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회상 - 결혼할 나이
작성일 : 17-07-17 19:43     조회 : 18     추천 : 0     분량 : 834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2년 전. 아론 16세. 파갈성.

 

 

 

 아론을 보자마자 미하루는 그의 목을 감고 긴 입맞춤을 했다. 그는 어색하게 팔을 들어 그녀의 허리에 감았다.

 

 그녀가 좀처럼 멈추려 하지 않자, 아론이 살짝 힘을 주어 떼어냈다.

 

 

 “별일 없었지?”

 

 “아론, 보름만이네. 너무 보고 싶었는데.”

 

 “나무에 긁힌 상처는?”

 

 “그게 그렇게 신경 쓰였어?”

 

 “어디 봐.”

 

 

 아론이 미하루의 손을 잡아 올렸다.

 

 미하루는 세심하게 자신의 작은 상처까지 살피고 신경 써 주는 아론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에게서 발산되는 황홀한 아름다움에 매번 넋을 놓고 만다.

 

 눈 뜨고 꿈을 꾸는 듯 비현실적이었다.

 

 아무리 좋다 해도 오래보면 무뎌지기 마련인데 도무지 무뎌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그녀에게 권력과 신분을 보장해 주는 철옹성 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아론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힘, 아름다움, 상냥함 그리고 뭐든 빨리 익히고 배우는 두뇌.

 

 그는 모두가 탐내는 완벽한 신랑감이었다. 내로라하는 귀족들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 그를 탐내지 않는 집안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파갈공작이 부러워 죽을 지경 이었다.

 

 

 “아론이 잘 치료해 주고 가서 다 나았어.”

 

 

 그가 보기에도 상처는 흉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미하루의 손을 내려놓았다.

 

 자기 숙소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리니 자연스레 미하루가 팔짱을 끼며 옆에 따라 붙었다.

 

 미하루는 거리낌 없이 아론을 따라 그의 숙소로 들어왔다. 아론이 창가 탁자에 검자루를 올려놓고 겉옷을 벗자, 문을 닫은 그녀는 다가와 뒤에서 그를 꼭 안았다.

 

 

 “아론, 그 소식 들었어? 피셔랑 루지나.”

 

 “……?”

 

 “피셔가 곧 아빠 되게 생겼어. 루지나가 임신했대.”

 

 

 함께 파갈성에서 자란 또래 친구들이었다.

 

 미하루가 들떠서 소식을 전했다. 아론은 미하루가 왜 이런 소식을 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소매 단추를 풀며 아론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나랑 동갑인 루지나가 벌써 엄마가 되다니 믿어지지 않아. 피셔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팔불출이 따로 없다니까.”

 

 

 미하루가 조심스레 아론의 눈치를 살피며,

 

 

 “아론, 우리도 올해엔……. 사람들이 우리는 언제 결혼하나 계속 물어대는데 귀찮아 죽겠다니까.”

 

 

 미하루도 이참에 확실히 말뚝을 박으리라 다짐했다. 매번 회피하는 아론에게 확실히 대답을 들어야했다.

 

 아론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너, 올해 열여섯이야. 더 이상 미룰 필요 없어. 날 봐.”

 

 

 미하루가 그를 돌려 세웠다. 잘 발육한 굴곡 있는 선들을 보란 듯이, 가슴을 내밀어 팔을 허리에 얹고 이쪽저쪽을 선보였다.

 

 그녀는 극동국 출신이라 체구가 작고 어려보이기는 했지만 세라와 동갑으로 완전히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아론의 시선이 그녀의 가슴골에 잠시 머물다가 눈으로 옮겨갔다.

 

 

 “그래, 알았어. 축제 끝나고 공작님께 말씀 드릴게.”

 

 “정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더 이상 미룰 핑계를 찾기 힘들었다. 해야 하는 거라면 할 수 밖에.

