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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대
작가 : 장윤봉
작품등록일 : 2017.7.6

여자는 죽어서라도 남자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다음 생 끝까지라도 따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죽는 그 순간 간절히 빌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게/만나게 해달라고.

그리고 하늘은 두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www_yppah@naver.com

 
마을을 떠나다
작성일 : 17-07-11 19:21     조회 : 253     추천 : 2     분량 : 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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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빨간 불길이 뱀의 혀처럼 그녀의 눈앞에서 넘실거렸다. 소명아. 소명아. 불 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구해야 하는데.

 

  분명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뛰어가고 있었는데 불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밑을 내려다보니 그녀의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온몸에 화염을 휘감은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발바닥이 땅에 붙은 것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아버지!

 

  결국, 땅에 엎드러져 최대한 손을 뻗어보았지만, 아버지에게 닿을 리 만무했다.

 

  눈앞에서 아버지가 타들어 가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이 주는 무기력함은 절망적이었다.

 

 "안돼...!!"

 

  외마디 비명과 화들짝 깨어난 정신은 제자리를 찾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낯익은 방안의 풍경과 덮어져 있는 이불에서 익히 아는 냄새가 났다.

 

 `아버지...`

 

  꿈이었다.

 

  그래, 아버지가 날 두고 그렇게 가실리가 없지.

 

  안도감에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인지, 애초에 역병이 퍼진 것도 꿈이 아니었나, 되짚어보는 사이 누군가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신이 들었느냐."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잠시 생각해야 했다.

 

 "다 타서... 이것밖에 찾지 못했다."

 

  그는 무언가 쥔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밀자 그가 무언가를 내 손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가락지였다. 아버지가 한몸처럼 지니고 다니던 어머니의 가락지. 한 번도 떼어놓지 않았던...

 

  아아, 꿈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이제 없다.

 

  뱃속에서부터 뜨거운 덩어리 같은 것이 오장육부를 타고 치밀어 올랐다. 숨을 꾹 참자 그것이 가슴에 맺혀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게 표정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일그러졌다.

 

 "소명아."

 

  소명아. 소명아.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내 이름인데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르는 내 이름이 왠지 내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 다정한 목소리는 더 이상 내 이름을 부를 수 없다.

 

 "왜..! 왜 막았어! 구했어야 했어. 아버지가 죽어가는 걸 무력하게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구했어야 했다고!!"

 

  소명은 태자의 어깨를 치며 울분을 토했다. 물론 그의 잘못이 아니다. 아버지는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렸고, 죽음은 아버지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죄책감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했고, 그 상대는 눈앞에 있는 그였다.

 

  태자는 그런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무력한 건 나쁜 것이 아니다.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나쁜 것이지. 그러니 널 무력하게 만든 나를 원망하거라."

 

  그 말을 듣자 가슴팍을 꽉 메우고 있던 응어리가 단숨에 목구멍을 뚫고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흑..."

 

  한번 터져 나온 울음은 몸 안에 물을 다 쥐어짜 낼 것처럼 멈추지 않고 줄줄 흘러나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치맛자락을 두 손에 그러쥔 채 한참을 꺽꺽대며 울었다.

 

 "다들 널 기다리고 있을거다."

 

  소명은 문을 뚫고 들어오던 햇빛이 사라지고 밖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조금 마음을 가라앉힌 것 같았다. 태자는 그런 소명을 밖으로 이끌었다.

 

 "아..."

 

  하늘을 올려다본 그녀는 잠시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어둠이 깔린 밤하늘에 밝은 풍등이 샐 수 없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장군님은 우리의 빛이셨어요."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고, 그래서 이렇게라도 장군님 가시는 길을 밝혀드리자고, 하나씩 풍등을 만들어 날렸다. 남은 건 소명의 풍등뿐이었다.

 

  그녀가 풍등을 받아들고 잠시 망설이자 태자가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네가 보내드리지 않으면 가는 길, 편치 못하실 거다."

 

  그 말에 손을 최대한 높이 들어 풍등을 날려 보냈다. 그것이 작은 점이 될 때까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뿐인 피붙이였다. 그녀의 첫 기억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됐고, 그녀의 모든 것이 아버지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젓가락질을 하는 법도, 글을 읽고 쓰는 것도, 사냥을 하는 법도 모든 게 다 아버지의 흔적이었다. 이제 흔적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처럼 누군가 떠날 때마다 말했다. 모두가 언젠가 어떤 방법으로든 떠나게 돼있고, 남은 사람은 떠난 이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행복하다고.

 

 "소명이 너는 내 손녀다."

 

  사라져 가는 풍등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소명을 보고 있던 노인이 나서서 말했다. 어린 소명이 삼신 할매라고 믿었던 노인은 소명에게 곧잘 옛날이야기들을 해주곤 했다.

 

 "그럼 촌수를 따지자면 제 조카가 되시겠군요."

 "동시에 제 사촌 동생이고요!"

 "아씨는 제 여식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둘 나서 소명이 자신의 가족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저희 모두의 가족이십니다."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소명이 웃음과 동시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 정말 다들 왜 절 울리고 그러십니까!"

 

  울먹이는 그녀의 곁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생각한 그녀에게 그들은 또 다른 가족을 자처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 20년 가까이 가꿔왔던 마을을 떠나야 한다.

 

  역병이 창궐했던 지역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목엔 이들의 마을뿐이었다. 병을 옮기는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니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라도 피난을 가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장군도 없으니 기댈 사람도 없었다.

 

  병이 번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어디로든 떠나야 했기에 짐을 꾸리기 위해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고 소명은 마루에 앉아 상념에 빠져 있었다.

 

 "나와 개경에 가자."

 

  떠날 채비를 모두 마친 태자는 소명의 앞에 와 앉았다.

