 알았다. 덜컹거렸던 마음은 한껏 진정되었지만 불안감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만일 그렇다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몇가지의 추측들에 그녀의 세포들이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구토가 하고 싶었다. 그녀는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다행히 구역질만 할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사라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차역에서 너를 본 순간 나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어. 미안하다.”

 사라가 힘없이 말했다. 마치 말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말해야하는 것 처럼… 마치 그런 벌을 받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오로르를 쳐다보았다. 오로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어떠한 감정들이 있을지 자세히 바라보았다. 다행히 거기에 분노는 없었다. 원망도 서러움도 없었다. 다만 오로르의 눈에는 슬픔만 있었다. 그러나 그 슬픔은 너무나 컸다. 너무 커서 곧 그녀의 눈동자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오로르를 집어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예요. 그래서 뉴욕에 오지 않으신거예요?"

 오로르가 사라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질문에는 힘이 없었다. 큰 슬픔이 그녀를 좀먹고 있었다.

 “그래. 제인을 두고 갈 수 없었어.”

 사라도 힘없이 대답했다. 오로르는 짧게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선 없이 그녀는 계속해서 끄덕였다. 마치 그녀의 대답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무언이 낳은 오해요 장벽이었다. 아침 새벽에 서리낀 유리창 건너편에서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것과 같았다. 그뿐이었다.

 "그럼 제인은 지금도 병원에 있나요? 지금 볼 수 있나요? 상태가 심각하나요?"

 오로르가 질문했다. 그들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참았던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르도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물었다.

 "오로르..."

 사라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녀는 오로르의 손을 잡았다. 떨림이 느껴졌다. 사라는 그것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오로르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제인말이야. 그 사건 이후로, 식물인간이 됐어. 그리고 지금은 건강이 많이 안 좋아.”

 사라가 목소리가 떨렸다. 사라의 말이 오로르의 귓가에서 몇번이고 계속해서 울렸다. 마치 바다 위에서 하루종일 울어대는 갈매기처럼...

 

 그날 하늘을 가득채운 구름 아래서… 사라도, 파도치는 바다도, 오로르도, 갈매기도, 바람도, 모두가 제각각 소리를 내며 울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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