 

 전쟁이 잦은 이 시기엔 열네 살이면 결혼이 가능했다. 남자 평균수명이 마흔이 채 되지 못했다.

 

 강하고 힘 있는 자들 중, 운도 따라줘야 40대 50대를 경험할 수 있었다.

 

 후손을 보존하기 위해 결혼연령이 점차 낮아져 열네 살까지 가능해졌다.

 

 열여덟의 미하루 보고 너무 어리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론을 사랑하는 그녀로서는 진작 그의 신부가 되고 싶어 했던 걸 아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 기다렸고 그런 그녀에게 ‘나중에’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미하루는 기뻐서 그의 품속으로 달려 들었다.

 

 

 “그리고……세라랑 수업도 그만하면 안 돼?”

 

 

 그는 즉답하지 않았다.

 

 오늘은 결혼문제를 해결한 걸로 만족한 미하루는 조용히 안겨 있기로 했다.

 

 

 

 

 *

 

 

 

 

 

 “미하루가 더 이상 꼬마가 아닌 것 같은데?”

 

 “날이 갈수록 잘 여물어 가는 게 아론이 정신 못 차리겠네.”

 

 “열여섯인가? 어이, 이봐 아론, 미하루가 몇 살이지?”

 

 

 무기를 정리 중이던 기사들이 하녀들을 거느리고 저 멀리 가로질러 가는 미하루를 보며, 아론 들으라고 저마다 한마디씩 꺼냈다. 아론은 자기의 검을 닦고 있을 뿐 묵묵부답이었다.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아론은 조용했다. 미하루에게 결혼하자고 했지만 무언지 모르게 분명치 않았다.

 

 

 “공작께 요청하면 바로 들어 주실 텐데, 왜 여태 미루고 있는가?”

 

 “화족들은 한 번 마음에 품은 여자 아니면 안 된다며? 아론 자네도 미하루 아니면 안 되는 거잖아?”

 

 “설마, 미하루가 아닌 게 아닐까?”

 

 “무슨 소리, 어릴 적부터 그리 끔찍이 다루는 걸, 봐 놓고도 그런 소릴 하나?”

 

 “어디 얘 일 때 감정이랑 같으란 법 있나?”

 

 

 그랬다. 미하루가 어릴 땐 보살펴 주고 챙겨주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파갈성에 같이 들어왔고 흐린 기억 속에 미하루의 모습은 자기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미하루가 울면 아론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달래주기 위해 애썼고, 어디가 아픈 모양이어도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서 전전긍긍 했다.

 

 미하루를 보면 알 수 없는 미안함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더 친절하려고 애쓰고 그녀가 바라는 것들을 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 말들 하지만 정작 아론은 잘 모르겠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 걱정되고 미안하고 잘 해주고 싶은 마음.

 

 지켜주고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이 사랑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하루가 점점 여인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것들이 내키지 않기 때문이었다.

 

 가장 거북한 것은 입맞춤과 온 몸을 밀착시켜 하는 포옹.

 

 하지만 그의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도, 미하루도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을 하니.

 

 

 “너 때문에 내가 우리 마누라한테 하루가 멀다하고 구박신세다. 결혼도 안한 네가 미하루한테 하는 거 반 만 따라하라고.”

 

 “자네는 너무 무심하니 그런 말을 들어도 싸고. 출출한데 저녁 먹으러 가지.”

 

 

 하나 둘씩 무기를 내려놓고 사라졌다. 나이든 기사 한명과 아론만 무기손질을 마저 끝내기 위해 남았다.

 

 둘 다 말이 없는 남자들이라, 한참 동안 솔과 헝겊으로 무기손질 하는 소리만 들렸다.

 

 

 “오래 전 임무 중에 화족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지.”

 

 

 나이든 기사가 손도끼 날을 확인하며 담담히 먼저 입을 열었다. 아론은 하던 동작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귀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든 기사가 하는 말들은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게 했다. 그리고 그 생각들 후엔 혼미했던 것들이 분명해지곤 했다.