 

 "...또 말이 헛나오셨습니까."

 

  소명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너희들의 터전을 마련해줄 수 있다. 아니, 그리할 것이다."

 

 "의원님께서 무슨 힘으로 말입니까."

 

 "약조하마. 개경에 가면 모든 것을 말해주마. 나와 함께 가자."

 

  태자의 말은 전혀 농담이나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아까 안겨 울기도 했고, 자신을 직시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그제야 빨갛게 화상 입은 태자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채 식지도 않은 재를 헤집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 이미 그녀의 마음은 결심이 섰지만 다른 말이 나왔다.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일입니다. 저 혼자 결정할 수 없으니 시간을 주세요."

 

  수락은 아니었지만, 거절도 아니었기에 태자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우린 내일 아침 떠날 거다. 그때까지..."

 

  그때 두 사람 사이에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아침까지 기다리실 필요 없습니다."

 

  함께 병자들을 돌봤던 정하였다. 사흘이나 함께 지냈지만 만난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통성명을 하거나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태자는 자신을 보는 그의 눈빛에서 묘한 적대감을 느꼈다.

 

 "저희 모두 누님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정하는 오래전 소명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산목숨이 아니었을 것이다.

 

 "서, 성..."

 

  대체 누가 호랑이한테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던가. 호랑이 앞에서 아무리 정신을 차려봐야 맨정신으로 잡아먹힐 뿐이라는 걸 그는 이날 깨달았다.

 

 크르르르-

 

  부모 없이 동냥으로 생을 근근이 이어가던 정하를 데려다가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준 심마니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성이라고 부르게 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앞에서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의 주둥이 가득 묻은 것은 방금 죽었을 것이 분명한 성의 피였다.

 

  과연 누가 그 앞에서 정신을 차리고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등을 보이고 도망치던 성의 목과 날갯죽지에 이빨을 박아넣었던 거대한 짐승의 눈동자는 살욕으로 번들거렸다.

 

  죽는다. 지금 죽는다.

 

  하지만 그는 그 날 죽지 않았다. 그랬으니 이날 여태껏 살고 있겠지.

 

  그 해는 흉년이었고, 굶주리는 모두를 위해 사슴이라도 잡아보겠다고 장군과 산에 올랐던 소명의 화살이 범의 눈에 꽂혔다. 다리가 풀려 도망할 수도 없었던 정하의 머리를 한입에 넣기 위해 아가리를 벌린 그 순간이었다.

 

  뒤이어 장군이 쏜 화살이 호랑이 몸통에 박혔고, 그 틈을 타 달려온 소명이 정하를 끌어냈다.

 

 "너 다친 데 없니?"

 

  그땐 그녀가 말로만 듣던 보살님인 줄 알았다. 지금껏 거지로 살다 성을 만나 드디어 사람답게 산다 했더니 호랑이의 피와 살이 될 뻔한 자신을 불쌍히 여겨 보살님이 내려오셨구나, 그 생각과 함께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정하는 장군의 집에 누워있었다. 다친 곳은 없었지만, 호랑이 앞에서 풀린 다리는 멀쩡해지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그 동안 보살님은 그에게 죽을 갖다 주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재잘재잘 떠들었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수풀 뒤에서 화살을 쏴 단번에 호랑이 눈을 명중시킨 보살님이 `내가 너보다 한살이나 많으니 누님이라고 불러라.`고 했을 땐 입안에 있던 죽을 뿜어낼 뻔했다.-열두 살이 호랑이를 잡다니, 난 지금껏 뭘 했단 말인가!-

 

  마을 사람들은 갈 곳 없는 그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약초에 대해 안다고 하자 드디어 마을에 의원님이 생겼다며, 약방이랍시고 그가 지낼 초가를 마을 한편에 지어주었다.

 

  정하가 소명을 누님이라 부르며 따른 것도 벌써 다섯 해가 되었다. 다섯 해 동안 그에게 소명은 보살님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듣도 보도 못한 놈팡이가 하루아침에 나타나 소명의 옆에서 알짱대는 것이다.

 

 "약속하마. 개경에 가면 모든 것을 말해주마. 나와 함께 가자."

 

  처음엔 그저 별거 아닌 놈으로 생각했건만 그의 행태가 점입가경이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장군님도 안 계신 마당에 저 얼굴만 반질반질한 놈팡이를 그냥 둘 수 없었다.

 

 "아침까지 기다리실 필요 없습니다."

 

  그는 태자의 말을 끊고 나섰다.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소명에게 전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더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가장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태자에겐 그저 새침한 소년 정도로 보였을 뿐이었다.) 놈팡이를 한 번 노려봐준 뒤에 본래의 목적을 달성했다.

 

 "저희 모두 누님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대, 대감! 큰일 났습니다!"

 

  누각에 앉아 여유롭게 서책을 넘기던 남자는 갑작스러운 소란에 혀를 차며 책을 덮었다.

 

 "쯧쯧, 체통 없이..."

 

  어찌나 웃음을 생업으로 삼고 살았는지 눈가에 주름이 빼곡히 잡힌 그는 백관 중에 이인자라는 수문하시중을 마치 제 아랫사람인 양 내려다보며 말했다. 수문하시중 또한 그의 하대가 자연스러운 듯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칠 새도 없이 허리를 조아렸다.

 

 "태자가 개경에 당도했다 합니다...!!"

 

  그 말을 듣자 남자의 표정이 차게 식으며 서책 위에 올려놓았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대체..."

 

 "예?"

 

  그의 입술이 작게 들썩이며 흘러나온 중얼거림에 수문하시중이 반문했지만 돌아온 것은 날벼락이었다.

 

 "일을 어떻게 처리한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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