 

 

 “그 남자가 그러더군. 화족남자들은 자기 반려에 대한 확신이 아주 강해서 애매모호 할 수가 없다고. 이 여자다 싶으면, 온 몸으로 반응이 온다더군. 절대 모를 수가 없는 문제라고.”

 

 

 나이든 기사는 아론을 힐끗 보더니,

 

 

 “타겟이 잘 못 잡혔으면 빨리 바로 잡아야지. 무기가 손에서 떠나기 전에.”

 

 

 그가 손도끼를 도끼집에 끼워 놓고 연장들이 나란히 정리 된 가죽을 둘둘 말아 가방에 넣었다. 그것을 들쳐 메고는 식당 쪽으로 사라졌다.

 

 아론은 어느새 동작을 멈추고 상념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온 몸으로 오는 반응. 절대 모를 수가 없는 문제.

 

 그게 뭘까?

 

 

 

 

 

 * *

 

 

 

 

 

 ‘아론이란 이름을 택한 이유를 알고 싶어?’

 

 

 아론은 서재에서 세라를 기다리며 오래 전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400년간 속박당한 민족이 있었어. 신은 그들을 탈출시킬 위대한 선지자를 보냈지. 근데 그는 말에 재능이 없었대. 그래서 신은 말을 잘하는 대변인을 마련해 줬어. 수많은 사람을 잘 이끌려면 말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 둘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신의 명령을 완수했어.’

 

 

 그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입술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담았다.

 

 

 ‘그 대변인은 선지자의 형이야. 가족끼리 힘을 합치는 모습이 보기 좋지.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부어주지 않고 나눠 주신 신의 뜻이 그런 거라 생각 해.’

 

 

 어려웠던 내용들을 다시 떠올려 보는 지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 대변인의 이름이 아론이야. 선지자에게 힘이 되어 준.’

 

 ‘…….’

 

 ‘파갈가문 사람들은 전쟁에 속박되었어. 우리를 해방시켜 줄 선지자가 나타나면, 꼭 네 힘을 그 사람을 위해 써 주길 바래.’

 

 

 

 

 

 

 *

 

 

 

 

 

 “아론, 파라마 신화는 다 읽었겠지.”

 

 “…….”

 

 

 세라보다 덩치가 훨씬 큰 아론이 눈을 내리깔고 얌전히 있었다.

 

 보름 만에 임무를 마치고 성에 돌아온 게 불과 세 시간 전이었다.

 

 세라는 차를 홀짝이며 큰 벽돌처럼 두툼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세라는 직접 다기세트를 들고 들어 와 아론과 차를 마신 후 수업을 시작했다. 집중력에 도움이 되는 차였다.

 

 또 향이 바뀌었다.

 

 인지력이 회복되어감에 따라, 아론은 세라가 뭔가 첨가한다는 것을 오래전에 알 고 있었다.

 

 차의 향이 몇 주 간격 또는 몇 달 간격으로 자주 바뀌었다. 그것들은 반년마다 다시 반복되었고 새로운 향들이 추가 되는 일정 패턴이 있음을 최근에 확신하게 되었다.

 

 향이 새로 바뀔 때마다 몸에서 나타나는 거부반응들이 있었다.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먹기에……그도 마셨다.

 

 

 “변명은 안 통한다는 거 알고 있잖아?”

 

 

 세라는 아론 앞에 놓인 빈 찻잔을 힐끗 응시하고는 주전자를 들어 채워 주었다.

 

 

 “싸움만 잘해도 먹고 살기엔 충분하니 그만 포기하던가.”

 

 

 그녀도 아론의 임무가 잦아지고 훈련강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수련시간도 늘어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부상도 잦았고 쉬는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책을 읽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글도 읽을 수 있으니 무식하다는 소리는 안들을 테고.”

 

 “…….”

 

 “그만 포기해. 서로 편하잖아.”

 

 

 아론은 포기할 수 없었다. 세라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키만 컸을 뿐 처음 만난 모습 그대로인 그녀가 좋았다. 사실,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에겐 변함없게 느껴진다.

 

 얼굴에 가득했던 주근깨도 사라지고 머릿결은 더욱 빛났으며 피부도 더욱 투명하고 맑아졌다.

 

 몸매 또한 완전히 성숙한 여인의 굴곡을 다 가지고 있었다.

 

 성내 사람들 말을 빌리자면, 심술과 고집이 뚝뚝 떨어지던 밉상이 제국 미인 반열에 올랐다고 했다.

 

 아론은 그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한 번도 밉상이었던 적도 미인이라는 생각이든 적도 없었다.

 

 그냥 세라 파갈 그 자체였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변함없는 또 한 가지. 그녀는 그를 향해 웃지 않았다.

 

 다만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는 것이 그녀의 만족을 표현해 줄 뿐이었다.

 

 빠르게 습득하는 제자에게 놀랄 때, 그가 해온 과제에 흡족할 때,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작은 눈짓을 볼 때 그 또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 성취감이 이제는 중독이 되어 그녀가 내 주는 엄청난 양의 과제를 하느라 아론은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세라는 최선을 다하는 아론을 상대로 틈만 나면, 다른 선생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곤 했다.

 

 유일하게 그녀와 대화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하루 중 두 시간, 그것도 요즘에 확 줄어드는 마당에,‘포기하라’는 말이 늘 거슬렸다.

 

 

 “포기 안합니다. 다음 주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면 세라가 웃어 줄 것만 같았다. 대단하다고 느끼고 칭찬할 것 같았다.

 

 

 “다음 주에도 안 읽어 오면 그땐 진짜 수업 끝 인거야. 숙제 안 해 오는 학생은 더 이상 무상교육 안 돼.”

 

 “꼭 읽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아론은 스승의 작은 눈짓을 얻기 위해 불가능에 가까운 짬을 내어 끊임없이 책을 읽어내고 과제를 해야 했다.

 

 매일 30분정도는 독서한 것에 대한 확인이 들어갔다. 읽은 것에 대한 질문을 했다. 때로는 단순한 질문, 때로는 철학적인 질문 등 다양했다.

 

 화, 목요일은 작문수업 월요일은 외국어, 수요일은 미술, 금요일은 피아노 수업이 짜여져 있어 그것들에 대한 과제도 만만치 않았다.

 

 

 “오늘은 수요일. 구체 묘사 연습은?”

 

 

 아론이 화첩을 펼쳤다. 세라가 자신 앞으로 끌어당겨 습작한 그림들을 넘겨보았다. 사과, 배, 양파, 호박 등을 그린 그림들이 차례로 넘어갔다.

 

 

 “구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렸군. 반사광과 자연스럽게 변하는 톤 변화도 좋고.”

 

 

 그 말에 아론의 입술이 미세하게 호선을 그렸다.

 

 

 “물체와 맞닿은 그림자의 안쪽을 좀 더 어둡게 표현하면 반사광이 더 살아나지. 어둠을 강조하면 빛이 살아나듯. 어둠 속에 있는 빛을 살리기 위해 그림자는 더 어두워져야 해.”

 

 

 [어둠 속에 있는 빛을 살리기 위해 그림자는 더 어두워져야 한다.]

 

 

 아론은 이 말의 뜻이 왠지 모르게 슬프게 느껴졌다. 같아지지 말고 서로 달라져야만 하는 운명처럼 들렸다. 마치 세라와 자신처럼.

 

 세라는 아론의 습작 옆에 빠르게 스케치하고 명암을 깔아 자신의 설명을 그림으로 보여줬다.

 

 평평했던 공이 둥근 입체감을 찾아 주는 반사광 덕에 어두운 부분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기 위해선 그림자는 더욱 어두워져야 했다.

 

 또한 세밀한 질감의 표현이나 호박의 울퉁불퉁한 표현을 그려 보여주었다.

 

 세라의 설명을 들으며 아론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마른 양파의 껍질이 바로 떨어져 나올 것 같았고, 사과의 매끄러운 표면에 물방울이 또르륵 흘러내릴 것처럼 그려내는 솜씨에 입이 벌어졌다.

 

 

 “색연필을 줄 테니 다음 주에는 색연필로 그려와. 색을 입힐 때도 명암을 염두하고.”

 

 

 색연필 케이스를 책상에 올려놓고는 세라는 사과를 그리기 시작했다.

 

 

 “색에 현혹되어 명암을 잊으면 안 돼. 그러면 평면 사과가 되니까.”

 

 

 수업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세라는 의자에서 일어서며,

 

 

 “축제동안에도 수업은 계속 할 거야. 빼먹은 거 보충 해야지.”

 

 

 시간이 되면 피아노 연습하고 가든지. 그녀는 중얼거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휭하니 나가버렸다.

 

 이틀 후 금요일은 피아노 레슨이었다.

 

 아론은 화첩을 응시하다 서재 한쪽에 위치한 피아노를 보았다. 그리기 숙제는 그런대로 칭찬을 받은 것 같아 안심이지만 피아노는 연습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뭘 알고 말한 건가?”

 

 

 아론이 전혀 연습을 안 한 것을 들킨 것 같았다. 이 또한 수업을 포기하라는 트집거리가 될까 싶었다.

 

 아론은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피아노 위에 둔 악보들을 들춰 한 장을 꺼내 연습하기 시작했다.

 

 스승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

 

 

 

 

 세라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지난 6년간 장족의 발전을 한 제자를 보는 것이, 요즘 그녀의 유일한 낙처럼 느껴졌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 할 수 없는 법이지.”

 

 

 응접실 한쪽 벽면을 채운 책장 앞으로 와 책 한권을 꺼냈다.

 

 책장을 펼치자 속은 책이 아닌 약상자였다. 색색의 작은 병 9개가 두 열로 가지런히 고정되어 있었다.

 

 소매 속에서 작은 검은 병을 꺼내 그곳에 넣고 다시 책장에 꽂았다.

 

 12살 때, 독에 관한 비서를 읽은 후 부터 아론에게 독을 먹이기 시작했다. 소량은 치명적이지 않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가끔은 위험한 상태까지 갔다.

 

 일전에는 하루종이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어떤 때는 온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일주일동안 간지러움증에 시달려 그의 임무가 취소되기도 했다.

 

 머리카락이 한 줌씩 빠졌던 적도 있고, 고열에 시달린 적, 멈추지 않고 흐르는 땀, 구토, 어지럼증, 수전증, 가슴의 답답함. 소화불량 등 증상은 매번 달랐다.

 

 언제는 그녀와 그의 온 몸에 붉은 반점들이 올라와 성에 전염병이 도는 줄 알고 잠깐 시끄러웠던 적도 있었다.

 

 거부반응도 있지만 대단히 바람직한 변화도 있었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위아래로 상품을 보듯 훑어보았다.

 

 얼굴에 가득했던 주근깨가 사라지고 피부가 좋아지고 불필요한 살들이 빠져나갔으며 머릿결이 엄청 좋아졌다는 사실.

 

 어떤 독이 이런 효과를 준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짐작은 갔다.

 

 

 “예뻐지는 약을 만들어 팔면 대박치겠네.”

 

 

 처음엔 아론에게만 독을 타 주려했으나 효력을 가늠할 수가 없어 같이 먹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제자 사랑하는 고운 마음 씀씀이에 복 받은 거지.”

 

 

 그녀는 책들 사이에 숨겨둔 두꺼운 노트를 꺼내들고 소파에 앉았다. 독에 대한 관찰 일지였다.

 

 오늘 새로 시작한 독의 명칭과 용량을 적어 넣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화족들이 보통으로 주인을 위해 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여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행히 검을 잘 다루고 몸이 매우 날렵하여 큰 부상은 입지 않겠지만 치명적인 독이 몸에 들어오게 되면 천하 최고의 병기라 해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몰랐으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방편을 찾아야 했다.

 

 할아버지인 공작에게 건의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론에게 해만 될 뿐 좋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

 

 독이란 위험한 약이다.

 

 아론이 어떤 종류의 독에 내성을 가졌는지 적에게 알려지면 위험했다.

 

 독을 다루는 과정에서도 치밀하고 정확하지 않다면 목숨이 위험에 쳐한다.

 

 아무도 모를수록 유리했다.

 

 한 가지 독에 내성이 생기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 아론은 백 한 가지 종류의 독에 내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 독들의 이름을 세라 외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언젠가는 이 관찰일지도 태워 없애리라.

 

 세라는 아론이 독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오래 사는 화족전사가 되길 바랐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다.

 

 세라는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 나 같은 스승이 또 있을까?”

 

 

 한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번엔 어떤 증상을 겪게 될지.

 

 그녀는 일지에,

 

 

 [음독 2시간 경과.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한다.]

 

 

 라고 적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2 회상 - 못된 아론 vs 순진한 아론 2017 / 7 / 21 65 0 6018   
31 회상 - 지키고 싶은 마음 vs 파괴하고 싶은 마… 2017 / 7 / 21 39 0 6463   
30 회상 - 미하루, 할 말 있어. 2017 / 7 / 21 27 0 8231   
29 키스 라이벌 2017 / 7 / 21 27 0 4894   
28 살고 싶거든 2017 / 7 / 21 17 0 7077   
27 내 소중한 싸다구 2017 / 7 / 21 25 0 5282   
26 개인 시중 2017 / 7 / 21 20 0 7819   
25 미치광이 카라스 영주의 판결 2017 / 7 / 19 22 0 6229   
24 거부할 수 없는 끌림. 2017 / 7 / 19 20 0 8363   
23 회상 - 환각일뿐이야! 2017 / 7 / 19 20 0 5464   
22 회상 - 납치 2017 / 7 / 19 17 0 5961   
21 회상 - 숨박꼭질 2017 / 7 / 19 24 0 5350   
20 그녀는 첩자가 확실합니다. 2017 / 7 / 18 18 0 7070   
19 영주님은 60대 노인? 2017 / 7 / 18 18 0 7228   
18 영주의 퇴폐미 2017 / 7 / 18 18 0 5118   
17 카라스 영주의 귀환 2017 / 7 / 18 19 0 5104   
16 세탁방 하녀가 된 세라 파갈 2017 / 7 / 18 21 0 7059   
15 초식동물에겐 버거운 임무 2017 / 7 / 17 23 0 6450   
14 회상 - 때려주고 싶은 여자 2017 / 7 / 17 17 0 6891   
13 회상 - 진창이 되어버린 머릿속. 2017 / 7 / 17 22 0 6445   
12 회상 - 축제, 감정…질풍노도의 시작 2017 / 7 / 17 18 0 7865   
11 회상 - 결혼할 나이 2017 / 7 / 17 19 0 8341   
10 죽음을 울리는 연주자 2017 / 7 / 15 26 0 7264   
9 세라 vs 금속이빨용병 2017 / 7 / 15 27 0 8469   
8 추격자들. 2017 / 7 / 15 22 0 6837   
7 늑대의 방문 2017 / 7 / 15 25 0 8469   
6 회상 - 귀족스승 노예제자 2017 / 7 / 15 28 0 7133   
5 회상-고통을 삼키는 조우 2017 / 7 / 15 24 0 8816   
4 회상-폭주의 시작 2017 / 7 / 15 26 0 7905   
3 카라스의 검은 기사 2017 / 7 / 15 28 0 9479   
 1  2  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